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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행/한국 100名山

2009.12.26. [한국 100名山 83] 경북 경주 남산

by 사천거사 2009. 12. 26.

경주 남산 산행기

◈ 일시: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 장소: 남산 468m / 경북 경주 

◈ 코스: 서남산주차장 → 상선암 → 금오봉 → 이영재 → 고위산 → 틈수골

◈ 시간: 4시간 41분 

◈ 회원: 아내와 함께


 

 

 


07:15   오늘은 아내와 함께 경주에 있는 남산 산행을 하는 날이다. 경주하면 흔히 신라 천년의 고도로 국보급의 문화유적이 많은 곳으로 알고 있다. 또 경주에 있는 산을 말할 때에는 주로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을 대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경주에는 토함산 외에도 故 현인의 '신라의 달밤'에 나오는 금오산이 있다. 금오산 맞은 편에는 고위산이 있는데 이 둘을 합쳐서 남산이라고 한다. 경주에 가면 어디서나 문화재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남산 지역에도 골짜기마다 석불과 석상이 있고 사찰이 있다. 그래서 남산은 문화재를 감상하면서 산행도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장소로 손꼽히고 있다.

 

청주 아파트를 출발, 서청주나들목에서 중부고속도로에 진입했다. 고속도로가 젖어 있어 빨리 달릴 수가 없다. 청원갈림목에서 당진상주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에 차들이 별로 없다. 아랫녘으로 내려갈수록 도로가 말짱했고 따라서 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요즘은 속도위반 측정 카메라를 갓길에 고정으로 설치해놓았기 때문에 과속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08:13   화서휴게소에 들렀다. 고속도로 건너편으로 구병산 능선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김천갈림목에서 경부고속도로에 접속했다. 경주, 참 오랜만에 가보는 곳이다. 초등학교 때 토함산을 걸어 올라간 다음 석굴암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둘러본 기억이 난다. 그 후, 1978년에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1999년에 학생들을 데리고 수학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이후로는 오늘이 처음이다. 경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경주나들목에서 남산 산행기점인 삼릉까지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 당진상주고속도로 화서휴게소 [08:14]

 

▲ 화서휴게소에서 바라본 구병산 능선 [08:14]


10:09   주차비 2,000원을 내고 서남산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날은 조금 차가웠지만 하늘은 맑고 파랗다. 겨울 하늘이 파랗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되었다. 예전에는 가을 하늘만 파란 줄 알았다. 도로를 건너 삼릉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 멋진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삼릉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에 들어서자 사방에 하늘을 향해 구불거리는 소나무들이 가득했다. 야, 이런 곳도 있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소나무를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들의 명작이 대부분 이 삼릉 주변의 소나무를 찍은 것이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 산행기점인 서남산주차장 [10:13]

 

▲ 주차장에서 도로 건너 삼릉으로 가는 길 [10:16]

 

▲ 삼릉 부근은 아름다운 소나무가 지천이다 [10:19]

 

▲ 소나무 중 가장 큰 놈을 잡고 [10:20]


10:20   커다란 능이 세 개라서 삼릉(三陵)인가? 삼릉은 신라시대 세 임금 즉, 8대 아밀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 있는데 사적2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름 없는 백성들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지만 백성의 우두머리인 왕은 커다란 무덤으로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삼릉을 지나서도 소나무 숲길은 계속 이어졌다.


▲ 경주 남산 삼릉의 모습 [10:20]

 

▲ 삼릉 왼쪽으로 나 있는 길 [10:22]

 

 ▲ 소나무 숲 사이로 데크를 설치했다 [10:24]

 

▲ 데크 따라 길은 계속 이어지고 [10:24]

 

▲ 아침 햇살이 비치는 소나무 숲 길 [10:25]


10:32   삼릉계곡에서 첫 번째 만난 문화재는 머리가 없는 석조여래좌상이었다. 그 왼쪽으로 약간 올라가면 마애관음보살상을 만나게 된다. 다시 큰 길로 내려와 조금 올라가면 왼쪽 계곡 건너에서 선각육존불을 볼 수 있다. 보물 제666호인 삼릉계석불좌상은 큰 길에서 18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석불좌상 왼쪽은 난 길을 따라가면 전망이 트이면서 용장리 쪽 들판을 내려다볼 수 있다. 선각여래좌상을 살펴본 후 다시 큰 길로 돌아왔다. 상선암으로 오르는 길은 약간 경사가 있었는데 정비가 잘 되어 있어 걷기에 좋았다.


삼릉계(三陵溪) 석조여래좌상(石彫如來坐像)

 

계곡 어귀에 3개의 능이 있어 三陵溪라 하는데 계곡이 깊고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冷谷)이라고 부른다. 이 계곡에는 11개소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여 남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으며, 금오봉 정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약 30m 남쪽 땅 속에서 머리(佛頭)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특히 이 부처님은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을 동여맨 끈, 그리고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용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불상은 손과 머리가 파손되었으나 몸체가 풍만하고 옷주름이 유려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품으로 평가된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이 불상은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으며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되어 있다. 풍만한 얼굴에 머리 위에는 삼면보관을 썼는데 앞에 작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이 불상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입술에는 붉은 색이 아직 남아 있으며 연꽃으로 된 대좌 위에 서 있는데, 목걸이를 하고 허리 아래로 흘러 내린 옷자락은 양 다리에 각각 U자 모양으로 드리우고 있다. 왼손은 정병[보병]을 들고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올려 손가락을 꼬부려 밖으로 향하고 있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이 불상은 남산에서는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 대좌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만 새기고 몸둘레의 신광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을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 분이 서 있다. 보통 이 세 분을 석가삼존이라고 부른다.

 

앞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꽃 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로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릎을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꽃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슬 2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미타삼존이라고 한다.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삼릉계 석불좌상(보물 제666호)

 

남산의 삼릉계곡 중부능선 쯤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불상은 불두와 불신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이 불상의 相好는 파손이 심했기 때문에 뺨과 코, 입 등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불상의 몸은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오른쪽 어깨는 노출된 편단우견식으로 걸쳤는데 이 가사는 얇게 몸에 밀착하여 신체의 윤곽 등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정강이에서 발목으로 옷주름이 비스듬히 흐르고 있다.

 

광배는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새겨진 화염문과 당초문 등으로 보아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연화좌는 상대에 仰蓮을 3단으로 새겼는데 꽃잎 안에 다시 꽃잎을 새겼다. 팔각의 중대에는 면마다 眼象을 두었으나 하대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 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얇은 가사, 발목으로 흐르는 옷주름 등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완성된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이 불상은 높이 10m 가량 되는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바위면의 중간쯤에 가로로 갈라진 홈이 파여 있는데 위쪽에 불상을 조각하였으며 연꽃대좌의 아랫단은 홈 아래에 걸쳐 있다. 얼굴부분은 돋을새김을 하고 몸은 얕으 돋을새김인데, 나머지는 선으로 표현한 독특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얼굴은 큼지막하고 널쩍하게 표현하고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을 크게 새겼는데 머리와 구분이 없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쳤으며 양손의 손목까지 덮고 있다. 왼손은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여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들어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붙이고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도록 하여 왼손과 오른손이 마주하게 하였다. 바위 속에서 얼굴만 내민 듯한 점이 특이하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머리가 없는 석조여래좌상 [10:32]

 

▲ 마애관음보살상 앞에서 [10:35]

 

▲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10:41]

 

 ▲ 아내는 전화 통화 중 [10:44]

 

▲ 삼릉계곡 석불좌상 [10:52]

 

▲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 바라본 용장리 방면 [11:01]

 

▲ 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 [11:03]

 

▲ 상선암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길 [11:14]

 

▲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상선암의 모습 [11:22]


11:23   산마루에 있다하여 상선암이라 불리는 암자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팥죽을 먹고 있었다. 산마루에서 팥죽 파티가 벌어졌네. 알고 보니, 왼쪽에 있는 요사채에서 나이 지긋한 보살님이 팥죽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마침 출출하던 때라 우리도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동치미와 함께 팥죽을 한 그릇씩 비웠다. 뜻밖의 팥죽공양 덕분에 배가 든든해졌다. 챙기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凡人들인데 상선암 보살은 그냥 보살이 아니었다.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경사가 있었다. 길 왼쪽에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는데, 한창 보존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관람은 할 수 없었다. 상선암에서 주능선까지는 7~8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오른쪽으로 주능선이 보이고 앞에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계단을 올라서니 바로 주능선이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광배형의 높이 7m, 너비 5m 되는 거대한 자연 암벽에 6m 높이로 새긴 이 불상은 앉은 모습의 석가여래상(釋迦如來像)이다. 남산의 좌불(座佛) 중에서는 가장 큰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전체적인 느낌은 바위 자체가 약간 뒤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거기 조각되어 있는 불상은 먼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너비 4.2m 되는 큰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설법인을 표시하고 먼 하늘에 시선을 두고 있다. 대좌의 연꽃은 2겹으로 피었는데, 꽃잎마다 보상화가 장식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다른 불상들의 세련되고 단정한 얼굴과는 달리, 이 불상은 약간 투박한 느낌을 준다. 즉, 눈은 가늘고 코는 길며, 입술은 매우 두꺼워서, 얼굴 모습이 투박하고 소박한 지방 양식을 보여주는 듯 하다. 옷은 통견(通肩)으로 옷주름이 가늘게 선각되었다. 몸체 뒤에는 다소 굵게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나타내었다. 머리만 사람이 조각을 했을 뿐 몸 전체는 천연의 바위 그대로 두었다. 즉, 몸체에서는 인공적 가공을 생략하고 선각(線刻)으로 손발을 그림으로써 주위의 바위산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그러나 머리부분과 몸부분이 각각 다른 시기에 조각되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 수법으로 미루어 보아 그 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머리 부분은 8세기 이전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며, 선각으로 처리된 몸부분은 9세기의 기법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 상선암 절집 모습 [11:23]

 

▲ 따끈한 팥죽을 한 그릇씩 먹고 [11:24]

 

▲ 위에서 내려다본 상선암 전경 [11:30]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은 보존처리공사 중[11:35]

 

▲ 주능선에 오르기 전 계단 앞에서 [11:36]


11:37   주능선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니, 왼쪽은 삼불사로 가는 길인데 거리가 2160m고 오른쪽 금오봉까지는 거리가 840m였다. 주능선에 올라서자 길은 평탄해졌고 전망이 트여 용장리 쪽이 잘 보였다. 보존수리 중인 마애석가여래좌상도 보였다. 길은 계속 평탄하다. 오가는 사람들도 꽤 많다.


▲ 삼불산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주능선에 있는 이정표 [11:37]

 

▲ 금오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의 모습 [11:39]

 

▲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곳에서 [11:39]

 

▲ 바위가 점점이 박혀 있는 지능선의 모습 [11:44]

 

▲ 오른쪽 암벽에 보존처리공사 중인 삼릉계곡석가여래좌상이 보인다 [11:44]

 

▲ 넓고 평탄한 능선길 [11:53]


11:56   해발 468m의 금오봉 정상은 잘 닦여진 넓은 평지였으며 이정표와 정상표지석이 서 있었다. 이정표를 보니 삼릉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2230m다. 금오봉에서는 길이 여러 군데로 갈라지는데 고위산 쪽으로 가려면 용장사지 쪽으로 가야 한다. 기념사진을 찍고 조금 경사가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니 넓은 길이 나타났다.


▲ 남산 금오봉의 모습 [11:56]

 

▲ 해발 468m의 금오봉 정상에서 [11:58]

 

▲ 금오봉 정상에서 [12:00]

 

▲ 금오봉 정상에서 [12:00]

 

▲ 아내는 문자 보내는 중 [12:03]


12:10   임도라고 봐야 하나 넓은 길에 내려섰다. 지도를 보니 통일암에서 이영재를 거쳐 올라오는 남산일주도로였다. 물론 차는 다니지 못한다. 길이 너무 좋아 발걸음이 가볍다. 부처님은 사라지고 좌대만 남아 있는 대연화좌대를 지나자 오른쪽으로 백운재와 고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잘 보였다. 이영재까지는 계속 일주도로가 이어졌다.


▲ 금오봉에서 내려와 만난 임도 [12:11]

 

▲ 억새 앞에서 한 장 [12:11]

 

▲ 파란 하늘에 뭐가 있나? [12:13]

 

▲ 용장골 안내문 탐독 중 [12:15]

 

▲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12:19]

 

▲ 이영재로 이어지는 남산일주도로 [12:19]

 

▲ 대연화좌대 [12:21]

 

▲ 멀리 고위산 정상이 보인다 [12:22]

 

▲ 이영재까지는 탄탄대로다 [12:27]


12:35   이정표가 서 있는 이영재에 도착했다. 통일암으로 가는 남산일주도로는 여기서 왼쪽으로 휘어진다. 다시 산길이 시작되었다. 한 봉우리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보니 금오봉 정상이 우뚝하고 방금 걸어온 남산일주도로가 S자를 그리고 있다. 군데군데 보이는 하얀 바위들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이영재에서 50분 정도 걸어 백운재에 도착했다. 백운재에서 고위산 정상까지는 15분 거리였다.


▲ 이영재에 있는 이정표 [12:35]

 

▲ 다시 오르막길을 힘차게 [12:38]

 

▲ 뒤돌아서서 바라본 금오봉의 모습 [12:49]

 

▲ 금오봉을 배경으로 [12:58]

 

▲ 금오봉을 배경으로 [12:58]

 

▲ 양지쪽 바위에 앉아 [13:02]

 

▲ 백운재에 있는 이정표 [13:24]

 

▲ 성의 수문장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네 [13:27] 


13:40   삼각점이 있는 해발 494m의 고위산에 올랐다. 높이는 남산보다 더 높다. 아담한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고 커피를 한 잔씩 마신 다음 천룡사지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25분 정도 걸어 백운암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도착했다. 널찍한 비포장 차도가 앞으로 뻗어 있어 따라 내려갔는데 이런, 길을 잘못 들었다. 아까 백운암 갈림길에서 천룡사지 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좋은 길을 좇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다시 원위치해서 천룡사 쪽으로 내려갔다.


▲ 해발 494m의 고위산 정상에서 [13:40]

 

▲ 고위산에 있는 삼각점 [13:40]

 

▲ 고위산을 내려오다 만난 층층바위 [13:59]

 

▲ 다른 길로 가고 있는 중 [14:10]

 

▲ 천룡사 가는 길 이정표 [14:15] 


14:19   불국사 제11교구 말사인 천룡사에 들렀다. 경주라는 크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천룡사 절집들은 낡고 허름했다. 겨울철인데도 남향인 텃밭에는 아직 배추가 파랗게 남아 있었다. 천룡사 아래 푸르름을 잃지 않은 대나무숲이 파란 하늘과 기가 막힌 색의 조화를 펼치고 있다. 어디선가 사람들의 떠들석한 소리가 들린다. 천룡사 아래 집에 몇 채 있고 녹원정사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산행객 차림의 사람들이 단체로 몰려다니며 떠들고 있었다. 산행을 온 건가 아니면 녹원정사를 찾은 건가?

 

천룡사지에서 산행종점인 틈수골(용장3리)까지는 꽤 먼 거리였다. 집이 있기에 산길이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이었다. 그런데 지금 올라오는 사람들은 뭐야? 대화를 들어보니 녹원정사에 가는 사람들이었다. 산길을 한참 동안 걸어 내려가니 왼쪽에 와룡사가 있고 거기부터는 시멘트 포장도로였는데,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10분 남짓 걸렸다.


▲ 천룡사 대웅전의 모습 [14:19]

 

▲ 천룡사 바로 아래에 있는 대나무숲 [14:20]

 

▲ 감나무와 파란 하늘 [14:24]

 

▲ 천룡사 아래 마을 위로 솟아 있는 고위산 [14:25]

 

▲ 대나무숲 앞에서 [14:29]

 

▲ 푸른 대나무와 파란 하늘 [14:30]

 

▲ 낙엽이 쌓인 하산길 [14:42]

 

▲ 와룡사 들어가는 길 [14:43]

 

▲ 틈수골(용장3리)로 내려가는 포장도로 [14:45]


14:54   차가 다니는 도로에 올라섰다. 바로 오른쪽에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다. 버스는 언제 오나? 길 건너에 산불감시원 아저씨가 세 명 있기에 버스 시간을 물었더니, 20분에 한 대씩 있는데 조금 있으면 올 시간이란다. 여차하면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게 웬 복이람. 곧 좌석버스가 도착했고 요금은 한 사람당 1,500원이었다. 삼릉 정류장에 내려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바라보는 오른쪽 삼릉 소나무숲이 장관이다. 음력으로 며칠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이 시간에 달이 중천에 걸려 있다. 해와 달이 한 하늘에 공존하고 있다.

 

경주는 빵으로도 유명하다. 황남빵과 경주빵은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되고 단맛을 줄인 찰보리빵은 5년 전에 경주시에서 개발한 것이다. 경주시 관광명소 거의 어디에서나 경주빵 가게를 볼 수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 옆에 경주빵과 찰보리빵을 파는 가게가 있다. 집에 있는 선영이 부부 갖다주려고 만원을 주고 찰보리빵 한 상자를 샀다.


경주빵(황남빵)

 

황남빵은 대한민국 경주의 빵으로, 최영화가 개발했다. 1939년에 지금의 경주시 황남동에서 처음으로 밀가루 반죽에 팥을 넣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그래서 황남빵이라고 부른다. 경주빵도 황남빵과 같은데, 경주빵은 최영화의 가게에 있던 장인 김춘경이 1978년에 독립하여 차린 가게의 브랜드이다. 


 ▲ 용장3리 마을표지석과 마을회관 [14:55]

 

▲ 용장3리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14:58]

 

▲ 삼릉 소나무 사이로 하늘에 달이 떠 있다 [15:05]

 

▲ 삼릉의 소나무들 [15:05]

 

▲ 삼릉의 소나무숲을 배경으로 [15:06]

 

▲ 소나무 사이로 달이 떠 있다 [15:06]

 

▲ 서남산주차장 옆에 있는 경주빵집 [15:08]


15:11   차를 세워둔 서남산 주차장에는 오전보다 차들이 많았다. 경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청주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토요일 오후지만 차가 밀리지는 않았다. 겨울철이라 대부분 강원도 쪽으로 스키를 타러 가고 남쪽으로는 차량이 덜 내려온 모양이다. 6시쯤에 청주 아파트에 도착, 김천가에 가서 순대전골과 소주를 마시며 천년 고도 경주 남산 산행을 다녀오는 하루 여정을 마무리했다. 


▲ 서남산주차장에 다시 돌아오다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