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마드리드 길 1
◈ 일시: 2024년 5월 1일 수요일 / 맑음
◈ 장소: 산티아고 순례길 마드리드 길 / 스페인
◈ 코스: 청주 시외버스터미널 → 인천국제공항 → 베이징 국제공항
06:00 부엔 까미노!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떠나는 날이 돌아왔다. 2017년부터 시작한 순례길 걷기는 코로나가 창궐했던 2020년부터 2022년까지를 빼고 계속 이어져 올해로 다섯 번째다. 그동안 이전 네 번에는 비교적 거리가 긴 프랑스 길, 북쪽 길, 포르투갈 길, 그리고 은의 길을 걸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는 거리가 짧은 마드리드 길, 살바도르 길, 프리미티보 길을 엮어서 걸어볼 계획이다. 이번에 걸을 순례길 총거리는 800km 정도이고 순례 기간은 5월 1일부터 6월 6일까지 37일이다. 이번으로 스페인에 있는 순례길을 거의 다 걷는 셈이기에 이번을 마지막 까미노 걷기로 생각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미리 챙겨둔 물품들로 배낭을 꾸렸다. 무게를 달아보니 대충 8kg 정도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마실 물과 음료수, 먹을 것 등을 넣으면 10kg 가까이 되겠지. 10시 조금 넘어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대충 집안 정리를 하고 배낭을 메고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37일 동안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에게 배웅을 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니, 아내는 어디로 갔어?
아내는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다. 왜? 그저께 신호 대기 중에 뒤에서 트럭이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해서 차는 그저께 공업사로 가고 아내는 어제 리치한방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밖으로 드러난 뚜렷한 외상은 없지만 머리, 목, 어깨에 경미한 이상 신호가 있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라 부득이 어제 날짜로 입원을 한 것이다. 그래서 37일 간 헤어지는 이별식은 어제 병원에서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긴 여행을 떠나기 바로 직전에 그런 일이 일어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내를 두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으니 마음이 착잡하기가 그지없다. 아내는 신경 쓰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하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육거리 버스정류장에서 814번 버스를 타고 청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간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1시 30분발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 승차권을 받아 들고 아내와 잠깐 통화를 했다. 몸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다행이네. 여보, 잘 다녀오겠소.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 제1터미널까지 가는 데에 2시간 10분이 걸린다고 하니 도착 예정 시간이 3시 40분,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 출발 시간이 5시 50분이니 탑승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 까미노 걷기에 필요한 물품들 [07:24]
▲ 까미노 걷기에 필요한 물품들 [07:24]
▲ 37일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 할 배낭 [12:00]
▲ 5년째 까미노 걷기에 사용하고 있는 배낭 [12:01]
▲ 청주시외버스터미널 도착: 인터넷으로 예매한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 승차권 [12:55]
▲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 [13:24]
15:40 정시에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리무진 버스가 도착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인천공항은 해외로 나가려는 여행객들로 엄청나게 붐비고 있었다. 지난 총선 때 어느 당 대표가 경제가 폭망 했다고 핏대를 올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폭망은 폭삭 망했다를 줄인 말로 완전히 실패했다는 뜻이다. 경제가 완전히 무너진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간단 말인가. 그렇다면, 경제가 좋아지면 국민들이 모두 해외여행을 떠나서 나라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이 별로 없겠네.
M카운터에서 보딩 패스받고, 짐검사받고, 자동출입국심사 시스템을 이용해서 체크인을 마쳤다. 보딩 게이트는 36번, 보딩 시간은 5시 10분, 좌석번호는 30K. 추측컨대, 30열 맨 오른쪽 창가 좌석인 것 같다. 탑승 대합실 도착,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슬슬 늘어나기 시작한다. 글로벌 시대답게 들려오는 언어의 종류도 다양하다. 대합실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빙고! 스마트폰을 본다. 99.9%가 스마트폰을 본다. 손바닥만 한 네모 틀 안에 이 세상 모든 게 다 들어 있으니 얼마나 볼거리가 많겠는가. 게다가 딱히 다른 마땅한 할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5시 10분 정시에 보딩이 시작되었다. 최종 목적지는 마드리드이지만 베이징에서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첫 번째 비행시간은 2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5시 5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면 7시 50분에 베이징에 도착하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의 시차가 1시간이기 때문에 7시 50분에 도착해도 베이징 현지 시각은 6시 50분이 된다. 기내에 들어가 보니, 아니 이게 뭐야! 한 열에 좌석이 여섯 개인데 K가 가운데 좌석이다. 어째 이런 일이? 사정은 이랬다. 좌석을 표시하는 알파벳이 ABC JKL로 순서가 매겨져 있었다. ABC 다음은 DEF 아닌가? 갑자기 왜 JKL이 나타난 거야. 그건 그렇다 치고, 베이징 가는 비행기에 스페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나처럼 베이징에서 환승해서 마드리드로 가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 [15:19]
▲ 출발 시간과 항공사 카운터 안내판 [15:21]
▲ M26-M30 에어 차이나 카운터 [15:27]
▲ 보딩 게이트를 찾아가는 중 [15:56]
▲ 베이징행 에어 차이나 보딩 게이트는 36 [16:02]
▲ 인천공항-베이징, 베이징-마드리드 탑승권 [16:25]
▲ 정시에 보딩 진행 중 [17:12]
▲ 탑승 통로 [17:21]
▲ 베이징행 에어 차이나 여객기 [17:25]
18:10 비행기가 하늘로 떠올랐다. 비행기 탈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이 거대한 쇳덩이가 텅 빈 것도 아니고 사람을 가득 실은 채 하늘을 날아간다는 게 영 믿기지가 않는다. 인간은 정말 위대한 존재다. 세상의 어떤 동물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었고, 어떤 동물보다 빨리 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었으며, 물 위와 물속을 다니는 배와 잠수함을 만들었다. 어떤 동물도 인간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위대한 만물의 영장인 인간보다 더 대접을 받는 동물을 인간이 만들어냈으니 그게 바로 개다. 현실을 보라. 자기 부모보다 기르는 개를 더 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개 화장장이 있는가 하면 개 장례식장도 있다. 얼마 전에 개 장례식장에 조의금함을 설치해서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자기가 기르는 개를 아끼고 보살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자기 부모를 기르는 개만큼도 취급하지 않는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요즘은 이런 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부모는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개만큼만 취급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 말은 또 어떤가.
이 개만도 못한 인간아!
사실, 이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다. 거의 욕에 가까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말이 점점 현실적으로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내 자식들이 개를 키우지 않아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내식이 나왔다. 오전 10시에 먹고 처음 먹는 곡기다. 아니, 돈 뒀다 뭐 해. 사 먹으면 될 걸 기내식 나올 때까지 왜 기다려. 내가 누군가.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에 나선 순례자가 아닌가. 순례자는 고행의 길에 나선 사람이다. 고행에는 고통이 따른다. 따라서 순례자는 고통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 고행이 아니다. 기내식으로 뭐가 나왔나 보자. 불고기 백반, 빵, 버터, 요구르트, 레드 와인 한 잔. 나에게는 순례길에 나설 때에 다짐하는 한 가지 신조가 있다. 무슨 신조? 기내식이든 식당이든 나오는 음식은 남기지 말고 싹 긁어먹자. 이번에도 그 신조를 지켰다. 배가 부르니 기분이 좋아진다. 순례길은 이렇게 고통 뒤에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그러니 어떻게 순례길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밥을 먹고 나자 비행기가 착륙을 한단다. 인천에서 베이징이 가깝기는 가깝구나. 시차 때문에 스마트폰 시계가 한 시간이 줄어들면서 현지시간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한 시간의 시차가 있는데 중국이 서쪽에 있기 때문에 1시간을 빼야 한다.
▲ 기내식: 불고기 백반, 빵, 버터, 요구르트, 레드 와인 한 잔 [18:41]
18:40 비행기가 베이징 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비행기 안은 에어컨 때문인지 쌀쌀했는데 밖으로 나오니 덥다. 꽤 덥다. 베이징이 서울보다 위도가 한참 높은데 이렇게 덥단 말인가. 환승 절차에 들어갔다. 자동 여권심사와 짐검사를 받고 보딩 게이트를 찾아간다. 보딩 패스에 게이트 번호가 없어 안내판을 찾는데 영 보이지 않는다. 안내판 찾아 삼만리. 인천공항 같으면 난리 났을 것이다. 간신히 찾아 확인해 보니 E18번이다.
일단 게이트 위치를 알아놓고 근처 스마트폰 충전기 단자가 있는 곳에 터를 잡은 후 와이파이 설정에 들어갔다. 몇 번 시도를 했는데 연결이 안 된다. 뭐야 이거. 짜증 나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언어를 영어로 바꾸어 살펴보니 이곳은 무료 와이파이를 쓰려면 로그인이 필요했다. 전화번호 로그인 방법 선택, 전화번호를 입력하니 비밀번호를 보내준다. 로그인 성공. 그런데 로그인을 하면 뭐 하나. 인터넷 속도가 완전 거북이다. 사진이나 동영상은 아예 뜰 생각조차 않는다. 완전 3G 수준이다. 인천공항 같으면 난리 났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말 잘 사는 나라다. 나라 안에서는 잘 모르지만 나라 밖으로 나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폭망 했다고 핏대를 올리던 그분이 베이징 공항의 이런 사정을 보면 과연 뭐라고 할까. 폭망보다 더 심한 표현이 뭐가 있나? 초토화, 말살, 그래 이게 좋겠다. 개박살! 졸지에 중국 경제는 개박살이 날 수도 있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공항 대합실에서 밤시간을 보내기란 고역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마드리드행 보딩 시간이 내일 오전 1시 25분이니 그때까지는 기다리는 것 외에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와이파이는 뜨는데 인터넷 연결은 잘 안 되는 희한한 베이징 공항 의자에 누워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애매한 시간만 죽인다.
▲ 베이징 공항에 도착 [19:06: 베이징 현지 시간 적용]
▲ 국제, 홍콩, 마카오, 타이완 환승 쪽으로 진행 [19:11]
▲ 환승 심사를 마치고 탑승 대합실에 진입 [19:40]
▲ 베이징 공항 탑승 대합실 풍경 [19:42]
▲ 베이징 공항 탑승 대합실 풍경 [19:45]
▲ 보딩 게이트 안내판 [19:46]
▲ 01:55 출발 마드리드행 보딩 게이트는 E18 [19:46]
▲ 베이징 공항 탑승 대합실 풍경 [19:47]
▲ 베이징 공항 탑승 대합실 풍경 [19:48]
▲ 베이징 공항 탑승 대합실 풍경 [19:49]
▲ E18 보딩 게이트 확인 [19:52]
▲ 오후 8시 30분 베이징 바깥 온도가 영상 22도 [20:33]
▲ 스마트폰 충전 장치 옆 의자에서 시간을 보낸다 [20:47]
▲ 인적이 끊어진 베이징 탑승 대합실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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