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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행/한국 100名山

2009.04.19. [한국 100名山 66] 서울 강북 북한산

by 사천거사 2009. 4. 19.

북한산 산행기   

◈ 일시: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 장소: 북한산 836.5m / 서울 강북

코스: 우이동 → 하루재 →  위문 → 백운대 → 대동문 → 진달래능선 → 우이동

◈ 시간: 4시간 31분


 

 


06:27  오늘은 북한산 가는 날. 레저토피아의 도봉산 암릉산행이 무산되고 해맑은 산꾼의 북한산 안내산행도 취소가 되어 부득이 혼자 북한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집을 나서 시내버스 정류장에 갔더니 바로 고속버스터미널에 가는 버스가 왔다. 한적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 7시 10분 강남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청주-서울 고속버스 요금이 내려 일반 6,000원, 우등 6,500원이다. 세상에 버스요금이 내리는 경우도 다 있네. 탑승객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네 명. 일요일 아침 시간 버스라서 그런 모양이다. 아침부터 날씨가 덥다.

 

08:30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 바로 옆에 있는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다. 우이동에서 가장 가까운 수유역으로 가려면 지하철 3호선으로 충무로까지 간 다음 4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8시 46분, 지하철에 오르자 나처럼 배낭을 맨 사람들이 보인다. 북한산에 가는 사람들인가? 수유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지상으로 올라왔다. 수유역 부근은 온통 산행객 천지였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남녀노소 산행객들이 우이동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9시 45분에 조금 우회를 해서 우이동으로 가는 1165번 버스에 승차했다. 처음 이용해본 버스중앙차선제는 나에게 조금 생소했다.

 

10:08   우이동 도선사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도 산행객 천지다. 서울에 사람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 멀리 인수봉과 오늘 올라갈 백운대 암봉이 보인다.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다. 그런데 산행로 입구가 어디지? 촌놈이 서울에 올라왔으니 헷갈릴 만도 하지. 대충 지도를 보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갔더니 어, 이게 뭐야, 도봉산으로 가는 길이네. 다시 돌아나와 지도를 살펴본 다음 일단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갔다.


▲ 우이동에서 바라본 인수봉과 백운대 [10:08]

 

▲ 잘못 들어선 도봉산으로 가는 길 [10:13]

 

▲ 도봉산 등산로 입구 [10:15]


10:18   계곡 왼쪽으로 길이 나 있기에 걸어 올랐다. 입구에는 사람들이 엄청 모여 있는데 올라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이 길이 맞나? 오른쪽 계곡은 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이윽고 길은 포장도로와 만났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차량이 다니는 포장도로 오른쪽으로 많은 산행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걸어 올라가고 있다. 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도로 건너편 왼쪽으로 이정표가 있는데 진달래능선을 따라 대동문으로 올라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내가 나중에 내려올 길이구나. 삼각산도선사 표지석을 지나자 바로 오른쪽에 갈림길이 있다.


▲ 북한산 산행을 하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 [10:18]

 

▲ 계곡 왼쪽으로 나 있는 산행로 [10:23]

 

▲ 끝없이 이어진 산행객들 [10:27]

 

▲ 진달래능선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 [10:30]

 

▲ 북한산 국립공원 표지석 [10:31]

 

▲ 삼각산 도선사 표지석 [10:33]


10:34   갈림길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가면 도선사 광장이 나온다. 오른쪽 가파른 계단을 올랐더니 문을 닫은 백운대2공원지킴터 건물이 있고 바로 옆에 백운대와 하루재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었다. 이제 제대로 가야할 길에 들어섰나 보다. 능선을 따라 길이 잘 나 있다. 그런데 벌써 철쭉이 피었네. 길 양쪽으로 마알간 연분홍 철쭉꽃이 4월의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사진 한 장 찍고 갈까?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이 능선에는 사람들이 없다. 내 앞으로 두 명이 걸어간다. 앞에 가는 사람은 아버지고 그 뒤를 열 살 정도가 된 아들이 따라간다. 아들이 어떻게 걸어오는지 상관없이 아버지는 계속 앞서 걷는다. 걸음이 느린 아들은 죽어라고 따라간다. 독한 아버지다. 아니 장한 아버지다. 아이는 저렇게 키워야 한다. 강하게 키워야 한다. 아이를 강하게 키우는 데는 산이 제격이요 안성마춤이다.


▲ 도선사광장과 하루재로 가는 능선길이 갈라지는 곳 [10:34]

 

▲ 벌써 철쭉이 피었네 [10:38]

 

▲ 철쭉이 아름다워서 [10:39]

 

▲ 사람이 별로 없는 호젓한 산행로 [10:41]

 

▲ 아버지와 아들 [10:45]


10:50   길 옆 둔덕에 작은 공터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시장기가 있어 사과 반쪽과 치즈 한 조각을 먹었다. 옆에서 철쭉꽃이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활짝 꽃을 피운 산벚나무도 한창 봄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출발, 경사가 심하지 않은 산행로가 계속 이어졌다. 왼쪽 아래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내려다보니 잎이 덜 난 나뭇가지 사이로 관광버스가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도선사주차장인 모양이다. 차가 저기까지 올라오는구나.


▲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 [10:59]

 

▲ 산벚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11:04]

 

▲ 신록 뒤로 솟아 있는 인수봉 암장 [11:11]


11:13   도선사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났다. 안내산행을 따라왔다면 나도 저 길로 올라왔을 것이다. 삼거리에서 하루재까지는 돌계단 길이 계속 이어졌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올라온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어린아이도 있고, 청년도 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있다. 힘이 드는지 길 옆에서 숨을 고르는 사람들도 많다.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사람들은 지금 이 힘든 고개를 오르고 있는가?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요, 가져올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좋아서 오른다고 하면 지나친 철학의 표현일까?


▲ 도선사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 [11:13]

 

▲ 하루재까지 이어지는 너덜길 [11:20]

 

▲ 하루재로 올라오고 있는 산행객들 [11:23]

 

▲ 하루재가 눈 앞이다 [11:23]


11:24   하루재에 올랐다. 영봉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고 백운대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왼쪽 길을 따라 돌아 내려가니 와, 제대로 핀 진달래꽃 사이로 거대한 인수봉이 정면으로 보이는데 장관이다. 우리나라 암벽등반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인수봉 암벽에는 등반객들이 점점이 붙어 있었다. 인수봉 아래에 있는 작은 암자인 인수암까지는 내리막길이다. 인수암 주변은 인수봉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야영을 할 수 있게 터를 마련해놓았다. 인수암에서 백운산장으로 오르는 길도 돌계단과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파르고 힘든 길을 사람들은 잘도 오른다. 


▲ 영봉으로 가는 길과 백운대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하루재 [11:24]

 

▲ 진달래꽃 뒤로 솟아 있는 인수봉 [11:26]

 

▲ 인수암과 인수봉 [11:30]

 

▲ 암벽등반의 메카인 인수봉 [11:34]

 

▲ 노란 제비꽃과 하얀 제비꽃이 어울렸다 [11:37]

 

▲ 백운산장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길 [11:38]

 

▲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속 옆으로 나 있는 산행로 [11:44]


11:52   백운산장에 도착했다. '白雲의魂'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탑이 있고 산장 건물도 있다. 백운산장에서 위문으로 오르는 길도 계속 바윗길이었다. 백운산장에서 위문까지는 10분 정도가 걸렸다.


▲ 백운산장에 있는 '백운의혼' 탑 [11:52]

 

▲ 백운산장 현판 [11:53]

 

▲ 백운산장에서 위문으로 이어지는 돌길 [11:54]

 

▲ 위문으로 올라가고 있는 산행객들 [11:58]


12:02  북한산성 위문에 도착했다. 문화재청에서는 사적 제162호인 북한산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 백제 개로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고려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지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성내에는 중흥사를 비롯한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개의 창고가 있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여장은 허물어 졌고, 대서문과 장대지·우물터·건물터로 생각되는 방어시설 일부가 남아 있다.

 

위문에서 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거대한 백운대 암봉을 감아 돌아가며 길이 나 있는데 의지할 거라고는 바위에 박아 놓은 쇠난간 뿐이었다. 그나마 교차가 힘들 정도로 길이 좁아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올라가는 사람들이 뒤섞일 경우에는 보통 혼잡한 것이 아니다. 이럴 때는 조급하게 굴지말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그저 앞 사람을 따라서 한 발 한 발 오르면 된다. 이게 어디 서두른다고 될 일인가? 올라가면서 둘러보는 풍광도 좋다. 인수봉과 만경대가 코 앞에 있고, '불수도북' 능선을 이루는 사패산, 수락산, 도봉산도 아련히 보인다. 하여튼 어찌어찌하여 백운대 정상에 올랐다.


▲ 북한산성 위문에 있는 이정표 [12:02]

 

▲ 백운대를 오르면서 바라본 만경대 [12:09]

 

▲ 백운대를 오르면서 바라본 서울 시내 [12:10]

 

▲ 백운대에 오르기 위해 줄을 이은 산행객들 [12:12]

 

▲ 맞은 편 인수봉 정상에 있는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12:28]


12:30  백운대 정상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고 그 아래에 통일을 기원하는 비석이 하나 있었다. 전망이 좋아 사방이 잘 보이는데, 특히 바로 옆에 있는 인수봉에 오른 사람들도 보였다. 인수봉 뒤로 도봉산이 잘 보이고, 그 오른쪽으로 수락산과 불암산도 아련하게 보였다. 모두 다녀온 산이지만 여기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눈을 조금 돌리니 염초봉과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보이고, 만경대에서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암릉도 보인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이 북한산은 삼각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가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어 그렇게 불렀다는데 이름이 북한산으로 바뀐 것은 조선 후기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북한산의 이름을 삼각산으로 바꾸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는 삼각산을 명승 제10호로 지정하여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삼각산을 북한산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백운대 정상의 넓은 암반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백운대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르기도 어렵지만 내려가기도 만만치가 않다.


삼각산

 

삼각산(三角山)은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산봉으로서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萬鏡臺, 787.0m)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쥐라기 말의 대보화강암(흑운모 화강암 또는 화강섬록암)으로 되어 있으며, 형상을 달리한 화강암 돔(granite dome)으로 되어 있어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돔을 형성하는 산 사면의 경사는 대체로 70°이상에 달하고 있다. 백운대의 정상에는 약 500㎡의 평탄한 곳이 있어 많은 등반객 또는 관광객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만경대의 옛이름은 국망봉이라 호칭되었으며 정상부의 산세는 불규칙하다. 삼각산은 산세가 수려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니, 바로 이 삼각산을 말한다. 그리고 무학대사가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할 때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한 석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비석이 있어서 길을 다시 바꾸어 내려가 궁성터(오늘의 경복궁)를 정하였던 곳이 바로 이 삼각산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끌려가면서 남긴 김상헌의 싯귀에 있듯이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라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삼각산은 인수, 백운, 만경의 세 봉우리가 지니는 신비로운 자태와 영산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찾아 제사를 지내고 도를 닦고 성을 쌓으며 각축을 벌였던 민족사와 문화의 상징적 가치가 크다.


▲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본 인수봉 정상 [12:30]

 

▲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본 암릉 [12:31]

 

▲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본 인수봉과 도봉산 [12:31]

 

▲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본 염초봉과 원효봉 [12:32]

 

▲ 백운대 정상에서 바라본 만경대와 노적봉 [12:33]

 

▲ 백운대 정상에 있는 표지석 뒤에서 [12:35]

 

▲ 많은 산행객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백운대 정상 [12:36]

 

▲ 산행객이 줄을 이은 백운대 오름길 [12:44] 


12:51  위문을 통과했다. 왼쪽으로 만경대가 올려다보인다. 위문에서 5분 정도 걸어가자 앞이 확 트이면서 길 오른쪽에 조금 넓은 암반이 있다. 오른쪽으로 백운대 정상이 올려다보이고 정상에서 뻗어내린 염초봉과 원효봉도 잘 보였다. 전망이 좋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와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아내가 정성 들여 싸준 유부초밥을 먹으며 북한산의 봄기운을 원 없이 느꼈다. 점심을 먹은 다음 7분 정도 걸었더니 노적봉 아래에 있는 꽤 넓은 광장이 보였다.


▲ 북한산성 위문 [12:51]

 

▲ 노적봉으로 가던 중에 바라본 백운대 암봉 [12:56]

 

▲ 노적봉으로 가던 중 바라본 염초봉과 원효봉 [12:57]

 

▲ 북한산 노적봉의 모습 [13:13]


13:20  노적봉 아래 광장에 내려섰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노적봉 아래에서 10분 정도 걸었더니 용암문이다. 용암문은 도선사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진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산성주능선길로, 새로 축성한 성곽을 따라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었다. 종종 진달래가 나타나는 산성능선길은 걷기에 아주 좋았다. 장수가 산성을 지킬 때에 올라가서 지휘할 수 있도록 높게 만든 동장대에 도착하니 오른쪽으로 의상능선이 잘 보였다. 동장대에서 대동문까지는 7분 거리였다.


▲ 노적봉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산행객들 [13:20]

 

▲ 도선사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용암문 [13:30]

 

▲ 북한산성 탐방센터로 가는 길 이정표 [13:34]

 

▲ 신축된 북한산성 성곽 [13:37]

 

▲ 진달래가 꽤 많이 피었다 [13:40]

 

▲ 동장대에서 바라본 보현봉, 문수봉, 나한봉과 의상능선 [13:45]

 

▲ 산성주능선에 있는 동장대 [13:45]

 

▲ 성벽 옆으로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다 [13:48]


13:52  대동문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길이 여러 군데로 갈라지는데 진달래능선도 그 중 하나다. 이곳에 이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달래능선으로 하산을 하고 있었다. 이름에 어울리게 진달래꽃이 자주 보이는 능선에는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가끔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이 널찍해서 걷기에 좋다. 왼쪽으로 산벚나무가 점점이 박힌 소귀천계곡이 아름답게 흘러내리고 있다. 계곡 위로는 삼각산의 주봉들인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이 나란히 보인다. 신록 뒤로 우뚝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들이 우리 민족의 기상을 온누리에 퍼뜨리고 있었다.


▲ 진달래능선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대동문 [13:52]

 

▲ 이름에 걸맞게 진달래꽃이 많다 [13:57]

 

▲ 하산객들 사이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13:59]

 

▲ 널찍한 진달래능선 길 [14:04]

 

▲ 능선 왼쪽으로 보이는 신록과 산벚나무들 [14:06]

 

▲ 진달래꽃 뒤로 만경대와 인수봉이 보인다 [14:06]

 

▲ 백련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4:19]

 

▲ 신록과 만경봉, 백운대, 인수봉 [14:24]


14:40  도로에 내려서니 아침과는 달리 올라오는 사람들보다 내려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올라올 때는 계곡 옆 길을 이용했는데 내려갈 때는 계속 포장도로로 걸었다. 도로 좌우로 대형 등산용품 판매점들이 계속 나타났다. 추측컨데, 우리나라처럼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좋은 현상이다. 자연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순수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큰 도로와 만나기 전 왼쪽에 120번 버스터미널이 있다. 승차를 한 다음 수유역에서 하차, 지하철 4호선에 올랐다. 지하철도 아침보다 사람이 많다. 충무로에서 3호선으로 환승해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4시 경에 도착했다. 우이동에서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길이 조금 지루했지만, 청주로 가는 고속버스가 10분에 한 대씩 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게다가 버스요금도 내렸으니....


▲ 도로에 내려서는 곳에 있는 이정표 [14:40]

 

▲ 우이동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는 차도 [14:41]

 

▲ 우이동과 청량리를 오가는 120번 버스 종점 [14:49]


16:20  청주행 우등 고속버스에 올랐다. 올 때와는 달리 버스는 만원이다. 터미널에서 산 '좋은 생각'을 읽으며, 졸리면 잠시 꾸벅거리며, 신록이 한창인 바깥 경치를 구경하며 버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5시 45분에 청주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 예상보다 일찍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오랜만에 찾은 북한산이 하루 빨리 제 이름을 되찾아 다음 번에는 북한산이 아닌 삼각산 산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