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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경남山行記

2010.12.30. [경남山行記 17] 경남 밀양 억산

by 사천거사 2010. 12. 30.

억산 산행기

◈ 일시: 2010년 12월 30일 목요일 

◈ 장소: 억산  954m / 경남 밀양  

◈ 코스: 주차장 → 전망대 → 북암산 이정표 → 억산 → 팔풍재 → 석골사 → 주차장 

◈ 시간: 4시간 49분 



08:25   오늘은 밀양에 와서 세 번째로 산행을 하는 날이다. 산행대상지는 구만산과 운문산 사이에 있는 억산이다. 밀양 가곡동 출발, 어제처럼 24번 국도를 따라 언양 쪽으로 달리다 석골사 방향으로 올라갔다. 이 길은 예전에 운문산을 갈 때 이용했던 길이다. 어제와는 달리 하늘이 잔뜩 흐려 있고 곧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날씨다. 눈이 오면 좋겠는데......

 

08:52   아주 커다란 임진왜란 창의유적기념비가 서 있는 곳 공터를 차를 세웠다. 석골사 이전에 산행들머리가 있다는데 어딘지 잘 몰라 적당한 곳에 세운 것이다. 석골사 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일방통행로 갈림길이 나오고 그 지점 왼쪽에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 산행들머리로 꺾어 들었다. 꽤 널찍한 길을 따라 걷다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붙었다. 25분 정도 걸어 전망대에 도착했는데 오른쪽으로 억산 능선과 운문산이 잘 보였다.


석동의 임란창의 유적지

 

호거산 아래 석동은 임진왜란때 작원관 전투의 패배 이후 향촌수호를 위해 밀양의 오한 손기양이 근재 이경홍, 진사 이경승, 김선홍 등과 함께 밀양에서 최초로 창의한 전적지이다. 제2 얼음굴의 오른쪽에 오한 손기양이 부모를 모시고 난을 피했던 손가굴이 있고 왼편에 근재 이경홍, 진사 이경승이 역시 노모를 모시고 난을 피했던 형제굴의 유적이 아직 남아 있다.


▲ 임진왜란 창의유적기념비 [08:54]

 

▲ 기념비 앞 공터에 차를 세웠다 [08:56]

 

▲ 일방통행로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09:03]

 

▲ 산행들머리는 길이 널찍하다 [09:04]

 

▲ 뒤에 보이는 것이 운문산 [09:30]

 

▲ 억산에서 운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09:31]


09:37   다시 전망대이면서 쉼터인 곳에 이르렀다. 넓은 공간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며, 또한 동천이 단장천과 만나 밀양강으로 흘러가기 전에 빚어놓은 겨울철 농촌 들판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쉼터를 떠나 조금 걸어가니 앞에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에 표지기가 붙어 있었다.

 

봉우리로 곧장 올라가야 하는데 그만 지형을 착각하고 우횟길로 들어서는 우를 범했다. 사람의 얄팍한 심리랄까, 어려운 길보다 쉬운 길을 택한 것인데 결국은 이것이 더 어려운 길이 되고 말았다. 산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우횟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문제는 과연 이 길이 억산으로 가는 길이냐에 대한 의문이었다. 가끔 보이는 표지기가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는 것만 알려주고 있었다.

 

흐렸던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내리는 눈이 반가울 텐데 오늘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길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한 시간 40분 동안 산허리를 감도는 눈길을 걸어 마침내 삼거리에 도착했다. 왼쪽으로 길이 잘 나 있어 꺾어 올라갔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아, 저기 이정표가 있네.


▲ 전망대를 겸한 쉼터 [09:37]

 

 ▲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내면소재지 방면 [09:38]

 

 ▲ 전망대에서 바라본 정각산 [09:38]

 

 ▲ 맨 뒤 봉우리가 운문산 정상 [09:38]

 

 ▲ 수리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 [10:10]

 

 ▲ 이정표를 겸하고 있는 표지기 [10:16]

 

 ▲ 눈이 계속 내리는 우횟길 [11:03]

 

 ▲ 눈이 그치고 가볍게 설화가 피었다 [11:09]

 

▲ 내린 눈이 쌓인 산행로 [11:12]


11:27   얼레, 이게 뭐람, 북암산 이정표네. 지도를 보니 아까 지났던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억산에 이르게 되어 있었다. 아휴, 다행이다. 어쨌든 길을 찾았으니 말이다. 이제 눈도 그치고 억산으로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삼거리를 지나자 전망이 확 트였고, 곧 억산 이정표도 만났다. 발목보다 더 깊이 빠지는 능선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석골사 갈림길을 지나고 헬기장에 쌓인 눈에 낙서도 하면서 룰루랄라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해발 875m에 있는 북암산 이정표 [11:27]

 

 ▲ 북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11:36]

 

 ▲ 사면 뒤로 수리봉이 보인다 [11:36]

 

 ▲ 해발 915m에 있는 억산 이정표 [11:40]

 

 ▲ 발목까지 빠지는 능선 눈길 [11:47]

 

 ▲ 석골사 갈림길 이정표 [11:53]

 

 ▲ 헬기장에 뭐라고 썼는데...... [12:02]

 

▲ 멀리 운문산이 보인다 [12:05]


12:05   마침내 해발 954m의 억산 정상에 올랐다. 예쁜 정상표지석과 함께 사진을 찍고 하산을 서둘렀다. 전설이 깃들어 있는 깨진바위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하산로는 급경사인데 계단이 잘 설치되어 있어 편안하게 팔풍재로 내려갈 수 있었다. 팔풍재는 4거리 안부로 곧장 가면 범봉과 딱밭재를 거쳐 운문산으로 올라갈 수 있고 왼쪽으로 가면 대비골을 거쳐 대비사로 내려갈 수 있다. 원래는 범봉에 올랐다가 내려갈 예정이었는데 앞에서 시간을 너무 쓴 탓에 팔풍재에서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석골사는 오른쪽 대비골로 내려가야 나온다. 눈이 쌓인 대비골은 겨울의 정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아름답다. 조릿대 사이로 난 길,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쌓인 길,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대비골 계곡길은 조금 지루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묘한 산행의 맛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사실 산행을 하면서 걷는 길이 지루하다고 하는 것은 사치다. 그런 사람은 그냥 집에 있는 것이 좋다.


▲ 해발 954m의 억산 정상에서 [12:07]

  

▲ 억산 정상에서 팔풍재로 내려가는 계단길 [12:16]

  

▲ 전설이 깃들어 있는 깨진바위 [12:22]

  

▲ 팔풍재로 내려가는 계단 [12:22]

  

▲ 팔풍재에 있는 이정표 [12:31]

  

▲ 눈이 덮여 있는 대비골 [12:39]

  

▲ 조릿대 사이로 나 있는 아무도 걷지 않은 길 [12:47]

 

▲ 순백의 대비골 [12:53]

 

▲ 대비골에서 바라본 암봉 [13:18]

 

▲ 석골사에 도착하기 전에 만난 등산 안내도 [13:30]


13:35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석골사에 들렀다. 특이하게도 본전의 이름이 극락전이다. 석골사에서 조금 내려오니 왼쪽 계곡을 따라 실같은 물줄기가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바로 석골폭포였다. 아까 올라갔던 산행들머리를 지나 차를 세워둔 곳에 도착을 했다. 오늘 산행은 모처럼 남쪽에서 눈을 맞으며 또 눈을 실컷 밟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단, 길을 잘못 들어 본의 아니게 더 먼 길을 걸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석골사

 

석골사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454번지 운문산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운문산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석골사는 신라 말기의 선승(禪僧) 비허(備虛)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옛이름 석굴사(石堀寺)가 언제부턴가 석골사로 와전되어 불리고 있다.

절 바로 아래에는 정상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폭포를 이루어, 절 이름을 따서 석골폭포라 부른다. 10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고 장쾌한데, 칼로 벤 듯 깎아지른 벼랑이 아니라 층층대처럼 턱이 진 암벽이어서 통통거리며 돌아내리는 폭포수가 맵시 있다. 석골사가 자리한 일출봉(日出峰)은 함화산(含花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찬 기류 때문에 꽃을 품기만 하고 피우지 못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그러나 석골사를 중창한 이가 곧 함화(含花) 스님이고, 정상 부근에 있는 석골사의 부속암자 상운암(上雲庵)이 함화암(含花庵)이라고도 불렸다 하니, 산과 절의 깊은 관계를 짐작케 한다. 석골사에서 운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자리잡은 부속암자 상운암은 영남의 보궁(寶宮)으로서 그 터가 명당이라 기도의 효험이 높은 곳이다. 상운암 인근에는 제2의 얼음골이라 불리는 자연동굴이 있는데,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동의보감』을 쓴 허준이 이곳에서 자신의 스승인 유의태를 해부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석골사가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석굴사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곳은 오래 전부터 스님들의 수도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석골사의 절집 극락전 [13:35]

  

▲ 석골사 아래에 있는 석골폭포 [13:37]

  

▲ 산행들머리에 서 있는 이정표 [13:39]

 

▲ 차를 세워둔 곳에 무사히 귀환 [1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