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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서유럽 5개국

2011.08.02. [서유럽 여행 3] 파리 여행

by 사천거사 2011. 8. 2.

 

서유럽 여행 3

 

 

 ◈ 일시: 2011년 8월 2일 화요일

 ◈ 코스: 호텔 → 에펠탑 → 베르사이유 궁전 몽마르뜨 언덕 센 강 크루즈 → 호텔

 ◈ 회원: 14명

 

 

 

 

 

 

6시 50분에 모닝콜이 울렸다. 어제 늦게 잔 탓인지 몸이 조금 무겁다. 7시 50분에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었는데 어제 런던에서처럼 괜찮은 편이었다. 9시에 호텔을 떠나 에펠탑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했는데 승강기로 전망대를 오르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벌써부터 늘어서 있었다. 전망대는 계단을 통해서 걸어 올라갈 수 있는데 나 혼자였다면 물론 계단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에펠탑 주변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념품 같은 것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흑인들이었다. 프랑스에는 상대적으로 흑인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백인들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한 명 정도 낳는데 흑인들은 산아제한을 하지 않고 무제한으로 낳기 때문이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승강기를 타고 2층 전망대로 올라갔다.

 

에펠탑(Eiffel Tower)

 

 

1889년 3월 31일 준공되었고, 1889년 5월 6일 개관하였다. 이것을 세운 프랑스의 교량기술자 A.G.에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높이는 1,063피트(약 324m)로 그 이전에 건설된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약 2배에 이르는 높이였다. 완공 당시 모파상과 같은 예술가와 지식인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재료로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7,300t의 시멘즈 마르탕 평로강이 사용되었다. 탑에는 3개소에 각각 전망 테라스가 있다. 파리의 경치를 해치는 것이라고 해서 심한 반대가 있었으나 그대로 남아 무전탑()으로서 이용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55피트의 텔레비전 안테나가 덧붙여져서 텔레비전의 송신탑으로 사용되고 있다. 탑의 높이는 건설 후 약 40년간 인공 건조물로서는 세계 최고였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인 1889년에 세운 높이 320.75m의 탑으로 구스타프 에펠이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운 파리의 상징이다. 탑 아래 위치한 샹 드 마르스 공원 왼쪽에는 나폴레옹의 유해가 있는 앵발리드, 그 근처에는 로댕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의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건너편 샤이오 박물관에서 보는 에펠탑의 야경은 정말 장관이다.

 

▲ 유럽 어디에나 거리의 담이나 벽에는 낙서가 많다 [09:11]

 

▲ 차창 밖 철로의 모습 [09:26]

 

▲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에펠탑 광장 [09:51]

 

▲ 줄을 서서 승강기 탑승을 기다리는 중 [09:54]

 

▲ 승강기를 타기 위한 사람들의 긴 줄 [09:55]

 

▲ 잠시 줄에서 벗어나서 [09:58]

 

▲ 에펠탑 근처에 있는 상 드 마르스 공원 [10:14]

 

▲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에펠탑 광장 [10:23]

 

승강기를 타고 에펠탑 2층 전망대로 올라왔다. 사방을 둘러볼 수 있게 해놓은 전망대에서는 센 강 주변의 파리 시내 모습, 샤이오 궁전, 상 드 마르스 공원이 잘 보이고 멀리 몽마르뜨 언덕도 보였다. 고층건물이 별로 없고 회색빛 건물이 가득 들어찬 파리 시내의 모습은 잘 들어맞은 레고 블럭같은 느낌이 풍겨왔다. 그나마 시내를 가로지르는 센 강이 숨통을 틔어주고 있다고나 할까.

 

 

▲ 에펠탑 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센 강 [11:22]

 

▲ 에펠탑 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11:22]

 

▲ 에펠탑 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11:23]

 

▲ 에펠탑 2층 전망대에서 [11:23]

 

▲ 에펠탑 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11;25]

 

▲ 에펠탑 2층 전망대에서 [11:26]

 

▲ 에펠탑 2층 전망대에서 [11:27]

 

에펠탑 전망대에서 한창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데 한 여자가 비명을 지른다. 알고보니 우리 팀 중 한 사람이었는데 깨어진 유리에 손가락을 베어 피가 많이 나고 있었다. 가이드가 즉시 병원으로 이송을 해서 치료를 했다는데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해외에서는 건강에 조심해야 한다. 잘못해서 병이라도 나거나 하면 여행은 망치게 된다. 

 

▲ 다리 건너 샤이오 팔레가 보인다 [11:29]

 

▲ 에펠탑 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센 강 [11:31]

 

▲ 에펠탑 2층 전망대에서 [11:34]

 

▲ 센 강 안에 있는 섬 '알레 데 씨니유' [11:36]

 

▲ 상 드 마르스 공원: 프랑스 국민은 좌우 대칭을 좋아한다 [11:46]

 

▲ 에펠탑 2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센 강 [11:47]

 

▲ 에펠탑 아래에 있는 정원 [12:08]

 

▲ 강인한 인상을 주는 철골구조물 에펠탑 [12:09]

 

점심은 달팽이 요리가 전식으로 나오고 소고기가 메인으로 나오는 프랑스식 요리였는데, 전식으로 나온 에스까르고라는 달팽이 요리는 이름에 비하여 별게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골뱅이 무침이 훨신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았다. 메인 디쉬인 소고기는 어느 부위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개고기와 맛과 육질이 아주 비슷했다.

 

점심 후 쇼핑에 나섰다. 쇼핑 장소는 프랑스의 유명한 백화점인 쁘렝땅이었는데 크게 명품 가방관, 화장품관, 남성용품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명품 가방관에는 세계의 모든 명품 가방들이 모두 진열되어 있었는데 가격은 가히 천문학적 숫자였다. 손가방 하나에 몇 백만 원씩을 쓴다는 것이 나로서는 아직까지 상식적으로 인정이 안 된다. 

 

▲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는 회원들 [12:33]

 

▲ 점심을 먹은 프랑스 음식점 [12:34]

 

▲ 전식으로 나온 달팽이 요리 [12:40]

 

▲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 [13:19]

 

▲ 쁘렝땅 백화점이 있는 거리 [14:18]

 

▲ 쁘렝땅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펴보고 [14:27]

 

▲ 명품점들이 모여 있는 쁘렝땅 백화점 [14:28]

 

쇼핑을 마친 후 베르사이유 궁전 관람에 나섰다. 궁전의 실내 입장료는 15유로, 궁전 정원 입장료는 6유로인데 이곳도 에펠탑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입장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러자 가이드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름철 파리 날씨는 비가 와도 금방 그치고, 너무 더워도 곧 비가 내리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말 그대로였다. 비는 곧 그쳤다. 그런데 궁전 한 번 크다. 도대체 이 큰 궁전에 누가 살았단 말인가? 

 

베르사이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으나, 1662년 무렵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 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이때 정원 쪽에 있던 주랑을 '거울의 방'이라는 호화로운 회랑으로 만들고, 궁전 중앙에 있던 방을 '루이 14세의 방'으로 꾸몄다.

거울의 방은 길이 73m, 너비 10.5m, 높이 13m인 회랑으로서 거울이 17개의 아케이드를 천장 부근까지 가득 메우고 있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뒤덮여 있다.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특사를 맞을 때 사용되었으며, 화려한 내부장식을 한 '전쟁의 방'과 '평화의 방'으로 이어진다. 전쟁의 방에는 색조 회반죽으로 된 타원 모양의 커다란 부조가 있는데,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루이 14세의 위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남쪽에 있는 평화의 방 역시 유럽 평화를 확립한 루이 14세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1783년 미국독립혁명 후의 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체결이 거울의 방에서 행해지는 등 국제적 행사 무대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가구·장식품 등이 많이 없어졌으나 궁전 중앙부, 예배당, 극장 등을 제외한 주요부분은 오늘날 역사미술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프랑스식 정원의 걸작인 정원에는 루이 14세의 방에서 서쪽으로 뻗은 기본 축을 중심으로 꽃밭과 울타리, 분수 등이 있어 주위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본 축을 따라 라톤의 분수, 아폴론의 분수, 십자 모양의 대운하 등을 배치하였다. 대운하 북쪽 끝에는 이탈리아식 이궁()인 그랑트리아농(1687년)과 프티트리아농(18세기)이 루이왕조의 장려함과 섬세한 양식으로 세워져 있다. 1979년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 베르사이유 궁전 입구 [15:20]

 

▲ 상당한 규모의 베르사이유 궁전 [15:20]

 

▲ 하늘의 잔뜩 흐려 있는 베르사이유 궁전 [15:20]

 

▲ 베르사이유 궁전에 입장하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의 긴 행렬 [15:29]

 

▲ 베르사이유 궁전에 입장하기 전에 [15:31]

 

▲ 베르사이유 궁전 [15:38]

 

▲ 베르사이유 궁전 실내를 향하여 [15:38]

 

▲ 금빛 장식의 베르사이유 궁전 [15:39]

 

입장권을 끊고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궁전 내부였다. 실내의 벽과 천장은 어느 한 곳도 그냥 비어 있는 곳이 없었다. 모두 그림과 장식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특히 천장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가히 압권이었다. 한편 이렇게 아름다운 궁전을 만들기 위해서 한 평생을 바쳤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비록 그들은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 결과는 불멸의 작품으로 남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 궁전 안에서 내다본 정원의 모습 [15:58] 

 

▲ 궁전 안에서 수신기를 듣고 있는 중 [16:00] 

 

▲ 그림과 건축미가 정말 예술이다 [16:01] 

 

▲ 궁전 왕실예배당 천정의 그림: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아네뜨가 결혼식을 올린 곳 [16:02]

 

▲ 베르사이유 궁전 천정의 그림 [16:08]

 

▲ 베르사이유 궁전 천정의 그림 [16:09]

 

▲ 베르사이유 궁전 실내에는 빈 공간이 없다 [16:11]

 

무도회장으로 사용되었다는 거울의 방은 좌우 벽이 거울로 되어 있고, 천정에는 루이 14세의 생애를 나타내는 그림이 시리즈로 그려져 있고,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줄을 맞춰 매달려 있었다. 거울의 방은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왕과 왕비의 침실도 볼만했고 전쟁기념관도 한 번 들를만 했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도 모두 명작들이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다니...... 

 

▲ 좌우 벽이 모두 거울로 되어 있는 거울의 방 [16:19]

 

▲ 베르사이유 궁전: 루이 14세의 침실 [16:26] 

 

▲ 베르사이유 궁전: 왕비의 침실 [16:33] 

 

▲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그림 [16:37]

 

▲ 무슨 그림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뭏든 대작이다 [16:37]

 

궁전 건물에서 나와 오른쪽 게이트를 통해 정원으로 들어섰다. 궁전의 규모 못지 않게 정원의 규모도 대단했다. 대칭구조를 좋아하는 프랑스 국민들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정원은 가물거리는 지평선까지 뻗어 있었다. 화단에 심어 놓은 꽃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색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베르사이유 궁전은 정말 대단한 볼거리였다. 말로 듣거나 사진을 보아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직접 가서 보아야 한다.

 

▲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에서 [16:43]

 

▲ 궁전 정원에 있는 연못 앞에서 [16:47] 

 

▲ 베르사이유 궁전을 배경으로 [16:49] 

 

▲ 라톤의 분수 뒤로 뻗어 있는 물의 정원 [16:50] 

 

▲ 정원에서 궁전을 배경으로 [16:53] 

 

▲ 꽃으로 단장이 되어 있는 궁전 정원 [16:56]

 

▲ 좌우 대칭을 좋아하는 프랑스 국민 [16:59]

 

▲ 베르사이유 궁전 뒷면 모습 [17:00] 

 

▲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에서 [17:01]

 

 ▲ 베르사이유 궁전을 떠나면서 [17:11]

 

'만나'라는 한국음식점에서 육개장을 저녁으로 먹은 다음 몽마르뜨 언덕으로 갔다. 원래 이 코스는 일정에 없었지만 파리의 야경을 보는 것이 옵션으로 추가됨에 따라 시간을 메꾸기 위해 생겨난 코스였다. 어쨌든 역사가 서려 있는 몽마르뜨를 찾는다는 것은 바람직힌 일임에 틀림없다. 걸어 올라가도 될 듯한 거리를 승강기를 타고 올라갔다.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샤크레 쾨르 대성당, 웅장하다.

 

몽마르뜨 언덕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언덕을 이룬다. '마르스(군신)의 언덕(Mont de Mercure)’이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1860년 파리에 편입되었다. 272년 성() 도니와 2명의 제자가 순교한 곳이며, 12세기에 베네딕트파의 수녀원이 건립되었다. 그 일부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피에르 성당은 지금도 남아 있다. 2월 혁명(1848) 전에 여기서 정치집회가 열렸으며, 파리코뮌(1871)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1880년경부터 남쪽 비탈면에 카바레 등이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기슭에 있는 클리시·블랑시·피가르 등의 광장 부근은 환락가가 되었다.

이곳은 또한 근대미술의 발달을 촉진한 예술가들이 살았던 지역으로서도 유명하다. 특히 19세기 후반 이래 고흐, 로트레크를 비롯한 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모여들어 인상파, 상징파, 입체파 등의 발상지를 이루었으나, 20세기부터 점차 몽파르나스로 옮겨갔다. 언덕 위에 세워진 샤크레 쾨르 대성당(1910년 완성)은 순례지로서 신자들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으며, 또 유서 깊은 저택과 물랭루주 등의 카바레가 있다. 그 외에도 옛집이 늘어선 거리는 19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아직도 화가들이 많이 찾아든다.

 

▲ 한국음식점 '만나'에서 육개장을 먹다 [17:57] 

 

▲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는 거리 [19:19]

 

▲ 몽마르뜨 언덕의 상점들 [19:22]

 

▲ 몽마르뜨 언덕의 파란 하늘 [19:24]

 

▲ 몽마르뜨 언덕으로 올라가는 승강기 [19:26]

 

▲ 몽마르뜨 언덕에 있는 샤크레 쾨르 대성당 [19:47]

 

▲ 몽마르뜨 언덕에서 바라본 에펠탑 [20:00]

 

몽마르뜨 언덕에는 카페가 많다. 특히 노천 카페는 사람들의 인기가 높아 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사진이 잘 나온다는 배경이 아름다운 담 앞에서 사진을 찍은 다음, 길거리 화가들이 몰려 있는 곳 옆에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시켰다. 둘이서 맥주를 홀짝거리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비가 오니 분위기는 더 나는데 계속 내릴까봐 걱정이 된다. 그러나 염려할 것 없다. 프랑스의 여름비는 곧 그치니까. 아니나 다를까, 비는 곧 그쳤다.

 

▲ 몽마르뜨 언덕의 노천 카페 [20:02]

 

▲ 몽마르뜨 언덕에서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곳 [20:05]

 

▲ 나도 한 장 찍고 [20:07]

 

▲ 유명한 관광지마다 비둘기는 단골손님이다 [20:12]

 

▲ 몽마르뜨 언덕의 노천 카페에서 맥주 한 잔 [20:36]

 

▲ 몽마르뜨 언덕의 노천 카페에서 [20:36]

 

▲ 몽마르뜨 언덕의 길거리 화가들 [20:41]

 

샤크레 쾨르 대성당 앞으로 다시 왔다. 성당 아래 광장에서는 한창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고 파리 시민들은 계단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작은 공간만 있으면 자신들의 끼와 재주를 마음껏 발산하는 자신감, 그러한 행위을 즐겁게 보아주는 마음들은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된 모습같아 보기에 좋았다.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대성당 계단을 한 발 한 발 내려왔다.

 

샤크레 쾨르 대성당

 

 

'성스러운 마음'이라는 뜻의 샤크레 쾨르 대성당은 몽마트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비잔틴 양식의 하얀 성당이다. 이 성당은 1876년 프러시아 전쟁에서 패배한 뒤 실망에 빠져 있던 파리 시민들에게 용기와 위안, 정신적인 희망을 주기 위해 가톨릭 교도들이 모금한 4,000프랑의 기부금으로 건축되기 시작해 1919년에 완공된 성당이다. 18톤의 종을 129m 높이의 언덕 위에 끌어올리기 위해 무려 28마리의 말을 동원했다. 흰색의 돔 건물이 독특한 이 성당은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 당당한 모습으로 자리하며 파리 시를 굽어보고 있는데, 맑은 날에는 파리 주변 50km전방 경치까지 볼 수 있다. 성당 중앙의 높이 8m의 거대한 돔에서 내려다보는 파리 시내의 전경 또한 일품이다.

 

이 성당에서는 예수께서 운명하신 시간에 맞춰 매일 오후 3시면 미사가 봉헌된다. 이 성당은 흰 대리석으로 지었는데 유럽의 모든 건물들이 대부분 오래되면 검은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건물을 깨끗하게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돈을 들이고 청소를 위해 값비싼 화학약품을 쓰고 있는데, 이 약품으로 인해 건물이 부식되어 오래되면 원형을 손상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장관으로 있을 때 약품 사용을 금지하였고, 그 이후로 프랑스에서는 모든 건물 청소 시 물만 사용한다. 그런데 이 성당만은 세월이 갈수록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물로만 청소를 해도 검게 변하기는 커녕 더욱 희게 빛이 나고 깨끗히 보존되고 있어 하나의 기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샤크레 쾨르 대성당 앞에서 공연이 열렸다 [20:46]

 

샤크레 쾨르 대성당에서 공연중 [20:46]

 

샤크레 쾨르 대성당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 [20:47]

 

샤크레 쾨르 대성당을 내려오다가 [20:50]

 

▲ 균형미가 아름다운 샤크레 쾨르 대성당 [20:53]

 

샤크레 쾨르 대성당 앞에서 [20:53] 

 

에펠탑 전체 모습이 잘 보이는 샤이오 박물관 전망대 앞에 차가 섰다. 날이 조금 어두워졌는데 에펠탑에는 서서히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에펠탑은 불빛을 받아서 자체로 발광을 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균형미를 이루고 있는 에펠탑이 참 보기에 좋다. 만국박람회의 상징물로 만들어진 철골구조물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접목하여 우수한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낸 프랑스 국민들의 지혜와 노력에 고개가 끄덕거려질 뿐이다.

 

▲ 에펠탑 전망대인 샤이오 박물관 앞에서 [21:30]

 

▲ 에펠탑 전망대인 샤이오 박물관 앞에서 [21:31]

 

▲ 많은 사람들이 전망대에 모여 있다 [21:31]

 

▲ 에펠탑 전망대인 샤이오 박물관 앞에서 [21:32]

 

▲ 에펠탑 전망대인 샤이오 박물관 앞에서 [21:32]

 

센 강 주변의 파리 야경을 보기 위해 '바또무슈'회사의 유람선 크루즈에 나섰다. 센 강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운행을 하는 유람선은 빈 자리 없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불이 들어온 에펠탑,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학사원, 알렉산드르 3세 다리 등이 볼만한 구경거리였으며, 불을 밝히고 오가는 다른 유람선들, 강변 둔치에서 대화를 나누는 파리 시민들도 볼거리였다. 맥주를 마시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센 강 위를 유유히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구경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니 11시 44분이다.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은 프랑스 파리 센 강 좌안에 자리한 미술관이다. 소장품 중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을 비롯한 19세기 인상파 작품이 유명하다. 원래 오르세 미술관의 건물은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개최를 맞이해 오를레앙 철도가 건설한 철도역이자 호텔이었다. 1939년에 철도역 영업을 중단한 이후, 용도를 두고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철거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1970년대부터 프랑스 정부가 보존·활용책을 검토하기 시작해, 19세기를 중심으로 하는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1986년에 개관한 오르세 미술관은, 지금은 파리의 명소로 정착했다. 인상파 미술을 전시하던 국립 주드폼 미술관의 수장품은 모두 오르세 미술관으로 이관되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원칙상 1848년부터 1914년까지의 작품을 전시하도록 되어있고, 1848년 이전의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 1914년 이후의 작품은 퐁피두 센터가 담당하도록 분할되어 있다. 오르세 미술관의 전시품 중에서도 인상주의나 후기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 등이 유명하지만, 같은 시대의 주류파였던 아카데미즘 회화도 다수 수장하고 있다. 회화나 조각 뿐만 아니라, 사진, 그래픽 아트, 가구, 공예품 등 19세기의 시각적 예술을 폭넓게 포괄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3세 다리(Pont Alexander III, Bridge of Alexander III)

 

 알렉산드르 3세 다리는 센 강을 사이에 두고 앵발리드와 그랑팔레 미술관을 이어주고 있으며, 센 강에 지어진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다리로 특히 강변 양쪽 기둥 위에 있는 황금 조각상과 가로등이 유명하다.1896년에 착공하여 1890년에 완공한 이 다리는 원래 앵발리드 다리였는데, 1892년에 맺은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기념하기 위하여, 1900년에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 때 러시아의 황제였던 ‘알렉산드르 3세’의 이름을 따서 이와같이 바꾸었다.

 

 

▲ 파란 하늘 아래 에펠탑이 빛나고 있다 [21:57]

 

▲ 오르세 미술관 [22:11]

 

▲ 오르세 미술관 [22:11]

 

▲ 프랑스의 최고 학문기관인 프랑스 학사원 [22:14]

 

▲ 센 강 둔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파리 시민들 [22:36]

 

▲ 센 강 유람선의 불빛 [22:41]

 

▲ 센 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알렉산드르 3세 다리 [22:44]

 

▲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에펠탑 [2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