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산행기
◈ 일시: 2009년 2월 22일 일요일
◈ 장소: 두륜산 703m / 전남 해남
◈ 코스: 주차장 → 진불암 → 두륜봉 → 가련봉(정상) → 오심재 → 대흥사 → 주차장
◈ 시간: 4시간 31분
◈ 회원: 홍세영, 이효정
06:00 아침에 눈을 떠서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이런, 비가 내리고 있다. 그것도 가는 비가 아니라 산행에 지장을 줄 만큼 제법 빗줄기가 굵다. 오보 때문에 늘 비난을 받는 기상청 예보가 요즘 들어 딲딱 들어맞고 있다. 비가 온다고 산행을 말아야 하나? 그럴 수는 없지. 짐을 모두 꾸려 차에 싣고 모텔 바로 아래에 있는 남도식당에 8시 5분에 들어섰다. 콩나물해장국을 아침으로 시켰다. 매콤한 해장국을 아침으로 먹고 우의를 입은 다음 출발. 입장료를 2,500원씩 내고 매표소를 통과해서 달려 올라가니, 차량 통행금지 안내판이 있고 오른쪽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 남도식당의 콩나물 해장국 상차림 [08:19]
08:50 주차장에 차를 세운 다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두륜산 산행에 나섰다. 일요일이지만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비가 오고 있어 그런지 사람들은 없다. 포장도로를 12분 정도 걸어가니 '두륜산 대흥사'라는 현판을 단 일주문이 보였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왕벚나무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데, 왼쪽은 대흥사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도솔봉중계소, 진불암, 남암, 관음암으로 가는 길이었다. 오늘 계획된 산행 코스가 진불암 방면이기 때문에 오른쪽 포장도로를 따라 걸었다.
▲ 오른쪽에 주차장이 있다 [08:54]
▲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 [09:06]
▲ 왕벚나무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09:09]
09:22 관음암 갈림길 표지석이 있다. 통과. 길은 계속 차량이 다닐 수 있게 만든 시멘트 포장도로다. 이 길이 맞는 건가? 아래에서 이정표를 보았을 때 분명히 진불암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비를 맞으며 지도를 꺼내 보니 아뿔사, 길을 잘못 들었네. 다행히도 이 도로로 올라가도 진불암에 닿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포장을 해놓았나?
▲ 관음암 갈림길 이정표 [09:22]
▲ 관음암 가는 길 [09:22]
▲ 대흥사 심적암지 안내판 [09:27]
09:36 진불암 입구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 알고 보니,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는 도솔봉중계소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진불암으로 내려가는 길도 포장이 되어 있었다. 5분 정도 내려가면 물텅거리 삼거리인데 대웅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이었다. 우리가 대흥사에 들러 제대로 올라왔다면 이 길로 왔으리라.
▲ 진불암 입구에 있는 이정표 [09:36]
▲ 물텅거리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대웅전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곳 [09:41]
09:46 진불암 삼거리에 도착. 오른쪽으로 나 있는 나무계단 길이 두륜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계단을 올라 얼마 안 지나서 커다란 바위가 널려 있는 지역이 나타났고, 두륜봉이 가까워지자 온통 바위만 눈에 들어왔다. 계속 내리는 비는 스패츠를 착용한 등산화 안으로 스며들어 양말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나마 날이 춥지 않은 것이 큰 다행이었다.
각양각색의 집채만한 바위들이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두륜봉 정상부에는 코끼리의 코 모양을 한 구름다리가 있었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돌다리를 건너려는데 두려움이 엄습한다. 할 수 없이 네 발로 기었다. 체면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구름다리를 건너 첫 암봉에 오르니 바람이 세게 분다. 두륜봉은 거기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 진불암 삼거리: 계단이 두륜봉으로 가는 길 [09:46]
▲ 크고 작은 바위 위로 산행로가 나 있다 [10:05]
▲ 물에 젖은 바위는 미끄럽다 [10:05]
▲ 비는 끊임없이 내린다 [10:07]
▲ 두륜봉 아래 구름다리 앞에서 [10:22]
▲ 두륜봉 아래에 있는 바위들 [10:22]
▲ 구름다리를 건널 준비를 하고 있는 중 [10:22]
▲ 두륜봉에 오르기 전에 [10:26]
▲ 두륜봉에 오르기 전에 [10:26]
10:31 해발 630m의 두륜봉 정상에 올랐다. 표지석이 있다. 정상에는 비가 오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 만일재로 내려가야 한다. 왼쪽으로 나 있는 산죽길을 따라 가니 길이 끊어졌다. 만일재가 발 아래로 보이는데 길은 없다. 어떻게 된 거지? 아하, 아까 두륜봉을 올라올 때 본 철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구나. 다시 구름다리 쪽으로 돌아와 빨간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철계단을 내려가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반 바퀴 정도 돌았다. 즉, 두륜봉 암봉을 직접 내려갈 수가 없기 때문에 우회를 한 것이다.
▲ 두륜봉 정상에서 [10:31]
▲ 두륜봉 정상에서 [10:31]
▲ 만일재로 가기 위해 내려가야 하는 철계단 [10:47]
▲ 구름다리 아래서 [10:48]
▲ 구름다리로 내려오고 있는 홍세영 선배 [10:49]
10:58 운무가 퍼지고 있는 만일재에 내려섰다. 헬리콥터 착륙장을 겸하고 있는 만일재에는 꽤 넓은 억새밭이 펼쳐져 있었다. 만일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곧바로 대흥사에 이르게 된다. 가련봉으로 가는 길은 직진. 만일재에서 가련봉과 노승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바위와 바위를 이어주는 쇠줄과 쇠받침대, 쇠고리가 없으면 나아갈 수 없는 위험한 코스다. 더우기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더욱 진행하기가 힘이 든다.
▲ 옅은 운무가 퍼지고 있는 만일재 [10:58]
▲ 암봉인 가련봉을 오르고 있는 모습 [11:23]
11:28 해발 703m의 가련봉에 올랐다. 두륜산의 주봉이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오래 머무르기가 어렵다. 전망이 좋다는데 사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으니 빨리 내려가는 것이 상책이다. 가련봉을 내려오니 천년수로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다. 노승봉으로 오르는 암릉도 만만치가 않다. 11시 40분, 해발 685m의 노승봉에 올랐다. 넓은 반석에 끊임없이 비가 쏟아지고 있다. 하산은 노승봉 뒤 절벽을 돌아 내려가야 한다. 밧줄에 의지하지 않으면 내려갈 수 없는 급경사 난코스다. 난코스를 내려오면 길이 좋아지고 헬리콥터 착륙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서 10분 정도 걸으면 오심재다.
▲ 두륜산의 주봉인 가련봉에서 [11:28]
▲ 해발 703m의 가련봉에서 [11:28]
▲ 노승봉과 가련봉 사이에 있는 이정표 [11:38]
▲ 암봉인 해발 695m의 노승봉에서 [11:40]
▲ 능허대라고도 하는 노승봉에서 [11:40]
▲ 노승봉 아래 헬리콥터 착륙장에 있는 이정표 [11:58]
12:10 오심재에도 헬리콥터 착륙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오심재에서는 오소재로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오소재를 산행기점으로 삼으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제 북암 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정표를 보니 거리가 0.6km로 나와 있다. 10분 정도 호젓한 신길을 내려가니 절집이 보인다. 북암이다.
▲ 비가 내리고 있는 오심재 [12:10]
▲ 오심재에 운무가 퍼지고 있다 [12:10]
12:22 북암에 도착. 북미륵암이라고도 한다. 대흥사 본사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북암에는, 보물 301호인 3층 석탑과 함께 국보 308호인 마애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암 마애여래좌상은 가로 8m, 총 높이 6m 크기의 암석 위에 돋을새김(浮彫)으로 새겨져 있는데, 용화전이라는 절집의 한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심하게 땀을 흘린다고 한다. 정말인가?
북암에서 대흥사 대웅전으로 내려가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온다. 보아하니, 북암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을 친견하려 오는 모양이다. 비가 오는데 보통 성의가 아니다. 북암에서 대흥사로 내려가는 길에는 우리 둘 뿐이어서 아주 호젓했다. 산죽 숲길과 너덜길을 지나면 일지암과 북암 갈림길 이정표를 만난다. 북암에서 대흥사까지 35분이 걸렸다.
▲ 국보 308호인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절집 용화전 [12:22]
▲ 국보 308호인 마애여래좌상의 모습 [12:23]
▲ 북암으로 가는 길과 구름다리로 가는 길이 가라지는 곳 이정표 [12:49]
12:59 대흥사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는 데도 구경온 사람들이 많다. 대흥사는 영주 부석사, 순천 선암사, 청도 운문사 등과 함께 관광객이 많기로 유명한 아름다운 절이다. 국토의 최남단에 우뚝 선 두륜산(해발 706m)에 둘러쌓여 있는 대흥사는, 원래의 명칭은 대둔사였으나 일제 때 전국 지명을 새로 표기하면서 대흥사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에 다시 대둔사로 명칭을 돌려 놓으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해서 대흥사라는 명칭으로 불리우게 된 사찰이다. 실제로 본 대흥사의 규모는 엄청났다. 절집의 수와 규모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비가 내려 모든 곳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대흥사 입구에는 '유선관'이라는 유명한 여관이 있다. 칸 영화제의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장군의 아들', '취화선', '천년학' 등의 촬영장소로 사용되었을 만큼, 유선관이 갖고 있는 한옥의 아름다움은 뛰어나며 주변경관도 빼어나다. 최근에 TV 프로그램 '1박2일' 팀이 머물면서 촬영을 한 곳으로 그 때문에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 온 몸이 비에 젖어서 그런지 춥다. 배도 고프다.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진다.
▲ 대흥사의 절집 천불전의 모습 [12:59]
▲ 계곡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대흥사의 대웅보전 [13:01]
▲ TV 프로그램 '1박2일'에 나왔던 대흥사 아래 음식점 유선관 [13:12]
13:25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들이 많다. 관광버스도 여러 대가 서 있다. 한쪽 간이천막 아래에서 비를 맞아가며 등산객 한 무리가 점심을 먹고 있다. 산행은 안 할 건가? 비가 계속 내리니 엄두가 안 나는 모양이다. 차를 몰고 아침을 먹었던 식당으로 다시 갔다. 된장찌개를 점심으로 시킨 다음, 젖은 옷과 양말을 마른 것으로 교체했다. 아, 살 것 같다. 장장 4시간 30분을 비를 맞고 걸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소주 한 병을 곁들여 점심을 먹고 출발, 이제 청주까지 가는 일만 남았다.
14시 5분 출발, 빗속을 뚫고 806번 지방도를 따라 해남까지 온 다음, 13번 국도에 올라 영암과 나주를 거쳤다. 광산 나들목에서 호남고속도로에 진입, 정읍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마신 후 다시 서청주까지 달렸다. 전주에서 익산까지 정체 현상이 있었지만 심하지는 않았고 비도 그쳤다. 청주에 도착하니 19시 5분, 해남 두륜산 주차장에서 청주까지 딱 5시간이 걸렸다. 제일수산에 들러 소주 2병을 마시며 4일간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을 자축했다.
아름다운 선암사와 환상적인 눈꽃의 조계산, 연속적인 암봉과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팔영산, 기암과 억새 능선과 다도해가 어우러진 천관산, 천년고찰과 거대한 암봉으로 유명한 두륜산을 연속으로 다녀온 것과 함께, 눈, 바람, 쾌청, 비로 이어지는 날씨 변화를 겪어본 것은 이번 산행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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