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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남山行記

2019.10.15. [충남山行記 128] 대전 중구 안산→천비산

by 사천거사 2019. 10. 15.

안산-천비산 산행기

◈ 일시: 2019년 10월 15일 화요일 / 맑음

◈ 장소: 안산 264m / 천비산 465.6m / 충남 금산-대전 중구

◈ 코스: 대전청소년수련마을 주차장 → 안산 → 천비산 → 4봉 → 3봉 → 2봉 → 느네미고개 → 

           신채호 생가지 → 수련마을 주차장

◈ 거리: 18.5km

◈ 시간: 5시간 26분


 

 

 

 


09:20   오늘은 충남 금산과 대전 중구에 걸쳐 있는 산줄기 하나를 걸어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안산과 천비산이 솟아 있는 이 산줄기는 대전과 충남의 경계이기도 하다. 청주 아파트 출발, 서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남쪽을 향해 달리다 안영나들목에서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를 벗어난 후 산행 들머리가 있는 대전청소년수련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요즘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지속되어 있어 오늘도 산행하기에 날씨가 안성맞춤일 것 같다.

 

오늘은 수련마을에 들어온 단체가 없는지 사방이 조용하다. 대강당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등산로 안내도와 이정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정상 방향으로 잠시 걸어가자 안산과 천비산 가는 길 이정표가 나타났다. 길은 대체로 잘 나 있는 편이었다. 혼자 호젓하게 아무런 부담 없이 경사가 별로 없는 산길을 걸어가는 기분이 그만이다. 이렇게 혼자 걸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런 생각도 없다. 무념무상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 청주 아파트 출발 [09:21]

 

▲ 대전청소년수련마을 생활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41]

 

▲ 수련마을 수련시설 앞에 서 있는 안내판 [10:45]

 

▲ 여기서 정상은 안산 정상을 말한다 [10:47]

 

▲ 안산과 천비산 등산로 안내도 [10:47]

 

▲ 지금은 꽃향유가 피는 철 [10:48]

 

▲ 안산과 천비산 가는 길 이정표 [10:51]

 

▲ 걷기 좋은 능선길 [10:56]

 

▲ 여기도 걷기에 좋은 길 [11:02]

 

▲ 안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길 [11:06]


11:11   해발 264m의 안산 정상에 올랐다. 삼각점이 박혀 있는 정상에 별 다른 표지는 없고 이정표에 매달린 코팅지가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안산 정상을 떠나 천비산으로 가는 길, 철 모르는 진달래가 꽃을 피웠다. 요즘 날씨가 봄 날씨와 비슷하다 보니 착각을 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년 봄에는 저 진달래나무에 꽃이 피는 건가 안 피는 건가? 몹시 궁금하네. 능선에서 갈라지는 길이 몇 번 나타나지만 이정표가 가리키는 천비산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 해발고도 264m 삼각점 표지판 [11:11]

 

▲ 안산 정상에 박혀 있는 삼각점 [11:11]

 

▲ 안산 정상에 서 있는 이정표: 천비산 쪽으로 진행 [11:12]

 

▲ 고압선 철탑 아래를 통과 [11:18]

 

▲ 길 옆에서 구절초꽃이 반겨준다 [11:21]

 

▲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통나무 계단길 [11:24]

 

▲ 철 모르는 진달래가 꽃을 피웠다 [11:31]

 

▲ 지량리 갈림길 이정표: 천비산 쪽으로 진행 [11:32]

 

▲ 천비산 2km 전 이정표 [11:35]

 

▲ 정생동 갈림길 이정표: 천비산 쪽으로 진행 [11:38]


11:43   오늘 걷는 길은 대부분이 흙길인데 모처럼 커다란 바위들이 널려 있는 곳을 만났다. 30분 넘게 통나무 계단길과 경사가 약한 오르막길을 걸어 마침내 천빈산 정상에 올랐다. 해발 465.5m의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고 '대충산사'에서 제작한 정상 표지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마침 정상 바로 아래에 벤치가 있어 시간도 그렇고 해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오늘 점심 메뉴는 빵과 대추 몇 알, 그리고 우유였다. 그 흔한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산속은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아주 조용하다.


▲ 모처럼 만난 바위들 [11:43]

 

▲ 간혹 나타나는 표지기가 길을 안내한다 [11:48]

 

▲ 통나무 오르막 계단길 [11:53]

 

▲ 잠시 길이 평탄해지는가 했더니 [11:58]

 

▲ 다시 긴 통나무 계단길이 이어졌다 [12:01]

 

▲ 천비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12:08]

 

▲ 해발 465.6m 천비산 정상 표지판 [12:15]

 

▲ 천비산 정상에 박혀 있는 삼각점 [12:16]

 

▲ 천비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벤치에서 점심을 먹고 [12:18]


12:35   맛있게 점심을 먹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느네미고개 쪽으로 간다. 10분 후, 통나무 계단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산악오토바이 한 대가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길 옆에는 '산악오토바이 출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도대체 하지 말라는 일을 왜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길이 패이건 말건 나무뿌리가 부서지건 말건 나만 좋으면 된단 말인가.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자.


▲ 점심 먹고 출발: 느네미고개 쪽으로 진행 [12:35]

 

▲ 경사가 조금 있는 내리막길 [12:40]

 

▲ 4거리 갈림길 지점 이정표: 신대리와 중암사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12:44]

 

▲ 산악오토바이 출입금지 현수막이 보인다 [12:46]

 

▲ 산악오토바이가 다닌 흔적이 뚜렷하다 [12:55]

 

▲ 지금 걷고 있는 길은 대전시경계 [12:58]

 

▲ 철 모르는 진달래가 꽃을 활짝 피웠다 [13:04]

 

▲ 농장 안 은행나무 군락지 [13:09]


산부추

 

다년생 초본으로 인경이나 종자로 번식한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이나 들에서 자란다. 인경은 길이 2cm 정도의 난상 피침형으로 마른 잎집으로 쌓여 있고 외피는 약간 두꺼우며 갈색이 돈다. 단면이 삼각형인 잎은 지름 2~5mm 정도로 2~3개가 비스듬히 위로 퍼지고 흰빛이 도는 녹색이며 생육 중에는 갈색을 띠는 분백색이기도 하다. 8~9월에 개화하며 화경은 길이 30~60cm 정도이고 끝에 산형꽃차례로 홍자색의 꽃이 많이 달린다. ‘한라부추’와 다르게 소화경의 길이는 10~15mm 정도이다. 봄에 잎이 연할 때 생으로 초장에 먹거나 삶아서 나물로 먹는다. 또는 장아찌를 만들어 먹기도 하며 겉절이 또는 된장찌개에도 넣는다. 어릴 때에는 인경과 연한 부분을 식용하며 공업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 산부추꽃이 피었네 [13:13]

 

▲ 아직 구절초도 피어 있고 [13:13]


13:14   길 왼쪽으로 대전과학기술대학교 연수원 건물이 보이고 연수원에서 올라오는 길도 보인다. 23분 동안 이어진 오르막길이 끝나면서 도착한 곳은 해발 432m의 제4봉 정상, 대전과학기술대학교의 개명 전 이름인 혜천대학교 연수원에서 세운 이정표를 보니 연수원에서 이 산길을 수련활동 코스로 이용하는 것 같다. 제4봉에서 200m 떨어져 있는 해발 439m의 제3봉 정상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었다. 제3봉에서 300m 떨어져 있는 해발 387m의 제2봉을 지나 역시 300m 떨어져 있는 제1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길 왼쪽으로 대전과학기술대학교 홍은연수원 건물이 보인다 [13:14]

 

▲ 길이 조금 흐릿하다 [13:19]


투구꽃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숙근성 여러해살이풀. 아시아와 유럽이 원산지이다. 한국에서는 속리산 이북에 분포한다. 잎은 어긋나고 줄기는 곧게 자란다. 뿌리는 마늘쪽 같은 모양에 잔뿌리가 있다. 산지에 자생하는 야생화이지만 자주색이나 보라색으로 피는 꽃이 아름다워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뿌리는 냉증, 신경통, 두통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이지만, 맹독성분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가의 처방에 따라 복용해야 한다.


▲ 투구꽃이 활짝 피었네 [13:20]

 

▲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오르막길 [13:26]

 

▲ 고인이 된 산꾼 백계남 씨의 표지기 [13:29]

 

▲ 해발 432m 제4봉 정상 표지판: 혜천대학교는 대전과학기술대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13:37]

 

▲ 해발 439m 제3봉 정상 표지판 [14:42]

 

▲ 제3봉에 박혀 있는 삼각점 [14:43]

 

▲ 해발 387m 제2봉 정상 표지판 [14:45]


13:52   아무런 표지도 없는 제1봉에 지나 본격적인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16분 후, 산길을 마감하고 2차로 차도에 내려서는 것으로 산길 걷기는 모두 끝이 났고 이제부터는 도로를 따라 수련원 주차장까지 걸어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마침 버스정류장이 있어 살펴보니 대전시 중구 어남동이었다. 문화재자료 제53호인 재실 귀후재와 권이진의 묘역 앞을 지나 차도를 따라 걸어간다. 그 차도는 대전콘크리트 공장을 오가는 트럭 외에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도로였다.


▲ 아무런 표지도 없는 제1봉 [13:52]

 

▲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길 [14:01]

 

▲ 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쳐박혀 있는 천비산 4.5km 이정표 [14:08]

 

▲ 산길을 마감하고 차도에 내려섰다 [14:10]

 

▲ 어남동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32번 시내버스 시간표 [14:12]


권이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정(子定), 호는 유회당(有懷堂)·수만헌(收漫軒). 공주 출신. 예조좌랑 권득기(權得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윤(右尹) 권시(權諰), 아버지는 현감 권유(權惟), 어머니는 산림(山林) 송시열(宋時烈)의 딸이다. 윤증(尹拯)의 문인이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율봉역(栗峰驛)·김천역(金泉驛)의 찰방을 거쳐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 뒤 1706년에는 정언(正言)을 역임했다.

 

1695년 함평현령(咸平縣令)·전라도도사, 정언·홍문관수찬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때 김춘택(金春澤)의 전횡을 방관한 죄로 파직되었다. 이어서 1698년 설서, 이듬해 지평을 거쳐 1701년에 사서가 되었고, 부수찬을 거쳐 1710년 동래부사를 역임했다. 당론으로 인해 벼슬길이 순탄하지 못했으나, 1721년(경종 1) 좌의정 이광좌(李光佐)의 천거로 승지에 올랐으며, 이듬해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28년(영조 4)에는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수습한 공으로 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이해 호조판서가 되어 궁중에서 민간의 전답을 매입하지 말 것과 공물을 정액 이상으로 거두지 말 것 등을 건의했다.

 

1731년 공조판서가 되어 산릉제조(山陵提調)를 겸임하면서 천릉(遷陵: 능을 옮김)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 뒤 1733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해, 국경을 넘어와 위원군(渭原郡)에 숨어 살던 청나라 사람들의 체포를 건의하는 장계를 올렸다. 글씨에도 능했으며, 사람됨이 무실(務實) 강직했다. 저서로는 『유회당집』이 있다. 시호는 공민(恭敏)이다.


▲ 권이진의 묘역 가는 길 이정표 [14:14]

 

▲ 문화재자료 제53호인 재실 귀후재와 권이진의 묘가 보인다 [14:15]


산국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지역에 분포한다. 줄기는 곧추서며, 위쪽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높이 100-150cm다. 잎은 어긋나며, 줄기 아래쪽 잎은 넓은 난형, 5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갈래는 난형 또는 피침형, 끝이 둔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잎 양면은 짧은 털이 난다. 꽃은 9-11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서 머리모양꽃이 모여서 산형꽃차례처럼 달리며, 노란색, 향기가 좋다. 열매는 수과이다. 들국화라고도 한다.


▲ 지금은 산국이 피는 계절 [14:18]

 

▲ 도로 왼쪽 대전콘크리트 공장 [14:26]


14:33   길 옆에 서 있는 대전사이언스 마라톤 거리 표지판이 보인다. 지금 걷는 길이 마라톤 코스로 이용되는 모양이다. 10분 후,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오른쪽에 있다는 표지판이 있어 들러보기로 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선행이 태어나 여덟 살까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생가지를 둘러본 후 다시 차도로 돌아와 조금 걸어가니 왼쪽으로 대전과학기술대학교 홍은연수원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아까 산 능선에서 내려다본 바로 그 연수원이다.


▲ 대전사이언스 마라톤 거리 표지판 [14:33]

 

▲ 차도를 따라 계속 진행 [14:38]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선생이 태어나 8세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선생은 이곳 도리미 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충북 청원으로 이사를 하였다. 19세 때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여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을사조약 후 일제(日帝)의 식민통치에 맞서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운동과 민족의식고취를 위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항일비밀단체인 신민회(新民會) 사건에 연루되어 1910년에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 독립활동을 전개하였다. 선생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여순(旅順)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57세 되던 해인 1936년 2월 21일 옥사(獄死)하였다.


▲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안내판 [14:46]

 

▲ 단재 신채로 생가지 안내문 [14:48]

 

▲ 복원된 신채호 선생 생가 [14:49]

 

▲ 단재 신채호 선행 동상 [14:50]

 

▲ 대전과학기술대학교 홍은연수원 가는 길이 왼쪽으로 나 있다 [14:55]

 

▲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도로 [15:01]

 

▲ 차도를 따라 계속 진행 [15:09]


15:13   정생2리 경로당을 지나 조금 걸어가다 중구화훼단지로 이어지는 왼쪽 갈림길에 진입했다. 차도에서 벗어나 마을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일단 오가는 차량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어 좋다. 정생천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정생마을을 지난 후 정생천 왼쪽을 따라 나 있는 제방길에 들어섰다. 20분 정도 포장이 되어 있는 제방길을 유유자적 걸어 도착한 곳은? 막다른 길이었다. 제방길에서 수련원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을 것으로 보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수련원 주차장이 왼쪽에 있는 산줄기 너머에 있으니 산줄기에 올라서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방법이 없다. 길이 없으니 만들어야 한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 사면을 7분 정도 걸어 산줄기 위에 올라섰더니 제법 뚜렷한 길이 나 있었다. 아이고, 살았네. 산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니 수련원에서 운영하는 서바이벌 게임장이 나왔다 차를 세워둔 수련원 주차장은 게임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차에 올라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청주로 돌아온 시각이 5시 20분, 이렇게 해서 충남 금산과 대전 중구에 걸쳐 있는 안산과 천비산 연계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났다.


▲ 도로 왼쪽 정생2리 경로당 [15:13]

 

▲ 중구 화훼생산단지로 이어지는 왼쪽 길에 진입 [15:17]

 

▲ 대전광역시 중구 화훼생산단지 [15:19]

 

▲ 정생천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간다 [15:23]

 

▲ 제방길 오른쪽을 흘러가는 정생천 [15:38]

 

▲ 제방길의 끝은 막다른 길이었다 [15:51]

 

▲ 왼쪽에 있는 산줄기로 올라가기 위해 길을 개척 [15:52]

 

▲ 능선에 오르니 제법 뚜렷한 길이 나타났다 [15:59]

 

▲ 서바이벌 게임장 입구 통과 [16:03]

 

▲ 차를 세워둔 수련원 생활관 주차장에 귀환 [1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