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 둘레길 5구간
◈ 일시: 2011년 6월 25일 토요일
◈ 장소: 대청호 둘레길 5구간
◈ 코스: 은운리 경로당 → 답양리 양지골 → 용목재 → 안내면 신촌교
◈ 거리: 8km
◈ 시간: 2시간 34분
도로공사가 한창인 길은 제멋대로 파헤쳐진 채 뻗어 있었다. 오른쪽 꽤 멀리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잡은 별장인지 아니면 농가인지 모르겠는데 임성훈의 '시골길' 노래가 그집 확성기를 거쳐 울려퍼지고 있다. 예전에 심심찮게 듣던 노래인데 새삼 그 때가 생각난다. 왼쪽으로 꺾어진 도로가 슬슬 위로 올라간다. 장수사 표지판을 따라 1분 정도 가니 임도가 시작되었다.
▲ 장맛비를 맞고 있는 은운리 경로당과 버스정류장 [12:52]
▲ 가산천에 놓인 답양1교 [12:59]
▲ 장맛비로 불어난 물 [13:00]
▲ 답양2교 [13:02]
▲ 답양3교 [13:08]
▲ 버스정류장에서 막지 용호 방면으로 [13:10]
▲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13:12]
▲ 장수사 쪽으로 간다 [13;30]
13:31 본격적인 임도가 시작되었다. 시멘트 포장이 된 곳도 있고 그냥 자연적인 곳도 있는데 후자가 훨씬 걷기에도 좋고 운치도 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린다. 이미 등산화 안은 물이 가득하다. 물이 불어 작은 폭포들이 수없이 생겨났고 그 옆에서 산수국이 보랏빛 꽃을 피웠다. 저 수국은 토양의 산도에 따라 꽃색깔이 달라진다는데 참 신기한 식물이다.
길 왼쪽으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첩첩산중에 웬 건물인가? 알고 보니,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나실인수도원이었다. 개신교에도 수도원이 있구나. 처음 알았네. 수도원 군데 군데 흩어져 있는 작은 삼각형 지붕의 하얀 집들은 기도하는 방이란다. 한 달씩 저 작은 방에서 기도를 한다니 보통 사람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수도원을 지나 임도는 계속 이어졌다.
나실인 수도원
충북 옥천군에서 보은군으로 대청호를 끼고 16㎞ 가량 차를 달리다보면 나실인 수도원이라는 청색 간판이 보인다. 거기서 좁은 길을 7백m 가량 올라간 속리산 자락에 수사 2명과 수녀 5명이 기도의 삶을 사는 수도원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이 간판을 지나치면서 수많은 수도원 중 하나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실은 개신교 교파인 장로교 합동 개혁측에 소속된 개신교 최초의 수도원이다.
빨간 벽돌 건물의 교회와 수사.수녀들의 숙소로 이뤄진 수도원은 겉보기에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수사와 수녀의 생활을 들춰보면 성경의 '민수기' 6장에 나오는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사람들'이라는 뜻의 나실인 그대로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수도자들의 치열함이 느껴졌다. 이 수도원의 특징은 기도를 크게 강조한다는 점이다. 하루 다섯 차례, 오전 6시와 9시, 정오, 오후 3시와 6시에 기도를 올린다.
물론 자급자족을 위해 버섯을 재배하고 몰로키아라는 채소로 국수를 만들지만, 누구라도 영적 상태가 불량하다고 판단되면 그 순간 일을 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러 더 깊은 산속으로 은둔한다. 산에 마련한 다섯 군데의 독방에 틀어박혀 길게는 한달씩 문밖을 나오지 않으며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영성을 새롭게 키운다.
이 수도원의 모태는 윤연순(수도명 윤뵈뵈.56) 원장과 임것시아, 박에스더 등 4명이 경기도 광주에서 열었던 성경학교였다.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서로의 삶에 감동받아 "평생 독신으로 살며, 청년들을 보살피는 삶을 살자"고 서로 서약했다.
▲ 본격적인 임도 시작 [13:31]
▲ 비가 내리고 있는 임도 [13:36]
▲ 길을 걷다 왼쪽으로 바라본 능선 [13:38]
▲ 늘어난 수량 때문에 작은 폭포가 여러 개 만들어졌다 [13:44]
▲ 곱게 핀 수국 옆으로 물이 폭포 되어 흐르고 [13:44]
▲ 나실인수도원으로 이어지는 임도 [13:46]
▲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나실인수도원 [13:56]
▲ 나실인수도원의 독방 기도실 [13;56]
14:19 수도원에서 25분 정도 임도를 따라 걸었더니 오른쪽으로 표지기가 여럿 달려 있고 둘레길은 산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5구간의 유일한 산길이다. 갈림길에서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능선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털중나리가 반겨주는 제법 뚜렷한 능선길을 따라 7분 정도 올라가니 이름 없는 봉우리에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져 있다. 멀리 아랫쪽으로 신촌마을이 보였다.
표지기를 따라 내려가는 능선길, 10분 정도 걸으면 왼쪽으로 급경사 계곡길로 꺾어 내려가야 하는데, 표지기를 잘 보고 길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낙엽이 잔뜩 쌓여 있어 그냥 미끄러진다. 급경사 길이 끝나고도 계곡을 따라 계속 내리막길인데, 작은 나무들을 잘라 아무렇게나 방치해서 걷는데 애를 먹었다. 이럴 바에는 나무들을 왜 잘랐는지 모르겠다. 마침내 개척 수준의 계곡길이 끝나고 전망이 트이는 곳으로 나왔다. 비는 여전하다. 장마는 장마인가 보다.
▲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산길이 갈라지고 있다 [14:19]
▲ 능선이 보이네 [14:25]
▲ 산에서 만난 털중나리 [14:30]
▲ 봉우리에서 내려다본 신촌마을 [14:33]
▲ 이름 없는 봉우리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14:33]
▲ 잘라 놓은 나무들 때문에 걷기가 힘들다 [13:47]
▲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 만난 무덤 [13:56]
▲ 작은 개울인데도 흐르는 물이 많다 [13:56]
15:04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망초대 군락 뒤로 파란색 지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탑산이 마을이었다. 10분 정도 더 걸어 신촌한울마을 표지판이 서 있는 502번 지방도에 도착했다. 시내버스 정류장에 들러보니 옥천가는 버스가 금방 떠났다. 신천교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일단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니 현리교가 나온다. 현리교? 이 길이 아닌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지도를 잘못 보고 있었다.
다시 현리교 반대쪽 도로를 따라 걸어가보았다. 여기도 아니네. 대략난감이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도로까지 나가지 말고 오른쪽 마을정보센터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했다. 괜히 시간만 허비했네.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 지류에 도착했다. 이게 뭐여, 물이 불어나 도저히 건널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다시 현리교 쪽으로 돌아와 결국 현리교를 건너고 말았다. 조금 짜증이 난다.
▲ 망초대 뒤로 탑산이 마을이 보인다 [15:04]
▲ 걸어온 능선을 한 번 뒤돌아보고 [15:04]
▲ 비는 내리는데: 반사경에 비친 모습 [15:14]
▲ 502번 지방도에 있는 신촌한울마을 표지판 [15:16]
▲ 옥천 시내버스 시간표 [15:19]
▲ 신촌마을정보센터 건물 [15:47]
▲ 물이 불어 도저히 건널 수가 없다 [15:55]
16:06 오른쪽으로 신촌교가 보인다. 대청호 둘레길 5구간의 종착지다. 도로 오른쪽 방향에는 안내천인공습지공원이 있다는데 나중에 가보야야겠다. 버스를 타기 위해 안내면소재지로 걸어 들어갔는데, 버스주차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37번 국도변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했다. 얼마 안 있어 보은을 거쳐 상주와 점촌으로 가는 충북리무진 버스가 왔고 일단 보은까지 편안하게 왔다.
보은시외버스주차장에서는 승차권을 모두 자동발매기로 판매하고 있었다. 신용카드로 결재를 할 수도 있었다. 그것 참 신기하네. 비는 계속 내리고, 시원한 캔맥주를 하나 사서 의자에 앉아 홀짝거렸다. 오늘 참 비 많이 맞았다. 그래도 길이 좋아 우산을 쓰고 걸을 수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5시 25분에 떠나는 청주행 직행을 타고 출발하는 것으로 오늘 대청호 둘레길 4, 5구간 걷기는 막을 내렸다.
▲ 신촌교를 건너면 37번 국도다 [16:06]
▲ 안내천인공습지공원 방면 [16:06]
▲ 옥천과 보은으로 가는 버스시간표 [16:19]
▲ 버스승차권 자동발매기 [16:58]
▲ 청주행 시외버스시간표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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