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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행/한국 100名山

2009.02.26. [한국 100名山 62] 울산 울주 가지산

by 사천거사 2009. 2. 26.

가지산 산행기

◈ 일시: 2009년 2월 26일 목요일 

◈ 장소: 가지산 1241m / 울산 울주

◈ 코스: 주차장 → 이정표 안부 → 중봉 → 가지산 → 쌀바위 → 석남사 → 주차장

◈ 시간: 3시간 53분


  


08:05  어제 밀양 처가에 온 김에 오늘은 근처에 있는 가지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밀양에서 가지산 산행기점까지 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왜? 울산으로 가는 24번 국도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다. 얼음골이 가까워지자 도로 양쪽에 사과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많다. 얼음골 사과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고 저장도 오래 할 수 있다. 새로 뚫은 가지산 터널은 국도 터널로 가장 긴데 그 길이가 장장 4580m다. 24번 국도를 벗어나서 석남사 쪽으로 왔는데 어라, 석남사를 감아 도는 도로도 24번 국도다. 알고 보니 구도로였다.

 

09:00  석남사 주차장에 도착. 상가 건물 앞에 버스주차장이 있고 그 옆으로 승용차를 주차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찾는 사람들이 많은지 도처에 넓은 유료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도로를 건너 조금 위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공비토벌작전기념비가 보인다. 산행로는 기념비 오른쪽으로 나 있다. 9시 7분에 본격적인 산행 시작,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호젓한 산길이다. 9시 21분에 119 표지판(101번)을 지났다.

 

소나무 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길을 지나니 서서히 산죽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나무에 잎이 나지 않은 철이라 파란 산죽잎만 보아도 기분이 새롭다. 102번이 적힌 119 표지판 오른쪽으로 멋진 소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뒤로 가지산 주능선이 잘 보인다. 9시 51분, 103번이 적힌 119 표지판을 지나면서 길이 조금씩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멀리 왼쪽으로 석남터널을 빠져나온 24번 국도 구도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언양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 4차로 도로가 보이고.... 


▲ 내 차를 세워 둔 석남사 주차장 [09:02]

 

▲ 공비토벌작전기념비 오른쪽이 산행기점이다 [09:06]

 

▲ 뿌리가 드러나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 [09:27]

 

▲ 파란 조릿대가 초봄을 연상시킨다 [09:31]

 

▲ 아름다운 소나무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09:38]

 

▲ 뒤에 보이는 것이 가지산 주능선 [09:39]

 

▲ 바윗길도 나타나고 [09:53]

 

▲ 24번 국도 구도로와 휴게소 건물이 보인다 [09:56]

 

▲ 새로 건설한 4차로 24번 국도가 보인다 [09:56]


10:02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 도착. 119 표지판이 있고 구급함도 있다. 안부에서부터 평탄한 길을 따라 7분 정도 걸었더니 오른쪽에 건물이 하나 보인다. 대피소 겸 간이매점으로 사용되는 건물인 모양인데 인기척은 없다. 통과! 계속 이어지는 평탄한 길을 지나면 이정표가 있는 나무계단 앞에 도달한다. 누군가가 계단 기둥에 '338계단'이라고 적어놓았다. 참, 할 일 없는 사람도 많네. 계단 위에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먼저 온 산행객이 있는 모양이다. 가지산 주능선에 위로 운무가 퍼지고 있다. 계단을 다 오른 후에도 15분 이상 더 올라야 중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안부에 있는 이정표 [10:03]

 

▲ 산행로 오른쪽에 있는 간이매점 겸 대피소 건물 [10:10]

 

▲ 338계단이 시작되는 곳 [10:17]

 

▲ 중봉으로 올라가는 길 [10:39]


10:46  중봉 바로 앞에 있는 나무에 걸려 있는 등산로 팻말에는 다른 산까지의 산행 시간이 잘 적혀 있었다. 바위봉우리인 중봉에는 작은 표지석이 하나 있는데 글씨를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다시 정상을 향해서 출발! 7분 정도 걸어가니 3거리 안부가 나오고 왼쪽으로 용수골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3거리 안부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니, 운무가 퍼지고 있는 가지산 전위 암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위봉을 왼쪽으로 감아 돌았다. 정상 아래에서 한 남자 산행객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한 잔 권한다. 오매, 고마운 거. 맛있게 한 잔 마시고 정상으로 올랐다.


     ▲ 중봉에 있는 등산로 이정표 [10:46]

 

▲ 표지석이 분명치 않은 중봉에서 [10:47]

 

▲ 중봉에서 가지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 [10:53]

 

▲ 용수골 갈림길 이정표 [10:54]

 

▲ 운무에 쌓인 정상 전위봉의 모습 [11:04] 


11:08  가지산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고, 이정표와 2개의 정상 표지석과 낙동정맥 표지석이 있었다. 일단 사진을 찍고 사방을 둘러보는데 바로 아래에 대피소 건물이 보인다. 이 대피소에는 사람이 있는지 굴뚝에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운무가 잔뜩 끼어 있어, 가까운 곳은 몰라도, 조금만 눈을 들어도 온통 회색이다. 쌀바위를 향해서 출발! 고지대라 그런지 주능선에는 잔설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헬리콥터 착륙장을 지났다. 길은 고만고만하다.

 

정상에서부터 25분 정도 걸어 쌀바위에 올랐다. 힘이 들면 굳이 쌀바위를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우회를 해도 된다. 쌀바위에 오르자 좌우 능선에 운무가 바람을 타고 하옇게 깔린다. 장관이다. 산 아래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쌀바위를 내려오니 왼쪽에 또 대피소 건물이 있다. 트럭도 있다. 임도가 여기까지 이어지는 모양이다. 여성 산행객 3명이 대피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 가지산 정상의 모습 [11:07]

 

▲ 해발 1241m의 가지산 정상에서 [11:09]

 

▲ 가지산 정상 아래에 있는 대피소 [11:10]

 

▲ 잔설이 남아 있는 주능선 [11:11]

 

▲ 쌀바위에서 바라본 헬리콥터 착륙장 방향 [11:33]

 

▲ 쌀바위 너머로 운무가 피어 오르고 있다 [11:35]

 

▲ 운무가 피어 오르는 대피소 방면 [11:36]

 

▲ 쌀바위에 있는 대피소 [11:41]


11:44  쌀바위 표지석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표지석 옆에는 쌀바위에 관한 전설이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옛날의 일이었다. 수도승 한 분이 쌀바위 밑에 조그마한 암자를 얽어매고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며칠마다 한번씩 마을로 내려가서는 동냥을 해오는 고행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고행하는 수도승을 가엾게 여긴 것인지 기적이 일어났다. 중이 염불을 외우다 바위틈을 문득 보니 쌀이 소복히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날부터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쌀이 매일 바위틈에서 물방울이 흐르듯 또닥또닥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중은 마을로 내려가서 사립마다 요령을 흔들고 목탁을 치며 동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얼마간의 세월이 흘렸다. 어느 날 중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쌀이 저렇게 답답하게 조금씩 나오다니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중은 쌀이 나오는 구멍을 더 크게 내면 많은 쌀이 나오겠지 생각을 하고는 구멍을 크게 뚫었다. 이제는 쌀도 많이 나올테고 여기에 더 큰 암자를 지어 출세할 수 있겠지하며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후로 쌀은 간 곳 없고 물만 뚝뚝 흘렀다 한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로 사람들은 그 바위를 쌀바위라 불렀다.

 

쌀바위에서 귀바위 쪽으로 걸어가는데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새로 만든 표지기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최근에 사람이 다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는 귀바위를 거쳐서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시간도 그렇고 해서 계곡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야,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낙엽이 쌓인 급경사길이 끝나자 너덜길이 시작되었다. 산행로는 석남사골 왼쪽을 따라 트래버스를 하는 형식으로 계속 이어졌다. 표지기가 계속 보이고 길도 확실하니 걱정은 안 된다. 30분 정도 걸었나, 봄을 알리는 산새소리가 들려온다. 계절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쌀바위에서 거의 한 시간 정도를 걸었더니 마침내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석남사가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 쌀바위 표지석과 함께 [11:44]

 

▲ 석남사골로 내려가는 급경사길 [11:50]

 

▲ 석남사골의 스크리 지대 [11:54]

 

▲ 하산로 왼쪽에 펼쳐진 광활한 스크리 지대 [12:10]

 

▲ 하산 중에 올려다본 왼쪽 계곡의 모습 [12:25]

 

▲ 석축이 있네, 산성인가? [12:26]

 

▲ 석남사로 내려가는 포장도로 [12:41]

 

▲ 암자인 모양인데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12:44]

 

▲ 석남사 바로 아래에 있는 석남사골의 모습 [12:47]


12:48  병풍처럼 둘러처진 가지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석남사에 도착했다. 문화재로 지정이 된 커다란 수조가 특이하고, 짜임새 있게 배치된 절집들이 보기에 좋았다. 석남사를 떠나 석남사골에 놓여 있는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본 석남사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일주문으로 오는 길은 꽤 멀었다. 길 오른쪽에 작은 돌탑들이 무리지어 서 있다. 앙증맞다. 일주문을 지나면 왼쪽에 매표소가 있는데 절에서 나오는 이 몸은 공짜다.


석남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824년(헌덕왕 16)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禪)을 도입한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창건했다. 1716년(숙종 42) 추연(秋演)이 쓴 사적기에 의하면, 화관보탑(華觀寶塔)과 각로자탑(覺路慈塔)의 아름다움이 영남 제일이라고 하여 석남사(碩南寺)라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74년(현종 15) 언양현감 강옹(姜翁)이 사재를 내어 탁령(卓靈)·자운(慈雲)·의철(義哲)·태주(泰珠) 등에게 중창하도록 했다. 그 뒤를 이어 정우(淨佑)·각일(覺日)·석맹(碩孟) 등이 극락전·청풍당(靑風堂)·청운당(靑雲堂)·청화당(靑華堂)·향각(香閣)을 중축하고, 희철(熙哲)이 명부전을 신축했다. 1803년(순조 3)에는 침허(枕虛)외 수일(守一)이, 1912년에는 우운(友雲)이 중수했다. 6·25전쟁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1957년에 비구니 인홍(仁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중건했는데, 이때부터 비구니의 수도처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극락전·설선당·조사전·심검당·침계루(枕溪樓)·정애루(正愛樓)·종루·무진료(無盡寮)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도의선사의 사리탑으로 전하는 부도(보물 제369호)가 있고, 이밖에 3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과 부도 4기 등이 있다.


석남사 수조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되었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91cm, 길이 270cm, 넓이 121㎠이다. 절에서 사용하는 수조는 대개 긴 네모 모양이지만, 조형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수조의 모서리를 두 겹으로 둥글게 돌려 깎아 만들었다. 규모는 매우 큰 편에 속한다. 석남사 수조의 조성연대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로 알려져 있다.


▲ 석남사에 있는 대형 수조 [12:48]

 

▲ 석남사 대웅전의 모습 [12:49]

 

▲ 석남사 바깥 길에 노승이 걸어가고 있다 [12:50]

 

▲ 석남사 절집 뒤로 가지산 능선이 보인다 [12:52]

 

▲ 석남사골과 석남사 [12:53]

 

▲ 일주문으로 오는 길에 만난 앙증맞은 돌탑들 [12:56]

 

▲ 가지산 석남사 일주문 [12:59]


13:00  석남사 주차장에 도착, 산행을 마무리했다. 주차장에는 아침보다 훨씬 많은 차들이 세워져 있었다. 오늘 산행은 귀바위를 경유하지 않고 쌀바위에서 바로 석남사로 하산한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산행이었다. 처가에 온 김에 이루어진 가지산 산행, 그래서 '처가는 좋은 산이 많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것인가?


▲ 석남사 상가와 주차장 모습 [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