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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트레킹/네팔 안나푸르나

2007.01.24. [안나푸르나 트레킹 11] 묵티나트→토롱라

by 사천거사 2007. 1. 24.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11일차

 

◈ 일시: 2007년 1월 24일 수요일

 출발: 묵티나트(Muktinath 3700m)

 경유: 토롱라(Thorong La 5416m) 

◈ 도착: 묵티나트(Muktinath 3700m)

◈ 회원: 아내와 함께(네팔 오지학교 탐사대)  


03:00  기상. 오늘이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토롱라 등정의 날이다. 로지의 고도가 3500m 정도이니 5416m의 토롱라까지는 고도로만 따져도 1900m 정도인데 과연 하루에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을까? 상당한 거리 때문에 강한 체력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고소 극복이라는 최대의 난점이 또한 커다란 걸림돌이다.

 

03:30  아침 식사.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밥맛이 없었지만 산행을 위해서 다 먹었다. 추위를 대비해서 배낭에 다운자켓을 비롯한 방한 장비를 골고루 넣었다. 점심은 주먹밥이고 물 한 통과 사탕 몇 개도 챙겼다.

 

04:14  로지 출발. 세상이 고요하고 깜깜하다. 헤드렌턴 불빛만 빛난다. 어제 올랐던 사원 왼쪽을 따라 올라가다 계곡에 가로질러 놓여있는 출렁다리를 건넜다. 어둠 속이라 길이를 알 수 없어 그런지 몰라도 그 다리 길기도 길다. 불빛만 보고 따라 올라갈 뿐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총총하다. 박연수 부대장이 쉴 때마다 뒤처지는 사람들을 앞세우며 대원들 정열을 조정한다. 새벽 바람이 몹시 차갑다. 

 

돌로 지은 창고가 있어 바람을 피하며 휴식을 취하는 한편 뒤에 오는 대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오니 날이 밝아 사방이 환하다. 헤드렌턴이 필요 없다. 대열을 정비한 다음 서서히 산행은 시작되었다. 해발 4700m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란다. 산행 대열이 차츰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어차피 개인적인 능력이 있으니 동시에 함께 움직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평지가 아니라 해발 4000m의 고산 지대가 아닌가. 

 

다른 곳은 괜찮은데 손끝이 너무나 시리다. 장갑을 벗은 다음 양손을 옷속에 넣어 한기를 없앤 다음 다시 걷기를 여러 번 했다. 이렇게 손끝이 차가울 때에는 벙어리 장갑이 좋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소 증세가 심하지 않은 것이 큰 다행이다. 대원들 중에는 고소 증세 때문에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생겨났다.


▲ 토롱라를 향해 일렬로 걷고 있는 탐사대원들

 

▲ 가파른 갈을 오르고 있는 탐사대원들, 건기라서 땅이 메말라 먼지도 많다

 

▲ 멀리 카크베니 쪽의 산정에 해가 들고 있다

 

▲ 스틱에 몸을 의지하며 걷고 있는 탐사대원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올라가고 있을까?

 

▲ 상당히 가파른 사면길을 오르고 있는 탐사대원들, 4800m까지 계속 가파른 오르막이다


07:20   아내가 다가오더니 하산을 해야겠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아는 나로서는 말릴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하산을 하겠다고 하겠는가. 해발 4100m에서 아내는 내려갔다. 그래도 4000m 이상을 올라왔으니 그만하면 됐다. 이제 혼자 올라야한다. 우리 가족의 대표로 반드시 올라야 한다.


▲ 아직 해가 들지 않은 산길을 오르는 탐사대원들, 카그베니 쪽은 완전히 해가 들어찼다


09:40  해발 4660m. 점심을 먹었다. 주먹밥 3개를 먹으니 배가 부르다. 아니 밥맛이 없는 것 같다. 체력의 한계와 고소 증세 때문에 대열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래도 선두 대원들은 잘 걷는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는걸까? 4800m까지 계속되는 오르막길이다. 한가하게 주변 경관을 살펴보거나 사진을 찍을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별로 없다. 그냥  걸으며 오른다. 고소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 점심으로 주먹밥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탐사대원들

 

▲ 점심 장소에서 내려다 본 투크체, 이제는 이곳에까지 해가 비친다


해발 5000m. 이 높이를 목표로 한 대원들은 아쉽지만 만족하고 내려간다. 선두 대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조형진 교수님 부인과 나만 걷고 있다. 클라이밍 셀파 왕추에게 교수님 부인 배낭과 내 배낭을 맡겼다. 몸이 훨씬 가볍다. 도로 공사를 새로 하려는지 도로 중간중간에 붉은 깃발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 바위에 번호가 적혀 있는데 16번이다. 거리를 보니 대충 100m 간격으로 세워 놓은 것 같다. 교수님 부인과 보조를 맞추며 깃발이 있는 곳마다 휴식을 취했다. 말 그대로 결혼식때 신부을 인도하는 아버지의 걸음걸이로 걸었다. 멀리 정상이 보이는데 선발대는 벌써 행사를 마치고 내려오고 있다.


▲ 얼마 남지 않은 토롱라를 향하여 마지막 힘을 쏟고 있는 탐사대원들

 

▲ 토롱라가 눈 앞이다, 마지막으로 젖 먹던 힘까지 다 바쳐서 올라가자


14:05  정상 도착. 김영식 대장이 끌어안으며 축하를 해주는데 눈물이 쏟아진다. 김근환 대원 품에 안겨서도 눈물이 났다. 중간에서 내려간 아내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형진 교수님 부인도 교수님과 반가운 해후를 했다. 정상은 평지였으며 돌무더기에 걸려 있는 타르초가 사방으로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대피소인지 아니면 매점인지 돌로 된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다.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곧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 토롱라(Thorong La  5416m)

 

▲ 토롱라에서 조형진 교수님 부부와 함께

 

▲ 토롱라에서

 

▲ 토롱라에서


올라올 때 그렇게 힘들어 하던 조형진 교수님 부인이 내려갈 때에는 날아간다. 아니, 어떻게 된거야.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그래도 올라올 때보다는 낫다. 내려가는 도중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윤석주 선생님과 나정흠 대원을 만났다.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토롱라까지 올라갈 예정이란다. 하산길에 조우철 교수님과 윤희경 선생님을 만났다. 두 분은 5000m 정도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중인데 유유자적이다. 부럽다.  

 

내려오는 것도 쉽지가 않다. 올라오는 데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고 고소 증세로 속도 울렁거린다. 드문드문 탐사대원들을 만났다. 모두 힘든 표정이다. 그런데도 김영식 대장과 박연수 부대장은 생생하다. 부럽다. 멀리 사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가이드 라주와 포터 한 명이 차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다. 배낭을 포터에게 맡기고 계속 하산. 어제 방문했던 묵티나트 사원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하다. 그때, 아내의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또 눈물이 난다. 아내를 끌어안고 또 울었다.


▲ 하산길에서 본 묵티나트 쪽 산군

 

▲ 하산길에서 본 묵티나트 쪽 산군


18:40  로지에 도착. 약 14시간 20분 동안 해발고도 2000m를 오르내렸다. 적지 않은 나이에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슴 속에 밀려왔다. 아울러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중간에 포기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생겨났다.

 

19:30  저녁은 잡채밥이었는데 너무나 맛이 있었다. 힘든 과업을 수행했으니 그럴 수밖에. 조형진 교수님 부부와 간단히 축배를 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