본문 바로가기
국내 산행/충남山行記

2011.12.31. [충남山行記 33] 충남 예산 가야산

by 사천거사 2011. 12. 31.

 

가야산 산행기

   

일시: 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장소: 가야산 충남 예산군 덕산면  678m

◈ 코스: 상가리주차장 → 옥양봉 → 석문봉 → 가야산 → 남연군의 묘  상가리주차장

◈ 시간: 4시간 20분 

◈ 회원: 아내와 함께

 

 

 

09:00   오늘은 예산에 있는 가야산으로 2011년 한해를 마감하는 종결산행을 떠나는 날이다. 이 가야산은 2009년 7월 5일 홍세영 회장님과 수정봉, 옥양봉, 석문봉을 거쳐 일락산 쪽으로 종주를 한 적이 있다. 오늘은 상가리에서 옥양봉과 석문봉을 거쳐 가야산 정상을 오른 다음 상가리로 하산하는 코스를 정하고 아내와 함께 아파트를 떠났다. 아침 날씨가 조금 쌀쌀한 편이지만 해가 나면 기온이 올라 산행을 하기에 무척 좋을 것 같다.

 

어제 도고온천을 가기 위해서 달렸던 길을 오늘도 똑 같이 달렸다. 국도를 이용하여 동공주나들목까지 간 다음 당진상주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내일 아침 일출을 보러 모두 동해로 떠났는지 고속도로는 아주 한산했다. 고속도로가 이 정도는 되어야지. 예산수덕사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삽교와 덕산을 거쳐 가야산 산행의 들머리인 상가리 주차장으로 달렸다.

 

10:55   넓은 상가리 주차장에는 이미 꽤 여러 대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 산행준비를 한 다음 포장도로를 따라 7분 정도 올라가니 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왼쪽은 원효봉과 가야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석문봉과 옥양봉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Go!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길은 계속 이어졌다. 왼쪽으로 송신탑이 여러 개 서 있는 가야산 정상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곧 올라갈 예정인 옥양봉이 보인다. 잠시 후 길은 다시 석문봉으로 가는 길과 옥양봉으로 가는 길로 갈라졌다. 오른쪽 옥양봉 가는 길로 Go!

 

▲ 상가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59]

 

▲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11:00]

 

▲ 갈림길에서 표지기가 있는 왼쪽으로 [11:05]

 

▲ 가야봉 가는 길과 옥양봉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1:07]

 

▲ 왼쪽으로 가야산 주능선과 가야산의 주봉인 가야봉이 보인다 [11:08]

 

▲ 시멘트 포장도로 뒤로 옥양봉이 솟아 있다 [11:10]

 

▲ 석문봉와 옥양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1:17]

 

11:19   계곡으로 가는 길과 능선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능선길을 택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능선길로 들어서자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이 이어졌다. 작년 12월 지산마을에서 영축산을 올라갈 때 통과한 소나무 숲길과 매우 흡사하다. 길은 계속 돌길인데, 아래 지역에서는 조금씩 비치던 눈이 고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바닥에 많이 쌓여 있었다.

 

오른쪽으로 관음전이라는 절집이 하나 보인다. 이정표에 거리가 50m 라고 적혀 있는데 보러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경사가 점점 급해지면서 바위지대가 시작되었다. 밧줄이 매어져 있는 곳도 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데 사람들이 꽤 많다. 동료끼리 온 팀도 있고 가족끼리 온 팀도 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 계곡길과 능선길이 갈라지는 곳 [11:19]

 

▲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 [11:22]

 

▲ 바닥은 계속 돌길이다 [11:24]

 

▲ 자, 자세 잡으시고 [11:31]

 

▲ 자세 솧습니다 [11:39]

 

▲ 바위지대가 슬슬 보입니다 [11:47]

 

▲ 관음전이 50m 떨어진 곳에 있는 이정표 [11:51]

 

▲ 밧줄이 매어져 있는 바위지대 [12:00]

 

▲ 아이구 왜 이렇게 높아! [12:01]

 

▲ 옥양봉 정상에 오르기 직전 능선에서 [12:14]

 

12:17   해발 621m의 옥양봉 정상 올랐다. 옥양봉에서 석문봉까지의 능선길은 제작년 홍세영 회장님과 수정봉으로 올라 일락산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걸을 때 지나간 적이 있다. 주능선에는 눈이 적잖이 쌓여 있었는데 그래서 걷기에 아주 좋았다. 정면으로 앞으로 가야할 석문봉과 가야산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다. 고만고만한 능선길이 계속 이어졌다.

 

▲ 옥양봉 정상에 모여 있는 산행객들 [12:17]

 

▲ 옥양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와 산행안내도 [12:17]

 

▲ 옥양봉에서 석문봉을 향하여 [12:18]

 

▲ 석문봉에서 가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12:21]

 

▲ 길이 좋아 걸음도 빠르다 [12:24]

 

▲ 잠시 쉬며 숨을 한 번 고르고 [12:27]

 

▲ 길이 아주 좋습니다 [12:40]

 

▲ 저기가 지나온 옥양봉이야? [12:47]

 

▲ 눈이 좋으니 나도 한 장 찍고 [12:53]

 

▲ 석문봉 직전에 설치되어 있는 통신시설 [13:00]

 

13:04   해발 653m의 석문봉에는 일락사로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정상에는 해미산악회에서 세운 백두대간 종주 기념돌탑이 있고, 예산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도 있고, 표지석 옆에서는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석문봉 정상은 천혜의 조망터로 사방이 틔여 있어 옥양봉 쪽, 가야봉 쪽, 일락산 쪽이 모두 잘 보였다. 자, 이제 가야산의 주봉인 가야봉으로 가야 한다. 암릉이 가끔 나타났지만 가야봉으로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 석문봉 정상부: 돌탑과 이정표가 보인다 [13:04]

 

▲ 석문봉 정상 표지석과 함께 [13:07]

 

▲ 가야봉을 배경으로 석문봉 정상에서 [13:08]

 

▲ 가야봉을 배경으로 석문봉 정상에서 [13:08]

 

▲ 옥양봉에서 석문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13:09]

 

▲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암봉에서 [13:19]

 

▲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13;28]

 

▲ 가야봉 정상의 통신탑이 보인다 [13;37]

 

13:44   암벽 왼쪽으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작은 암봉을 하나 넘자 송신탑이 여러 개 서 있는 가야산의 주봉인 가야봉이 손에 잡힐 듯 하다. 가야산의 주봉인 가야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옥양봉과 석문봉에서 가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데크로 되어 있는 정상에 오른 다음 사진을 몇 장 찍고 오른쪽으로 하산로가 있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산 계단길은 곧 계곡길로 이어졌는데 경사가 보통이 아니다. 돌위에 눈이 쌓여 있고 경사가 심하니 여간 조심이 되는 게 아니다. 한 발 한 발 스틱에 의지하며 내려간다. 빨리 걸을래야 빨리 걸을 수가 없다. 그나 저나 헬기장으로 가는 길은 놓쳤나보다. 보기에 오른쪽에 있는 능선에 있는 것 같은데 어디로 해서 그리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 계단을 오르다가 [13:44]

 

▲ 방금 넘어온 암봉 [13:48]

 

▲ 가야봉 정상이 손에 잡힐 듯 하다 [13:57]

 

▲ 정상으로 이어지는 계단 뒤로 옥양봉과 석문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14:03]

 

▲ 가야산의 주봉 가야봉 정상에서 [14:04]

 

▲ 나도 한 장 찍고 [14:05]

 

▲ 둘이서도 한 장 찍고 [14:06]

 

▲ 급경사 계곡 하산길 [14:12]

 

▲ 돌길에, 쌓인 눈에, 급경사에, 하산길이 장난이 아니다 [14;23]

 

14:38   이정표가 하나 서 있다. 오른쪽으로 헬기장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었다. 그렇다면 헬기장은 정상에서 계단을 도로 내려와 송신탑이 있는 지역을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하는 모양이다. 계단 아래에서 헬기장 이정표를 못 보았는데, 거 참 이상하네. 이정표를 지나면서 길은 많이 순탄해졌다. 잠시 후 도로에 들어섰고 상가저수지 제방 위를 걸어 남연군의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남연군의묘 아래에는 남연군을 이곳으로 모셨던 남은들 상여를 보관하고 있는 상여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명당으로 유명한 남연군의묘가 있는 자리는 원래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대원군이 불태워 없애고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썼다고 한다. 아무리 명당 자리라고 하드라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남에게 피눈물을 나게 한 것은 사람으로 할 도리가 아니다.

 

남은들 상여

 

중요민속문화재 31호.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李球)의 시신을 장지까지 운반하던 기구로 행상, 영여, 온량거라고도 한다. 남은들 마을입구의 상여막에 보관되어 있는데 보통의 상여막에서 처럼 상여를 해체하여 보관하지 않고 조립된 그대로 관람하기 좋게 전시되어 있다. 긴 멜대를 중심으로 한 기본틀 위에 관을 싣는 몸체를 조성하고 맨 위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넓은 천을 펼쳤다. 몸체에는 봉황, 용무늬 등이 새겨지고 색색의 띠와 술을 늘어뜨려 화려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를 주고 있는데 망자의 명복을 빌고, 슬픔을 덜어주려는 의미인 듯 싶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남연군은 순조 22년(1822)에 죽었는데 당시의 가야사 터(현재, 예산군 상가리에 있는 보덕사터)가 왕손을 낳게 하는 명당이라는 풍수설에 의하여, 흥선대원군이 헌종 6년(1840)에 가야사를 불태우고 아버지의 묘를 이장한 것이라 한다. 이장을 하고 난 그 다음 해에 둘째 아들 이재황(李載晃)-후일, 고종으로 즉위함-을 낳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상여의 제작은 1840년과 고종의 탄생년인 1852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상여는 그 자체의 가치보다도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상여라는 점에서 유물로서 가치가 있다. 각 부의 조각수법도 당시의 조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며, 다른 작품에 비하여 어느 정도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또한 대원군이 세도를 얻기 전에 제작된 것이므로, 왕실에서 사용하던 상여보다는 조촐한 모습이지만 왕실 상여의 제작을 담당하던 ‘귀후서(歸厚署)’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왕실에서 사용하던 상여인 대여(大輿)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숙종 대의 ‘청풍부원군 상여’와 비교할 만한 가치를 지닌 자료이다. 

 

남연군의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1822)의 묘이다. 대원군 이하응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듣고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을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이장했으며, 이장한지 7년 후에 차남 명복이 태어났는데 그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그 후 1866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으며, 이 일로 대원군이 서양에 대한 배척을 강화하는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묘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무덤 주변에서 조선시대의 기와가 많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 헬기장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곳 이정표 [14:38]

 

▲ 도로에 들어서서: 반갑습니다 [14:52]

 

▲ 상가저수지 뒤로 가야산이 솟아 있다 [14:54]

 

▲ 상가저수지 제방 뒤로 옥양봉이 보인다 [14:55]

 

▲ 남은들 상여가 들어 있는 상여각 [15:03]

 

▲ 남연군의묘 앞에서 [15:05]

 

15:20   오전에 떠났던 주차장에 다시 무사히 돌아왔다. 배낭을 차에 싣고 주차장을 출발, 이번에는 고덕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아침에 왔던 길을 되짚어 달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아침보다는 늘었지만 그래도 소통은 아주 원활했다. 동공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청주에 도착하니 5시 15분이다. 아파트에 들어와 통닭을 배달시킨 다음 맥주를 마시며 한 해를 마감하는 추억의 자리를 가지는 것으로 2011년 마지막 산행의 막을 내렸다.

   

▲ 오전에 떠났던 주차장에 다시 돌아왔다 [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