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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행/한국 100名山

2009.12.05. [한국 100名山 81] 경남 마산 무학산

by 사천거사 2009. 12. 5.

무학산 산행기 

◈ 일시: 2009년 12월 5일 토요일 

◈ 장소: 무학산 761m / 경남 마산 

◈ 코스: 만날고개 → 대곡산 → 무학산 → 703봉 → 서학사 → 서원곡주차장

◈ 시간: 4시간 2분

◈ 회원: 아내와 함께(해맑은산꾼들 안내 산행)


 


무학산(舞鶴山)은 마산시의 서북쪽에서 마산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크고 작은 능선과 여러 갈래의 계곡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특히 동쪽의 서원곡 계곡이 무성한 수목과 경관으로, 마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마산시에서 관광객 유치 홍보를 위해 선정한 9경(景) 5미(味) 중 9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신라 말기에 이곳에 머무르던 최치원이 산을 보고는 학이 나는 형세라고 했다고 해서 이때부터 무학산으로 불렀다고 하며, 원래 이름은 풍장산이었다고 한다.


07:00   오늘은 해맑은 산꾼들 산악회를 따라 마산에 있는 무학산으로 산행을 가는 날이다. 무학산은 마산의 명산이자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에 속한다. 아침에 일어나 서둘러 산행 준비를 하고 청주 실내체육관 앞으로 가보니, 네파 등산용품점 옆에 청솔관광 버스가 서 있었다. 네파 매장에 들러 김웅식 사장과 인사를 나누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치기에 돌아보니 연제원 선배다. 예전에 청운중학교에서 같이 근무를 한 적이 있는 선배다. 청주 사회가 좁다 보니 어느 단체나 모임에 들어가든 이래저래 연줄이 다 걸린다.

 

회원들을 실은 31인승 리무진 버스가 출발했다. 리무진 버스는 좌석이 널찍해서 좋다. 배낭을 가지고 타도 공간이 충분하다. 서청주나들목에서 중부고속도로에 진입, 경부고속도로를 잠깐 달린 다음, 청원갈림목에서 당진상주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마산을 가려면 이쪽 길이 빠르다. 낙동갈림목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접속, 선산휴게소에 잠시 들른 후 냅다 마산까지 달려, 서마산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그런데 버스가 길을 잘못 들어 마산 시내를 관통한 후 빙빙 돌아 간신히 산행기점인 만날고개 주차장에 도착했다.


▲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 [08:20]

 

▲ 선산휴게소에서 [08:21]


10:30   만날고개 주차장에 회원들을 내려놓고 버스는 산행종점인 관해정으로 떠나갔다. 등산화끈을 조인 다음 주차장을 떠나 만날고개로 이어진 넓은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 양쪽으로 여러 가지 시설물도 해놓고, 안내판, 시비 등도 세워놓았다. '무학산 둘레길'이라고 해서 산길과는 다른 산책로도 만들어 놓았다.

 

요즈음은 지자체에서 자기 주민들을 위한 이런 위락 시설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잘 하는 일이다. 의식주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만날고개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내려온 애틋한 모녀상봉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커다란 만날고개 표지석 오른쪽으로 산행로가 나 있었다. 조금 급한 경사길을 올라가니 왼쪽에 이정표가 서 있다.


만날고개의 전설

 

고려 말엽 마산포 바닷가 마을에 살던 가난한 양반 이씨 가문의 편모 슬하 큰 딸과 친정 어머니가 전설의 주인공이다. 열일곱살 맏딸이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을 보살피고자 고개 너머 부잣집 윤진사댁으로 시집을 갔는데, 엄한 시집살이를 겪으며 눈물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친정이 그리워도 마음대로 가볼 수 없던 그 딸이 어느날 먼 발치에서라도 친정집을 보려고 고개에 올랐는데, 때마침 시집간 딸이 보고싶어 고개를 올라온 친정 어머니와 '이심전심'으로 만나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얘기다. 이 전설이 면면히 이어오면서 고개 이름이 만날고개로 굳어졌다.


▲ 산행기점인 만날고개 주차장 [10:33]

 

▲ 주차장 위 벤취에 앉아 [10:37]

 

▲ 만날고개로 올라가는 길에서 [10:37]

 

▲ 만날고개로 올라가는 회원들 [10:43]

 

▲ 만날고개 표지석 [10:44]

 

▲ 만날고개 표지석 오른쪽으로 나 있는 산행로 [10:46]


10:47   만날고개 이정표를 보니 대곡산까지는 1km, 무학산까지는 3.6km라고 되어 있다. 처음부터 경사가 급한 나무계단 길이 나타났다. 만날고개가 해발 205m이고 대곡산 정상이 517m이니 고도 312m를 올라야 대곡산 정상에 이를 수 있다. 힘들 때마다 자주 한 박자씩 걸음을 늦춰가며 지근지근 올랐다. 산행을 같이 온 다른 회원들에 비해 늦은 편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아내가 잘 걸어준 덕택에 선두권을 유지하며 계속 걸었다. 멋진 소나무 '대곡청송'이 반겨주는 대곡산 정상에 다다르니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꽤 분다. 그래도 그렇게 춥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 만날고개에 있는 이정표 [13:47]

 

▲ 나무계단 길을 오르고 있는 회원들 [11:00]

 

▲ 조금 경사가 있는 계단 길 [11:04]

 

▲ 벤취에 앉아 휴식중 [11:05]

 

▲ 잠시 서서 쉬는 중 [11:14]

 

▲ 대곡산 정상 막바지에서 [11:19]

 

▲ 대곡산 정상에 있는 大谷靑松 앞에서 [11:22]

 

▲ 대곡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11:22]


11:23   해발 516m의 대곡산 정상에 올랐다. 눈발은 계속 흩날린다. 사진 찍고 바로 출발, 길이 많이 부드럽고 평탄해졌다. 잠시 후 앞쪽 전망이 트이면서 무학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눈 앞에 펼쳐졌다. 굴곡이 심하지 않은 부드러운 능선이다. 오른쪽으로는 마산항이 내려다보인다. 마산항 가운데에 있는 돌섬유원지 뒤로 진해시도 보인다. 마산과 창원을 이어주는 마창대교도 보인다. 서로 이웃해 있는 마산, 창원, 진해가 서로 통합을 한다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지금 너무 쪼개져 있다. 그 때문에 지역간의 갈등, 행정의 비능률화 등의 문제들이 만연해 있다. 가능한 한 빨리 합쳐야 한다.

 

길을 걷다 보면 사각으로 된 돌에 鐵(철) 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몇 번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명산에도 철주를 박았는데, 이곳 무학산에도 정기를 끊으려고 주능선 곳곳에 철주를 박았었다. 나중에 그 철주들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돌로 표석을 만들어 세운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 표석의 의미를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 지자체에서 그 표석의 의미를 알려주는 안내판을 세우면 좋지 않을까?


▲ 해발 516m의 대곡산 정상에서 [11:23]

 

▲ 눈발이 날리는 대곡산 정상에서 [11:23]

 

▲ 정상을 지나자 평탄한 길이다 [11:24]

 

▲ 앞으로 걸어야 할 능선 [11:25]

 

▲ 마산항을 배경으로 [11;26]

 

▲ 산행 중에 만나게 되는 鐵(철)자 표석 [11:32]


11:34   수선정사 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다. 무학산 정상까지 1.8km가 남았으니 만날고개에서부터 치면 정상까지 거리의 반을 걸어온 셈이다. 거리야 어쨌든 일단 길이 험하지 않고 평탄한 곳이 많아서 좋다. 전망도 좋아 오른쪽으로 마산항을 계속 보면서 걸을 수가 있었다. 가곡 '가고파'의 지리적 배경이 마산 앞바다가 아닌가? 지금은 상호가 바뀌었지만 예전부터 무학(화이트)소주, 몽고간장으로 이름을 날리는 곳이 바로 마산이 아니던가? 진해와 이웃한 조용한 항구 도시 마산은 그런 정감이 있어 좋다.


한국의 가곡 가고파

 

김동진 작곡, 이은상 작사.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10절의 가사를 가진 통절형식(通節形式)의 곡이다. '가고파'의 바다는 이은상이 태어나고 살았던 마산 앞바다 합포만(合浦灣)으로, 이 시는 1932년 그가 이화여전 교수로 재직할 때 씌어졌고, 그 다음해에 김동진이 평양 숭실전문대 문과에서 양주동에게 이 시를 배우면서 악상이 떠올라 단숨에 4장까지 작곡을 했다. 40년 후인 1973년에 나머지 6장을 완성하였다. '가고파'는 1933년 작곡 이후 평양 신암교회와 신정교회에서 불리다가 테너 이인범(李仁範)에 의해 널리 소개되었다. 또한 고향을 떠올리는 애상감과 마지막 부분의 남성적 중후함이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이 되게 하였다(1984년 문화방송 조사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곡 1위 곡으로 선정).


▲ 수선정사 갈림길 이정표 [11:34]

 

▲ 갈림길을 떠나기 전에 잠시 쉬면서 [11:35]

 

▲ 마산항이 보이는 곳에서 [11:44]

 

▲ 전망 좋은 곳에서 조망 중 [11:46]

 

▲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마산항 [11:56]

 

▲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마산항 [11:57]

 

▲ 부드럽고 평탄한 소나무 숲길 [11:59]


12:00   완월폭포 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무학산 정상까지 0.9km가 남았으니 만날고개에서 무학산 정상까지 거리의 4분의 3은 온 셈이다. 5분 정도 걸은 다음 뒤를 돌아 보니 대곡산 정상에서부터 걸어온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얌전한 숲길을 지나 12시 14분, 학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개나리동산을 지나자 무학산 정상으로 향하는 나무계단 길이 시작되었다. 대형 돌탑이 있는 730봉을 오른쪽으로 감아 도니, 태극기가 휘날리고 산불감시카메라가 돌아가는 무학산 정상이 보인다.


▲ 완월폭포 갈림길 이정표 [12:00]

 

▲ 우리가 걸어온 길, 맨 뒤 봉우리가 대곡산 정상 [12:05]

 

▲ 경사가 전혀 없는 아주 부드러운 길 [12:11]

 

▲ 무학산 정상 쪽의 나무계단 길에서 [12:15]

 

▲ 멀리 무학산 정상이 보인다 [12:21]

 

▲ 무학산 정상을 향하고 있는 산행객들 [12:24]

 

▲ 정상으로 오르다가 잠시 멈춰 서서 [12:27]

 

▲ 730봉에 있는 돌탑이 보인다 [12:29]


12:33   해발 761.4m의 무학산 정상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사람 키 만한 정상표지석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헬기장을 겸한 정상은 전망이 좋아 마산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회원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다시 우리 둘만의 사진을 찍은 다음 곧 바로 자리를 떴다. 정상에서 왼쪽은 낙남정맥길이고 오른쪽 계단이 서마지기로 내려가는 길이다. 무학산 정상에서 서마지기를 거쳐 703봉으로 가는 길은 억새밭 사이로 난 운치 있는 길이었다. 단지, 훼손을 막기 위해 계단을 만들어놓은 것이 옥의 티였다.

 

서마지기에서는 길이 갈라지는데, 오른쪽은 서원곡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은 북동능선을 타고서 마산여중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관해정으로 가는 길은 직진. 억새 사이로 나무계단 길이 나 있는데, 앞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매우 아름답다. 겨울에도 저렇게 멋진 구름을 볼 수 있구나. 703봉에서 달맞이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온통 진달래나무 천지였다. 지금이야 모두 잎이 떨어져서 볼품이 없지만, 봄철에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룰 것 같다. 무학산이 진달래꽃으로 유명하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었다.


▲ 해발 761m의 무학산 정상에서 [12:33]

 

▲ 무학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12:34]

 

▲ 무학산 정상 풍경 [12:34]

 

▲ 정상에서 바라본 서마지기와 703봉으로 이어지는 억새길 [12:35]

 

▲ 서마지기로 내려오는 365 사랑 계단 [12:36]

 

▲ 서마지기에 있는 이정표 [12:41]

 

▲ 서마지기에서 703봉으로 올라가는 계단길 [12:42]

 

▲ 703봉을 오르다가 뒤돌아 보니, 멀리 무학산 정상이 보인다 [12:43]

 

▲ 703봉 아래의 억새와 파란 하늘 [12:43]

 

▲ 돌탑 위로 파란 하늘에 멋진 구름이 떠 있다 [12;47]


13:00   점심 때가 되어 길 오른쪽 낙엽이 쌓인, 햇살이 비치는 사면에 점심상을 차리기로 했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아내가 배낭에서 깔개를 꺼내면서 함께 꺼낸 우모복이 든 주머니가 산 사면을 타고 아래로 굴러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 나무에 걸리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끝도 없이 내려가더니 결국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일단 밥을 먹고 내려가서 가져오려고 했는데, 산행객 두 사람이 그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쪽에 하산길이 있나? 안 되지. 걸음을 재촉해서 그 사람들을 앞질러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서야 주머니를 발견했고, 다시 아내가 있는 곳까지 올라오니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턱턱 막힌다. 숨을 돌린 다음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커피도 한 잔 했다. 20분 만에 점심을 마치고 다시 출발, 작은 암봉을 하나 넘어 돌길을 내려가니 넓은 암반이 깔려 있는데, 앞에 보이는 마산항의 경치가 너무 좋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폼 잡고 사진 한 장 찍고 가야지. 눈높이가 낮아질수록 마산항의 진목면이 점점 더 잘 나타났다.


▲ 점심 먹고 다시 출발 [13:23]

 

▲ 작은 암봉을 지나고 [13:25]

 

▲ 그저 그런 암릉길도 지나고 [13:33]

 

▲ 전망 좋은 암반에서 [13:36]

 

▲ 전망 좋은 암반에서 [13:36]

 

▲ 하산 중에 내려다본 마산 시내의 모습 [13:44]

 

▲ 하산 중에 내려다본 마산항의 모습: 돌섬유원지 왼쪽은 진해시  [13:44]

 

▲ 달맞이고개에 내려서기 직전에 [13;50]

 

▲ 달맞이고개에 내려서기 직전에 [13:51]


13:51   이정표가 서 있는 달맞이고개에 내려섰다. 여기서는 삼학사로 가는 길과 관해정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우리는 물론 관해정으로 Go! 조금 걸어 내려가니 오른쪽으로 절집이 보인다. 서학사였다. 시간도 있고 해서 잠시 들렀는데 작은 개 몇 마리가 죽어라고 짖어댄다. 그 중 한 놈은 계속 따라 붙으며 짖어대는데 건빵을 주니 정신 없이 먹는다. 서학사를 내려와 무학산 둘레길과 만났다. 여기서는 오른쪽으로 Go! 길 옆에 철 모르는 개나리가 노랗게 꽃을 피웠다. 12월에 개나리가 피다니, 따뜻한 남쪽 바다 때문인가?

 

무학산 계곡인 서원곡은 예전에 회원서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원철폐 이후 지금은 관해정만 남아 있고 계곡은 마산 시민들이 찾는 유원지로 변했다. 도로가에 음식점들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이 문을 걸어 잠근 상태였다. 겨울에는 장사가 안 되는 모양이다. 계곡 옆 공터에 채마밭을 일궈 채소를 가꾸는 집들이 많았다. 따뜻한 지방이라 그런지 상추를 비롯한 몇 가지 채소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네팔에서 본 시골 풍경과 매우 흡사했다. 하긴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거기가 거기 아니겠는가.


▲ 달맞이고개에 있는 이정표 [13:51]

 

▲ 서학사 절집 대웅보전 [14:02]

 

▲ 서학사 대웅전 앞 뜰에서 [14:03]

 

▲ 철 모르는 개나리가 피었네 [14:10]

 

▲ 서학사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14;12]

 

▲ 관해정으로 내려가는 길 [14:20]

 

▲ 서원곡 주변 주민들의 텃밭, 네팔 분위기가 난다 [14:24]


14:31   관해정 옆 서원곡유원지 주차장에 도착함으로써 공식적인 산행은 끝이 났다. 주차장을 한 바퀴 둘러 보았으나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관해정으로 내려오라고 했는데. 일단 관해정을 구경하려고 다리를 건너 가 보았으나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보니 바닥에 대형버스 주차 금지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버스는 도로변에 있을 확률이 높다. 주차장 아래 큰 도로로 내려가 좌우를 살폈더니, 아닌게 아니라 왼쪽 도로변에 청솔관광 버스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일착으로 버스에 짐을 내려놓고 파전에 동동주나 한 잔 하러 다시 서원곡으로 올라가는데 이런, 배낭에 지갑을 두고 왔네, 하는 수없이 그냥 한 바퀴 돌아내려 오고 말았다. 버스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속속 회원들이 도착을 한다. 3시 쯤에 회원들이 모두 탑승했고, 멀리 마산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있느냐는 의견이 많아 마산어시장에 있는 횟집으로 향했다. 어시장에 있는 진주횟집에 들어가 모듬회를 시켜 소주를 마셨다. 술은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꾸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모두가 유쾌한 회식이었다.

 

한 시간에 끝내려던 회식은 결국 20분 정도가 연장되었고, 5시가 되어서야 비로서 버스가 마산을 출발했다. 서마산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 선산휴게소에 잠시 들른 버스는 청주까지 쉬지 않고 줄기차게 달려 8시 가까이에 체육관 앞에 도착을 했다. 오늘 무학산 산행은 줄곧 마산항을 내려다보며, 그리 힘들이지 않고 끝마친 의미 있는 산행이었다. 게다가 남해 바다의 회맛까지 보았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관해정

 

회원서원이 있었다고 해서 서원곡이라 부르는 무학산 계곡 일대에 관해정이 자리잡고 있다. 회원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 한강 정구(1543∼1620)를 추모하는 뜻으로 그의 제자들이 세웠던 곳이다. 조선 고종(재위 1863∼1907)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지금은 관해정만 남아 있다. 건물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앞에는 440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는데, 정구 선생이 손수 심은 것으로 전한다. 관해정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정구 선생과 그의 제자인 허목 선생께 제사지내고 있다. 마산시 문화재자료 제2호다.

 

마산 어시장

 

마산창이 설치된 이후 창원부사가 조창에 관원과 조군을 배치하고 선창주변에 마을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시장(마산장)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마산장에선 어민들이 어획한 각종 수산물을 비롯해 농산물, 옷감, 유기그릇 등이 거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1899년 마산포가 개항되면서 외국의 공산품들이 들어와 시장 활성화와 함께 마산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이 됐다. '만기요람'에 마산포의 객주(현재 수협의 기능과 유사)가 130호나 됐다는 기록으로 미뤄 당시 구마산 어시장이 상당히 번창한 것으로 짐작된다.

 

조창을 중심으로 한 어시장은 마산항 매립과 함께 현 위치인 동서동 합포로~해안로 사이와 수협주변으로 확장된다. 마산항은 한일병합 이후 1914년 현재의 남성동 우체국·극동예식장 일대 1만 1000여평을 매축한 것을 시작으로 1927~1940년 사이 수차례와 홍콩바(대우백화점 뒤 편)~수협 사이 구항 6만 7000여평을 매립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25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어시장은 지난 1948년 객주들의 협의기관인 '합포사'가 조직되고, 1962년 마산어업조합이 설립됨으로써 어획물의 입하와 판매망이 일원화 됐다.


▲ 대문이 잠겨 있는 관해정 [14:31]

 

▲ 서원곡과 무학산 능선 [14:32]

 

▲ 관해정 아래 도로변에 있는 청솔관광 버스 [14:35]

 

▲ 마산어시장의 진주횟집 [15:35]

 

▲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물고기들 [15:35]

 

▲ 한 첨 하시죠 [15:57]

 

▲ 맛이 좋습니까? [15:58]

 

▲ 마산어시장 입구 [16:50]

 

▲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휴게소(서울방면)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