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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전북山行記

2009.11.22. [전북山行記 4] 전북 완주 모악산

by 사천거사 2009. 11. 22.

모악산 산행기

◈ 일시: 2009년 11월 22일 일요일

◈ 장소: 모악산 794m / 전북 완주
◈ 코스: 주차장 → 심원암 → 헬기장 → 정상 → 배재 → 청룡사 → 금산사 → 주차장

◈ 시간: 6시간 44분

◈ 회원: 백만사 회원 8명 



08:05  오늘은 백만사 산행일이다. 원래는 완주에 있는 불명산을 가려고 했으나 산불예방을 위한 입산금지 구역이라 부득이 모악산으로 대상지를 바꾸었다. 모악산은 2006년 3월 19일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에 들어 있다. 산이 그리 높지 않고 키 보다 큰 조릿대 숲길이  인상적이며, 백제 시대의 유적인 금산사가 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금산사를 기점으로 해서 원점회귀 산행을 할 수 있다. 정상에 송신탑과 군부대가 있어 접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산남고등학교 주차장에 도착하니 가정사정 때문에 산행에 참석을 못하는 이완호 회원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 회원들이 모두 와 있었다. 이번부터는 차량 배정 방법을 바꾸어 여성회원들은 여성회원이 직접 차를 몰고 가는 것으로 정했다. 오늘 여성 드라이버는 김진숙 회원, 얼마 전에 새로 뽑은 YF 소나타를 끌고 왔다. 출발 전, 함께 '화이팅'을 외친 다음 회원들 모두 차에 올랐다.

 

산남고등학교 주차장을 출발, 청원나들목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진입, 이어 회덕갈림목에서 호남고속도로에 접속했다. 도로에 차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이제 단풍철도 다 끝나고 했으니 일반 관광객은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며칠 몸을 움추리게 했던 추위도 많이 풀리고 하늘도 맑아, 오늘 산행을 하는데 날씨가 많이 도와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김진숙 회원은 잘 따라오고 있겠지?


▲ 산행 출발 전 화이팅: 정우종 회원의 멋진 액션 [08:08]


09:10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에 들렀다.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김진숙 회원의 운전 솜씨는 대단했다. 내가 그리 천천히 달린 것은 아닌데, 내 차가 도착한지 불과 일 분도 지나지 않아 김진숙 회원이 모는 차가 휴게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일을 시켜봐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나타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선입견도 버려야 한다. '저 사람은 안 돼'라든지 저 사람은 못할 거야'와 같은 생각은 아주 위험하다.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다시 출발, 금산사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712번 지방도를 따라 금산면을 지나면 금평저수지 옆을 돌아가는 길과 새로 만든 4차로 도로가 있는데 어느 쪽을 이용해도 금산사로 갈 수 있다. 거리는 금평저수지 길이 짧다. 그런데 지난 2006년에 왔을 때와 변한 것이 있다. 그 때는 도립공원 이용료로 한 사람당 1,000원, 주차비 2,000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무료다. 잘 한 일이다. 다른 도립공원과 군립공원도 입장료를 폐지해야 한다. 입장료를 받기는 커녕 여러 가지 이벤트와 편의 제공으로 자기 고장에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머리 좋은 지자체 장들은 벌써 그렇게 하고 있다.


▲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09:22]


10:05  금산사 주차장에 들어서니 차들이 꽤 있는데도 주차장이 워낙 광대해서 그런지 한산한 기분이 들 정도다. 주차장 한 켠에 차를 세우고 산행준비를 했다. 주차장에서는 모악산 주능선과 송신탑 안테나가 솟아 있는 모악산 정상이 잘 보였다.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정상까지의 거리가 가까워보이고 높이도 낮아 보인다. 상가를 지나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母岳聖地'라고 쓴 커다란 표지석이 보였다. 일단 기념사진을 찍고 ......

 

다리를 건너면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매표소다. 금산사 주지가 한 사람당 2,500원씩을 받아 갔다. 그래도 금산사는 국보가 1점, 보물이 10정이나 있어 관람료가 그리 아깝지 않다. 내가 다녀본 것 중에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곳은 국립공원 주왕산에 있는 대전사다. 이곳도 문화재관람료를 2,000원씩 받는데 그 문화재가 무엇인지 아는가? 달랑 보물 1점이다. 어쨌든 문화재관람료는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관람과는 전혀 상관 없이 산행만 하는 사람들에게 관람료를 받는 것은 영화관 옆을 지나간다고 영화관람료를 받는 것과 뭐가 다른가?

 

금산사로 올라가는 길은 아직도 가을빛이 많이 남아 있었다. 거대한 통나무로 만든 일주문을 지나니 늦가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철 모르는 새파란 잎을 한 단풍나무가 아직도 있는가 하면, 급속한 온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단풍잎들이 다양한 색깔을 내비치고 있었다. 도로 왼쪽으로 금산사 절집이 보인다. 나중에 내려올 때 들르기로 하고 통과, 담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니 청룡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다.


▲ 금산사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 중 [10:08]

 

▲ 금산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모악산 주능선 [10:08]

 

▲ 母岳聖地 표지석 앞에서 여성회원들 [10:18]

 

▲ 母岳聖地 표지석 앞에서 남성회원들 [10:18]

 

▲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10:27]

 

▲ 금산사 가는 길: 가을 분위기가 남아 있다 [10:30]

 

▲ 금산사 오른쪽으로 담장을 끼고 [10:32]

 

▲ 금산사 담장 오른쪽 도로 [10:32]

 

▲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길 [10:33]


10:37  거대한 표지석이 있는 청룡사 갈림길에 도착했다. 오른쪽은 청룡사로 가는 길인데 우리 팀이 하산할 때 이용할 길이다. 정상과 연리지 표시가 있는 왼쪽 길로 들어서자 곧 부도전 표지판이 있고 왼쪽으로 석축 위에 자리잡은 부도전을 볼 수 있다. 부도전에는 보물 제24호인 해덕왕사 진응탑비가 있는데 비가리개를 설치해 놓았다. 보물과 보물 아닌 것이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현장이다. 금산사에 있는 다른 보물들도 비가리개를 해 놓았나?

 

심원암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왼쪽으로 길이 갈라지는데 연리지가 있는 곳으로 연결된다. 200m 거리를 올라가니 왼쪽에 나무로 만든 데크가 있고 길 엎에 소나무 두 그루가 가지 하나로 연결되어 H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기하다. 옛날부터 상서로움을 상징하며 사랑의 묘약으로 알려진 연리지와 연리목은, 나무 아래에서 빌면 아들을 낳으며 연리 나무를 외로 돌면 아들을, 바로 돌면 딸을 낳는다는 구전이 내려오고 있다. 나는 무엇을 빌어야 하나? 다시 주도로로 나와 심원암 쪽으로 올라갔다. 도로 옆의 삼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 청룡사 갈림길 이정표와 표지석 [10:37]

 

▲ 금산사 부도전: 보물 제24호 해덕왕사 진응탑비가 있다 [10:38]

 

▲ 심원암으로 이어지는 도로 [10:40]

 

▲ 대나무 숲과 파란 하늘 [10:40]

 

▲ 연리지 앞에서 [10:46]

 

▲ 연리지 앞에서 정우종-김진숙 부부 [10:47]

 

▲ 연리지 앞에서 이방주-송병숙 부부 [10:47]

 

▲ 연리지 앞에서 이용원-권명오 부부 [10:48]

 

▲ 연리지 앞에서 이효정-이정희 부부 [10:48]

 

▲ 삼나무 숲 길 [10:51]


10:54  심원암 갈림길에 도착, 오른쪽으로 가면 모악정을 거쳐 제2헬기장과 정상 사이로 올라갈 수 있다. 우리 팀은 심원암 길을 택했다. 심원암까지는 비포장 차도가 나 있어 걸어 오르기에 아주 좋았다. 심원암은 두 채의 절집이 고작이었는데 인기척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심원암 옆 공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이와 바나나를 간식으로 먹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은행나무에서 잎이 햇빛을 받아 은빛 비가 되어 떨어진다. 아름답다.

 

심원암 오른쪽으로 산길이 나 있다. 지금까지 사람은 만나지 못했는데 모처럼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양쪽으로 조릿대가 깔려 있는 길이 꽤 가파르다. 축대인지 산성인지 알 수 없는 석축을 왼쪽에 두고 올라서니 삼거리인데, 왼쪽은 보물 제29호인 북강삼층석탑으로 가는 길이다. 나무로 가드레일을 만들어놓아 목장길 분위기가 난다. 주능선은 오른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야 있었다.


▲ 심원암 갈림길 [10:54]

 

▲ 심원암으로 올라오고 있는 회원들 [11:04]

 

▲ 심원암 절집 모습 [11:09]

 

▲ 심원암 옆 공터에서 간식 타임 [11:09]

 

▲ 주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11:15]

 

▲ 주능선 아래에서 잠시 휴식 [11:20]

 

▲ 산성(?)의 흔적 [11:26]


11:37  마침내 주능선에 올랐다. 주능선은 조릿대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사람 키보다 높은 조릿대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 곳도 있다. 일반적으로 능선길은 걷기에 좋다. 지금 걷는 길도 봉우리를 오를 때 조금 경사가 있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걷기에 좋은 길이다. 능선길에 적당한 터가 있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간식 타임. 메뉴는 달걀과 야콘과 소주와 포도주였다.

 

속을 짜릿하게 채운 다음 제2헬기장을 향해 출발, 꽤 오랜 시간을 걸어 헬기장에 올랐다. 정상이 빤히 보이는데 거리는 만만치가 않았다. 넓은 헬기장에는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한창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점심 때가 되어 우리 팀도 먹을 곳을 찾아보았으나 마땅치가 않아, 조금 더 진행하다 점심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 조릿대 사이로 나 있는 주능선 길 [11:37]

 

▲ 키보다 큰 조릿대가 양쪽에 도열하고 있다 [11:44]

 

▲ 조릿대 숲길을 걷고 있는 회원들 [11:48]

 

▲ 달걀과 야콘과 소주 타임 [12:02]

 

▲ 제2헬기장으로 올라가는 길 [12:18]

 

▲ 널찍한 제2헬기장의 모습 [12:40]

 

▲ 모악산 정상을 배경으로 여성회원들 [12:42]

 

▲ 모악산 정상을 배경으로 남성회원들 [12:43]


12:47  정상 아래 널찍한 공터가 있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차렸다. 컵라면과 보온밥통에 싸온 밥, 여러 가지 반찬 등이 펼쳐졌고 소주가 반주로 곁들여졌다. 휑하니 빈 곳이던 자리가 우리 팀이 점심상을 차리자, 다른 팀들이 옆에 옆에 자리를 만들어 꽤 북적거렸다. 40분 정도 시간을 들여 점심을 끝내고 정상을 향해 출발, 10분 정도 걸어 송신소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정상표지석이 있는 전망대고 오른쪽으로 가면 우리가 하산할 배재로 가는 능선길에 닿게 된다.

 

일단 왼쪽 전망대로 갔다. 예전에는 아무 시설도 없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나무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기념사진을 찍고 전주 시내와 구이저수지 쪽을 조망한 다음, 다시 송신소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정표에 화룡봉을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었다. 모악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송신탑과 군부대 때문에 민원이 많은지, 왼쪽으로 거의 정상 높이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 역시 예전에 없던 것이다. 아래에서 본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 통과해서 나무계단을 올라가는데 두 사람이 없어졌단다.

 

누가 없어진 건가? 정우종 회원과 내 아내였다. 정상 전망대 옆에서 파는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오다가 길을 잘못 들었단다. 믿어도 되나? 유부남과 유부녀가 없어졌는데 괜찮을까? 나중에 길을 제대로 찾아 합류를 했는데 둘이 함께 없어진 이유를 대라고 해도 막걸리 타령만 한다. 나무계단을 올라 송신탑 오른쪽 능선에 올라섰다. 여기서도 전망이 좋다. 금산사 계곡이 보이고 그 뒤로 금평저수지도 보인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배재 쪽으로 뻗은 능선도 잘 보인다.


▲ 정상 아래 공터에 점심을 차리고 있는 회원들 [12:47]

 

▲ 정상표지석이 있는 전망대에서 여성회원들 [13:44]

 

▲ 정상표지석이 있는 전망대에서 남성회원들 [13:44]

 

▲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주 시내 모습 [13:45]

 

▲ 전망대에서 바라본 완주군 구이면의 모습 [13:45]

 

▲ 정상을 우회하는 오르막 계단길 [14:04]

 

▲ 다시 능선에 올라 바라본 금산사 계곡 [14:04]

 

▲ 우리가 하산할 능선 [14:05]

 

▲ 뭐 하느라고 안 오지? [14:06]


14:10  송신탑이 잘 보이는 제3헬기장도 넓고 조망이 좋았다. 능선길 따라 계속 하산, 조릿대가 양쪽을 덮고 있는 능선길은 낙엽이 깔려 있어 푹신하며 걷기에 그만이다. 30분 정도 걸려 장근재에 도착했다. 장근재에서는 모악정을 거쳐 심원암 갈림길로 내려갈 수 있다. 다시 배재로 내려가는 길, 간간이 정우종 회원이 이벤트를 열어 조금 지루한 산행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작은 봉우리를 하나 올랐다 내려가니 배재다.


▲ 전망이 좋은 제3헬기장의 모습 [14:13]

 

▲ 장근재로 내려가는 널찍한 길 [14:33]

 

▲ 이쪽 길에도 조릿대가 많다 [14:33]

 

▲ 장근재에 있는 이정표 [14:43]

 

▲ 하산 도중 한 나무에 올라 [14:52]

 

▲ 작은 봉우리를 오르고 있는 회원들 [15:02]


15:12  배재에서는 화율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청룡사까지는 1km 거리다. 조금 경사가 급한 지그재그식 길을 내려오니 가을분위기가 확 풍기는 계곡길이다. 산꼭대기 언저리는 벌써 잎이 다 떨어졌지만 그래도 아랫녘은 아직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많다. 청룡사로 올라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금산사 주차장으로 뻗어 있다. 청룡사에 들러보기로 했다. 2단으로 된 거대한 석축을 감아 올라가니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 배재에 있는 이정표 [15:12]

 

▲ 배재에서 내려오고 있는 회원들 [15:14]

 

▲ 지그재그식 하산 길 [15:17]

 

▲ 늦가을의 분위기가 완연하다 [15:22]

 

▲ 너덜지대 하산길 [15:27]

 

▲ 청룡사 삼거리 [15:36]

 

▲ 청룡사로 올라오고 있는 회원들 [15:38]


15:41  청룡사 관음전이 자리잡은 곳은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명당이었다. 아담한 모양의 관음전 절집은, 뒤로 그리 높지 않은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앞은 확 틔여 있어 주변 산세와 균형이 잘 맞을 뿐만 아니라, 조용한 시골의 농가와 같은 안정감과 소박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넓은 절집 앞 마당 오른쪽에는 막 새로 지은 커다란 절집이 있고, 왼쪽 공터에는 절집을 지을 자재들이 창고에 가득 들어 있었다. 절이나 교회나 성당이나 건물이 크고 웅장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이나 하느님은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보다 가난하고 소외 당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하지 않는가?

 

청룡사에서 내려와 금산사 쪽으로 나 있는 아스팔트 도로를 걸었다. 가로수 은행나무 노란 잎이 도로에 떨어져 쌓여 있다. 보기에 좋다. 뭐니뭐니해도 가을 단풍하면 빨간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이다. 그러나 그렇게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던 가을의 나뭇잎들도 결국 나중에는 모두 한 가지 색으로 똑같이 변하고 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삶의 형태를 누려왔던 결국 사람의 종착역은 죽음이다. 모두 똑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어준다.

 

오전에 지나쳤던 금산사에 들렀다. 대적광전이 정면으로 보이고 미륵전이 오른쪽에 있는데 절마당이 넓어 무척 푸근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절에 가면 절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한 번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려면 미로 찾기를 해야하는 곳도 있다. 금산사에서도 한쪽에서는 한창 새 절집을 짓느라고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종교에는, 화려한 외양에 걸맞는 충실한 내실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기념 사진을 찍고 주차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금산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이다. 1635년에 기록된〈금산사사적 金山寺事蹟〉에 의하면 600년(백제 법왕 2)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1492년에 씌어진〈금산사5층석탑중창기〉에 의하면 과거불인 가섭불 때의 절터를 중흥한 것이라 하여 오랜 불연(佛緣)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보면 금산사는 신라 경덕왕 때인 762년에서 766년 사이에 진표율사(眞表律師)에 의해 중창되어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이후로 법상종(法相宗)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진표 이후에 후백제 견훤에 의해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고려초 1079년에 법상종의 대종사(大宗師)인 혜덕(慧德)왕사가 주지로 부임해 간경·법석(法席)을 주관하는 장소인 광교원(廣敎院)을 설립하는 등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도량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석연대(石蓮臺)·5층석탑·노주(露柱) 등이 이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598년 정유재란 때 왜병의 방화로 모든 암자와 건물 40여 채가 불타버렸으나 1601년(선조 34) 수문대사(守文大師)가 재건을 시작하여 1635년 완공했다. 조선 고종 때 미륵전(彌勒殿)·대장전(大藏殿)·대적광전(大寂光殿) 등을 보수하고 1934년 대적광전·금강문(金剛門)·미륵전 등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6년 다시 화재로 대적광전이 소실되었으며 현재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 절에 남아 있는 유물·유적은 석조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임진왜란 이후의 조형물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중요 석조유물은 노주(보물 제22호)·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 : 보물 제24호)·5층석탑(보물 제25호)·석종(石鐘 : 보물 제26호)·6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당간지주(幢竿支柱 : 보물 제28호) 등이 있다. 또한 미륵전(국보 제62호)·대적광전이 있었고, 그밖에 대장전·명부전(冥府殿)·나한전(羅漢殿)·일주문·금강문·보제루(普濟樓)·종각·중향각·칠성각 등의 건물과 수계(受戒)의식을 행하는 방등계단(方等戒壇)이 자리잡고 있다.(다음 백과사전에서 참조)

 

금산사 문화재(국보 1점, 보물 10점)

 

국보 제62호 미륵전 / 보물 제22호 로주 / 보물 제23호 석연대 / 보물 제24호 해덕왕사진응탑비 / 보물 제25호 오층석탑 / 보물 제26호 석종 / 보물 제27호 육각다층석탑 / 보물 제28호 당간지주 / 보물 제29호 북강삼층석탑 / 보물 제827호 대장전 / 보물 제828호 석등



▲ 명당에 아늑하고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청룡사 관음전 [15:43]

 

▲ 금산사로 내려오는 길의 은행나무 앞에 앉아 [16:02]

 

▲ 가을의 세 여인과 한 남자 [16:03]

 

▲ 금산사 대적광전을 배경으로 [16:19]

 

▲ 국보 제62호 금산사 미륵전을 배경으로 [16:20]

 

▲ 미륵전을 배경으로 정우종-김진숙 부부 [16:22]

 

▲ 미륵전을 배경으로 이용원-권명오 부부 [16:22]

 

▲ 미륵전을 배경으로 이효정-이정희 부부 [16:23]

 

▲ 미륵전을 배경으로 이방주-송병숙 부부 [16:24]


16:52  주차장에 도착하니 해가 늬엿거린다. 차를 돌려 금산사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에 진입을 하는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금산사나들목은 게이트가 하나인데 하이패스 차량과 일반 차량이 함께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 나야 하이패스 차량이니까 그냥 통과를 했는데, 김진숙 회원도 통행권을 뽑지 않고 그냥 통과를 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배짱인가 했더니 곧 멈춰 서서 모종의 조치를 취하는 모양이다. 다 큰 사람들이니 알아서 하게 두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일요일 저녁인데 차가 안 밀리려나?

 

웬걸, 얼마 안 가서 차가 밀리기 시작하는데 장난이 아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서 판단해보건대, 적어도 논산갈림목을 지나야 정체가 풀릴 것 같다. 이럴 때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는 것이 좋다. 차로를 이쪽 저쪽 바꿀 필요도 없다. 그저 한쪽 차로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물결따라 움직이는 것이 상책이다. 예상했던 대로, 논산갈림목에서 정체는 완전히 풀렸다. 그래도 청주에 도착하니 평일보다 한 시간 가량 지체가 되었다.

 

산행에 참가하지 못한 이완호-권성희 부부를 산남고등학교에서 만나 함께 우리집 앞에 있는 칸 소주-호프방으로 갔다. 이곳은 그냥 술집인데 안주를 하나 주문하면 석굴을 무한정 리필해준다. 석굴 한 박스에는 15개 정도의 석굴이 들어 있는데, 지난 번에는 아내와 둘이 튀김닭 하나 안주로 시키고 석굴 4박스에 소주 4병, 맥주 4병을 마신 적이 있다. 오늘은 안주를 다섯 가지나 시키고 석굴 9박스에 소주 7병을 마셨다. 만추의 가을을 모악산에서 온몸으로 느끼고 뒤풀이 자리에서 회원들 사이의 따끈한 정을 마음으로 느낀 오늘 하루였다.


▲ 다시 돌아온 금산사 주차장 [1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