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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한남금북정맥

2007.06.17. [한남금북정맥記 1] 천황봉→말티재

by 사천거사 2007. 6. 17.

한남금북정맥 제1구간 종주기 

 

◈ 일시: 2007년 6월 17일 일요일     

◈ 구간: 속리산 천황봉-말티재



06:40  청주 아파트 출발.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었는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오늘은 한남금북정맥의 첫걸음을 내딛는 날이다. 처음 계획은 버스를 타고 보은까지 가는 것이었으나 오늘 산행의 도착지가 역시 보은이기 때문에 직접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 차는 많지 않다. 25번 국도를 따라 피반령과 수리티재를 넘어 보은 쪽으로 달렸다.

 

07:33  보은 도착. 구름 사이로 해가 조금씩 비치기 시작한다. 조금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운 다음 대목리 가는 시내버스 편을 알아보려고 시내 쪽으로 가는데 마침 개인택시 정류장이 있다. 윗대목골 천황사까지 요금을 물으니 미터에 나오는 대로 받는데 18,000원 정도일 거라고 일러준다. 그래, 정맥 운행 첫날이니 택시로 가자.

 

몸집이 좋은 기사분은 대목리가 고향이라고 하면서 본인과 자식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앞산에 얽힌 온천 개발 이야기까지 쉼 없이 해준다. 재미 있는 분이다. 25번 국도를 따라 달리던 택시는 장내에서 좌회전하여 505번 지방도를 타고 서원계곡으로 들어갔다. 아들 선우가 공부하던 고시원이 왼쪽으로 보인다. 삼가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돈 다음 일차로 포장도로를 따라 대목리로 들어섰다. 만수계곡을 따라 아랫대목골과 윗대목골을 지난 다음 천황사에 도착을 했다. 택시비는 18,900원이 나왔는데 20,000원을 주면서 명함을 한 장 받았다. 말티재에서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08:05  천황사는 넓은 터에 작은 대웅전만 댕그러니 있는 조금 황량한 분위기가 도는 절이었다. 8시 10분에 산행 출발. 천황사 오른쪽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었다. 조금 올라가니 왼쪽으로  여러 개의 조각상을 세워 놓은 곳이 있는데 무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눈을 드니 저 멀리 하늘 아래 천황봉이 보인다. 15분 정도 올라가니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시작된 수렛길이 좁아지면서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었다. 해가 다시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구름이 점점 짙어지면서 바람이 부는 낌새가 금시라도 비가 올 것 같다. 비가 오면 안 되는데.


▲ 만수계곡 윗대목골에 있는 천황사 대웅전

 

▲ 천황사를 조금 지난 수렛길에서 올려다 본 속리산 천황봉


08:28  다리가 나타났다. 나무로 만든 아치교는 산 속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자연에 인공시설물을 설치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가능한 한 자연미를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치교를 지나자 바로 이정표가 서 있는데 '대목리 1.1km, 천황봉 1.6km'라고 적혀 있다. 계곡의 돌다리와 작은 지류를 여러 번 건넜다. 길은 대체로 완만한 편이다. 계속 구름은 끼어 있고 바람도 많이 분다.


▲ 계곡에 가로 놓인 나무로 된 예쁜 아치교


08:47  잠시 휴식. 곧게 뻗은 참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길은 여전히 완만하며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10분 정도 올라가니 스크리 지대가 나타나며 경사가 가팔라진다. 9시 7분에 다시 휴식. 찰떡을 간식으로 먹었다. 왼쪽 계곡에 다래 덩굴이 뒤얽혀 마치 원시림을 방불케하고 있다. 돌계단길이 나타났다. 금년 1월에 다녀온 네팔 트레킹 생각이 난다.

 

그때 비레탄티에서 고레파니까지 고도 2,000m 정도를 돌계단으로 올라갔었다. 안나푸르나 트레커들에게는 '죽음의 계단'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와 같은 힘든 여정 끝에 푼힐전망대에서 해가 뜰 때 바라본 희말라야 자이언트들의 모습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계단길을 돌아가니 하늘이 열리고 왼쪽으로 천황봉이 보인다. 막바지 가파른 길을 올라섰다.

 

09:27  백두대간 길과 만났다. 바람이 세게 불고 있다. 한쪽에 주 탐방로 안내판이 서 있다. 천황봉은 여기서 왼쪽길로 올라가면 된다. 천황봉은 법주사에서 세심정과 상환암을 거쳐 올라올 수 있고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에서도 올라올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길은 오늘 올라온 대목리 길이다. 15분 정도 올라가니 하늘이 열리며 천황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 백두대간길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보이는 탐방로 안내도


09:44  속리산 천황봉 정상에 도착. 등산객 3명이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다. 어느 쪽에서 올라왔나. 정상에는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다. 해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문장대 쪽 주능선의 모습이 아름답다. 속리산, 좋은 산이다. 빵을 간식으로 먹고 일어서는데 한 무리의 산행객들이 올라온다. 기념 사진을 부탁한 다음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지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천황봉 정상에서 본 속리산 주능선 모습, 바위와 잘 어울린 아름다운 능선이다

 

▲ 천황봉 표지석과 함께 


09:55  정상에서 남쪽으로 30여미터 정도 내려오면 오른쪽 바위벽에 파란 페인트로 화살표와 함께 '정맥'이라고 적힌 글을 볼 수 있다.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어 금방 알 수 있다. 드디어 한남금북정맥 종주가 시작되었다. 평탄한 내리막길에 조릿대가 양쪽에 도열해 있다. 바람이 세다. 가끔 암릉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다. 바람아 잦아들면서 해가 나기 사직했다. 30분 정도 능선을 걸었는데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어디서 올라오는 사람들인지 꽤 많은 산행객을 만났다.


▲ 한남금북정맥 갈림길이 바위에 파란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다

 

 ▲ 센 바람에 풀이 한쪽 방향으로 누웠다


10:38  전망이 좋은 곳에 도착. 왼쪽으로 천황사가 내려다보이고 오른쪽으로 속리산 주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길 옆에 노란 기린초가 반겨준다. 11시 현재 능선길을 걷고 있다. 해는 계속 들락날락이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니 더 없이 고맙다. 심심찮게 만나던 산행객도 없고 이제는 나 혼자만이 걷는다.


▲ 산행 중에 본 기린초


11:25  667.3봉에 도착. 삼각점이 박혀 있다. 봉우리를 지나면 길이 왼쪽으로 틀어지는데 표지기 많이 붙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백두대간이나 정맥 길은 자신이 길을 판단하지 말고 표지기를 보고 가면 거의 틀림이 없다. 다시 해가 났다. 11시 38분에 휴식. 바람은 여전히 세다. 11시 54분에 봉우리를 하나 넘었다. 정맥 길은 봉우리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24  이름 없는 봉우리에 도착.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왕 자리에 앉은 김에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장기 산행에서는 체력 안배가 매우 중요하다. 너무 오래 쉬어서는 안 되지만 틈틈이 쉬면서 간식을 먹는 것이 좋다. 처음과 끝을 같은 페이스로 걷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왼쪽으로 삼가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 잠시 휴식 중에 사진 한 장


12:37  무인감시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 도착. 무엇을 감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가시설물로 훼손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여기서 10분 정도 산길을 내려가니 불목이재다.


▲ 574봉에 설치되어 있는 무인감시시스템 


12:47  불목이재에 도착. 돌 몇 개가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정이품송으로 내려가는 오른쪽 길은 제법 뚜렷한데 삼가저수지로 내려가는 왼쪽 길은 흐릿하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산행로로 가끔 이용될 뿐 거의 무용지물이다. 불목이재에서 15분 정도 올라가니 제법 넓은 공터가 나왔다. 헬리콥터착륙장이다.


▲ 불목이재 모습


13:02  헬리콥터착륙장 도착. 예전에는 실제로 사용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관리가 안 되어 잡초만 무성하다. 이제 구름이 완전히 벗겨지고 해가 쨍쨍하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오늘 30도 이상 올라간다고 했는데. 580봉과 585봉을 지나 515봉을 넘어서자 자동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갈목재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 풀이 무성하게 자란 헬리콥터착륙장


14:00  갈목재에 내려섰다. 갈목재로 갈목리와 삼가리를 이어주는 505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다. 도로 한쪽에 '갈목재 해발 390m'라는 이정표가 있고 그 옆으로 '천황봉-갈목재-희엄이재'는 비정규 탐방로로 통행 금지가 되어 있으며 위반시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현수막에 적혀 있다. 아니, 정맥길에도 통행금지 구역이 있었나. 그런데 천황봉 쪽에는 왜 이런 현수막이 없었을까? 도로를 건너 갈목리 쪽으로 돌아가니 왼쪽으로 다시 산길이 나 있다. 꽤 가파르다. 능선에 올라서니 왼쪽으로 황해동 방향의 조망이 좋다. 물줄기를 따라 도로가 뱀처럼 굽어 있다. 14시 32분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 통과.


▲ 갈목재에 설치되어 있는 현수막


14:50  희엄이재에 도착. 황해동과 갈목리를 연결시켜 주는 이곳에는 옛날 성황당에 쌓았던 모양의 돌무더기가 있고 그 위에 잡초가 나 있다. 이정표가 없으니 돌무더기가 없었다면 희엄이재라는 것을 알 방법이 없다. 정맥길에는 이정표가 별로 없지만 먼저 종주를 한 사람들이 표지기를 많이 달아 놓아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30분 정도 지난 후 봉우리를 하나 넘으니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말티재는 아직 멀었나?


▲ 황해동과 갈목리를 연결하는 희엄이재


15:43  이정표가 하나 서 있고 그 옆에 벤취가 하나 마련되어 있다. 이정표에는 '숲속의 집'과 '정상'으로 가는 표시가 있었다. 어디서 누가 세운 이정표인가? 벤취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장기 산행에서는 식사 시간을 따로 가질 필요가 없고 배가 고플 때마다 조금씩 자주 먹는 것이 좋다. 왼쪽으로 서원계곡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들 선우가 공부했던 고시원도 보이고. 계곡 옆 차도에 자동차들이 여럿 세워져 있다. 물놀이를 나온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15분 정도 걸어가니 피뢰침 비슷한 것을 세워 놓은 시설물이 보이고 곧 이정표가 나타났다. '숲속의 집'과 '말티재'가 표시되어 있다. 말티재가 멀지 않은 모양이다. 멀리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조금 경사가 있는 사면길을 10분 정도 내려가니 말티재다.


▲ 산행 중에 내려다 본 서원계곡

 

▲ 말티재가 가까워졌음을 알려주는 이정표, 누가 세운걸까?


16:13  말티재에 도착. 보은과 내속리를 잇는 37번 국도 상에 있는 고개다. '말티재 해발 340m'라고 새겨진 표지석 있고 그 왼쪽으로 거대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돌장승이 나란히 서 있다. 고개 한쪽에서 칡즙과 커피 등을 파는 아낙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사진을 찍은 다음 고마운 마음에 칡즙을 한 잔 시켜 마시면서 차량 편을 물으니, 시내버스는 뜸하고 직행버스가 자주 있는데 손을 들면 세워준다고 한다.

 

얼마를 기다리니 직행버스가 온다. 손을 들었다. 그냥 지나간다. 이런, 택시를 불러야하나. 그 때 칡즙을 마시기 위해 승용차가 한 대 섰기에 보은까지 태워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기꺼이 태워주신다. 백두대간과 정맥 종주를 하려면 앞으로 이런 일이 종종 있을 것이다.


말티재

 

보은에서 약 7km 지점에 있으며 속리산 입구의 첫 고개로 높이가 340m이다. 옛부터 이 고갯길에 넓고 얇게 뜬 돌, 즉 박석을 깔아 놓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 구경오면서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서 엷은 돌을 3~4리나 깔았다고 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때 깐 돌을 말한다. 아마 이 길의 형태를 만든 시초가 아닌가 여겨진다.

 

고려 태조가 속리산에 거동한 것은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다. 태조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이 속리산에서 불경을 탐독하며 살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태조는 조부의 유적을 찾아온 셈이며 이때 길을 닦은 것이다. 조선왕조 세조가 이곳을 찾아올 때도 길을 고쳤고, 이때도 다시 박석을 펴놓았다. 지금은 옛날 길이 간간히 눈에 뜨일 뿐이다.

 

1924년 충북지사 박중양이 처음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개설하였고, 1967년 도로폭을 10~15m로 확장 개수하였으니 열두 굽이를 뱀처럼 굽이돌아 고개마루에 이르러 굽어보는 전망은 장관이며, 특히 아침 해뜰 때의 속리산 방향의 아침 놀과 해질녘에 보은 쪽의 저녁 노을은 가히 절경이 아닐 수 없다.

 

말티고개라는 현재의 이름은, 조선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 타고 왔던 가마를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말'의 어원은 '마루'로서 '높다'는 뜻이니, 말티재는 '높은 고개'라는 뜻이 된다.


▲ 말티재에 있는 말티재 표지석

 

▲ 말티재에 있는 장승을 배경으로 


16:56  차를 세워 놓은 곳에 도착. 차 안이 후끈후끈하다. 올 때와는 코스를 달리하여 19번 국도를 타고 미원까지 간 다음 32번 지방도로 은행리까지 운행, 다시 25번 국도로 청주에 귀환했다. 귀환 시간은 18시 2분. 아침과는 달리 나들이 나온 차들이 많아 운행 시간이 아침보다 더 걸렸다. 한남금북정맥 1구간을 마치면서, 정맥 종주는 자신과의 인내심 싸움이며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