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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국내 旅行

2021.06.05. [국내旅行 140] 경기 여주 여주성당/신륵사/강천섬

by 사천거사 2021. 6. 12.

여주성당-신륵사-강천섬 탐방기

◈ 일시: 2021년 6월 5일 토요일 / 흐림, 맑음

◈ 장소: 여주성당 / 신륵사 / 강천섬 / 경기 여주

◈ 코스: 청주 → 여주성당 → 신륵사 관광지 → 강천섬 유원지 → 청주

 회원: 아내와 함께 


여주성당: 여주시 하동

 

신륵사: 여주시 천성동

 

강천섬 유원지: 여주시 강천면 강천리



10:00  경기도 동남부에는 여주시가 자리하고 있고, 강원도 태백시 금대산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북동부와 경기도 남동부를 흘러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남한강이 여주 시내를 관통한다. 오늘은 여주시 남한강변에 있는 신륵사 관광지와 강 가운데에 있는 강천섬 유원지를 다녀올 예정이다.

 

두 곳을 들르기 전에 먼저 가볼 곳이 있다. 여주성당,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에서 천주교인 124위에 대한 시복식을 거행할 때에 전대사 지정 순례지로 선포된 곳이다. 전대사가톨릭이 정한 위령의 날(11월 2일)이나 교구장이 허락한 주일에 성당에서 기도한 뒤 고해성사를 받음으로써 죄에 따른 벌까지 완전히 사함 받는 것을 말한다.

 

청주 사천동 출발,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 일반도로를 이용하여 여주시 쪽으로 달려가다 시내 가까이  온 지점에서 도로 왼쪽에 있는 막국수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으로 막국수 먹을까? 좋아요. 안으로 들어가 보니 손님이 꽤 많았다. 새싹비빔막국수에 돈수육을 주문했다. 음식 맛은 괜찮은 편이었고 막국수와 함께 나온 따끈한 육수가 인상적이었다.


▲ 청주 사천동 출발 [10:00]

 

▲ 점심을 먹은 웰빙막국수 식당: 여주시 월성동 소재 [11:41]

 

▲ 웰빙막국수 식당 메뉴 [11:42]

 

▲ 돈수육 [11:46]

 

▲ 새싹비빔막국수 [11:50]

 

▲ 맛있게 드세요 [11:51]


12:36  여주시 하동에 있는 여주성당 옆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여주성당은 본당 설립연도가 1950년이니 역사가 70년이 넘는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에서 천주교인 124위에 대한 시복식을 거행할 때에 여주 지역 출신의 순교자 아홉 명도 시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윤유일 바오로, 최창주 마르첼리노, 이중배 마르티노, 원경도 요한, 윤유오 야고보, 이현 안토니오, 정순매 바르바라, 정광수 바르나바, 최조이 바르바라가 바로 그들이다. 여주성당 경내에는 그들의 순교 정신을 기리는 자리가 한쪽에 마련되어 있었다.


여주성당

 

여주 지역은 초기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천주교 신자였던 권철신(權哲身)의 제자였던 윤유일(尹有一)이 천주교에 입교하였고 그는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선교함으로써 여주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되기 시작하였다. 윤유일은 1795년 을묘박해 때 순교하였다. 여주 지역 최초로 공소가 설립된 곳은 현재 북내면 중암리에 있었던 완장이 공소였다. 이후 여주에는 5개의 공소가 설립되었다. 여주 지역의 신자들은 서울교구청을 찾아가 신부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노기남 주교는 1950년 4월 22일 서울교구 이천 본당으로부터 분리하여 여주 천주교회 본당 설립을 인가하였다. 초대 신부로 윤병희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경기도 여주시 우암로 5(하동 215-5)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여주성당 [The Catholic Church Yeoju, 驪州聖堂] (두산백과)


▲ 천주교 여주성당 [12:36]

 

▲ 여주성당에서 운영하는 소화유치원 [12:36]

 

▲ 장미꽃에 둘러싸인 성모님 [12:37]

 

▲ 2004년 9월에 세워진 여주 순교자 현양비 [12:37]

 

▲ 성당 경내에 있는 인물상 [12:38]

 

▲ 역사가 70년이 넘은 여주성당 [12:38]

 

▲ 아홉 명의 순교 시복자를 기리는 장소 [12:39]

 

▲ 언제 어디서 보아도 아름다운 성모님 [12:40]


12:42  성당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성모님을 위한 촛불 봉헌대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 복자 123위를 그린 새벽빛을 여는 사람들이란 그림이었다. 미사를 드리는 곳에 들어서니 깔끔하면서도 안정적인 분위기로 인해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주모경을 바치고 성당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바친 순교 시복자들의 사진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성당을 떠나 두 번째 탐방장소인 신륵사 관광지를 향해 달려간다.


▲ 성모님을 위한 촛불 봉헌대 [12:42]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 복자 123위  [12:42]

 

▲ 여주성당 실내 전면 모습 [12:43]

 

▲ 여주성당 제대 [12:44]

 

▲ 여주성당 실내 후면 모습 [12:44]

 

▲ 소화유치원과 여주성당 [12:49]

 

▲ 여주성당을 떠나면서 [12:50]


13:05  신륵사 입구 공터에 차를 세우고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자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는데 외관이 거의 카페 수준이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게 뭐야! 개, 말, 침팬지가 변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조준 잘하시게. 화장실 밖에는 원더우먼과 스파이더맨이 한 자리씩을 지키고 있었다. 재미있는 화장실이네. 일주문과 불이문을 지나 신륵사 경내로 들어가자 구룡루가 반겨준다. 구룡루는 나옹선사가 아홉 마리의 용에게 항복을 받고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지었다는 전설의 누각이다. 


신륵사

 

경기도 여주시 봉미산(鳳尾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로 신라 진평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 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있는 다층전탑(多層塼塔)을 벽돌로 쌓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절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祖師堂),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보물 제228호인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1호인 석등이 있으며, 유형문화재로는 극락보전(極樂寶殿) 과 그 이외의 부속건물로 구룡루(九龍樓), 명부전(冥府殿), 시왕전(十王殿), 산신당, 육각정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륵사 [神勒寺] (두산백과)


▲ 신륵사로 가는 산책로 [13:05]

 

▲ 길 오른쪽에 있는 화장실: 거의 카페 수준이다 [13:07]

 

▲ 우리가 보고 있으니 조준 잘해! [13:08]

 

▲ 원더우먼이 있는가 하면 [13:09]

 

▲ 스파이더맨도 있다 [13:09]

 

▲ 여강길 5일 장터길 안내판 [13:10]

 

▲ 봉미산 신륵사 일주문 [13:11]

 

▲ 불이문 앞에 있는 화단에서 [13:14]


불이문

 

불이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유마거사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이 유명하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또한, 불이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불(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여기를 지나면 금당(金堂)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국보 제50호인 전라남도 영암군 서면도갑사해탈문(道岬寺解脫門)과 보물 제164호인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청평사회향문(淸平寺廻向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 건봉사 불이문 등이 있다. 이밖에 양산 통도사의 불이문은 중앙에 대들보를 쓰지 않고 코끼리와 범이 서로 머리를 받쳐 이고서 지붕의 무게를 유지하고 있는 특이한 건축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일부 사찰에서는 사천왕문 다음에 누각을 세워 이 문을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 신륵사 불이문 [13:14]

 

▲ 나옹선사와 관련된 전설이 깃들어 있는 구룡루 [13:18]


13:19  신륵사에는 보물이 7점이나 있다. 극락보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은 보물 제223호로 구름과 용무늬가 아름답고 대리석 질감이 난다. 극락보전 왼쪽에 있는 조사당은 보물 제180호로 중앙에는 지공화상, 좌우에는 무학대사와 나옹선사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볼거리는 석탑이나 건물 말고 또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향나무, 고려 말의 고승 혜근이 입적하기 전 꽂아 놓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은행나무, 그리고 수령이 600년이나 된 높이 32m의 참나무도 있다.


▲ 다층석탑 뒤로 보이는 극락보전 [13:19]

 

▲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 안내문 [13:19]

 

▲ 보물 제225호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 [13:19]

 

▲ 여주 신륵사 조사당 안내문 [13:20]

 

▲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3:21]

 

▲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향나무 앞에서 [13:21]

 

▲ 극락보전 주변에 놓여 있는 화분들 [13:22]

 

▲ 수령이 600년인 참나문 안내판 [13:24]

 

▲ 높이가 32m인 참나무의 위용 [13:25]


13:25  보물 제230호인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는 고려 말 신륵사에 대장각을 만든 후 그 내력을 새긴 것이다. 보물 제226호인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은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 전탑이다. 전탑이란 벽돌을 구워 쌓은 탑을 말한다. 신륵사 경내를 대충 둘러본 후 황포돛배 선착장에서 신륵사 앞을 흘러가는 여강을 조망한 후 오늘의 마지막 탐방장소인 강천섬을 향해 차를 몰았다.


▲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 안내문 [13:25]

 

▲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 [13:26]

 

▲ 아름다운 소나무 앞에서 잠시 휴식 [13:28]

 

▲ 보물 제226호 다층전탑 앞에서 [13:30]

 

▲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안내문 [13:32]

 

▲ 신륵사 아래를 흐르는 여강(남한강) [13:33]

 

▲ 여강 왼쪽에 자리하고 있는 공원 [13:43]

 

▲ 여강을 운행하는 황포돛배 타는 곳 [13:47]


14:19  강천섬 유원지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아, 주차장 한번 크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온단 말인가. 강천섬은 4대 강 살리기 사업 시 조성된 자연휴식지로 국토종주 자전거길, 천연 잔디광장, 은행나무 길 등 다양한 체험과 백패킹과 캠핑을 통한 힐링 장소로 인기가 높아 매년 이용객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강원도 선자령, 옹진군 굴업도와 함께 이른바 백패킹 3대 성지로 불릴 정도로 캠핑족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하지만 여주시에서는 지난 6월 1일 자로 강천섬에서의 캠핑을 전면 금지시켰다. 왜? 캠핑족들로 인한 쓰레기 투기, 음주 고성방가, 싸움, 화재 발생 등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9일에도 캠핑족이 낸 불로 큰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자업자득이다. 자신의 의무는 소홀히 하고 권리만 찾으려고 했으니 누구를 탓하랴. 앞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전국적으로 캠핑을 금지시키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를 참 슬프게 한다.

 

주차장을 떠나 강천섬으로 가는 길,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콜 체크인을 하고 강천리교를 건너 섬 안으로 들어갔다. 동서로 길쭉한 강천섬은 면적이 57만 1000㎡에 이른다. 축구장 80개 정도를 합쳐놓은 크기다. 원래 강천섬은 남한강 물이 불어날 때만 섬이었다가 4대 강 사업을 통해 완전한 하나의 섬으로 재탄생했다. 4대강 사업은 비난의 여지도 많지만 긍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그간 하천은 홍수와 가뭄 등의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하여 치수(治水)와 이수(利水)를 중심으로 관리되어 왔으나, 이제는 하천공간을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친수(親水)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국민적 요구가 증대되고 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정비 사업과 함께 발표한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에 설치된 자전거길로 국민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한 친수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 강천섬 유원지 주차장에 주차 [14:19]

 

▲ 수백 대의 차량을 세울 수 있는 주차장 [14:19]

 

▲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나란히 [14:21]

 

▲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콜 체크인 코너 [14:25]

 

▲ 강천리교를 건너기 전에 [14:26]

 

▲ 금계국 꽃밭 뒤로 보이는 남한강 [14:26]

 

▲ 강천리교를 건너 강천섬에 들어왔다 [14:28]

 

▲ 금계국꽃이 반겨주는 길 [14:29]

 

▲ 강천섬에 있는 풀밭에서 [14:35]

 

▲ 미루나무가 서 있는 산책로 [14:40]


14:42  산책로 옆에 쉬어갈 수 있는 테이블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세상은 조용하고 노란 금계국꽃 뒤로 교교히 흘러가는 강물만이 세월을 엮고 있다. 산책로를 따라 다시 걸어간다. 3km가 채 안 되는 산책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 데는 넉넉 잡아도 1시간이면 족하다. 지금 걸어가는 길은 은행나무 길, 꽤 길다. 가을에 걸으면 참 좋을 것 같다.


▲ 길 옆에 있는 휴식용 테이블에서 [14:42]

 

▲ 흑백사진도 괜찮네 [14:42]

 

▲ 요리 보고 조리 보고 [14:43]

 

▲ 미루나무 앞에서 [14:45]

 

▲ 잠시 쉬었으니 또 걸어봅시다 [14:48]

 

▲ 금계국 꽃밭 뒤로 보이는 남한강 [14:52]

 

▲ 지금은 산딸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즌 [14:58]

 

▲ 은행나무 사이로 나 있는 산책로 [15:00]

 

▲ 계속 이어지는 은행나무 산책로 [15:04]


15:05  산책로를 따라가던 중 오른쪽에 대형 건물을 짓고 있는 공사현장을 만났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을 유지한다면서 무슨 건물을 짓는 거지? 안내판을 보니 강천섬 명소화사업으로 태교 교육실, 사무실, 화장실, 소매점 등이 들어가는 필로티형 이층 건물인 마미센터를 만든단다. 마미센터? 여주→명성황후한강젖줄에 착안, 엄마와 아이가 추억으로 만들어가는 섬 Mom's Island를 의미한다나. 

 

여주에 명성황후의 생가가 있고 한강이 흐르는 것, 한강이 서울의 젖줄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다고 강천섬을 엄마와 아이를 위한 마미센터와 연관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쉽게 말해서 명성황후와 마미센터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어쨌든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워도 건물이 들어서면 자연은 파괴되기 마련이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두는 것이다.

 

한 시간 십 분 정도의 짧은 산책을 마치고 강천리교를 건너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보니 아까 주차장에 들어올 때보다 세워진 차량이 더 많아졌다. 오늘 여주성당과 신륵사 관광지, 강천섬 유원지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돌아보았지만 상관없다. 그냥 부담 없이 바람을 쐰다는 생각으로 걸었으니까. 무슨 학술 보고서나 신문 기사를 쓸 것도 아니잖아. 차에 올라 청주로 돌아오는 길,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 여름이 시작되었나 보다.


▲ 길 옆 금계국 꽃밭에서 [15:05]

 

▲ 한강 자전거길 이정표 [15:09]

 

▲ 강천섬 명소화사업 공사현황판 [15:10]

 

▲ 미루나무가 서 있는 풍경 [15:14]

 

▲ 길 옆으로 텐트가 줄 지어 나타난다: 낮 시간에만 허용 [15:15]

 

▲ 한강 살리기 6공구 기념비 [15:16]

 

▲ 강천리교를 건너가면 섬을 떠나게 된다 [15:23]

 

▲ 아까 왔을 때보다 차가 훨씬 더 늘어났다 [15:29]

 

▲ 강천섬 탐방을 마치고 주차장에 귀환 [15:30]

 

▲ 여주 여행 일정을 마치고 청주 사천동 귀환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