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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마드리드 길

2024.05.03. [산티아고 순례길 마드리드 길 3]

by 사천거사 2024. 5. 3.

산티아고 순례길 마드리드 길 3

 일시: 2024년 5월 3일 금요일 / 맑음
 장소: 산티아고 순례길 마드리드 길 / 스페인
 코스: 트레스 칸토스 → 콜메나르 비에호 → 만나사레스 엘 레알 타엘피노
거리: 32.9km / 걸은 거리 58.1km
 시간: 8시간 11분


 


 


 


01:40  세상 조용하다.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적막강산이다. 지금 이용하고 있는 이 호스텔은 부엔 까미노란 앱에서 소개하는 곳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계획을 짤 때 분명히 이곳에도 호스텔 말고 비용이 저렴한 알베르게 비슷한 게 있었다는 생각이 나서 까미노 전문 웹사이트인 그론세(gronze.com)에 들어가 보니, 아니 이게 뭐야. 교구교회에서 운영하는 숙소가 있는 게 아닌가. 그것 참.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편안한 곳에서 쌓인 피로를 확 풀었으니 그러면 됐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것이니까.

어제 숙소 때문에 고생을 했기에 오늘의 목적지인 만사나레스 엘 레알의 숙소를 자세히 살펴보니 어째 영 마땅찮다. 침대가 4개뿐이고, 지도에도 안 나오고, 전화를 하면 픽업을 한다고 하고, 아침저녁을 함께 먹어야 하고, 그런데 기부제고. 그리하여 폭풍검색을 해보니 이곳에서 25.3km 떨어진 만사나레스 알 레알에서 7.6km를 더 가면 마타엘피노인데 그곳에 아주 마음에 드는 알베르게가 있는 게 아닌가. 공립이면서 기부제로 운영하고 올해 오픈했단다. 걷는 거리가 32.9km로 늘어나지만 숙소만 좋다면 상관없다. 지금 시각 3시 27분, 한숨 더 자볼까. 잠이 안 온다.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7시다. 배낭을 꾸리고 일단 바람막이에 패딩까지 입었다.

07:10  밖으로 나오니 춥다. 아침 기온이 영상 7도라니 추울 만도 하다. 지금이 하루 중에서 가장 추운 시각이다. 이 지역이 추운 데에는 해발고도가 800m 정도로 높다는 것도 한몫을 한다. 개를 산책시키던 노인장이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온다.

한국인이냐? / 그렇다.
산티아고 가는 거냐? / 그렇다.

그다음 뭐라고 계속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그냥 미소만 짓다가 헤어졌다. 잠시 후 트레스 산토스 시내에서 이어진 길이 까미노와 만나는 지점에 도착해 보니 그 노인장이 개와 함께 서 있는 게 아닌가. 뭐지? 노인분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는데 대충 이렇다 말하는 것 같다.

이쪽으로 가는 길이 산티아고 가는 길이다. 노란색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높은 산을 하나 넘어가야 한다. 어쩌고 저쩌고...

무언가를 더 알려 주려고 하는데 내가 알아듣지를 못하니. 어쨌든 참 고마운 분이다.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애를 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트레스 칸토스 호스텔 출발 [07:18]
 

▲ 트레스 칸토스 시청사 [07:33]
 

▲ 노란 화살표가 길을 안내한다 [07:40]
 

M-607 도로 위에 놓인 육교 통과 [07:45]
 

▲ 까미노에 진입 [07:49]
 

▲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07:57]
 

▲ 스페인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란색 꽃 [07:59]
 

▲ 작은 물길을 건너간다 [08:11]
 

▲ 어허, 5월에 서리가 내렸네 [08:16]
 

▲ 길 왼쪽 목장지대 [08:26]


08:38  트레스 칸토스 마을을 떠나 콜메나르 비에호로 가는 길은 들판 사이로 나 있는 길인데 주민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사람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온이 올라가고 날이 더워져 패딩과 바람막이를 시차를 두고 차례로 벗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비포장 길이다. 작년에 다녀온 은의 길과 비교를 한다면, 은의 길은 주로 목장이나 과수원, 농경지 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비해서 마드리드 길은 대부분 야생화가 피어 있는 들판 사이로 나 있었다. 산타 아나 공동묘지를 지나자 콜메나르 비에호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 풀밭에 있는 작은 돌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 [08:38]
 

▲ 까미노 표지석 [08:47]
 

▲ 콜메나르 비에호 5km 전 이정표 [08:47]
 

▲ 목초지 사이로 나 있는 길 [08:53]
 

▲ 멀리 눈이 덮인 산봉우리들이 보인다 [09:08]
 

▲ 길 옆으로 펼쳐져 있는 초원 [09:17]
 

▲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노란 화살표 [09:24]
 

▲ 산타 아나 공동묘지(Tanatorio Cementerio Santa Ana) [09:31]
 

산타 아나 공동묘지 표지판 [09:32]


09:41  콜메나르 비에호에 들어섰다. 꽤 큰 마을이네. 마을 입구에 있는 산타 아나 성당, 16세기에 지어진 작은 성당인데 아직도 그 모습을 유지한 채 멀쩡하게 남아 있다. 이어서 찾아간 곳은 대성당, 마침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미사가 있는지 주민들 여러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스페인에 있는 성당은 절대 외관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겉모습은 돌로 지은 단순한 모양의 집이지만 내부 모습은 다양하면서도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 대성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 콜메나르 비에호(Colmenar Viejo) 마을 [09:41]
 

▲ 콜메나르 비에호 마을 [09:42]
 

▲ 육거리 갈림길 표지판 [09:45]
 

▲ 16세기에 지어진 산타 아나 성당(Ermita de Santa Ana) [09:46]
 

산타 아나 성당 안내문 [09:46]
 

▲콜메나르 비에호에 있는 대성당(Basilica of la Asunción de Nuestra Señora) [09:56]
 

▲ 화려한 대성당 내부 [09:57]
 

▲대성당 성모님 [09:58]
 

▲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님 [09:59]


10:00  콜메나르 비에호 마을에 남아 있는 16~17세기의 역사적 유물 안내판이 여러 개 보인다. 배가 고프네. 마침 마을을 벗어나는 지점에 문을 연 식료품점이 있어 빵과 오렌지 주스를 사서 쉼터에 있는 벤치에 앉아 먹었다. 3.25유로. 어차피 점심은 마타엘피노에 가서 먹을 생각이라 늦은 아침 삼아 조금 요기를 한 것이다. 오늘은 걷기에 참 좋은 날이다. 고도가 높아 조금 쌀쌀하기는 하지만 바람도 별로 없고 정말 좋다.


▲ 16세기 유적 안내문 [10:00]
 

▲ 17세기 유적 안내문 [10:03]
 

▲ 도로 건너편에 있는 식료품점이 보인다 [10:07]
 

▲ 빵과 오렌지 주스로 간단히 아침 식사 [10:08]
 

▲ 콜메나르 비에호 시내 거리 [10:17]
 

▲ 올리브 나무가 서 있는 원형교차로 [10:28]
 

▲ 나무 전체에 꽃이 피었네 [10:29]
 

▲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화단 [10:35]
 

▲ 담장에 산티아고 순례길 풍경을 그려놓았다 [10:36]
 

▲ 산티아고 가는 길 안내판 [10:43]


10:43  콜메나르 비에호 마을을 벗어나 비포장 길에 진입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종종 지나간다. 스페인은 땅이 넓고 들판이나 오르막내리막 경사가 약한 구릉지대가 많으며 비포장 마을길이나 임도가 서로 얽혀있어 자전거 타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철로 아래에 있는 지하도를 지나 언덕에 올라서자 내리막이 시작되는데 길이 좁고 바닥이 대부분 암반이라 몹시 울퉁불퉁하다. 꽤 긴 내리막길 끝에서 나이 든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내가 내려왔던 길을 올라가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여기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할 텐데... 괜히 걱정되네.


▲ 까미노 표지석 [10:43]
 

콜메나르 비에호 마을을 벗어나 비포장 길을 따라 진행 [10:55]
 

▲ 철로 아래 지하도 통과 [11:09]
 

▲ 언덕 위에서 바라본 설산과 내리막길 [11:13]
 

▲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 [11:23]
 

M-607 도로 아래를 통과 [11:39]
 

▲ 작은 다리(puente medieval del Batan)를 건너간다 [11:41]
 

▲ 목장지대를 통과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까미노 표지석 [11:45]
 

▲ 야생화가 피어 있는 초원 풍경 [11:51]


11:59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대부분이 만사나레스 엘 레알로 가는 사람들인 것 같다. 길 왼쪽 하늘에 비행운이 여러 개 만들어졌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뜬 비행기들이 만든 구름이다. 이제 33일 후면 내가 탄 비행기가 만든 구름도 저 하늘에 생겨나리라. 멀리 정면으로 눈이 하얗게 덮인 산줄기가 보인다. 산이 얼마나 높기에 5월인데도 눈이 남아 있나. 설마 저 산을 넘어가는 것은 아니겠지. 설산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가까워졌다.

 

앞이 트이면서 병풍처럼 둘러쳐진 커다란 바위산 아래 자리하고 있는 만사나레스 엘 레알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 오른쪽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기가 막힌 자연경관이다. 언덕에서 호숫가로 내려가는 길, 까미노가 하얀 꽃이 피어있는 오솔길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어허, 이게 뭐야. 길 옆에 소가 널려 있네. 소들은 사람이 옆을 지나가거나 말거나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저 풀을 뜯기에만 바쁘다. 


▲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 [11:59]
 

▲ 길 옆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야생화 [12:07]
 

▲ 마드리드 공항에서 떠난 비행기들이 만든 비행운 [12:13]
 

▲ 눈이 덮여 있는 봉우리들이 보인다 [12:29]
 

▲ 들판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길 [12:40]
 

▲ 바위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만사나레스 엘 레알 마을 [12:55]
 

▲ 야생화가 피어 있는 산길 따라 진행 [13:04]
 

▲ 다시 널찍한 길에 진입 [13:12]
 

▲ 까미노 표지석 [13:13]
 

▲ 소들이 길가에 널려 있네 [13:17]


13:21  호숫가에 내려섰다. 관광객이 타고 온 차량들이 여러 대 서 있는 게 보인다. 호수 가운데로 나 있는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데 자전거 여행객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며 말을 걸어왔다.

산티아고까지 걸어서 가는 거냐. / 그렇다.
얼마나 걸리느냐? / 37일 예정하고 있다.

놀라는 눈치다. 하긴 젊은 사람들이 한 달 넘는 시간을 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까미노가 만사나레스 마을 앞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진다. 25km를 넘게 걸었는데 아직도 8km 가까이를 더 걸어가야 하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별로 느껴지지 않던 배낭의 무게가 천근만근 같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던 거리가 구만리 같으니 말이다. 버텨주는 다리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길 오른쪽으로 경찰훈련소인가 뭐 그런 건물이 나타났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는 길 내내 경찰에서 설치한 표지석이 보였나. 


만사나레스 엘 레알 저수지 안내판 [13:21]
 

▲ 다리에서 바라본 만사나레스 엘 레알 저수지 [13:21]
 

▲ 다리에서 바라본 만사나레스 엘 레알 저수지 [13:22]
 

▲ 도로 왼쪽 보행자 도로를 따라 진행 [13:31]
 

▲ 까미노 표지석 [13:36]
 

▲ 비에호 성(Castillo Viejo) 안내문 [13:37]
 

▲ 길 건너편에 있는  비에호 성 [13:38]
 

▲ 꽃이 핀 엉겅퀴 사이로 나 있는 길 [13:47]
 

▲ 길 옆에 있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 [13:54]
 

▲ 길 오른쪽에 있는 경찰 관련 시설 [13:57]


14:02  목장 지대에 진입해서 15분 정도 걸어가자 오른쪽으로 가까이는 바위산, 멀리는 설산이 보인다. 넓은 초원 위에 바위산 여러 개가 자리하고 있는 모습, 스페인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언덕에 올라서자 마타엘피노 마을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마을 모습은 눈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런데, 마드리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진짜 없나? 오늘도 아직까지 순례자를 한 명도 못 만났다.


▲ 목장지대에 진입 [14:02]
 

▲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14:12]
 

▲ 바위산 뒤로 보이는 설산 [14:18]
 

▲ 초원 뒤에 솟아 있는 바위산 [14:24]
 

▲ 초원 뒤에 자리하고 있는 바위산들 [14:24]
 

▲ 모습을 드러낸 마타엘피노 마을 [14:27]
 

▲ 한 번 올라가 보고 싶네 [14:40]
 

▲ 까미노 표지석 [14:45]
 

▲ 분위기 좋은 길 [15:04]
 

마타엘피노 마을은 아직 멀었나? [15:14]


15:18  오늘의 목적지인 마타엘피노 마을에 진입, 제법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 자리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스피탈레로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오늘이 첫 출근이란다. 침대 여섯 개. 올해 오픈해서 그런지 깨끗하다. 접수. 침대 하나 차지하고 샤워하고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 갔더니 바는 운영하지만 식당은 8시에 문을 연다네. 배고픈데...

 

오스피탈레로가 알려주는 식료품점에 들러 돼지고기, 캔맥주, 비노 한 병을 샀다. 7.75유로. 늦은 점심으로 돼지고기를 안주삼아 캔맥주와 비노를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마드리드를 출발한 지 이틀째인데 어제오늘 아직까지 순례자를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내가 지금까지 걸었던 까미노와는 달리 마드리드 길은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길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러다가 피곤해서 그런지 깜박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8시가 조금 넘었다. 식당 오픈했겠네. 가? 귀찮다. 말어. 3일 동안 제대로 된 밥 한 끼 못 먹어 보는구나. 괜찮다. 나는 순례자니까. 일정을 또 바꿔야겠다. 원래 내일 묵을 예정이었던 세르세디야의 알베르게가 주말에는 운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용할 수가 없단다. 그래서 3km 정도 더 가면 나오는 라스 데헤사스에 있는 숙소를 이용할 예정이다. 또 잠이 들었다 11시가 넘어 깼는데 내 옆자리에 순례자 한 명이 누워 있는 게 아닌가. 마드리드 길을 다니는 사람이 있기는 있구나. 그러다 또 잠이 들었다.


● 식료품점 3.25
 식료품점 7.75
■ 11 78.3


▲ 마타엘피노 마을에 진입 [15:18]
 

▲ 공립알베르게 이정표 발견 [15:26]
 

▲ 마타엘피노 공립알베르게 [15:29]
 

▲ 오늘밤을 보낼 내 침대 [16:08]
 

▲ 동고동락을 같이 하고 있는 배낭과 신발 [16:08]
 

▲ 마타엘피노에 있는 식당 [16:10]
 

▲ 식당 메뉴는 마음에 드는 데 8시에 문을 연다네 [16:10]
 

▲ 마타엘피노에 있는 식료품점 [16:23]
 

▲ 점심 겸 저녁으로 먹은 돼지고기, 비노, 세르베사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