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대봉 산행기
◈ 일시: 2005년 10월 23일 일요일
◈ 장소: 깃대봉 835m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 코스: 수옥정휴게소 → 말용초 → 신선대 → 깃대봉 → 조령산휴양림 → 휴게소
◈ 시간: 3시간 10분
◈ 회원: 아내와 함께
그저께(10월 21일, 금요일)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침 출근길 7시 50분. 진천 성석사거리에서 초평 쪽으로 가던 중, 2차로를 달리던 내 차 운전석 뒤를 1차로를 달리던 테라칸이 추돌, 내 차는 왼쪽으로 급회전하여 고무탄력봉이 설치된 중앙분리대를 넘어 반대편 1차로에서 아반떼에 조수석 뒤를 추돌 당한 후, 다시 운전석 앞부분이 2차로를 달리던 소렌토 운전석 뒷바퀴를 추돌하는 4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사건 소요 시간 불과 3, 4초! 말로만 듣던 눈 깜작할 사이였다. 내차와 아반떼는 폐차 처리. 다친 사람은? 기적적으로 아무도 외상이 없었다. 나는 오른쪽 허리가 뻐근했고 동승했던 장 선생은 왼쪽 어깨가 조금 아플 뿐. 세상에 차 2대가 폐차되는 대형사고인데 외상이 하나도 없다니! 이런 것을 천운이라고 하는가?
오늘은 결혼 27주년 기념일이다. 교통사고로 충격을 받았으니 자고 나면 많이 아플 거라는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나의 몸은 가뿐했다. 그렇다면 산에 가야지. 더군다나 결혼기념일인데. 지난 번 괴산군에서 보내준 ‘제9회 전국 가족 등산대회’ 안내장이 언뜻 눈에 띄는데 장소가 연풍에 있는 ‘깃대봉’이다. 산의 높이나 산행거리로 보아 크게 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오늘의 산행목적지로 정했다. 우리 평산회에서는 2003년 9월 7일에 이 깃대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물론 그 때도 나는 산행에 참가했었다.
07:35 내 차는 폐차가 되었고 보험회사에서 렌트해준 EF소나타로 아파트를 출발했다. 아내는 그저께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고서도 차를 운전하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人命은 在天이야.’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옷 속을 파고든다. ‘김밥나라’에서 김밥 두 줄로 아침을 대신하고, 세 줄은 점심용으로 포장을 했다. 달려가는 공항길 양옆의 논과 밭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아직 추수를 하지 않은 논의 황금색과 그 옆에 있는 배추밭의 파란색이 묘한 색깔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옅은 안개가 끼어 있다.
08:15 증평 통과. 사리를 지나 모래재를 넘어서니 해가 모습을 드러내고 순식간에 안개가 스러진다. 먼 산 중턱에 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8시 35분, 괴산을 통과하는데 괴강을 끼고 있어 그런지 다시 안개가 짙다. 8시 40분에 초임발령지 칠성중학교 통과, 8시 55분에 연풍을 경유한 후 신풍을 지나 수옥정 관광지 쪽으로 달렸다.
09:05 정확히 1시간 30분 만에 주유소를 겸한 수옥정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했다. 꽤 이른 시간에 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벌써 산행준비를 마치고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등산화 끈을 조인 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어제 ‘가족 등산대회’가 열려서 그런지 등산대회 현수막과 코스안내도가 요소마다 붙어 있다. 9시 10분 매표소 도착. 건물만 덩그라니 있고 사람은 없다. 왼쪽 아래로 계곡이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니 갈림길이 나왔다. 이정표가 서 있는데, 왼쪽으로는 ‘깃대봉(70분)’ 오른쪽으로는 ‘신선암봉(80분)’이라고 적혀 있다. 왼쪽을 올려다보니 멀리 삼각형 모양의 깃대봉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 신선암봉 등산 안내도
▲ 삼각형의 깃대봉 모습
09:25 10명 정도의 단체 등산객이 깃대봉으로 방향을 잡고 움직인다.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들은 계곡에 도착하기 전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간다. 어디로 가는 거야? 우리는 계류를 지나 원래의 코스로 올라갔다. 완만한 산길이다. 떨어진 굴참나무 잎들이 등산화 밑에서 비명을 지른다. 벌써 윗부분에 이파리 몇 개만 달고 있는 나무들도 많다. 오른쪽으로 용성골 계곡을 끼고 10분 정도 올라가니 작은 폭포가 하나 나타났다. 높이 3m 정도의 폭포가 반석을 미끄러지듯 흘러내리고 있고 폭포 아래에는 길이 5m, 너비 1m, 깊이 2m 정도의 바위소가 자리 잡고 있다. ‘말용초’라는 곳으로 용성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 말용초에서
09:35 말용초의 폭포 상단을 오른쪽으로 건너면 숲길이 이어진다. 낙엽이 떨어져 쌓인 숲길은 융단처럼 부드럽다. 완만한 산길 양옆으로 나뭇잎들이 서로 다른 노란 색을 띠고 있다. 이 산에는 단풍나무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제 가족등반대회가 있었던 때문인지 등산객이 전혀 없다. 산길은 터널식으로 되어 있어 해가림이 잘 되어 있다. 낙엽송이 줄지어 늘어선 지역을 지나니 계곡합류 지점이 나타난다.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계곡은 길 왼쪽에 있다. 여전히 산길은 완만하다.
▲ 단풍나무가 있는 계곡에서
10:05 휴식. 노란색 나뭇잎들이 제각기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마치 황금빛 터널 속에 들어온 것 같다. 출발. 지금까지 올라온 완만한 산길과는 달리 지금부터는 길이 꽤 가파르다.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800m가 넘는 산인데. 지그재그식으로 된 가파른 길을 계속 올랐다. 몸 상태를 점검해보았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 신기할 따름이다.
▲ 가을산이 만들어낸 풍경
10:40 노송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는 암봉에 올랐다. 사방이 훤하게 트여있다. 동쪽으로 깃대봉 정상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방금 올라온 말용초의 깊은 계곡과 그 너머 연풍소재지. 그 뒤로 희양산, 구왕봉, 군자산이 멀리 보인다. 남쪽으로는 조령산 줄기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신선봉에서 마역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능선으로 이어진 산들의 모습이 마치 오색실로 수놓은 병풍을 둘러놓은 것 같다.
▲ 소나무 옆에서 잠시 휴식
10:50 깃대봉 정상에 도착. 1시간 4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정상 화강암 표지석에는 ‘깃대봉 835m’라고 새겨져 있다. 까마귀 몇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정상에서는 월악산의 주능선과 만수봉, 포암산, 부봉, 주흘산, 조령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문경새재가 발밑에 있다. 사과로 갈증을 달래고 있는데 등산객 몇 명이 올라온다. 정상 사진을 아내와 함께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선 사과를 한 쪽 권하고 사진 부탁.
▲ 문경새재
▲ 깃대봉에서 바라본 부봉능선
▲ 조령산 방면 백두대간 능선
▲ 신선봉 방면 능선
▲ 깃대봉 정상에서
11:10 정상 출발. 하산은 어제 있었던 가족등산대회코스에 따라 휴양림 쪽으로 정했다. 하산길은 가파른 내리막이다. 군데군데 밧줄이 매어져 있다. 10분 정도 이런 길이 계속되었다. 11시 20분에 휴양림과 조령3관문 갈림길에 도착. 왼쪽으로 5분 정도 내려가니 조령산자연휴양림이 나타났다. 휴양림 통나무집이 예쁘다. 이곳부터는 차가 다닐 만큼 길이 잘 다듬어져 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야유회 온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난다. 등산객은 거의 없다. 단풍이 이곳까지 내려왔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람들에게 건전한 휴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것이 일면으로는 바람직하다는 생각도 든다.
▲ 조령산 휴양림 통나무집
▲ 휴양림에서 내려오는 도로
12:00 고사리 도착. 이화학당 옆 난전에서 ‘오가피 열매’를 10,000원어치 샀다. 그저께 설악산에 다녀온 아내의 말에 의하면 20,000원어치는 된단다. 술도 담고 차도 끓여 먹고. 제3관문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산그림호텔을 오른쪽으로 끼고 내려가니 ‘태길사’란 절이 있다. ‘세계각국 500부처님 기도영험 도량’이라고 입구에 적혀 있는데 주변 환경이 ‘도량’으로 적합한지 의문이다. 호텔과 절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절과 호텔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절 아래로는 수옥정 국민관광지인데, 한중합자내몽고민속촌 음식점이 몽고식 이동주택 속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아담한 ‘원평저수지’가 있다. 저수지에는 주인 없는 오리보트가 여러 척 떠 있다.
▲ 내몽고 민속촌
▲ 몽고식 이동주택
▲ 원평저수지를 배경으로
12:20 차를 세워 놓은 수옥정 휴게소에 도착. 총 산행 시간 3시간 10분으로 그리 힘들지 않은 산행이었다. 청주에서 승용차로 1시간 30분 거리이고 산행 시간도 3시간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가족 산행을 하기에 정말로 좋은 곳이다. 특히 오늘 산행은 교통사고 후유증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과 결혼 27주년을 기념한 것이라서 더욱 의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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