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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서유럽 5개국

2011.08.03. [서유럽 여행 4] 파리→인터라켄

by 사천거사 2011. 8. 3.

 

서유럽 여행 4

 

 

 ◈ 일시: 2011년 8월 3일 수요일

 ◈ 코스: 파리 → 루브르 박물관 → 개선문 → 상제리제 거리 → 떼제베 → 로잔 → 인터라켄 

 ◈ 회원: 14명

 

 

 

  

 

 

5시 30분에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 곧바로 잠을 잔 탓인지 몸이 가볍고 개운하다. 7시 50분에 뷔페식으로 아침을 먹고 짐을 모두 내려 버스에 실었다. 오늘은 파리를 떠나 스위스로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관광포인트는 루브르 박물관, 개선문, 상제리제 거리인데 그 중에서 루브르 박물관이 키 포인트다. 가이드의 말대로 내리던 비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다.

 

▲ 이틀 밤을 묵은 파리의 Marriott Charles De Gaulle 호텔 [08:53]

 

▲ 비 내린 파리 시내 풍경 [09:55]

 

▲ 에펠탑은 시내 어디에서나 보인다 [09:58]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람 참 많다. 2010년, 즉 작년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8백 5십만 명이나 되었다니 가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꼭 보아야 할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그리고 '모나리자'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본 것과 비슷한 조각상들을 지나 밀로의 비너스 상 앞에 섰다. 8등신 미녀란다. 그런데 양 팔은 어디에 두고 왔나?

 

루브르 박물관(Le musée du Louvre)

 

 

루브르 박물관(Le musée du Louvre)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인 리볼리 가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소장품의 수와 질 면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지금의 건물은 루브르 궁을 개조한 것으로, 파리의 센 강에 포함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은 근대에 건설된 것으로 한 때 어울리지 않다는 평이 많았으나 현재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조형물이 되었다. 프랑스어로 뮈제 뒤 루브르, 그랑 루브르, 또는 단순히 루브르 라고도 불린다.

 

루브르 박물관은 루브르 궁전 내부에 위치해있다. 루브르 궁전은 12세기 후반 필립 2세의 명으로 착공되었는데, 그당시만 해도 궁이 아닌 요새였다. 아직도 당시의 요새 잔재들을 볼 수 있다. 이 요새가 루브르 궁이 되기까지 수차례에 걸친 건물 확장 공사가 이루어졌다. 167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루브르를 왕실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로 쓰도록 했다.

 

1692년 루브르 건물에 왕립 아카데미가 들어서고 1699년에는 첫 번째 살롱전이 개최되었다. 아카데미는 루브르에 100년동안 남아있었다. 프랑스 대혁명당시, 국민회의는 루브르가 박물관으로서 국가의 걸작을 전시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박물관으로서의 루브르는 1793년 8월 10일 537점의 회화를 전시하며 첫 문을 열었는데 전시된 작품은 대부분 몰락한 귀족과 교회에서 징발된 수집품들이었다.

 

박물관 건물 내부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박물관이 1796년에서 1801년까지 문을 닫았다.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시기에 소장품의 규모가 크게 늘었고 이름도 뮈제 나폴레옹으로 바뀌었다가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대패하자 나폴레옹 군대에 빼았겨 루브르로 보내졌던 많은 작품들이 고국으로 돌려보내졌다. (사실 당시 박물관장이 지하실에 빼돌려 돌아가지 못한 작품도 여럿 된다고 한다.)

 

루이 18세와 샤를 10세 재위기간에 다시 한번, 더 큰 규모로 소장품이 늘었고, 제2 제정(나폴레옹 3세 통치기간)중에 20,000여 점의 수집품이 들어왔다. 소장품은 제3 공화정때 부터도 기증과 선물로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2008년 기준으로는 8개의 전시관에 나뉘어 있다. 이집트 고대유물관, 근동 유물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로마 유물관, 이슬람 미술관, 조각 전시관, 장식품 전시관, 회화관 그리고 판화와 소묘관 등이다.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조각상 가운데 하나로, 기원전 130년에서 1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과 미를 관장하는 여신인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비너스)를 묘사한 대리석상으로, 길이는 203cm이다. 밀로의 비너스는 1820년 4월 8일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밀로스 섬의 농부 요르고스 켄트로타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며칠 후 프랑스 해군 장교 쥘 뒤몽 드위빌이 이 조각상의 중요성을 인식, 터키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마르키 드 리비에르를 설득해 조각상을 구입했다. 이 조각상은 1821년 루이 18세에게 헌납되었으며, 이후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박물관 입구에서 대기 중 [10:08]

 

▲ 역삼각형 피라미드 [10:12]

 

▲ 피라미드의 중심이 되는 기둥 [10:24]

 

▲ 루브르 박물관이 예전에 요새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성벽 [10:29]

 

▲ 대리석 조각상들 [10:32]

 

▲ 남성미가 넘쳐나는 조각상 [10:32]

 

▲ 밀로의 비너스 앞에서 [10:33]

 

▲ 밀로의 비너스 [10:35]

 

▲ 밀로의 비너스 뒤태 [10:36]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조각한 대리석 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 가이드는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그게 그것 같고 잘 모르겠다. 아뭏든 정밀하게 사람의 모습을 그려낸 것에 대해서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왕실 유물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최고급의 유물들이 분야별로 전시되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왕관은 단순한 왕관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 조각 전시관의 조각상 [10:40]

 

▲ 조각상 앞에서 [10:41]

 

▲ 균형미가 뛰어난 조각상 [10:42]

 

▲ 잠든 자웅동체 조각상 헤르마프로디토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회원들 [10:42]

 

▲ 수많은 관람객으로 발디딜 틈 조차 없는 박물관 [10:53]

 

▲ 왕실 유물 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왕관 [10:57]

 

니케(나이키) 상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사람들은 유명한 작품을 용하게 알아본다. 그림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문외한이 보아도 잘 그렸다고 생각이 되는 그림들이 양쪽 벽에 걸려 있는데, 그 중에서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잘 알려진 그림에 속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명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였다. 사람들이 겹겹이 몰려 있어 그림 앞으로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가이드는 연신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강조를 한다.

 

사모트라케의 니케(NIKE of Samothrace)

 

BC 190년경에 제작된 작품으로 하늘에서 뱃머리에 내려와 서 있는 날개가 달린 니케(승리의 여신)를 표현하고 있다. 머리 부분과 양 팔뚝은 없어졌다. 1863년 사모트라키 섬에서 발견, 로드스 섬 사람들이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에 대한 전승을 감사하여 사모트라키 섬 카베이로 신역() 가까이에 세운 상()으로 추정된다. 

 

모나리자(Mona Lisa)

 

 

유채() 패널화로 크기는 세로 77㎝, 가로 53㎝이다. 라 조콘다(La Gioconda)라고도 한다. 모나리자의 모나는 이탈리아어로 유부녀에 대한 경칭, 리자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조콘다의 부인 이름이다. 조 콘다부인은 G.포지의 조사를 통하여 피렌체의 안토니오 마리아 디 놀드 게라르디니의 딸임이 판명되었다. 따라서 본명은 리사 게라르디니(Lisa Gherardini)이다.

이 작품은 부인의 나이 24~27세 때의 초상이며, 레오나르도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았을 때 이 미완성의 초상화를 가지고 갔었는데, 왕에게 4,000에큐에 팔려 퐁텐블로성()에 수장되었다. 때때로 세정()도 하고, 광택용 니스를 바르기도 한 관계로 전체에 균열이 생겨 제작 당시의 시원스럽고 여유 있는 필치는 볼 수 없다.

이 초상은 눈썹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에 대해서는 당시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여성들 사이에 눈썹을 뽑아버리는 일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라는 설, 미완성작이라는 설, 원래 눈썹이 그려졌으나 복원 과정에서 지워졌다는 설 등이 있다. 또 2009년에는 프랑스의 미술전문가가 240메가픽셀의 특수카메라를 사용하여 분석한 결과, 다 빈치는 이 그림을 3차원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유약으로 여러 겹을 특수처리하였고, 가장 바깥에 그려졌던 눈썹이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화학반응을 일으켜 사라지거나 떨어져나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다 빈치는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하여 악사와 광대를 불러 부인의 심기()를 항상 즐겁고 싱그럽게 함으로써 정숙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 편안한 손 등 신기()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기()작가 바사리에 따르면, 이 그림은 4년이 걸리고도 미완성인 채로 끝났다고 하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원숙기인 제2피렌체시대에 해당하는 1503∼1506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보는 사람에게 신비성을 느끼게 하여 많은 풍설()과 함께 ‘모나리자의 수수께끼’로서 오늘날도 적지 않은 문학적 관심거리이다. 요컨대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간에 대한 오묘한 감정과 관능의 표현인 것이다. 이 그림의 역사적 경로에는 불분명한 점이 많아 모나리자에 대한 신비성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일찍이 《모나리자》가 대낮에 루브르미술관에서 도난당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도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범인이 피렌체의 미술상 A.골리에게 팔러 나갔을 때, 골리의 기지로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 이 그림만큼 친근감을 주면서 많은 문제를 제시하는 작품도 드물다.

 

▲ 사모트라케의 니케 [11:03]

 

▲ 그림 전시관에 걸려 있는 그림들 [11:04]

  

▲ 이런 대작들이 즐비하다 [11:05]

 

▲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11:06]

 

▲ 그림 전시관에도 사람들이 많다 [11:12]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11;18]

 

▲ 모나리자 그림 앞에 몰여 있는 사람들 [11;19]

 

▲ 루브르 박물관 그림 전시관에서 [11;23]

 

▲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1:32]

 

박물관 밖으로 나왔다. 디귿자 모양의 박물관 중앙에 유리 피라미드가 자리잡고 있는데 옛 건물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그런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워낙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국민들이라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에펠탑도 처음에는 시한부 목숨이 아니었던가. 파리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카루젤 개선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출발했다. 

 

카루젤 개선문

 

루브르 궁전의 양쪽 날개에 안겨 있는 안뜰을 카루젤 광장이라고 한다. 이곳은 튈르리 궁전이 있었던 곳으로 광장 중앙에 개선문이 서 있다. 카루젤 개선문은 나폴레옹 1세가 거둔 많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문 위에는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에서 가져 온 4마리의 황금빛 말이 장식되어 있었으나, 1815년 이후에 왕정복고를 상징하는 여신상을 중심으로 한 마차와 병사의 상으로 바뀌었다.

 

▲ 피라미드 밑 나폴레옹 홀 [11:45]

 

▲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를 배경으로 [11:54]

 

▲ 루브르 박물관 건물 모습 [11:55]

 

▲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카루젤 개선문 앞에서 [11:57]

 

▲ 카루젤 개선문을 배경으로 [11:57]

 

▲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와 건물 앞에서 [11:58]

 

▲ 파리 시내 튜어 버스 앞에서 [12:00]

 

점심을 중국음식으로 먹었다. 유럽에 와서 웬 중국음식을 먹는지 모르겠지만 음식 맛은 우리 입에 잘 맞았다. 점심을 먹은 다음 찾은 곳은 개선문이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도로가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도로가 상제리제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상제리제 거리 노천 카페에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기분도 쏠쏠하다. 개선문을 보는 것으로 파리의 여정은 끝이 났다. 이제 스위스로 가야한다. 알프스의 융프라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개선문

지름 240m의 원형 광장에 서 있는 높이 50m의 건축물로 프랑스 역사 영광의 상징인 개선문(l'Arc de Triomph)은 콩코드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2.2km 거리에, 샹젤리제 거리의 끝 부분에 위치해 있다. 이 개선문과 그 주위를 둘러싼 샤를르 드골 광장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샹제리제를 비롯해 12개의 대로가 이 곳으로부터 출발하는데 이 광장이 에트왈(etoile: 별, 방사형의) 광장으로도 불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 문은 1806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착공되었으나 그는 개선문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1920년 이래로 1차대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의 시신이 중앙 아치의 밑에 묻히게 되었고 매일 저녁 6시 30분에는 이 들을 기리기 위한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상제리제 거리

 

샹제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Elysee)는 파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길이 2km의 대로이다. 개선문을 기준으로 뻗어 있는 12개의 방사형 길 중에 정면으로 있는 가장 큰 길이의 거리이다. 양쪽에 이름난 상점, 식당, 영화관, 여행사가 즐비하며 화려한 거리의 노천 카페가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리도쇼를 볼 수 있는 리도 극장도 이곳에 위치한다.

 

▲ 점심을 먹은 중국음식점 [13:20]

 

▲ 상제리제 거리에서 [13:48]

 

▲ 상제리제 거리의 노천 카페 [13:52]

 

▲ 상제리제 거리에서 바라본 개선문 [13:53]

 

▲ 상제리제 거리에서 문자화를 그리고 있는 청년들 [14:00]

 

▲ 상제리제 거리에서 맥도날드 아이스 커피 한 잔 [14:06]

 

▲ 개선문이 있는 드골 광장에서 [14;13]

 

▲ 개선문을 배경으로 [14:14]

 

▲ 파리의 개선문을 떠나면서 [14:16]

 

스위스로 가는 고속열차 떼제베를 타기 위해 리옹 역으로 갔다. 저녁은? 시간적으로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가 어려워 도시락을 준비했다. 떼제베 고속열차는 유로스타와 비슷했는데, 마침 8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칸에 자리가 마련되어, 우리 팀은 도시락도 먹고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시간 보내기에 딱 좋은 일이었다.

 

열차가 스위스에 들어섰는지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풍경이 차창 밖으로 펼쳐졌다. 누가 보아도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열차에서 내리는 곳인 스위스의 로잔은 IOC 총회에서 우리나라의 평창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로잔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인터라켄 남서쪽 산기슭 툰 호와 브리엔츠 호 두 호수를 내려다보는 해발 860m의 산중마을 아쉬(Aeschi)에 우리의 숙박장소가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9시 49분, 일단 샤워를 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떼제베(TGV)

 

'Train à Grande Vitesse'의 약칭이다. 기존의 철도와 전용 철도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테제베에는 1981년 일본 신칸센[新幹線]의 속도를 상회하는 시속 260㎞(현재는 270㎞)로 운행이 가능하도록 개발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은 동남(Paris-Southeast)테제베와, 1989년 시속 300㎞로 운행을 시작한 테제베 애틀란틱 외에 1993년에 운행을 개시한 북TGV가 있다. 테제베 애틀란틱은 1990년 5월 미운행 노선에서 시속 515.3㎞라는 세계 최고의 실험속도를 기록했다.

 

▲ 리옹 역으로 가던 중 만난 아름다운 화단 [14:30]

 

▲ TGV를 탑승할 프랑스의 리옹 역 [14:49]

 

▲ 프랑스 리옹 역 풍경 [15:00]

 

▲ 프랑스 리옹 역 풍경 [15:03]

  

▲ 프랑스 리옹 역 풍경 [15:13]

 

▲ 프랑스 리옹 역에서 [15:19] 

 

 ▲ 떼제베에 앉아 있는 김진원 회원 부부 [16:23]

 

▲ 남성회원들 소주 마시며 환담 [17:42]

 

▲ 떼제베에서 내린 스위스 로잔 역 [19:43]

 

▲ 스위스 로잔 시내 거리 [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