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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경남山行記

2010.02.27. [경남山行記 3] 경남 함양 백운산

by 사천거사 2010. 2. 27.

백운산 산행기 

◈ 일시: 2010년 2월 27일 토요일 

◈ 장소: 백운산 1278m  / 경남 함양  

◈ 코스: 신촌마을 → 상련대 → 백운산 정상 → 큰골 → 백운암 → 신촌마을 

◈ 시간: 5시간 50분 

◈ 회원: 평산회원 8명과 준회원 2명(계 10명)



경남 함양군 백전면과 서상면, 전북 장수군 반암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운산(白雲山ㆍ1,278.6m)은 지리산 고리봉(1,304.5m)에서 뻗어 온 백두대간이 고도를 1,000m대로 낮추어 수정봉(804.7m)과 고남산(846.4m), 봉화산(919.8m), 월경산(980.4m)을 지나 함양과 장수 사이에서 다시 1,000m대를 넘어서는 최초의 봉우리이다. 백운산의 미끼골 계곡은 지리산 천왕봉과 일직선상에 있어 지리산 조망이 탁월한 곳으로, 이곳에는 묵계암과 상련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용소폭포와 수많은 담(潭)과 소(沼)가 연이어진 큰골에는 백운암과 화과원이 자리하고 있다.


08:00   오늘은 평산회에서 함양에 있는 백운산으로 산행을 떠나는 날이다. 오늘은 산행 참가 인원이 많아 세 대의 차량이 동원되었는데, 내 차 외에 신현대 회원이 봉사를 하고, 지학근 회원은 부인과 함께 산행 후 거제도로 가기 위해 따로 차량을 가져간다는 연락이 왔다. 특히 이번 산행에는 인터넷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장택진 선생님이 준회원으로 참가를 했다. 서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함양 쪽으로 달렸다.

 

09:25   덕유산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뒷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전원이 함께 모였고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 다시 출발을 했다. 서상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26번 국도를 타고 서하면까지 온 다음, 37번 지방도를 따라 백전면 쪽으로 달렸다. 꽤 꼬불거리는 원통재(빼빼재)를 넘어 내려가니 신촌마을 백운교 건너 오른쪽에 상련대 표지석이 있다. 관광버스가 한 대 서 있는 도로변 공터에 차를 세웠다.


▲ 대전-통영고속도로 덕유산 휴게소 [09:28]


10:15   산행 시작, 도로에서 올라서면 곧바로 산행안내도가 보이고, 상련대가 있는 미끼골로 가는 길과 백운암이 있는 큰골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미끼골로 Go! 묵계암까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졌다. 왼쪽 미끼골에 겨울치고는 꽤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가? 오늘 날씨는 산행하기에 최적이다. 해도 없고 바람도 없다. 그리고 적당히 선선하다.


▲ 신촌마을에 있는 백운산 등산로 이정표 [10:26]

 

▲ 산행출발 전 상련대 표지석 앞에서 평산회원 일동 [10:28]

 

▲ 묵계암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 [10:43]

 

▲ 묵계암으로 이어지는 미끼골에 물이 많이 흐른다 [10:51]

 

▲ 묵계암으로 올라가는 호젓한 산행로 [10:52]


10:58   묵계암에 도착. 백운산은 지리산 주능선과 덕유산 주능선을 동시에 전망할 수 있는 뛰어난 조망처로, 풍수지리학상 최고의 경전인 '장경'에 나타나는 최고의 명당터가 있다고 한다. 백두대간이 달려와 백운산에서 힘차게 좌우 날개를 펴 월경산과 괘관산(掛冠山ㆍ1,252m)을 만들고, 백두대간의 기를 똑바로 받은 맥이 맺히는 묵계암이 바로 그곳이란다.

 

묵계암에서는 상련대를 거치지 않고 능선을 따라 끝봉으로 올라갈 수 있다. 우리는 상련대를 거쳐 올라가기로 했다. 묵계암에서 상련대까지도 시멘트 포장도로였다. 상련대 절집 아래 공터에서 회장님이 가져오신 도토리묵을 간식으로 먹었다. 작년 9월 26일 백암산 산행 때 주운 도토리로 산행 때마다 묵을 쒀오신다. 보통 정성이 아니시다.


▲ 묵계암 표지석 [11:10]

 

▲ 묵계암 절집 대웅전 [11:13]

 

▲ 상련대로 이어지는 포장도로 [11:14]

 

▲ 상련대 아래에서 회장님이 가져오신 도토리묵을 간식으로 [11:30]

 

▲ 상련대로 올라가는 계단길 [11:33]


11:35   상련대 절집 왼쪽으로 산행로가 나 있었다. 그런데 상련대에서 끝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았다. 경사가 매우 급하고 낙엽이 쌓여 있어 길이 무척 미끄러웠다. 바위지대도 있다. 그래도 모두 잘들 올라간다. 끝봉이 가까워지자 조릿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릿대는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기 때문에 삭막한 겨울 산행에서는 좋은 분위기와 풍경을 만들어준다.


상련대

 

미끼골에 자리한 상련대(上蓮臺ㆍ전통사찰 제85호)는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경애왕 1년(924년)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하여 관음기도를 하던 중,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상련(上蓮)이라는 이름을 하여 상련대라 부른다고 전한다. 창건한 이래 신라 말에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실상선문(實相禪門)을 이곳에 옮겨 와 산문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고 하며, 이후 역대의 고승과 대덕스님들이 수도정진해 오던 곳이다. 현존 건물은 한국전쟁 때 불탄 후 1953년경에 재건한 것이다.


▲ 상련대 절집 원통보전 [11:35]

 

▲ 상련대 절집 [11:36]

 

▲ 상련대 뒤로 나 있는 산행로 [11:37] 

 

▲ 상련대 뒤로 나 있는 산행로 [11:38]

 

▲ 상련대에서 끝봉으로 올라가는 제법 가파른 길 [11:39]

 

▲ 가끔 바윗길도 나오고 [11:50] 

 

▲ 그나마 푸른 조릿대가 우리를 반겨준다 [11:54]


11:57   무척 가파른 사면을 오르니 평지가 나왔는데 묵계암에서 능선으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었다. 이정표가 있고 벤취도 있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휴식 후 출발, 다시 끝봉을 향해서 가파른 길을 25분 정도 올랐을까 전망이 확 트이는데 야, 끝내주는 운해가 발 아래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 이런 기가 막힌 장관을 보게 되다니. 회원들 입에서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나온다. 나로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본 풍광이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구름 뿐이었다.


▲ 묵계암에서 능선으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 도착 [11:58]

 

▲ 능선으로 올라오고 있는 지학근 회원 부부 [11:59]

 

▲ 능선에 있는 벤취에서 잠시 휴식 중 [12:04]

 

▲ 다시 오름길이 이어지고 [12:14]

 

▲ 경사가 급한 곳에는 밧줄이 매어져 있다 [12:29]

 

▲ 산 아래에 깔려 있는 운해 [12:30]

 

▲ 모든 사물이 완전히 운해에 덮여 있다 [12:32]

 

▲ 운해 위로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12:36]

 

▲ 운해를 배경으로 지학근 회원과 [12:36]


12:37   끝봉에 올랐다. 기념사진 찍고 다시 출발. 백운산 정상을 600m 남겨놓고 중봉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의 조망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운해 위로 지리산 주능선이 길게 뻗어 있는 것이 보이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지리산 주능선을 보는 것만도 엄청난 일인데 운해 위에 떠 있는 주능선이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 백운산 끝봉에서 운해를 배경으로 [12:38]

 

▲ 중봉 전망대를 향하여 오르는 길 [12:42]

 

▲ 중봉 전망대에서 신현대 회원 [12:44]

 

▲ 중봉 전망대에서 이규필 회원 [12:44]

 

▲ 중봉 전망대에서 지학근 회원과 함께 [12:44]

 

▲ 함양 백운산의 운무 [12:44]

 

▲ 운해를 배경으로 박운용 회원 [12:45]

 

▲ 백운산 정상을 항하여 걷고 있는 회원들 [12:55]

 

▲ 정상 가까이서 바라본 지리산 방면 [12:56]


12:58   백운산 정상에 올랐다. 2007년 7월 30일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 이 백운산을 두 번 오른 잊지 못할 경험을 갖고 있다. 그 때에는 작은 정상 표지석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 키를 훨씬 넘는 커다란 표지석을 헬기장 한 쪽에 세워놓았다. 정상에는 단체로 온 산행객들이 한창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백운산 정상은 지리산과 덕유산의 주능선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운해 위에 천왕봉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덕유산 쪽 운해도 볼만했다.

 

우리도 헬기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다. 우리가 점심을 마칠 즈음에 단체산행객들은 정상을 떠났고, 우리는 백운산 정상 표지석 앞에서 간단히 시산제를 지냈다. 금년 한 해도 우리 회원들 모두 안전한 산행을 하고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 해발 1278m의 백운산 정상 [12:58]

 

▲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 앞에 있는 것은 중봉과 끝봉 [12:59]

 

▲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본 덕유산 쪽 운해 [12:59]

 

▲ 백운산 정상에서 [13:01]

 

▲ 백운산 정상에서 [13:01]

 

▲ 백운산 정상에서 시산제 [13:32]

 

▲ 백운산 정상에서 시산제 [13:33]

 

▲ 백운산 정상에서 시산제 [13:33]

 

▲ 백운산 정상에서 시산제 [13:33]

 

▲ 백운산 정상에서 [13:35]

 

▲ 백운산 정상에서 하산 준비 중 [13:37]

 

▲ 시산제를 마치고 하산 준비 중 [13:48]


13:50   시산제를 지낸 다음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은 원통재 쪽 능선으로 가다 큰골을 거쳐 백운암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택했다. 잘 정비해 놓은 돌계단 길을 내려가 조릿대가 반겨주는 능선길을 20분 조금 넘게 걸었더니 오른쪽으로 백운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큰골로 내려가는 길은 너덜지대도 있고 경사도 급해 길게 밧줄을 매어 놓은 곳도 있었다.


▲ 백운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13:48]

 

▲ 다시 한 번 바라본 운해 위에 뻗어 있는 지리산 주능선 [13:49]

 

▲ 돌계단 길을 내려가고 있는 신현대 회원 [13:51]

 

▲ 조릿대 사이로 길이 나 있다 [14:03]

 

▲ 원통재와 백운암 갈림길 이정표 [14:13]

 

▲ 큰골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너덜지대 [14:27]

 

▲ 큰골로 내려가는 가파른 사면길 [14:45]

 

▲ 바위지대를 내려오고 있는 이규필 회원 [14:47]


14:49   오른쪽 계곡에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큰골이다. 어제 비가 온 탓인지 수량이 많다. 땀을 씻으려고 손을 담가 보니 얼음처럼 차다. 계곡을 따라 고로쇠 수액을 모으는 가는 호스가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 계곡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데 고로쇠 수액을 관리하는 한 아저씨가 올라오면서, '어떻게 이쪽으로 내려오신댜, 계곡 건너려면 신발을 몇 번 벗어야 하는데......'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은 현실로 나타났는데 물이 많기는 하지만 등산화를 벗을 정도는 아니었다.


▲ 얼음같이 차가운 계곡물 [14:49]

 

▲ 계곡물이 불어 건너 뛰어야 할 곳이 많다 [15:11]

 

▲ 계곡 왼쪽으로 나 있는 길 [15:18]

 

▲ 조릿대 사이로 나 있는 길 [15:19]

 

▲ 암반과 폭포, 沼가 많은 백운산 큰골 계곡 [15:28]


15:33   화과원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이정표가 서 있다. 화과원은 들르지 않고 통과. 왼쪽 계곡에 아름다운 작은 폭포와 沼들이 연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철에 이렇게 물이 많으니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에는 오죽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모노레일이 왼쪽 산비탈을 따라 설치되어 있다. 계곡을 몇 번 왔다갔다 건너 백운암 절집이 보이는 곳에 왔는데 또 계곡을 건너야 했다.


화과원

 

큰골에 자리한 화과원(華果阮)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백용성(白龍城ㆍ1864~1940년) 선사가 1929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 30ha의 토지를 매입해 과수원을 조성하여 선농불교(先農佛敎)를 주창하는 한편, 이 곳을 거점으로 일제의 탄압을 피해 독립운동을 한 곳이다. 당시에는 군산항을 거쳐 중국의 상해와 용정 등지로 독립자금을 지원하는 중요한 거점 기지로 활용되었던 곳이며, 또한 한국 근대 불교의 대중화와 국민 계도를 위한 선농사상과 승려의 반농반선(半農半禪) 실천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화과원은 폐허화되어 당시에 심어졌던 과일나무만이 남아 있는 곳을 근년에 함양군과 복원회가 중심이 되어 복원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현재는 선사가 머무르던 요사채 1동을 복원하여 놓은 상태이다.


 ▲ 화과원 갈림길을 지나 백운암으로 [15:33]

 

▲ 큰골: 폭포가 떨어져 沼를 이루고 [15:34]

 

▲ 다시 계곡을 건너고 [15:41]

 

▲ 누가 무엇에 쓰는 모노레일인고? [15:42]

 

 ▲ 계곡을 건너고 있는 지학근 회원 부부 [15:49]

 

▲ 계곡을 건너고 있는 회원들 [15:54]


16:03   백운암은 대웅전과 부속건물이 몇 안 되는 작은 절이었다. 백운암에서 나와 백운교로 오는 길, 오른쪽 무덤 위에 소나무숲이 무척 아름답다. 곧 영은사지 석장승을 만났다. 우호대장군과 좌호대장군이라는 이름의 두 개의 석장승은,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위엄도 있어 보였다. 복분자 밭과 앙증맞을 정도로 예쁜 화장실을 지나 차를 세워 둔 백운교에 도착했다.


영은사지 석장승

 

백운암 입구에 영은사의 옛터가 있고 석장승이 있다. 석장승은 사찰을 수호하고 풍수지리적으로 국가의 번영과 임금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복합적인 기능과 더불이 민간신항의 기원대상물이었던 유물의 일종이다. 이 석장승들은 그곳에서 옛 절터를 지키고 있다. 우호대장군(右護大將)은 높이 280cm, 좌호대장군(左護大將)은 높이 270cm이다다. 좌호대장군 오른쪽 아랫 부분에 '乾隆三十年乙酉閏二月日'이라는 명문이 있어 영조 41년(1765)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에 트럭 한 대가 이 장승 앞을 지나다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이 "장승에게 빌면 된다"고 해 그렇게 했더니 비로소 차가 움직였다고 한다. 또 돌을 좌호대장군 머리에 던져 얹히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해 인근 아낙들이 찾아와 돌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경남 민속자료 19호로 지정되어 있다.


▲ 백운암 절집 대웅전 [16:03]

 

▲ 백운산 백운암 입구 [16:04]

 

▲ 아름다운 소나무 숲 [16:07]

 

▲ 영은사지 석장승: 우호대장군 [16:12]

 

▲ 영은사지 석장승: 좌호대장군 [16:12]

 

▲ 도로 옆의 복분자 밭 [16:15]

 

▲ 외관이 아주 아름다운 화장실 [16:16]


16:18   산행 출발지점이었던 백운교 옆 주차된 곳에 도착했다. 지학근 회원 부부는 거제도로 떠나고, 나머지 회원들은 휴게소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아지트인 제일수산으로 직행을 했다. 이규필 회원은 일이 있어 참석을 못하고, 나머지 일곱 명이 맛있는 회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며 오늘 산행의 뒤풀이를 했다. 금상첨화는, 고맙게도, 신현대 회원이 뒤풀이 경비를 부담했다. 무엇보다도 오늘 백운산 산행의 백미는, 우연찮은 일이기는 하지만, 산 이름 그대로 하얀 구름이 깔려 있는 산을 실컷 보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신촌마을 주차된 곳에 도착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