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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백두대간

2008.08.15. [백두대간記 24] 죽령→고치령

by 사천거사 2008. 8. 15.

백두대간 제24구간 종주기

◈ 일시: 2008년 8월 15일 금요일 

◈ 구간: 죽령 → 제2연화봉 → 연화봉 → 제1연화봉  → 비로봉 → 국망봉 → 마당치 → 고치령  

◈ 거리: 25.7km(산행 거리)+5km(탈출 거리) 

◈ 시간: 8시간 55분(산행 시간)+1시간(탈출 시간)



04:05  청주 출발. 3시에 휴대전화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전화가 진동으로 되어 있는 바람에 깨어보니 3시 30분이다. 시간적으로 늦은 감이 있어 그냥 잘까 잠시 고민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자, 가야 한다. 부랴부랴 준비를 한 다음 아침은 거른 채 걱정어린 아내의 눈길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좀 늦더라도 어떻게 되겠지. 대한민국에서 안 되는 것이 어딨어.

 

죽령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충주에서 수안보 쪽으로 가다 36번 국도로 들어서서 단성을 지나 5번 국도에 접속하면 가장 빠를 것 같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차는 달린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참아 주려나. 충주에서 수안보로 가는 우회도로가 자동차 전용도로라서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덕산과 수산을 지나 장회나루에 이르니 말목산 능선 위로 새벽 운무가 피어 오르고 있다.

 

05:40  장회나루 지나 언덕길을 올라 왼쪽에 차를 세웠다. 이 멋진 그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말목산에서 구담봉 쪽으로 뻗은 능선 위로 운무가 모였다 흩어졌다 한다. 멀리 구담봉 위에서도 운무가 흩어지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모습,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고 있었다. 잠시 구경을 한 뒤 아쉬움을 남긴 채 차에 올라 출발, 단성을 지나 5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죽령으로 향했다.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는 말목산 능선

 

▲ 옅은 운무가 덮여 있는 장회나루: 말목산 능선과 구담봉이 보인다


06:05  옅은 운무에 싸여 있는 죽령에 도착. 적막하다. 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운 다음 곧바로 산행 시작. 죽령 특산물 판매장 왼쪽으로 산행로가 나 있었다. 말이 산행로이지 시멘트 포장도로인데 중계소가 있는 제2연화봉과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까지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져 있었다. 예전 20대 시절에 소백산에 올랐다가 이 시멘트도로를 따라 죽령으로 하산을 한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참 지루한 길이었는데 오늘은 그 길을 올라가고 있다.

 

새벽 공기가 시원하다. 사람은? 없다. 소백산을 오르는 코스는 다섯 군데가 있는데, 원래 이 죽령 코스는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나 이용하지 소백산만 오르는 사람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 대개 희방사나 천동리, 삼가리, 어의곡리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계속되는 시멘트 도로라 산행 재미가 없기는 하지만 대신 경사가 완만하다. 6시 43분, 완전히 운무 속에 들어갔다. 바람이 불면 나무에 맺힌 물방울들이 빗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진다. 길가에 핀 노란 달맞이꽃이 아름답다. 산토끼 한 마리가 숲에서 나오더니 도로 위에서 나를 쳐다본다. 그 놈 참.


▲ 충북 쪽 죽령휴게소에 있는 표지석

 

▲ 죽령 특산물 판매장 왼쪽으로 산행로가 시작된다

 

▲ 운무가 깔려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 [06:28]

 

▲ 정자가 있는 오두막쉼터 [06:39] 

 

▲  산토끼 한 마리가 산행을 축하해주고 있다 [06:44] 


07:21  제2연화봉 송신소로 올라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 있다. 운무가 짙어지면서 가시거리가 점점 짧아졌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비포장 넓은 길로 바뀌더니 다시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연화봉 아래에 있는 천문대까지는 계속 이런 길이 이어질 것이다.


▲ 송신소가 있는 제2연화봉에서

 

▲ 연화봉으로 가는 포장도로 [07:46]


07:53  소백산 천문대가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운무에 싸인 천문대 건물이 그로테스크하게 보인다. 7시 57분, 천문대 옆 언덕에서 아침을 먹었다. 메뉴는 김밥과 달걀. 어, 그런데 해가 나기 시작한다. 날이 개려나? 운무가 벗어지면서 천문대 건물이 뚜렷하게 보이고 그 뒤로 제2연화봉에 있는 송신탑도 잘 보였다.


소백산천문대

 

소백산천문대는 천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인에게 시설을 개방하고 있다.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견학이 가능하며, 단체객의 경우 예약하면 시간 배정을 받을 수 있다. 천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아마추어 천문동호회 회원 등에 대해서는 하루 15명에 한해 야간 체류도 가능하다. 야간 체류를 하기 위해서는 2주 전 공문을 보내 허가를 얻어야 한다. 1인 1박에 1만원. 한 끼 5,000원(043-422-1108).


▲ 소백산 천문대 표지석

 

▲ 소백산 천문대 건물 뒤로 제2연화봉에 있는 송신소가 보인다 [08:06]


08:12  연화봉 아래에 도착. 연화봉 정상은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야 하는데 그냥 왼쪽으로 난 비로봉 길로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길의 시작이다. 8시 48분, 제1연화봉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중간 쯤에 전망대에서 산행객 한 명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이다. 희방사 쪽에서 올라왔다는 그 사람은 국망봉까지 간다고 한다.


▲ 연화봉 아래 비로봉으로 가는 갈림길 

 

▲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는 소백산 계곡 [08:33] 

 

▲ 제1연화봉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길 보인다 [08:36]

 

▲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는 소백산 [08:42] 

 

▲ 제1연화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에서 [08:42] 

 

▲ 야생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 제1연화봉으로 오르는 길 [08:43] 

 

▲ 제2연화봉의 송신탑과 연화봉의 천문대 건물이 보인다 [08:44] 

 

▲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는 소백산 [08:44] 

 

▲ 제2연화봉에서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에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다 [08:49] 


08:52  해발 1394m의 제1연화봉를 지났다. 9시 17분, 짙은 운무 속에 갇혔다. 산 아래에서는 아마 이곳이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냥 구름에 싸여 있을 뿐. 9시 18분, 부부 산행객을 만났다. 비로봉으로 가는 길은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능선길이다. 비로봉으로 오르기 직전 주목관리소 건물이 왼쪽으로 보였다.


▲ 제1연화봉에 있는 이정표 

 

▲ 제1연화봉이 운무에 싸여 있다 [09:07] 

 

▲ 기도원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는 비로봉 가는 길 [09:09] 

 

▲ 소백산 비로봉 아래에 있는 주목관리소 건물이 흐릿하다 [09:32] 

 

▲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길 [09:33] 


09:41  소백산의 주봉인 해발 1439m의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 넓은 정상에는 경북에서 만든 거대한 표지석과 충북에서 만든 작은 표지석이 있었다.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많이 있기에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인천에서 왔고 천동리 쪽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어느 단체인지 참 잘하는 일이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일수록 자주 산을 접하게 해야 한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惡人이 없다지 않는가.

 

운무가 잔뜩 끼어 있어 정상에서의 조망은 없다. 초원 위에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 길을 따라 국망봉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길 양쪽 풀밭 위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10시 33분, 잘 참던 하늘에서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의를 꺼내 입었다. 지금까지 온 길과는 달리 오르내림이 약간 심한 길이 국망봉까지 이어졌다.


▲ 운무에 싸여 있는 해발 1439m의 비로봉에서

 

▲ 초원으로 되어 있는 소백산 주능선 [09:52]

 

▲ 산행로 왼쪽으로 비닐 움막이 한 채 있다 [10:16]

 

▲ 비가 내리고 있는 국망봉 오르는 길 [10:56] 


11:02  암봉으로 되어 있는 해발 1421m의 국망봉을 지났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기념사진도 못 찍고 그냥 통과. 언제까지 비가 오려나. 국망봉에서는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어의곡리로 내려갈 수 있다. 소백산 줄기에서 가장 빼어난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 국망봉에서 상월봉까지의 구간이라는데 오늘은 날씨 때문에 그림이 엉망이다. 그저 산행로 양쪽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야생화로 만족할 따름이다.


▲ 비가 내리고 있는 국망봉 

 

▲ 국망봉에서 늦은맥이로 내려가는 길 [11:07] 

 

▲ 운무가 피어오르는 소백산 주능선 [11:09] 

 

▲ 상월봉이 운무에 싸여 있다 [11:13] 


11:38  늦은맥이 고개에 도착,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은 을전 마을로 가는 길로 내려가면 가곡면 어의곡리에 이르게 된다. 비가 그치더니 해가 비치기 시작한다. 일단 우의를 벗고 이정표 옆에 묶어 놓은 나무 위에 앉아 남은 김밥 한 줄을 먹었다. 11시 54분, 점심 먹고 출발. 늦은맥이 고개에서 조금 올라가면 1272봉인데 여기서 왼쪽 능선을 타면 신선봉과 민봉을 거쳐 구인사로 내려갈 수 있다. 1272봉에서 연화동 갈림길까지는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 늦은맥이에 있는 삼거리 이정표

 

▲ 늦은맥이 고개에서 마당치로 가는 잡목지대 [12:03]

 

▲ 헬리콥터 착륙장 [12:25]


12:45  연화동 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다. 오른쪽 3km만 내려가면 연화동에 이르게 되고 계속 나가면 좌석리 세거리에 닿게 된다. 마당치까지는 지루한 산길이다. 오르내림 경사는 별로 없는데 단조롭다. 1시 40분, 고치령 쪽에서 산행객이 올라오는데 나이로 보아 선생님 한 분과 고등학생들 다섯 명인 것 같다. 선생님도 그렇지만 학생들도 대단하다. 비를 맞아 젖은 등산복 밖으로 젊음의 열기가 넘치고 있었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힘든 운동이나 일을 하기 싫어하고 그저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기가 일쑤인데 정말 대견하다. 이런 산행 경험은 나중 자신들의 삶에 큰 보탬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 연화동 갈림길 이정표 

 

▲ 헬리콥터 착륙장 [12:49] 


13:48  마당치에 도착했다. 고치령까지 2.8km가 남았으니 잘 하면 3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적게 올 비가 아니다. 다시 비옷을 꺼내 입었다. 형제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1032m의 헬리콥터 착륙장으로 올라가는 길,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나무 밑도 소용이 없다. 서 있으나 걸어가나 비를 맞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벼락인데 계속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형제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이정표가 서 있다. 고치령까지는 1.9km.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졌다. 비가 잠깐 그치는 듯 하더니 다시 슬슬 내리기 시작한다. 고치령까지는 내리막이라 산행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 마당치에 있는 이정표

 

▲ 형제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있는 이정표 [14:22]

 

▲ 헬리콥터 착륙장 [14:32]

 

▲ 산 나무와 죽은 나무가 뒤섞여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14:45]


15:05  고치령에 내려섰다. 장승이 몇 개 서 있고 길 건너편에 신령각이 있다. 승용차도 한 대 서 있고. 신령각 추녀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생각을 했다. 택시를 불러야 하나? 지나가는 차를 잡아볼까? 좌석리 버스종점까지 걸어가볼까? 에라 모르겠다. 또 걸어보자. 추적거리는 비를 맞으며 비포장도로를 조금 걸어 내려가니 이런, 도로가 말끔하게 포장이 되어 있다. 버스 종점까지 비포장이라고 했는데, 옛날 산행기를 읽어서 그런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위에서 택시를 부르는 건데. 비옷을 입고 추적거리는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포장도로를 걷는 내 모습이 아름답다?

 

연화폭포(연화동)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를 보니 고치령에서 4km를 내려왔다. 택시가 한 대 올라오기에 세웠더니 고치령으로 사람을 태우러 가는 중이란다. 혹시 자리가 있으면 태워달라고 했더니 올라가봐야 안단다. 다시 1km 정도를 걸어 내려오니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 종점이 있는 좌석리 세거리 마을이었다. 座石이 있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마을이라 세거리하고 한단다.


▲ 비가 내리고 있는 고치령 

 

▲ 연화폭포 갈림길 이정표 [16:01]


16:05  좌석리 세거리 마을 버스 주차장에 도착했다. 일단 비는 그쳤다. 아까 고치령으로 올라간 택시를 기다리는데 영 소식이 없다. 버스가 6시 20분에 있으니 버스를 기다릴 수도 없고. 방법을 모색하다가 길 옆에 있는 집에 사람이 있기에 혹시 죽령까지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잠시 기다려보라고 한다. 어딘가로 연락을 하더니 택시를 불렀다고 한다. 동네분들과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기다렸더니 마침내 택시가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택시 기사는 소개한 분의 아들이었다. 그러면서 원래 고치령에서 죽령까지 4만원을 받는데 아버지가 말씀하셔서 35,000원만 받는다고 한다. 고맙다. 단산과 풍기를 거쳐 죽령으로 가는 길, 가는 비가 계속 내린다.


▲ 좌석리 세거리 마을 임산물 직판장 건물

 

▲ 좌석리 세거리 마을 하천에 수량이 많이 늘었다 [16:12]


17:52  죽령에 도착. 청주로 돌아오는 길, 가는 비가 내리고 있어 운행에 조금 지장이 있었지만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차량에 많지는 않았다. 7시50분에 청주 도착. 아침과 마찬가지로 죽령에서 청주로 돌아오는데에도 2시간 정도 걸렸다. 집에 전화를 해서 아내와 딸을 불러내어 김천가에서 순대전골로 소주를 마시며 오늘 하루 산행의 피로를 풀었다. 오늘은 백두대간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이 걸었다. 산행 거리와 탈출 거리를 합치니 30km가 넘는다. 그나마 소백산 구간의 길이 좋고 평탄해서 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또 어떤 어려움이 남아 있을까?


▲ 비가 내리고 있는 죽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