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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백두대간

2009.07.11. [백두대간記 29] 댓재→백봉령

by 사천거사 2009. 7. 11.

백두대간 제29구간 종주기  

◈ 일시: 2009년 7월 11일 토요일 

◈ 구간: 댓재 → 두타산 → 청옥산 → 고적대 → 이기령 → 상월산 → 원방재 → 백봉령  

◈ 거리: 29.1km 

◈ 시간: 11시간 52분


 

 

 


01:15   오늘은 그 동안 손을 놓고 있던 백두대간 종주를 하기로 한 날이다. 작년 10월 19일 피재에서 댓재까지 28구간을 한 후,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중단했던 백두대간이 불현듯 다시 생각이 나서 오늘과 내일 두 구간을 하기로 마음 먹고 종주 산행을 떠나게 되었다. 내일 중부지방에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는데, 오늘 저녁에 상황을 봐서 내일 산행이 힘들 것 같으면 포기하고 돌아가기로 일단 계획을 세웠다.

 

청주에서 댓재까지는 먼 거리다. 선잠을 자다가 12시 30분에 일어나 대충 짐을 꾸리고 김밥을 두 줄 산 다음 1시 15분에 청주를 출발했다. 아내는 오늘 오후에 친구들과 중국 베이찡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내가 먼저 산행을 떠나는 관계로 배웅을 해줄 수 없어 미안한 마음 뿐이다. 주덕에서 599번 지방도를 따라 가흥육교까지 와서 38번 국도에 올라섰다. 38번 국도를 따라 태백까지 직행한 다음 강릉행 35번 국도로 경로를 바꾸어 하장 쪽으로 달리다 보면 28구간 산행기점인 피재가 나오고, 광동댐 못미쳐서 삼척으로 가는 424번 지방도가 오른쪽으로 갈라진다. 그 424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댓재가 나온다. 

 

영월에서 태백까지는 약간의 구간만 제외하고 모두 4차로 공사가 되어 있어 운행하기에 좋았다. 단, 자동차 왼쪽 전조등이 나가서 오른쪽 하나로만 운행을 해야 했고, 밤안개가 끼어 있는 곳이 많아 운전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또 하나, 한적한 도로를 혼자서 달리다보니 졸음이 계속 밀려오는 것이 문제였다. 중간에 두어 번 차를 세운 다음 밤바람을 쐬었지만 차에 타면 졸음 현상은 다시 나타났다. 별 수 없다. 참아야 하느니라.

 

05:10   어찌 되었건 무사히 댓재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공간을 갖고 있는 댓재에는 관광버스가 두 대, 승용차가 한 대 세워져 있는데 버스에서 막 내린 단체산행객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붉은 빛이 동쪽 하늘을 물들이는 것을 보니 일출이 시작되고 있는 모양이다. 댓재 정상에는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건 시원한게 아니라 숫제 차갑다. 손도 시리다. 자켓을 꺼내 입고 수건으로 귀를 두른 다음 모자를 썼다. 오늘 날씨가 좋다고 했는데 왜 이러지.

 

드디어 5시 15분에 산행이 시작되었다. 주차장 왼쪽에 있는 광장을 지나면 햇댓등으로 올라가는 길 이정표가 있다. 단체산행객이 조금 전 떠났는데 어디까지 갔나? 바람은 줄기차게 불어온다. 설마 오늘 하루 종일 이런 날씨가 계속되지는 않겠지? 5시34분, 이름도 요상한 햇댓등에 올랐다. 여기서 산행로는 왼쪽으로 거의 90도 정도 꺾였다. 내리막길이다. 시야가 트이면서 앞으로 가야 할 두타산과 청옥산이 잘 보인다. 길은 계속 내리막이다.

 

안부 비슷한 곳에 내려섰는데 왼쪽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 있다. 댓재에서 햇댓등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오는 길인 모양인데 추측건대 단체산행객들이 이 왼쪽 길을 이용한 것 같다. 걷다 보니 어느 특별한 봉우리가 아닌데도 삼각점이 있다. 대신 전망이 좋아 두타산이 잘 보이고 삼척시 쪽의 동해바다도 어렴풋이 보인다. 다시 내리막길. 산행객 3명을 앞질렀다. 단체산행객 중 뒤처진 사람들인 것 같다.


▲ 댓재 동쪽 하늘에 퍼지고 있는 붉은 빛 [05:14]

 

▲ 햇댓등으로 올라가는 길 이정표 [05:16]

 

▲ 햇댓등 표지판 [05:34]

 

▲ 햇댓등을 내려오다 바라본 두타산-청옥산 줄기 [05:38]

 

▲ 특별한 봉우리가 아닌 데 삼각점이 있다 [06:22]

 

▲ 두타산과 백두대간 능선 [06:22]

 

▲ 동해시와 삼척시 뒤로 보이는 동해바다 [06:22]


06:46   통골재에 내려서니 단체산행객 안내자가 뒤떨어진 회원들을 기다리며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단체산행은 저게 문제다. 한두 사람의 행동이 팀 전체 운행에 영향을 미친는 거 말이다. 통골재에서 두타산까지는 본격적인 오름길이다. 봉분 아랫부분을 돌로 쌓은 무덤이 있는 봉우리에 올랐다. 길 옆에 핀 노란 기린초가 예쁘다. 조금 올라가니 단체산행객이 단체로 쉬고 있다. 아침에 버스에서 내린 사림들인 모양이다. 그들을 통과해서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왼쪽으로 청옥산과 백두대간 능선이 잘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여기서는 두타산 정상이 지척이었다.


▲ 통골재에 있는 이정표 [06:46]

 

▲ 통골재에서 오르면 만나는 무덤 [07:19]

 

▲ 산행중에 만난 기린초 [07:20]

 

▲ 두타산 정상 바로 아래서 바라본 청옥산과 백두대간 능선 [07:40]


07:43   해발 1353m의 두타산 정상에 올랐다. 이렇게 높은 산에 이렇게 일찍 올라온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내 뒤를 이어서 단체산행객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이럴 때는? 얼른 사진 찍고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다. 특히 조용한 산행을 즐기고 싶을 때는 더욱 그렇다. 두타산 정상을 조금 벗어나니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등줄기와 청옥산에서 고적대,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장쾌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 그런데 그 거리가 만만치 않다. 두타산에서 박달령까지는 계속되는 내림길이었다.


▲ 해발 1353m의 두타산 정상의 모습 [07:43]

 

▲ 두타산 정상 표지석과 함께 [07:43]

 

▲ 두타산 정상을 내려오며 바라본 청옥산과 백두대간 능선 [07:46]

 

▲ 박달령으로 내려가며 바라본 청옥산 정상 [08:23]


08:31   박달령에 내려섰다. 이곳에서는 박달골을 거쳐 무릉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다. 박달령에서 청옥산까지는 약 1.4km의 오름길이다. 10분 정도 올라가니 제법 큰 바위도 보이고 돌길도 있다. 잠시 후 번천하산길이 갈라지는 문바위재에 도착했다. 오늘 구간에서 가장 높은 청옥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그나마 산행로 주변에 피어 있는 야생화가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새벽에 그렇게 불어대던 바람은 온데간데 없고 해가 쨍쨍하다. 오늘 꽤 더운 날씨다. 청옥산 정상에 오르기 바로 직전에 학등을 경유해서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 박달령에 있는 이정표 [08:31]

 

▲ 돌길 [08:42]

 

▲ 문바위재 이정표 [08:45]

 

▲ 야생화가 피어 있는 산행로 [09:13]

 

▲ 학등갈림길 이정표 [09:17]


09:19   해발 1404m의 청옥산 정상에 오르니 남자 넷과 여자 한 명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4시 10분에 댓재를 떠났다는 그들은 내 산행 속도가 빠르다고 말해준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청옥산 정상을 떠나면 내리막길이다. 연칠성령까지는 1.3km. 25분 만에 도착한 연칠성령에는 돌탑과 이정표가 있는 꽤 넓은 평지다. 연칠성령은 청옥산과 북서로 연결되는 산줄기로서 하장면과 동해시의 경계를 이룬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무릉계곡에 이르게 된다.

 

연칠성령에서 고적대를 향해 조금 오르면 '서울쪽에 계신 임금을 바라 보았다'고 하여 붙여진 망군대다. 고적대 방향으로 나아가자 바윗길도 있고 암벽도 눈에 들어온다. 이 구간은 동고서저 현상이 뚜렷힌 지역으로 동쪽은 급경사 사면이고 서쪽은 사면의 경사가 완만하다. 고적대 정상 바로 직전에 암봉이 하나 있는데 사방으로 전망이 틔었다. 지나온 두타산-청옥산 능선이 잘 보이고 앞으로 가야 할 갈미봉 쪽 능선도 잘 보인다. 동해시 뒤쪽의 동해바다는 이내가 끼어 있어 흐릿하다.


▲ 청옥산 정상에서 [09:19]

 

▲ 돌탑이 있는 연칠성령 정상 [09:44]

 

▲ 멀리 보이는 동해시와 동해바다 [10:02]

 

▲ 암릉길 [10:07]

 

▲ 고적대를 오르다 바라본 암벽 [10:14]

 

▲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두타산과 청옥산 [10:21]

 

▲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동해시와 동해바다 [10:21]

 

▲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갈미봉 방면 백두대간 능선[10:21]


10:23   해발 1353m의 고적대에 올랐다. 정상표지석이 있고 삼각점도 있다. 고적대에서 갈미봉으로 가는 능선은 아름다운 암벽이 종종 모습을 보여주는 기복이 그리 심하지 않은 길이었다. 능선 동쪽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급경사이기 때문에 운행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곳이었다. 고적대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에 벤취가 하나 있는데 그 아래 보이는 암벽이 빼어난 美를 자랑하고 있었다. 10시 50분, 고적대 삼거리(사원터 삼거리)를 지났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통해 무릉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다. 갈미봉에 오르기 직전 뒤를 돌아보니, 두타산에서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웅장하게 뻗어 있다. 장관이다.


▲ 해발 1353m의 고적대에서 [10:24]

 

▲ 고적대를 내려오다 바라본 암벽과 갈미봉 [10:36]

 

▲ 산행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 벤취 [10:39]

 

▲ 벤취가 있는 곳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암릉 [10:39]

 

▲ 사원터 삼거리(고적대 삼거리) 이정표 [10:50]

 

▲ 갈미봉 오르는 길에 만난 암릉 [11:12]

 

▲ 두타산에서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11:17]

 

▲ 청옥산에서 뻗어내린 능선과 암벽 [11:18]


11:24   해발 1260m의 갈미봉 정상에는 별다른 특징은 없고 표지판이 하나 서 있을 뿐이다. 이제 이기령으로 내려가는 하는데 거리가 6.6km다. 50분 정도 걸어 내려가니 왼쪽에 물이 흐르는 샘터가 있다. 아직도 물이 충분히 남아 있으니 물을 다시 담을 필요는 없고, 샘터 옆에 있는 벤취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샘터에서 20분 정도 걸었는데 평지가 나타났다.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면 습지인데 가운데에 돌을 깔아 길을 내놓았다. 산림청에서 신경을 쓴 모양이다.

 

아름다운 적송들이 쭉쭉 뻗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물에 따라 혼자 있는 것보다 여럿 있는 것이 보기에 좋을 때가 많다. 소나무도 예외는 아니다. 온갖 풍상을 겪은 바위 틈에 뿌리를 박고 고고하게 자신의 위치를 자랑하는 낙락장송도 나름대로 멋이 있지만, 적당히 붉은 껍질을 두른 채 일직선으로 무리지어 서 있는 소나무들도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 해발 1260m의 갈미봉 정상 [11:26]

 

▲ 갈미봉에서 이기령으로 가던 길에 만난 샘 [12:14]

 

▲ 샘터 옆에 있는 벤취에 앉아 [12:15]

 

▲ 습지를 가로지르는 돌길[12:36]

 

▲ 이기령으로 내려가는 길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 [12:51]


12:54   이기령에 내려섰다. 왼쪽으로 임도가 지나가고 있는데 원방재를 거쳐 42번 국도와 연결되기 때문에, 단체 산행객들 중에는 댓재에서 이기령까지를 한 구간으로 삼고 산행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기령에서 백봉령까지는 자그만치 10k의 거리이다. 5시에 백봉령에 도착하려면 10km를 4시간에 주파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물론 산행 초기에는 그리 힘든 거리가 아니지만 이미 8시간을 걸은 지금은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닌가. 어쨌든 가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한 발 한 발 걷다보면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위에서 부부 산행객이 내려온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났다. 인사를 하고 지나치려는데 나를 붙잡는다. 저, 말씀 좀 묻겠는데요. 그 부부는 백봉령에서 삽당령으로 간다는 것이 그만 길을 반대 방향으로 잘못 들어 이쪽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면서 삼척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묻는다. 글쎄요, 이기령에서 택시를 부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내가 지도를 꺼내 보여주며 말을 했더니 갈미봉과 고적대 사이에는 사원터 삼거리에서 무릉계곡 쪽으로 내려가겠단다. 그러면서 지도를 줄 수 없느냐고 한다. 그러세요. 발걸음을 돌리는 남자의 입에서 '휴, 살았다'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백두대간을 하는 사람들이 어째 지도도 없고 길을 반대방향으로 잘못 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닌 채 다시 상월산을 향했다. 이기령에서 25분 정도 걸어 도착한 상월산 정상은 헬기장이었고 이정표가 하나 서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잠자리가 많은 거야? 정상 부근은 잠자리 세상이었다. 이제 원방재로 내려가야 한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걷다 무명봉에서 다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안부에 도달한 다음 작은 봉우리를 두어 개 넘어 원방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먼 길이다.


▲ 이기령에 있는 이정표 [12:54]

 

▲ 이기령 왼쪽을 지나가는 임도 [12:54]

 

▲ 해발 970m의 상월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13:20]

 

▲ 상월산 정상에 있는 헬기장 [13:21]

 

▲ 무명봉에서 바라본 맞은편 능선 [13:38]


14:15   원방재에 내려섰다. 왼쪽으로는 이기령에서 이어지는 임도와 접해 있고 오른쪽은 사골을 거쳐 동해시 삼흥동으로 내려갈 수 있다. 임도 쪽으로 150m를 가면 야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서도 백봉령까지는 7km 거리다. 앞으로 거대한 봉우리가 보이는데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백봉령에 닿을지 모르겠다. 지도상에는 두세 개가 표시되어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첫 번째 봉우리를 오른다. 경사가 급하지는 않지만 힘이 든다. 이미 9시간을 걸었으니 힘이 빠질 만도 하다. 지난 번 지리산 종주할 때 장터목에서 천왕봉을 올라간 생각이 난다. 그 때도 꽤 힘들었는데. 별 수 있나, 천천히 발걸음을 떼는 수밖에. 첫 번째 봉우리를 통과했다. 내리막길에 이어 다시 두 번째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이 시작되었다. 역시 힘들게 오르니 봉우리 꼭대기에 커다란 소나무가 두 그루 있다. 다시 내림길에 이어 오름길이 시작되었다. 똑 같은 패턴의 길이 세 번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3시 21분에 오른 세 번째 봉우리는 헬기장이었는데 이정표에 백봉령까지 5.0km가 남았다고 적혀 있다. 봉우리를 세 개나 올랐는데 고작 2km 밖에 걷지 않았다는 말인가. 에구, 또 걷자, 누가 업어다 줄 것도 아니고. 오르는 길 주위를 둘러보니 소나무 아래 다른 식물은 없고 온통 산죽이다. 4시에 봉우리에 또 올랐다. 이정표가 있고 삼각점도 있다, 백봉령 3.5km. 4시 19분에 또 봉우리를 올랐다, 백봉령 2.4km. 또 있으려나? 또 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4시 43분에 오른 봉우리에는 '백봉령 1.3km'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도 다시 봉우리를 하나 넘어 철탑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아까부터 오른쪽으로 휘감아돈 42번 국도가 바로 아래로 보인다. 자동차 소리도 또렷하게 들린다. 백봉령이 바로 아래다. 그런데 내일 산행을 어떻게 하나? 날은 잔뜩 흐려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200m 이상의 폭우가 예상된다는 데...... 그래, 다음에 하자.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무리해서 산행을 할 필요는 없지. 다음에 와서 백봉령에서 대관령까지 두 구간을 하자. 오늘 많이 걸었지 않은가.


▲ 원방재에 있는 표지판 [14:15]

 

▲ 노랗게 무리지어 피어 있는 바위채송화 [14:27]

 

▲ 두 번째 봉우리에 있는 왕소나무들 [14:53]

 

▲ 세 번째 봉우리에 있는 헬기장 [15:21]

 

▲ 산죽과 소나무로만 이루어진 숲 [15:37]

 

▲ 미역줄나무와 참나무로만 이루어진 숲 [15:57]

 

▲ 백봉령 3.5km 전 봉우리에 있는 삼각점 [16:01]

 

▲ 백봉령에 내려서기 전에 만난 철탑 [17:03]


17:07   42번 국도가 지나가는 해발 780m의 백봉령에 내려섰다. 백봉령은 또한 강릉과 정선의 경계이기도 하다. 원래 이름은 백복령(白茯嶺)이었으나 지금은 '흰 봉황'을 뜻하는 白鳳嶺으로 부르고 있다. 주차장에 단체산행객의 차가 세워져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버스는 없고 승용차만 두 대 세워져 있다. 아마 단체산행객들은 오늘의 목적지가 이곳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버스를 기다려, 아니면 택시를 불러?

 

길을 건너 강릉 방면으로 조금 내려가니 음료수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매점이 하나 있다. 주방의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는데 보기 드문 미인이다. 그런데 남편도 그에 못지 읺게 미남이다. 개량 한복을 입은 두 부부에게서는, 오지 고개에서 음식을 만들며 물건을 팔고 있을 망정, 고고한 분위기가 배어나고 있었다. 이온 음료를 하나 사서 마신 다음에 버스 시간을 물었더니 40분에 있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내일 산행을 하지 않을 거라면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상책인데 버스로 가다가는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다. 임계에서 다시 버스나 택시를 타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택시를 부르면 댓재까지 얼마나 받나요? 우리 아저씨도 운전하는데요. 여보, 5만원이지요? 이것저것 생각할 게 없었다. 지금 갈 수 있나요? 예.

 

백봉령에서 임계를 거쳐 다시 하장 쪽으로 달린 다음 댓재로 가는 길은 거리가 60km 정도 되었으며 시간도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도로 양쪽의 평지밭이나 비탈밭이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밭에 고랭지 배추가 심겨져 있는데, 아주 작은 모종에서부터 제법 큰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배추들이 자라고 있었다. 고랭지 배추는 태백 지역의 주산물로 지역 주민들의 소득원으로 윗 순위를 자리잡고 있는 실정이다. 


▲ 백봉령에 있는 정선 표지석 [17:07]

 

▲ 백봉령의 백두대간 날머리 [17:08]


18:05   댓재에 도착했다. 백봉령 매점 주인은 명함을 주며 나중에 차가 필요하면 연락을 하라는 말을 남기고 차를 몰고 떠나갔다. 서서히 날이 저물어가는 댓재는 오늘 새벽의 활기는 찾아볼 수 없고 두 대의 차만 있을 뿐 적막강산이었다. 13시간 만에 다시 돌아온 댓재를 떠났다.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었다. 삼수령(피재)이 가까워지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날씨가 일기예보대로 맞아들어가는 모양이다. 태백을 지나 영월을 지나 제천에 이르자 빗줄기가 점점 강해졌다. 내일 산행을 포기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졸리다. 올 때도 많이 졸렸는데 갈 때도 졸리다. 졸려도 참아야 한다. 인내심의 싸움이다. 비오는 날에는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거의 소용이 없다. 게다가 오른쪽 등만 불이 들어오니 운전하기가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하도 앞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더니 눈이 다 뻑뻑하다. 어쨌든 4시간에 걸쳐 쉬지 않고 달린 결과 10시 쯤에 무사히 청주에 도착했다. 한밤중 1시에 청주를 떠나 다시 밤 10시에 청주에 도착했으니 21시간 만에 돌아온 셈이다. 그 중에서 자동차 운전이 왕복 8시간, 산행시간이 12시간이다. 나는 과연 정상적인 인간인가?


▲ 달랑 차 두 대만 세워져 있는 댓재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