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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행/한국 100名山

2009.06.06. [한국 100名山 69] 전남 구례 지리산 종주

by 사천거사 2009. 6. 6.

지리산 종주 산행기

◈ 일시: 2009년 6월 6일 일요일 

◈ 장소: 지리산 1915m / 전남 구례

◈ 코스: 성삼재 → 삼도봉 → 명선봉 → 영신봉 → 천왕봉 → 유평리

◈ 거리: 40.4km

◈ 시간: 16시간 50분

◈ 회원: 레저토피아 안내 산행 


 


성삼재→천왕봉→유평리 세부 구간별 거리 (40.4km)

 

성삼재 →(4.7km)→ 노고단고개 →(2.8km)→ 피아골삼거리 →(0.4km)→ 임걸령 →(1.3km)→ 노루목 →(1.0km)→ 삼도봉 →(0.8km)→ 화개재 →(1.2km)→ 토끼봉 →(2.5km)→ 명선봉 →(0.5km)→ 연하천산장 →(0.7km)→ 삼각봉 →(1.4km)→ 형제봉 →(1.5km)→ 벽소령산장 →(2.4km)→ 덕평봉:선비샘 →(1.8km)→ 칠선봉 →(1.5km)→ 영신봉 →(0.6km)→ 세석산장 →(0.7km)→ 촛대봉 →(1.9km)→ 연하봉 →(0.8km)→ 장터목산장 →(0.6km)→ 제석봉 →(0.6km)→ 통천문 →(0.5km)→ 천왕봉 →(0.9km)→ 중봉 →(1.3km)→ 써리봉→ (1.8km)→ 치밭목대피소 →(1.1km)→ 무제치기폭포 →(0.7km)→ 새재-유평리갈림길 →(4.4km)→ 유평리


01:10  오늘은 레저토피아에서 안내하는 대망의 지리산 종주 산행을 떠나는 날이다. 40km가 넘는 지리산 산길을 과연 온전하게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지만, 나이가 더 들면 영원히 할 수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신청을 했다.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떠나 택시를 타니 운전기사가 지금 무슨 산에 가느냐고 묻는다. 지리산이요. 사직동 체육관 앞에 도착하니 벌써 몇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가 가까워지자 속속 모여드는 사람들, 여성들도 꽤 있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성삼재에서 대원사로 이어지는 A코스와 중산리에서 대원사로 이어지는 B코스가 있어 각자 자신의 능력에 맞는 코스를 택할 수 있다.

 

체육관 앞을 떠난 버스는 서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비룡분기점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한밤중인데도 아래로 내려가는 관광버스가 많다. 시간적으로 보아 대부분이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일 것이다. 사실 오뉴월이 지리산 종주 산행을 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게다가 오늘이 연휴 첫날이 아닌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리산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도대체 산이 어떤 마력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잠도 안 자고 먼 길을 달려가는 것일까. 잠을 자려고 애써 눈을 붙여 보지만 그냥 눈만 감고 있을 뿐 별 효력이 없다.

 

02:25  덕유산 휴게소에 들렀다. 어둠에 싸인 휴게소에는 우리 말고 다른 산행객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부지런한 사람들 참 많다. 휴게소를 떠난 버스는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장수나들목에서 국도로 나왔다. 19번 국도를 타고 아래로 내려오다 다시 남장수나들목에서 88올림픽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지리산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이어 60번 지방도와 861번 지방도를 타고 성삼재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굴곡이 심한 성삼재 오름길 도로에는 내려오는 관광버스가 연신 보였다. 모두 성삼재에 산행객들을 내려놓고 오는 버스들이었다.


▲ 대전-통영 고속도로 덕유산 휴게소


04:10  성삼재 도로에 차가 섰다. 주차장 및 도로변의 관광버스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헤드렌턴 불빛이 어지럽다. 아,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나는 아는 사람이 없어 버스에서 내려 혼자 산행에 나섰다. 긴 산행에서는 페이스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혼자 걷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4시 15분, 탐방안내센터를 지나는 것으로 드디어 지리산 종주 산행이 시작되었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길은 탄탄대로다. 널찍한 길에 사람들이 계속 올라온다. 헤드렌턴이 없어도 걸을만 하다. 곧 해가 뜨려는지 하늘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이름 모를 새소리도 들려온다. 어느 학교에서 수련회를 왔는지 아니면 수학여행을 왔는지 학생들이 많이 올라가는데 모두 힘들어 한다. 요즘 학생들 체격만 커졌지 체력이 약한 것이 문제다. 하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니 언제 운동할 시간이 있겠는가. 노고단 산장을 지나 노고단 고개로 오르는 길, 하늘에 제법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 성삼재 도로에 주차 [04:12]

 

▲ 성삼재 탐방지원센터 건물 [04:16]

 

▲ 노고단고개로 올라가는 계단길 [04:37]

 

▲ 노고단 산장 건물 [04:51]

 

▲ 노고단 고개로 올라가는 길 [04:55]


04:59  노고단 고개에 도착했다. 돌탑 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고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반야봉 쪽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이정표에 천왕봉까지 25.5km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다. 2007년 7월 말에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느라고 중산리에서 성삼재까지 걸었는데 이번에는 진행방향이 거꾸로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노고단 고개를 떠났다. 그 유명한 지리산 돌길이 시작되었다. 지리산이 육산인 것 같지만 사실 산행로는 거의 대부분이 돌길이다. 5시 33분 헬기장을 지났고 5시 41분에 헬기장을 또 지났다.  


▲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노고단 고개 [04:59]

 

▲ 노고단 고개에서 바라본 반야봉 [05:00]

 

▲ 반야봉 쪽 운해 [05:30]

 

▲ 노고단에서 이어지는 주능선 [05:30]

 

▲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반야봉 쪽 [05:33]

 

▲ 지리산의 운해와 능선 [05:41]


05:50  피아골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피아골삼거리를 지났다. 5시 58분 임걸령에 도착, 사람들이 많다. 임걸령에서 노루목까지는 30분이 약간 더 걸렸는데 노루목에서는 반야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왼쪽으로 갈라지고 있다. 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올라가보겠는데 오늘은 그런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그냥 통과. 큼지막한 돌이 깔린 돌길이 계속 이어졌다. 삼도봉 가까이서 뒤를 돌아보니 반야봉이 우뚝하다.


▲ 피아골 삼거리 이정표 [05:50]

 

▲ 사람들이 많은 임걸령 [05:58]

 

▲ 반야봉 가는 길이 갈라지는 노루목 [06:32]

 

▲ 지리산 돌길 [06:39]

 

▲ 해발 1732m의 반야봉 모습 [06:46]


06:48  전남 구례, 경남 산청, 전북 남원의 경계점에 있는 해발 1550m의 삼도봉에 도착. 사진을 한 장 찍어볼려고 했더니 줄을 선 사람들이 많이 포기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가는 데에는 지리산에서 가장 긴 545 계단이 놓여 있다. 화개재는 지리산 능선에 있던 장터 중 하나로, 경남에서 연동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베와 산나물 들을 물물교환하던 장소였다. 7시 31분, 헬기장을 하나 지났다. 


▲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계에 있는 삼도봉 [06:48]

 

▲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가는 돌길 [06:50]

 

▲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가는 매우 긴 545 계단길 [06:55]

 

▲ 뱀사골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화개재의 모습 [07:04]

 

▲ 화개재에서 바라본 삼도봉 [07:05]

 

▲ 지리산 병꽃나무 [07:30]

 

▲ 비탈진 오름길 [07:36]

 

▲ 돌길을 올라가고 있는 산행객들 [08:12]


08:43  명선봉 아래에 있는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식수가 있는 곳이라 사람들이 꽤 많다. 아직 물에 여유가 있어 그냥 통과. 8시 55분, 음정 갈림길이 왼쪽으로 나 있다. 연하천 산장에서 삼각봉을 지나 형제봉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운무를 볼 수 있는 길이었다. 산이 커서 생기는 현상인가? 하늘은 파랗고 맑은데 골짜기마다 계속 운무가 피어오른다. 마치 대형 산불이 난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진행방향인 천왕봉 쪽으로 볼 때 능선 오른쪽에서 피어오르는 운무가 능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기한 자연현상이다.


▲ 연하천산장 건물 모습 [08:43]

 

▲ 연하천산장에서 [08:44]

 

▲ 운무가 피어오르는 지리산 골짜기 [08:58]

 

▲ 산불이 난 것 같네 [09:12]

 

▲ 주목과 암벽과 운무 [09:13]

 

▲ 하늘로 오르는 운무 [09:13]

 

▲ 지리산 고사목 [09:14]

 

▲ 골마다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다 [09:25]


09:27  거대한 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해발 1433m의 형제봉을 지났다. 10분 정도 내려와서 뒤를 돌아보니 암봉인 형제봉이 운무에 싸여 있다. 세석평전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촛대봉 주변도 운무가 감돌고 있다. 길은 계속 돌길이다. 경사가 급한 곳에는 밧줄이 매어져 있는 곳도 있다. 형제봉에서 30분 조금 더 걸었더니 벽소령산장이다.


▲ 형제봉에 있는 형제바위 [09:27]

 

▲ 운무가 피어오르는 형제봉 [09:37]

 

▲ 운무에 싸인 세석평전과 촛대봉 [09:41]

 

▲ 밧줄이 매어져 있는 암릉길 [09:47]

 

▲ 지리산 돌길 [09:56]


10:01  벽소령산장은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도 역시 사람이 많다. 하긴 오늘은 지리산 능선마다 사람이 들어차 있을 것이다. 벽소령산장을 뒤로 하고 세석산장을 향해서 출발. 조릿대가 길 양쪽에 도열해있다. 덕평봉에 있는 선비샘에서는 여전히 물이 잘 나오고 있는데 물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냥 통과했다. 세석산장에 가서 수통을 채울 요량이다.  


▲ 백두대간 종주할 때 하룻밤을 묵었던 벽소령산장 [10:01]

 

▲ 벽소령산장을 배경으로 [10:05]

 

▲ 조릿대 숲길 [10:36]

 

▲ 해발 1522m의 덕평봉 [10:37]

 

▲ 덕평봉에 있는 선비샘 [11:03]

 

▲ 비탈진 바윗길을 걷고 있는 산행객들 [11:26]


11:44  전망이 좋은 암봉에 올랐다. 칠선봉인가? 이정표는 없다. 전망이 좋아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잘 보였다. 세석산장으로 가는 길, 병꽃나무와 바위가 잘 어울리는 곳도 있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곳도 있다. 고사목과 바위가 적당하게 잘 어울린 암릉 뒤로 운무가 피어오른다. 자연의 조화가 신기한 것이, 모든 사물들이 있어야 할 데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나무와 풀, 바위, 구름, 운무 등이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을 보면 종종 경외감을 느낀다.


▲ 암봉에서 바라본 천왕복 쪽 지리산 주능선 [11:44]

 

▲ 병꽃나무와 바위 [12:03]

 

▲ 지리산 172 계단 길 [12:27]

 

▲ 운무와 암벽 [12:34]

 

▲ 고사목과 바위 [12:35]

 

▲ 촛대봉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12:37]

 

▲ 골짜기에 운무는 계속 피어오르고 [12:40]

 

▲ 세석산장 뒤로 보이는 촛대봉 [12:56]

 

▲ 촛대봉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12:56]


13:01  세석산장에 내려섰다. 영신봉 아래 세석평전을 바라보며 자리를 집은 세석산장은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스위스의 산장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세석평전에는 주목들이 많고 야생화가 핀 습지도 있다. 정비가 잘 된 널찍한 길을 올라가니 온통 바위로 되어 있는 촛대봉이다. 촛대봉에서는 연하봉과 제석봉이 잘 보였고 능선 오른쪽으로 운무가 하얗게 피어오르는 것도 보였다. 연하봉과 제석봉 사이에 장터목산장이 있을 텐데...... 


▲ 영신봉 아래에 있는 세석산장의 모습 [13:11]

 

▲ 세석산장에서 촛대봉으로 올라가는 길 [13:16]

 

▲ 세석평전의 주목군락지 [13:18]

 

▲ 세석산장 위 촛대봉의 모습 [13:36]

 

▲ 연하봉과 제석봉 능선을 넘지 못하는 운무 [13:37]

 

▲ 촛대봉의 모습 [13:57]

 

▲ 지리산의 고사목 [14:09]

 

▲ 연하봉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 산불이 난 것처럼 피어오르는 운무 [14:28]

 

▲ 연하봉을 오르다가 [14:38]

 

▲ 연하봉 정상부에 있는 아름다운 암봉 [14:40]


14:42  해발 1657m의 연하봉에 올랐다. 기기묘묘한 바위가 제법 널려 있다. 이제 정상까지는 장터목으로 내려갔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 남았다. 연하봉에서 장터목산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평원과 나무와 바위가 적당하게 섞여 있어 또 하나의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산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다른 나라의 산에 가 본 사람만이 안다. 적당한 높이에 계곡과 능선과 나무와 바위가 잘 어울인 우리나라의 산은 어는 곳을 가드라도 절경이다.


▲ 연하봉에 있는 거대한 바위 [14:42]

 

▲ 연하봉 정상의 기묘한 바위들 [14:43]

 

▲ 연하봉에서 장터목산장으로 가는 길 [14:45]

 

▲ 연하봉에서 내려오는 길 [14:48]

 

▲ 운무가 퍼지고 있는 장터목산장 [14:57]


15:00  장터목산장에 내려섰다. 여기도 사람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장터목은 해발 1,750m로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사천주민과 북쪽의 마천주민 등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장터가 섰던 곳이다. 또한 이곳은 백무동과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이 연결되기도 한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1.7km 정도 되는데 거의 돌계단길로 되어 있다. 제석봉으로 힘들여 한 발 한 발 오르는데 수녀님들이 내려온다. 천왕봉을 다녀오시나 보다.

 

제석봉 부근은 고사목으로 유명하다. 운무가 깔리는 제석봉의 고사목들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제석봉을 지나 다시 500m 정도 올라가니 통천문이다. 마음이 착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다는 통천문을 지나 철계단을 올라서니 암릉 왼쪽으로 운무가 피어오르는 데 장관이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감히 어떻게 인간이 평할 수 있으랴. 자, 이제 천왕봉이 멀지 않았다.


▲ 장터목 산장에 있는 이정표 [15:01]

 

▲ 제석봉에서 내려오고 있는 수녀님들 [15:05]

 

▲ 제석봉으로 올라가는 돌계단길 [15:07]

 

▲ 제석봉 아래의 고사목 지대 [15:14]

 

▲ 제석봉 아래의 고사목들 [15:15]

 

▲ 운무가 깔린 고사목 지대 [15:16]

 

▲ 천왕봉 아래에 있는 통천문 [15:49]

 

▲ 능선을 넘지 못해 피어오르고 있는 지리산 운무 [15:54]

 

▲ 암봉으로 되어 있는 지리산 천왕봉 [16:10]


16:12  마침내 해발 1915m의 천왕봉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북한을 제외하고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곳이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 정상 기념사진을 바로 찍을 수 있었다. 오른쪽으로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이 내려다보인다. 암봉을 내려와 중봉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자그만치 10.2km가 남았다.

 

가파른 내리막에 이어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장터목에서 천왕봉을 오를 때 무척 힘이 들었는데 중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더 힘이 든다. 거의 10m 정도 오르고 쉬어야 할 정도다. 길 옆 마알간 철쭉꽃이 눈에 들어온다. 뒤를 돌아보니 천왕봉 쪽으로 운무가 환상적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자연은 기가 막힌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는데 기력이 다한 인간은 그것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다.


▲ 해발 1915m의 지리산 천왕봉에서 [16:13]

 

▲ 천왕봉에서 내려다본 중산리 하산길 [16:14]

 

▲ 중봉으로 가는 길에 만난 주목과 철쭉 [16:23]

 

▲ 중봉으로 가는 도중 뒤돌아본 천왕봉 [16:48]

 

▲ 능선을 넘지 못하는 천왕봉 쪽 운무 [16:50]


16:56  천왕봉에서 900m 거리에 있는 해발 1874m의 중봉에 올랐다. 중봉에서 하봉으로 내려가는 길은 폐쇄가 되었고 써리봉을 거쳐 치밭목대피소를 내려가는 길이 나 있었다. 중봉에서 써리봉으로 가는 길도 무척 힘이 들었다. 체력이 거의 고갈되었나 보다. 1.3km를 내려가는데 45분이 걸렸다. 슬슬 걱정이 되었다. 이런 상태로 8km를 어떻게 내려간다지? 써리봉에서 치밭목대피소로 내려가는 도중 우리 팀 일행을 한 명 만났다. 힘이 들 때는 혼자보다 둘이 있는 것이 낫다. 결국 그 일행과 유평리까지 동행을 하게 되었다.


▲ 해발 1874m의 중봉 이정표 [16:56]

 

▲ 바위틈으로 파고 들어간 나무줄기 [16:58]

 

 ▲ 해발 1602m의 써리봉 이정표 [17:41]


18:26  치밭목대피소에 내려서니 단체 산행객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여기서 유평리까지는 6.2km, 길만 좋으면 2시간이면 충분한 하산 거리다. 일단 식수를 보충한 후 대피소 아래 계단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대피소에서 한 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일단 멎었다. 6시 56분에 무제치기 폭포 갈림길을 지났다. 1.1km를 내려오는데 20분이 넘게 걸렸다. 폭포를 구경하고 싶기는 한데 지금 그런 한가한 꽃놀이를 할 때가 아니었다. 7시 13분, 새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도착하니 앞서 간 일행 두 명이 쉬고 있었다. 희안한 일은 치밭목대피소부터 내려오는 길을 걷는 다리가 그다지 아프지 않고 잘 버텨준다는 점이었다.

 

소강상태를 보이던 빗줄기가 조금씩 세지기 시작했다. 일단 배낭 커버를 씌웠다. 일행 두 명은 부리나케 달려나가고 나와 동료 한 명이 한 팀이 되어 걷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일회용 비옷을 가져온 것이 기억나서 배낭을 뒤졌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자. 비에 옷은 젖어 들었지만 부지런히 걷는 덕택에 춥지는 않았다. 문제는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물에 젖은 돌이 미끄럽다는 것이었다. 8시 가까이 되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고 하는 수 없이 헤드렌턴을 켰다.

 

그런데 새재 갈림길에서 유평리까지의 4.4km는 왜 이렇게 긴 거야?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사방을 살펴 볼 수 없으니 더 답답하다. 길은 계속 돌길이다. 정말 만만찮은 하산길이었다. 다른 일행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 뒤에 몇 명이나 있는 걸까? 오늘 중으로 집에 가기는 틀린 것 같다. 머리 속에 온갖 생각을 떠올리며 부지런히 발을 옮겼더니 어, 유평상회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불빛도 보인다. 어허, 비도 그쳤네.


▲ 치밭목 대피소 건물 [18:26]

 

▲ 새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이정표 [19:13]


21:05  마침내 유평리에 도착했다. 거의 17시간이 걸린 대장정이 끝이 났다. 일단 젖은 옷을 갈아입고 버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사분에게 전화를 했더니 택시를 보냈으니 도로에 내려가서 타고 오란다. 20여분 기다려 택시를 타고 대원사 주차장에 도착, 배낭을 차에 싣고 주차장 바닥에 앉아 우선 시원한 맥주부터 두 잔을 거푸 마셨다. 속이 짜릿하다. 이어서 소주 몇 잔을 마셨는데 피곤함 때문인지 금방 취해 언제 어떻게 차에 탔는지 몇 시에 차가 출발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청주 사직동 가까이서 잠을 깼다. 버스 앞에 있는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적으로 보아 후미가 12시 가까이 되어서 내려온 것 같다.

 

이번 지리산 종주는 몇 가지 점에서 나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산행이었다. 첫째, 산행 거리다. 당일 산행으로 40km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오르내림이 꽤 있는 지리산의 40km다. 둘째, 16시간 연속 산행 시간도 나로서는 기록이다. 셋째, 천왕봉, 중봉, 써리봉을 오를 때의 탈진상태가 치밭목대피소를 지나면서 회복이 되었다는 것이고, 넷째, 그렇게 긴 산행을 하고서도 무릎이나 종아리, 허벅지에 통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뭏든 이번 지리산 종주를 무사히 마치게 된 데 대해서 나를 지켜준 하느님과 보살펴 준 아내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