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도/천주교 순례길

2020.02.25. [천주교 순례길 7] 이시돌 길(2)

by 사천거사 2020. 2. 25.

천주교 순례길 / 이시돌 길(2)

◈ 일시: 2020년 2월 25일 화요일 / 흐림 비 

◈ 장소: 이시돌 길(은총의 길)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코스: 성 이시돌 센터 → 43 잃어버린 마을 → 월림리 → 조수공소 → 청수공소 → 낙천의자공원 → 

           고산성당 

◈ 거리: 23.6km 

◈ 시간: 5시간 34분


 

 

 

 

 

 

 

 

 

 


09:25   오늘은 제주도에 온 지 이틀 째 되는 날, 흐린 날씨에 비 소식까지 있어 한라산 산행은 목요일로 미루고 대신 천주교 순례길 중에서 아직 걷지 못한 이시돌 길 2코스와 3코스를 한꺼번에 걸어보기로 하고 아파트를 나섰다. 1132번 도로에 있는 반참모르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동광환승정류장으로 가는 282번 버스가 오기 전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버스정류장 주변은 봄을 맞아 피어난 꽃들이 꽤 많았다. 목련이 꽃을 피웠고 먼나무는 빨간 열매를 매달았으며 이름 모를 풀꽃들도 몇 가지 피어 있었다. 우리 삶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코로나19도 봄이 오는 것은 막지 못하는 모양이다. 잠시 후 도착한 282번 버스를 타고 동광육거리를 향해 달려갔다.


▲ 아파트 창을 통해 바라본 고군산: 날이 흐려 한라산은 보이지 않는다 [09:25]

 

▲ 1132번 도로에 있는 반참모르 버스승강장 [09:31]

 

▲ 하귤: 운향과에 속한 귤나무에서 봄부터 여름에 생산되는 귤 [09:33]

 

▲ 이름 모를  풀꽃 [09:33]

 

▲ 먼나무 열매: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교목 [09:34]

 

▲ 282번 버스를 타야 한다 [09:35]

 

▲ 봄의 전령사 목련이 꽃망울을 터드렸다 [09:38]

 

▲ 이름 모를 풀꽃 [09:39]


10:14   환승정류장이 6개나 있는 동광육거리에서 하차, 편의점에 들러 생수 한 병과 휴지 하나를 구입한 후 3번 정류장으로 갔다. 3번 정류장에서는 783-1번과 783-2번이 이시돌 센터 쪽으로 운행한다. 지난 2019년 10월 이시돌 길 1코스를 걸을 때는 버스 시간보다 너무 일찍 이곳에 도착하는 바람에 이곳에서부터 이시돌 센터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그것도 비를 맞으면서. 783-1번 버스가 도착했다. 이시돌 센터를 거쳐 한림으로 가는 버스였다.

 

버스에 올랐다. 큰 버스에 손님이 달랑 나 혼자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집콕'을 하는 모양이다. 이시돌 삼거리에서 하차, 1115번 도로를 따라 성 이시돌 센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시돌 센터로 가는 길목에서는 성 이시돌 복지의원, 성 이시돌 요양원, 성 이시돌 피정센터 등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성 이시돌 목장은 아일랜드 출신의 맥그린치 신부가 조성한 목장이다. 원래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조성한 목장이었지만 지금은 천주교 유적지로 더 알려져 있다.


▲ 동광육거리에서 하차 [10:14]

 

▲ 3번 동광환승정류장에 도착 [10:18]

 

▲ 783-1번, 783-2번 버스가 이시돌 센터 쪽으로 간다 [10:19]

 

▲ 783-1번, 783-2번 버스 시간표 [10:19]

 

▲ 783-1번 버스에 승차 [10:30]

 

▲ 이시돌 삼거리에서 하차 [10:35]

 

▲ 성 이시돌 복지의원 입구에 서 있는 조형물 [10:41]

 

▲ 도로 오른쪽 성 이시돌 요양원 [10:43]


맥그린치 신부

 

1928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맥그린치 신부는 1953년 선교의 부름을 받고 부산을 통해 한국 땅에 첫발을 디뎠다. 한국에 온 이듬해인 1954년 4월 제주 한림 본당에 부임해 제주와 인연을 시작했다. 1955년 7월 신자들과 마을 어귀 팽나무 아래 성당을 짓고 지역 주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마을주민과 함께 양돈업을 시작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인천에서 새끼를 밴 요크셔 돼지 한 마리를 사들여 한림까지 가져왔고 이 돼지는 훗날 연간 돼지 3만 마리를 생산하는 동양 최대 양돈목장의 기초이자 제주 근대 목축업의 기반이 됐다. 또 1957년 4-H 클럽을 조직해 닭과 토끼, 개량 돼지를 들여와 사육하고 무이자로 가축을 빌려주는 가축은행을 만들었다. 4-H 클럽은 이후 성이돌목장의 모태가 됐다. 1961년엔 축산업 교육과 업체 설립을 위해 손수 해외원조를 따냈고 축산 기술을 보급하기 위해 선진 기술을 도입했다. 1964년 사료공장, 1959년 한림수직 등을 설립해 지역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수익은 지역에 환원했다.

 

당시 이시돌목장을 가꾸며 임시 거처로 지은 집이 테쉬폰이다. 현재는 관광명소가 됐다. 테쉬폰은 곡선 형태의 텐트 모양과 같이 합판을 말아 지붕과 벽체의 틀을 만들어 고정한 후 틀에 억새, 시멘트 등을 덧발라 건축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지어진 집이다. 맥그린치 신부가 고향 아일랜드에서 건축 기술을 배워 1961년 4H 회원과 함께 이시돌목장의 주택인 이시도레하우스를 만든 뒤부터 1963년 이시돌목장의 사료공장, 1965년 협재성당, 1970년대 돼지우리 등을 테쉬폰 방식으로 건축했다. 제주에 근대적인 목축업과 신용협동조합 등을 처음 도입하며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집중해 온 맥그린치 신부는 지역 복지를 위해 의원과 요양병원 등을 설립해 운영했다. 그는 2018년 4월 23일 선종 전까지 성이시돌복지의원에서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헌신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2014년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2015년 아일랜드 대통령상을 받았다.


▲ 성 이시돌 센터로 가는 맥그린치로 [10:44]

 

▲ 도로 왼쪽 성 이시돌 피정의 집 [10:45]


10:47   천주교 순례길 이시돌 길의 출발 지점인 성 이시돌 센터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천주교 순례길 성 이시돌 길 걷기가 시작된다. 새미 은총의 동산 앞을 지나 성 클라라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미사를 드린 적이 있는 금악성당 앞에는 동백꽃이 활짝 피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수도원에서 벗어나면서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차도에 들어섰다. 길 옆에 피어 있는 수선화를 보면서 6분 정도 차도를 걸어가자 금원농장 입구에 서 있는 이시돌 길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성 이시돌 목장

 

이시돌목장은 아일랜드인 맥글린치(한국명 임피제) 신부님이 1954년 제주 한림지역에 부임하면서 가난한 지역민을 돕기위한 가축은행을 열면서 시작되었다. 1961년 정식으로 중앙실습목장을 열고 축산업 교육과 함께 양돈, 면양, 비육우 및 낙농사업을 펼쳤으며 현재는 경주마와 젖소를 주로 사육하여 유수의 경주마와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여 그 수익을 여러 복지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넓은 초지와 오랜 역사를 상징하는 '테쉬폰'등 근대건축물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광을 즐길 수 있고, 목장의 우유를 이용한 카페와 신앙을 주제로한 산책로와 공원 등을 방문할 수 있다. 성 이시돌목장 안에 성 이시돌 양로원, 피정센터, 젊음의 집, 새미 은총의 동산, 금악성당, 성 이시돌 어린이집, 클라라관상수녀원, 농촌산업협회 등이 함께 있으며 삼위일체대성당이 건축되는 등 목장보다는 천주교 유적지로 더 알려져 있다.


▲ 이시돌 길의 출발 지점인 성 이시돌 센터 [10:47]


새미 은총의 동산

 

새미 은총의 동산 조성은 천주교 제주교구 제3대 교구장이셨던 김창렬(金昌烈) 바오로 주교께서 ‘삼위일체이신 천주 성삼께 대한 우리 신자들의 공경과 심신을 고취시키는 방법이 무엇일까? 제주 신자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중 이시돌 목장의 금악 본당 임피제(McGlinch) 신부와 이곳이 이상적인 장소라는 의견 일치를 보아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곳을 기도와 묵상의 장소로 개발하고 1991년 10월 28일에 축성식을 거행함으로써 ‘새미 은총의 동산’이 이루어졌다.


▲ 새미 은총의 동산 입구 [10:49]

 

▲ 성 클라라 수도원 입구 [10:52]

 

▲ 빨간 동백꽃이 피었다 [10:53]

 

▲ 예전에 미사를 드린 적이 있는 금악성당 [10:53]

 

▲ 금악성당 앞에 서 있는 조형물 [10:54]

 

▲ 수도원에서 나와 차도를 따라 진행 [10:55]

 

▲ 길 옆에 피어 있는 수선화 [11:00]


11:01   천주교 순례길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했다. 1코스는 2019년 10월에 걸었기에 오늘은 차도를 건너 2코스에 들어섰다. 길 오른쪽 목장에서 말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본다. 제주도는 말이 많다고 하는 곳이지만 실제로 말을 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정상부가 안개에 싸여 있는 금악오름이 보인다. 1116번 도로를 잠깐 걸어가자 생이못 가는 길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순례길이 왼쪽으로 꺾이면서 차도를 벗어났다. 생이못은 자주 마르는 못으로 생이(새)나 먹는 못이란 뜻이다. 제주 43사건 때 금오름에 피신한 사람들이 생명수로 이용하던 못이었다고 한다.


▲ 천주교 순례길 이시돌 길 이정표 [11:01]

 

▲ 길 오른쪽 목장에서 말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11:03]

 

▲ 지금은 바야흐로 동백꽃의 계절 [11:06]

 

▲ 정상부가 안개에 싸여 있는 금악오름 [11:09]

 

▲ 1116번 도로를 만나 오른쪽으로 진행 [11:14]

 

▲ 도로 오른쪽 생이못 가는 길 이정표 [11:17]

 

▲ 제주 한림 금악마을 43길 표지기 [11:19]

 

▲ 길 왼쪽으로 보이는 라온목장 [11:20]

 

▲ 유채꽃은 역시 무리지어 피어야 보기가 좋다 [11:23]


11:24   웃동네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 도착했다. 제주 43사건 때 마을 소개령이 내려 없어진 마을이란다.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43사건, 슬픈 역사의 비극적 현장이 제주도 곳곳에 남아 있다. 웃동네를 지나자 역시 잃어버린 마을인 오소록이 마을 안내판이 나타났다. 모두가 그냥 잊히기에는 안타까운 역사적 현장들이다. 길 왼쪽으로 풍력발전기 여러 개가 옅은 안갯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주는 바람의 고장이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에서는 심심찮게 풍력발전기를 볼 수 있다.


잃어버린 마을 웃동네

 

금악리사무소를 지나 남쪽 방향으로 1㎞ 정도 올라가면 길 오른쪽으로 시멘트 소로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 다시 500m 정도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 중앙에 위치한 팽나무 아랫단에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있다. 1948년 11월에 마을 소개령이 내려진 이후 마을이 불타 없어졌는데 1949년에 이르러 무장대에 대한 대토벌이 종료되어 인근 마을이 복구되는 와중에도 당국에서는 금악마을을 계속 위험지구로 여겨 복구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53년 7월에 이르러서야 금악주민들은 마을 복구를 허락받았다.

하지만 1948년 이전에 38가호가 모여 살던 금악 웃동네(금악 상동)는 복구되지 않아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버렸다. 주민들이 본동을 재건해서 그 곳에 모여 살다보니 웃동네는 자연 폐촌이 되어버린 것이다. 금악 웃동네는 아직도 대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당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2003년에 제주 4․3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에서는 이곳에 표석을 세워 '다시는 이 땅에 4․3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표시하였다.(제주의소리 2007년 08월 16일) 당시 호주는 강안용, 김경환, 박도여, 강인선 부친, 이원송, 이승원, 김신봉, 김신학, 송창화, 송태화, 이신생, 김기학, 김태호 부친 등이다.


▲ 팽나무와 웃동네 안내판 [11:24]

 

▲ 잃어비린 마을 웃동네 안내판 [11:24]

 

▲ 길 왼쪽에 설치되어 있는 43 치유의 쌍연자방아 [11:26]

 

▲ 금악 본향 따신머들 축일 항망당 [11:28]

 

▲ 이정표와 표지와 안내판 [11:30]

 

▲ 잃어버린 마을 오소록이 동네 안내판 [11:31]

 

▲ 길 왼쪽으로 보이는 풍력발전기들 [11:32]

 

▲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 [11:37]

 

▲ 꿈꾸는 발전소: 풍력발전소를 말하는 모양이다 [11:47]


11:48   봄의 전령사인 큰개불알풀이 길 옆에  지천으로 피어 있다. 큰개불알풀은 '봄까치꽃'으로도 불리는데 꽃말은 '기쁜 소식'이다. 새로 지은 주택단지를 지나자 그리 크지 않은 묘지가 나타났다. 제주도에서는 무덤 사방을 돌담으로 쌓아 짐승들의 접근을 막는다고 한다. 1115번 도로를 건너 상명리 마을로 들어섰다. 이 마을은 문패가 아주 특이했다. 맷돌 모양의 둥근 현무암에 이름을 적어 문패로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마을만의 문패였다. 


큰개불알풀

 

우리 식물들은 대부분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지방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르기 때문인데, 더러 민망한 것도 꽤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개불알풀이다. 열매의 모양이 희한하게도 개의 불알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게 조금 더 큰 것이 큰개불알풀이다. 봄소식을 전하는 까치 같다고 해서 ‘봄까치꽃’이라고도 부른다는데, 특징을 살펴보면 차라리 큰개불알풀이 낫다 싶다. 그렇지만 서양인들은 꽃이 피었을 때 보이는 수술 2개가 꼭 눈처럼 보이는지 ‘버드 아이(bird‘s eye)’, 바로 ‘새의 눈’이라고 부른다.


▲ 길 옆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큰개불알꽃 [11:48]

 

▲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 [11:53]

 

▲ 길 오른쪽 새로 지은 주택들 [11:58]

 

▲ 길 오른쪽 제주도의 묘지 [11:59]

 

▲ 1115번 도로를 건너 상명리 마을로 진행 [12:02]

 

▲ 상명리 마을에 들어섰다 [12:09]

 

▲ 상명리 마을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문패 [12:12]

 

▲ 건물 전체가 덩굴로 뒤덮여 있다 [12:12]

 

▲ 길 옆 브로콜리밭 [12:19]

 

▲ 수확하지 않은 감귤이 그대로 달려 있다 [12:21]


12:26   길 왼쪽 매화 농장에 매화꽃이 만발했다. 지금 쯤은 육지에 있는 유명한 매화마을이나 산수유마을에도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했을 테고 따라서 한창 축제 준비에 바쁠 텐데 망할 놈의 코로나19 때문에 거의 모든 봄꽃 축제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월림리 마을에 들어섰다. 연못에 설치되어 있는 분수대 뒤로 '감귤향이 머무는 살고 싶은 월림리'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해도 말이 되나? '감귤향이 살아 있는 머물고 싶은 월림리'. 둘 다 괜찮은 것 같다.   


▲ 매화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12:26]

 

▲ 다리 건너 오른쪽으로 진행 [12:29]

 

▲ 월림리 마을에 진입 [12:37]

 

▲ 월림리 마을에 있는 안내판 [12:42]

 

▲ 월림리 마을 안내도 [12:42]

 

▲ 월림리 마을에 있는 물거리못과 분수대 [12:42]

 

▲ 물거리못 안내판 [12:43]

 

▲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진행 [12:48]


백년초

 

멕시코에서 백년초(노팔)는 손질된 잎까지 섭취하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대개 열매만 섭취한다. 그래도 국내에서도 노팔 파우더 등을 구매해볼 수 있다. 제주도 백년초의 열매는 자색으로 익으며 식용이 가능하다. 생으로도 먹지만 호불호가 좀 갈리는 맛이라 많은 부분이 가공 식품으로 팔린다. 곳곳에서 백년초 초콜릿을 팔고 있다. 제주 공항 매점에서 파는 백년초 초콜릿과 한라봉 초콜릿은 저렴하고 맛도 괜찮아서 육지에서 온 여행객이 선물로 사 가는 단골 품목이다.


▲ 길 오른쪽 백년초 재배단지 [12:49]

 

▲ 수확을 앞 둔 양배추밭 [12:50]


12:54   제주 올레길 14코스와 만났다. 이 코스는 2015년 6월에 걸은 적이 있다. 올레길 14코스와 15분 정도 함께 하던 순례길이 올레길과 헤어져 저지리 마을로 향했다. 길 옆으로 수확을 마친 자색 양배추밭이 보인다. 제주도는 높이 1950m의 한라산이 있는 하나의 섬이지만  해변 쪽으로는 넓은 평지가 많이 발달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높은 산이 있고, 넓은 평지가 있고, 넓은 바다가 있는 곳이 바로 제주도다. 저지리 마을을 지나 1115번 도로에 들어섰다.


▲ 올레길 14코스와 만났다 [12:54]

 

▲ 올레길 14코스를 따라 진행 [12:54]

 

▲ 동백꽃이 활짝 피었다 [13:01]

 

▲ 올레길 14코스를 따라 계속 걸어간다 [13:06]

 

▲ 올레길 14코스와 헤어지는 지점 [13:09]

 

▲ 자색 양배추밭 [13:11]

 

▲ 저지리 마을에 진입 [13:15]

 

▲ 1115번 도로에 있는 저지리 수동 버스정류장 [13:19]

 

▲ 1115번 도로 옆에 서 있는 조수1리 마을 표지석 [13:20]

 

▲ 도로 건너편 맛있는 참세상 식당 [13:23]


13:24   길 옆 담장에 장미가 꽃을 피웠다. 하긴 1월에 개나리가 피는 세상인데 2월에 장미가 피는 게 무슨 대수랴. 이시돌 길 2코스가 끝나는 지점인 신창성당 조수공소에 들렀다. 아담한 성당 건물이 참 보기에 좋다. 시간도 그렇고 해서 성당 입구에 서서 빵과 요구르트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행동식으로는 빵이 최고다. 농경지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졌다. 봄을 맞아 한창 작물의 성장이 진행되고 있는 무밭과 마늘밭이 보인다. 제주는 일 년 내내 농작물이 자라는 곳이다.


▲ 2월말에 장미가 꽃을 피웠다 [13:24]

 

▲ 도로 건너편 농산물 무인판매장 '농부의 아침': 지금도 운영하나? [13:26]

 

▲ 조수공소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13:30]

 

▲ 신창성당 조수공소 건물 [13:30]

 

▲ 공소 현관 옆에서 빵과 요구르트로 점심을 먹고 [13:32]

 

▲ 신창성당 조수공소 전경 [13:41]

 

▲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 [13:49]

 

▲ 길 오른쪽 무밭 [13:51]

 

▲ 길 왼쪽 마늘밭 [13:54]

 

▲ 올레길 13코스와 만났다 곧 헤어졌다 [13:57]


14:04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간다. 오늘 걷는 코스에는 흙길이 없나? 아니었다. 잠시 후 흙길이 나타났고 아주 잠깐 흙길을 걸었다. 길 옆에 있는 감귤농장 귤나무에 수확을 하지 않은 귤이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뭐지? 만생종인가? 아니면 수확을 포기했나? 1136번 도로에 들어서서 조금 걸어가자 오른쪽에 고산성당 청수공소가 있어 잠시 들렀더니... 산골 메기가 쏜다고 명색은 공소지만 규모가 본당 못지않았고 성당 건물도 무척 아름다웠다.


▲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 [14:04]

 

▲ 길 옆에 피어 있는 마가렛꽃 [14:07]

 

▲ 비포장 흙길을 따라 잠시 진행 [14:10]

 

▲ 금귤 나무를 만났다 [14:16]

 

▲ 수확하지 않은 감귤밭 [14:21]

 

▲ 1136번 도로에 진입 [14:24]

 

▲ 1136번 도로변에 있는 고산성당 청수공소 입구 [14:25]

 

▲ 청수공소 성모 마리아상 [14:27]

 

▲ 현무암으로 만든 십자가 [14:27]

 

▲ 외관이 아름다운 청수공소 건물 [14:28]


14:32   청수리 사거리에서 왕복 2차로 차도를 따라 낙천리 마을 쪽으로 간다. 길 옆 카페 벽에 '쇠 잡아먹고 배로 밭을 갈아'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나중에 알아보니, 송당 본향당과 관련이 있는 소천국과 금백주의 신화적인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천국이 밭을 가는데 세 신선이 길을 가다가 배가 고프니 밥을 좀 달라고 했다. 소천국이 길마 앞에 밥이 있다고 하자 세 신선이 밥 아홉 동이, 국 아홉 동이를 모두 먹고 가버렸다. 소천국은 신선들이 한 동이나 먹었겠지 하고 보니 다 먹어 버리고 없었다. 소천국은 배가 고파서 밭 갈던 소를 잡아 구워 먹었다. 그래도 양이 안 차서 검은 암소 한 마리를 더 잡아먹었다. 그리고 쟁기를 쇠가죽으로 묶어 배에 대고 밭을 갈고 있었다. 금백주가 아기를 안고 업고 밭에 와 보니 소천국이 뱃가죽으로 땅을 갈고 있었다. 백주님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하자 소천국이 이러저러하게 되었다고 설명을 했다. 금백주가 소천국에게 욕을 하자 부부가 싸움을 하여 갈라서게 되었다. 금백주는 화가 나서 바람목 윗송당으로 올라 살고, 소천국은 할 수 없이 오백장군 오백서 딸을 작은 부인 삼아 아래 송당으로 내려 살았다.


송당 본향당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9-1호. 이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으로 당오름[堂岳]에 있는데, 자그마한 당집이 지어져 있고, 당집 안에는 신앙민들이 바친 신의(神衣)·가락지·목걸이 등이 궤 속에 보관되어 있다. 제일(祭日)은 음력 1월 13일에 대제(大祭), 2월 13일에 영등손맞이, 7월 13일에 마불림제, 10월 13일에 시만국대제를 지내는데, 이들 제일 때에 신의를 내걸어 굿을 한다. 이 마을은 본래 웃손당[上松堂]·샛손당[中松堂]·알손당[下松堂]의 3개 동네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웃손당신은 금백주(여신), 샛손당신은 세명주(여신), 알손당신은 소천국(남신)이라 한다. 

 

이 소천국과 금백주가 혼인하여 아들 18명, 딸 28명을 낳고 그 아래 손자들이 번성하였는데, 이 자손들이 제주도의 각 마을에 흩어져 각각 본향당신이 되었다. 따라서, 손당신은 제주도 본향당의 조종(祖宗)인 셈이다. 이 당의 본풀이에 의하면 소천국은 알손당의 고부니물에서 솟아나고, 금백주는 강남 천자국에서 솟아났는데, 금백주가 소천국을 찾아와 부부가 되어 아들딸을 많이 낳았다. 한 아들이 불효한 짓을 하므로 죽으라고 돌함에 담아 바다에 띄워버렸는데, 아들은 동해용왕국에 들어가 용왕의 막내딸과 결혼하고 돌아왔다. 죽이려 한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부모는 겁이 나 도망가다가 고부니물과 당오름에서 각각 죽어 당신이 되었다고 한다.


▲ 청수리 사거리 교차로 [14:32]

 

▲ 낙천리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 진행 [14:36]

 

▲ 동백나무 한 그루 전체가 꽃으로 덮여 있다 [14:40]

 

▲ 낙천리 아홉굿 마을 표지석 [14:44]

 

▲ 카페 벽에 '쇠 잡아 먹고 배로 밭을 갈아'라고 적혀 있다 [14:53]

 

▲ 낙천리 마을 삼거리 갈림길 지점에 도착: 낙천의자공원 쪽으로 진행 [14:53]

 

▲ 올레길 13코스와 또 만났다 [14:54]

 

▲ 도로 오른쪽 연못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대형 의자 [14:56]

 

▲ 낙천리 설촌 유래 안내문 [14:57]

 

▲ 낙천리 마을 표지석 [14:58]


14:58   아홉굿 의자마을에 있는 낙천의자공원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발걸음을 돌렸다. 2015년 6월 올레길 13코스를 걸을 때 들른 적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방문을 생략한 것이다. 낙천의자마을 표지석이 중앙에 서 있는 원형교차로를 지나 마을길을 이어갔다. 길 옆에서 반겨주는 유채꽃과 매화꽃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왕복 2차로의 차도와 연결되었다. 이제부터는 새로 포장을 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한다. 잔뜩 흐려 있던 하늘에서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산을 펴 들었다.


아홉굿 의자마을

 

한경면 낙천리에 위치한 아홉굿마을은 '의자마을'로 유명하다. 무려 1000개의 의자 조형물이 마을 곳곳을 수놓고 있다. 16m에 달하는 걸리버 의자부터 삼각퍼즐 의자, 해바라기 의자, 소 여물통 의자 등 각양각색의 의자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입이 떡 벌어진다. 아이들과 숨은 의자 찾기 놀이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똥꼬에 불침', '왜 사냐고 묻거든 앉지요' 등 의자마다 붙어있는 이름은 웃음을 자아낸다. 마을 이름의 유래도 재미있다. 아홉굿마을은 제주에 처음 대장간이 생긴 곳이다. 당시에 틀을 만드는 데 필요한 흙을 파내다 보니 아홉 개의 웅덩이(굿)가 생겼다. 그래서 '아홉굿'이 되었다. '어린이놀이터', '마을숲길', 벽화가 그려진 '신화의 거리' 등이 조성되어 있어 즐길거리도 많다.


▲ 아홉굿 = 나인 굿 [14:58]

 

▲ 아홉굿 의자마을 종합 안내도 [15:00]

 

▲ 낙천의자공원 입구에 서 있는 표지판 [15:02]

 

▲ 낙천의자공원 대화합문 [15:02]

 

▲ 낙천의자공원에 있는 다양한 의자들 [15:03]

 

▲ 중앙에 '낙천의자마을' 표지석이 서 있는 원형교차로 [15:08]

 

▲ 유채꽃이 양쪽으로 피어 있는 길 [15:16]

 

▲ 매화꽃이 만발했다 [15:19]

 

▲ 아스팔트 차도에 들어섰다 [15:28]

 

▲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계속 진행 [15:34]


15:42   원형교차로가 있는 고산리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 고산리 표지석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진행을 했는데 천주교 순례길 표지가 보이지 않는다. 어허, 길을 놓쳤네. 상관없다. 그냥 도로를 따라 목적지인 고산성당까지 가면 되니까. 고산리 입구에서 고산성당까지 가는 데에는 딱 40분이 걸렸다. 성당 앞에 도착하자마자 도로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서귀포터미널로 가는 202번 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뛰어! 버스에 오른 후 1시간 정도 달려 반참모르 버스정류장에서 하차, 이렇게 해서 23.6km에 달하는 이시돌 길 2코스와 3코스를 걷기는 무사히 끝이 났다.   


▲ 원형교차로 옆에 있는 고산리 마을 표지석 [15:42]

 

▲ 길 오른쪽 고산 넓은들 영농조합 법인 집하장 [15:51]

 

▲ 길 왼쪽으로 보이는 요양원: 원불교 한경교당에서 운영 [16:03]

 

▲ 1132번 도로가 지나가는 고산1교차로 [16:07]

 

▲ 고산리 마을에 도착 [16:15]

 

▲ 길 오른쪽으로 보이는 당산봉 [16:18]

 

▲ 천주교 순례길 표지를 다시 만났다 [16:20]

 

▲ 고산성당 입구에 서 있는 천주교 순례길 안내도 [16:22]

 

▲ 반참모르 버스정류장에서 하차: 해가 구름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17:33]

 

▲ 천주교 순례길 걷기를 마치고 아파트에 귀환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