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 산행/전북山行記

2010.01.02. [전북山行記 5] 전북 완주 불명산

by 사천거사 2010. 1. 2.

불명산 산행기

◈ 일시: 2010년 1월 2일 토요일 

◈ 장소: 불명산 480m / 전북 완주

◈ 코스: 삼거리 → 임도 → 장선리재 → 시루봉 → 불명산 → 화암사 → 삼거리 

◈ 시간: 2시간 40분

회원: 아내와 함께


 


09:45   경인년 새해 첫 산행지를 어디로 정할까 고민을 하다, 아내와 함께 하는 산행이라 높이와 거리를 고려하여 완주의 천등산 옆에 있는 불명산으로 정했다. 청주 아파트 출발, 서청주나들목에서 중부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대전통영고속도로 추부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추부면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대둔산 쪽으로 달렸다. 작년 12월 29일 인대산 산행을 하기 위해 달렸던 길을 오늘도 똑같이 달리고 있다. 진산을 지나 꽤 큰 고갯마루에 오르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휴게소가 있는 배티재다.

 

10:53   배티재는 전북 완주군과 충남 금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커다란 조형물이 경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고개 위에 세워져 있다. 또한 배티재 한쪽에는 이치전적지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첫 승리를 거둔 곳이 바로 이곳 이치 전투다. 배티재에서는 구름을 머리에 쓴 대둔산의 암봉이 골짜기마다 눈을 안고 의연하게 뻗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휴게소를 출발하여 17번 국도를 타고 계속 달리다 용복에서 좌회전, 다시 구제에서 좌회전하여 올라가니 세인청소년수련원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화암사로는 가는 길은 왼쪽이다.


이치전적지(시도기념물 제26호, 완주군)

 

이치는 완주와 금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광주목사 권율(權慄)과 동복현감 황진(黃進)이 관군 1,500명과 함께 적장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부대를 격퇴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장식한 전적지이다. 이치전투는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어 해질무렵까지 계속된 치열한 전투에서 우리보다 우세한 적을 대항하여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장수들의 성실한 진두지휘와 향토병들의 불굴의 투지, 험한 지세를 이용한 철저한 대비, 차질없이 진행된 군수품 보급에 있었다. 이치전투는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웅치전투와 더불어 왜적의 기세를 꺾어 전라도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유재란(1597) 때까지 7년 동안 군량보급과 병력보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 배티재에 있는 조형물 [10:54]

 

▲ 배티재에서 바라본 대둔산 암릉 [10:56]

 

▲ 배티재에 있는 이치전적지 표석 [10:56] 


11:26   화암사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도로 오른쪽에 서 있다. 화암사 삼거리인 모양이다. 마을 입구 도로 옆 공터에 차를 세우고 산행준비를 했다. 화암사를 경유하는 것으로 하산 코스를 정했기 때문에, 이 삼거리에 차를 두어야 원점회귀 산행을 할 수 있다. 집이 두어 채 있는 동네에 사람은 그림자조차 볼 수 없는데, 중간 크기의 하얀색 개 한 마리가 우리를 보고 죽어라고 짖어댄다. 하긴 너도 사람이 무척 그리웠겠지.

 

장선리재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 임도에는 지난 번에 내린 눈이 많이 남아 있었다. 기온은 영하권이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그런지 크게 춥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임도 왼쪽으로 이층으로 된 비닐하우스가 있고, 그 안에서 두 아낙이 한창 곶감 손질을 하고 있었다. 아까 마을로 들어올 때도 곶감 말리는 비닐하우스를 많이 보았는데, 그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곶감을 많이 생산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선리재로 올라가는 임도는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 걷기에 좋았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도로라 왼쪽 사면은 계곡 쪽으로의 경사가 심했다. 왼쪽 계곡 위로는 미륵산 능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고도가 높아지자 길은 포장이 안 된 평지길로 바뀌었다. 차가 다닌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이 길을 이용해서 장선리재를 넘어 운주면 장선리로 갈 수 있는 모양이다.


▲ 화암사 삼거리에 있는 마을 [11:28]

 

▲ 화암사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11:29]

 

▲ 장선리재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 [11:30]

 

▲ 눈 덮인 임도에 잠시 멈추어 서서 [11:33]

 

▲ 비닐하우스에서 곶감을 손질하고 있다 [11:34]

 

▲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 [11:37]

 

▲ 산마루에 올라서자 비포장도로다 [11:47]


11:55   운주면 장선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장선리재에 도착했다. 도로 왼쪽 미륵산 능선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는데, 불명산으로 가는 오른쪽 능선에는 표지기는 커녕 위험지대라는 금줄이 쳐져 있었다. 왜 위험지대인지 모르겠네. 일단 능선에 올라서자 왼쪽으로 천등산 암벽이 잘 보였다. 천등산은 작년 5월 24일에 백만사 회원들이 다녀온 곳이다. 시루봉으로 가는 능선에는 낙엽과 잔설이 깔린, 경사가 완만한 산길이 잘 나 있었다. 발 밑에서 들려오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귀를 계속 간지럽힌다.


▲ 장선리재에서 불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르는 중 [11:55]

 

▲ 능선에 올라 바라본 천등산 [11:59]

 

▲ 시루봉으로 오르는 길 [12:03]

 

▲ 황량한 겨울 산길 [12:07]

 

▲ 음지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고 [12:10]

 

▲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2:13]

 

▲ 시루봉 가는 능선길 [12:13]

 

▲ 시루봉이 코 앞이다 [12:26]


12:28   삼각점이 있는 시루봉에 올랐다. 삼각점 외에 다른 표지는 없다. 시루봉에서 불명산 정상으로 가는 길, 나뭇가지 사이로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가며 능선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봉우리들이 갯수가 모두 6개라나 뭐라나. 능선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고 그 뒤쪽으로 눈이 하얗게 덮인 도로가 보인다. 저게 우리가 걸어온 임도인가?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사실 그 도로는 화암사 주차장에서 화암사 절집으로 이어지는 도로였다. 조릿대 지역을 지나자 하산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 시루봉에 올라서 [12:28]

 

▲ 시루봉에 있는 삼각점 [12:28]

 

▲ 시루봉에서 내려와 바라본 불명산 주능선 [12:34]

 

▲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2;37]

 

▲ 조릿대가 시작되는 곳에서 [12:38]

 

▲ 출입금지 및 하산길 이정표 [12;41]

 

▲ 멀리 화암사 삼거리와 오른쪽으로 화암사로 이어지는 차도가 보인다 [12:43]


12:54   안부에서 올라간 첫 번째 봉우리와 두 번째 봉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 봉우리에 바위가 몇 개 있었다는 것을 빼고는. 이웃해 있는 세 번째 봉우리에는 다 허물어진 무덤이 하나 있었다. 세 번째 봉우리에서 5분 정도 걸었더니 오른쪽 아래로 화암사 절집이 보이고, 화암사 주차장에서 화암사로 이어지는 도로도 아주 잘 보였다. 종종 나타나는 조릿대 사잇길을 지나고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한 다음 조금 경사가 있는 길을 올라갔더니 커다란 바위들이 쌓여 있는데, 그곳이 바로 불명산 정상이었다.


▲ 안부에서 오른 첫 번째 봉우리에서 [12:54]

 

▲ 두 번째 봉우리에서 [12:57]

 

▲ 세 번째 봉우리에 있는 무덤 [12:59]

 

▲ 화암사 주차장에서 화암사로 이어지는 도로 [13:05]

 

▲ 조릿대가 자주 나타나고 [13:07]

 

▲ 암봉을 우회하고 있는 중 [13:07]


13:14   해발 480m의 불명산 정상은 예전에 봉수대가 있었는지 바위 위에 돌무더기가 흩어져 있었다. 작은 산이라 그런지 정상표지석은 없고 나무로 만든 패찰이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사진을 찍고 정상에서 안부로 내려섰더니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는데, 이정표는 없지만 직감적으로 화암사로 내려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부에서 화암사로 내려가는 길은 계속 조릿대 사이로 나 있었는데, 산길을 널찍하게 정비를 해놓아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 걷기에 좋았다. 단, 경사가 매우 급해서 낙엽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을 해야 했다.


▲ 해발 480m의 불명산 정상에서 [13:20]

 

▲ 불명산 정상에서 [13:21]

 

▲ 불명산 정상에서 [13:21]

 

▲ 봉수대가 있었던 불명산 정상 [13:23]

 

▲ 화암사로 내려가는 급경사 길 [13:27]

 

▲ 조릿대가 끝나가는 지점에서 [13:36]


13:40   화암사에 내려섰다. 화암사는 1,300여 년 전 신라 문무왕(661-680) 때에 창건하고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고찰로, 극락전과 우화루, 적묵당과 조사당이 동서남북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특수한 건축 양식을 갖고 있다. 특히 보물 제 663호인 극락전은 명나라 건축양식을 수용한 우리 나라 유일의 건물이며, 보물 제662호인 우화루는 공중누각식 건물로 자연적인  지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화루는 보수공사 중이라 제대로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절집 구경을 마친 다음, 다리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갔다. 오른쪽으로 나 있는 도로는 화암사 주차장에서 화암사로 연결되는 도로다. 계곡 오른쪽에 있는 폭포가 강추위에 얼어붙었다. 폭포를 지나니 곧 철계단이 나타났는데, 계단 옆 철망에 오밀조밀한 그림과 글 등을 매달아 사람들이 감상을 할 수 있게 해놓았다. 아무것도 없는 밋밋한 것보다는 모양새가 훨씬 보기에 좋았다. 계단을 내려서자 이런, 하늘에서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그나마 산행이 거의 끝나갈 때라서 다행이다. 철계단에서 10분 정도 계곡을 내려가면 화암사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화암사 삼거리까지는 걸어서 7분 거리였다.


화암사 우화루(보물 제662호)

 

화암사는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있는 절로 본사인 금산사에 딸린 절이다. 절을 지을 당시의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원효와 의상이 유학하고 돌아와 수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 문무왕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조선 숙종 37년(1711)까지 여러번에 걸쳐 수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우화루는 화암사 경내에 있는 극락전 정문과 같은 성격의 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광해군 3년(1611)에 세운 것으로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한 건물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1층은 기둥을 세워서 바깥과 통하게 하고, 뒤쪽에는 2층 마룻바닥을 땅과 거의 같게 놓아 건물 앞쪽에서는 2층이지만 안쪽에서는 1층집으로 보이게 한 건물이다.


화암사 극락전(보물 제663호)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극락전은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선조 38년(1605)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昻式) 구조이다. 하앙식 구조란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로 일반 구조보다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이다.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며 소박하고 작은 규모를 보이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칸 뒤쪽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으며, 그 위에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용을 조각하였다.


▲ 화암사의 우화루는 수리 중 [13:40]

 

▲ 보물 제663호 화암사 극락전 [13:43]

 

▲ 절집 마루에 앉아 [13:43]

 

▲ 절집 마루에 앉아 [13:44]

 

▲ 극락전을 감상하고 있는 중 [13:45]

 

▲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13:47]

 

▲ 화암사 옆 폭포가 얼었다 [13:49]

 

▲ 계곡에 설치되어 있는 철계단 [13:51]

 

▲ 계곡에 내려서자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13:52]

 

▲ 화암사 주차장, 비는 계속 내리고 [14:02]


14:09   화암사 삼거리에 도착하니 비가 그쳤다. 차를 돌려 17번 국도에 올라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달렸는데 이런, 가다보니 방향이 추부 쪽이 아니라 전주 쪽이다. 결국 봉동에서 799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익산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내비게이션만 믿었다가 시간도 더 걸리고, 기름도 더 소비하고, 고속도로비도 더 내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사람만한 기계 없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4시에 청주에 도착, 금강산순대에서 곱창전골을 안주 삼아 소주 2병을 마시며 경인년 첫 산행을 자축했다. 


▲ 다시 돌아온 삼거리 [1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