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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 길

2017.04.15. [산티아고 순례길 3] 생 장 피에 드 포르→론세스바예스

by 사천거사 2017. 4. 15.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3

 

일시: 2017년 4 15일 토요일 봄비가 오락가락 흐림 안개

장소: 산티아고 순례길 864.6km 스페인

 코스: 생 장 피에 드 포르 → 운토 → 오리손 → 콜라도 데 벤타르테아 → 콜 데 레포에데르  론세스바예스

 거리: 24.9km  걸은 거리 24.9km  걸을 거리 839.7km

 시간: 6시간 16분

 회원: 5




05:00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첫 날이 밝았다. 지난 밤 정신없이 자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는데 시계를 보니 밤 2시다. 한국시각으로 9시,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 모양이다. 이거 큰 일 났네. 몸을 뒤척이기만 해도 그 소리가 온 방안에 울려퍼진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송장처럼 누운 채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잠을 자는 게 상책인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영혼은 한없이 자유로운데 육체는 완전히 속박된 상태다.


까미노에는 억지와 억제가 공존한다. 발과 다리가 아프고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찍어눌러도 억지로 걸어야 하고, 내일 잘 걷기 위해서 먹기 싫어도 오늘 억지로 먹어야 하고, 밤에는 억지로라도 잠을 자야 한다. 한편, 내일 잘 걷기 위해서 오늘 더 걷고 싶은 마음을 억제해야 하고, 알베르게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만을 위한 행동은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알베르게 생활에서 배우는 두 가지 좋은 점은 바로 자제와 배려다. 행동의 초점을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어야 하는 곳이 바로 알베르게다.


3시 30분, 아래층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 알베르게 출입문을 열려고 하는데 열리지 않는다. 뭐지? 안에서 출입문이 자동으로 잠귄 것이었다. 이런! 순간 당황했으나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 고리를 이리저리 돌리니 열린다. 그것 참. 침대로 돌아와 누웠으나 잠이 올리 만무, 침낭으로 휴대전화 불빛을 가리고 이 글을 쓰고 있다. 5시 20분 쯤 일어나 손전등을 켜고 부시럭거리며 배낭을 꾸린 후 밖으로 나오려는데 나이 지긋한 남자 한 분이 우리를 불렀다. 왜 그러시나?


그분 말씀 인즉, 이곳은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곳이다. 다른 사람이 잠들어 있는데 휴대전화나 손전등 같은 불빛을 비추거나 시끄럽게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알베르게 생활에 익숙치 못한 우리가 저지른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잠을 방해해서 대단히 미안하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괜찮다.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 알베르게 생활 첫 날, 따끔한 충고와 함께 자제와 배려라는 아주 소중한 것을 배웠다. 


알베르게 식당으로 갔다. 바게트 빵과 버터, 잼이 식탁에 차려져 있고 나이 지긋한 여성 자원봉사자 한 분이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공립 알베르게는 대부분이 자원봉사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먹고 약간의 기부금을 낸 후 알베르게 밖으로 나왔다. 6시 22분, 화이팅을 외치고 864.6km의 까미노 걷기 대장정의 첫 발을 내디뎠다. 가슴이 벅차다. 서로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스페인 문 쪽으로 내려가다 마침 올라오고 있는 사람한테서 또 지적을 당했다. 지금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으니 조용히 가라는 제스쳐였다. 그렇네. 미안합니다.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길, 이정표가 잘 보이지 않지만 앞서 가는 사람들이 있어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가는 비가 솔솔 뿌리기 시작했다. 비옷을 입을 정도는 아니라서 배낭 커버만 씌우고 계속 걸어갔다. 이정표에 해발고도가 183m라고 적혀 있다. 오늘 넘어가는 피레네 산맥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 해발 1450m이니 수치상으로 1267m 높이의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무려 20km에 걸쳐 그 높이를 올라가면 되니까. 비가 조금씩 내리는 새벽 공기가 무척 상쾌하다.


▲ 아침 일찍부터 자원봉사자가 커피를 끓이고 있다 [05:40]


▲ 알베르게 식당에서 바게트 빵과 버터, 잼, 커피로 아침식사 [05:41]


▲ 이번 까미노 걷기에 참가한 동서 부부 [05:51]


▲ 알베르게 밖으로 나오니 어둠 속에 불빛만 보이고 [06:16]


▲ 생 장 시내를 걸어가고 있는 팀원들 [06:28]


▲ 이정표에 론세스바예스까지 24.3km라고 적혀 있다 [06:38]


▲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까지는 14.8km 거리 [06:51]


▲ 해발 311m 고도표 [07:10]


▲ 날이 꽤 밝았다 [07:15]


07:16   오리손 5km 전 이정표를 지났다. 피레네 산맥으로 올라가는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생 장에서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페르토 데 시싸(Puerto de Ciza) 길이고, 다른 하나는 발카를로스(Valcarlos)를 통해 이바네타(Ibaneta)로 이어지는 길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길은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용하지만, 눈이 많이 쌓인 겨울이나 기상이 좋지 않을 때는 안전을 위해 차도가 대부분인 발카를로스 경유 까미노를 걷는 게 좋다.


까미노 오른쪽으로 양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목장이 펼쳐져 있다. 유럽의 전형적인 목가적 풍경이다. 알베르게가 있는 운토 마을을 지나자 길이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왼쪽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울타리가 쳐져 있는 목장 사이로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제법 경사가 있다.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 한 마리가 보인다. 그 모습이 외롭다기 보다 평화롭게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눈을 드니, 멀리 보이는 산허리에 구름이 걸려 있는 게 보였다. 평화롭다. 주변 모두가 평화롭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나도 평화롭다.  


피레네 산맥


동쪽의 지중해 해안으로부터 서쪽 대서양의 비스케이 만까지 약 430㎞ 뻗어 있으며, 꼭대기가 평평한 대산괴와 습곡 산맥으로 이루어졌다. 오래된 산계가 지질학적으로 소생된 것을 보여주는 피레네 산맥은 북쪽으로는 프랑스, 남쪽으로는 스페인을 가르는 높은 장벽을 형성한다. 이 산계의 산마루가 양국의 경계가 되고 있으며, 작은 자치 공국인 안도라가 산의 정상들 사이에 있다. 피레네 산맥 중심부의 최대 너비는 160㎞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중앙부의 약 2,700m 높이의 산들 가운데 최고봉인 아네토 산(3,404m)이 있다. 산맥이 동쪽과 서쪽으로 연장되면서 급경사가 동쪽 부분에서 심하다.


피레네 산맥 중앙부에는 가파른 경사면에 있는 골짜기·권곡·빙하호 등을 포함해 제4기의 빙하작용을 보여주는 광범위한 증거가 많다. 피레네 산맥의 북쪽과 서쪽 지방이 남쪽 및 동쪽 지방에 비해 강우량도 더 많고 규칙적이다. 서쪽의 골짜기에는 옥수수·곡물·과일 등이 재배되고, 동쪽 골짜기에서는 올리브·포도 재배가 흔하다. 피레네 산맥 중앙부는 지중해 및 대서양 기후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그곳의 산간 골짜기 길고 혹독한 겨울을 맞으며, 계절별 육우 방목에 주로 종사한다.


▲ 오리손 5km 전 이정표 [07:16]


▲ 목장 사이로 나 있는 까미노 [07:22]


▲ 까미노를 걷고 있는 순례자들 [07:23]


▲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 떼 [07:26]


▲ 운토(Hunto)에 있는 알베르게 [07:42]


▲ 포장도로에서 왼쪽 오솔길로 [07:48]


▲ 목장 사이로 올라가는 길: 경사가 조금 심하다 [07:53]


▲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 한 마리가 무척 평화롭게 보인다 [07:56]


▲ 드문 드문 집들이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 [08:03]


08:04   다시 포장도로에 진입했다. 그리 심하지 않은 오르막 경사의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졌다. 길 오른쪽 언덕에 'KEEP GOING'이라고 적힌 문구가 보인다. '계속 걸어가라'는 격려의 문구다. 까미노를 걸으면서 이런 격려의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다. 길 오른쪽으로 오리손 알베르게가 보인다. 바(bar)를 겸하고 있어 생장에서 아침을 먹지 않은 사람들은 여기서 아침을 먹을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론세스바예스까지 인가가 없기 때문에 점심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 다시 포장도로에 진입 [08:04]


▲ 열심히 걷고 있는 처제 [08:08]


▲ 길 오른쪽 격려의 문구 'KEEP GOING(계속 걸으세요)' [08:16]


▲ 오리손(Orisson) 알베르게에 도착 [08:22]


▲ 오리손 알베르게 앞에서 내려다본 풍경 [08:23]


▲ 오리손 알베르게 앞에 있는 이정표: 론세스바예스까지 17.1km [08:24]


▲ 오리손 알베르게가 보이는 풍경 [08:28]


▲ 목장 사이로 나 있는 길 [08:38]


08:44   해발고도 900m 표지판을 지났다. 벌써 700m 넘게 올라왔는데 별로 올라왔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앞으로 550m 정도 고도를 더 높여야 하지만 오르막 경사가 워낙 완만하다 보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나무가 거의 없는 평원 사이로 포장도로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 해발 1000m 지점에 이렇게 완만한 초원이 펼쳐져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대신, 맑고 시원한 공기 속에서 땀을 흘리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좋다. 


▲ 해발고도 900m 표지판 [08:44]


▲ 조금씩 고도를 높여 간다 [08:48]


▲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 [08:57]


▲ 돌무더기를 이용한 까미노 이정표 [09:03]


▲ 돌에도 까미노를 알리는 표지가 있다 [09:03]


▲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고 있는 순례자들 [09:10]


▲ 해발고도 1095m 표지판 [09:18]


▲ 여기도 돌무더기 이정표 [09:18]


▲ 평원 사이로 끝없이 뻗어 있는 까미노 [09:25]


09:33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표지석을 지났다. 이곳은 프랑스 지역이라 까미노를 알려주는 표지가 그리 많지 않지만 스페인 지역으로 들어서면 다양한 표지를 볼 수 있다. 표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 아침에 잠깐 내린 비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대신, 고도가 높아지면서 주변에 안개가 퍼지기 시작했다. 넓은 평원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순례자가 안개 속으로 서서히 모습을 감추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 포장도로에서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 프랑스 지역 돌무더기 표지석 [09:33]


▲ 멀리 안개가 퍼지고 있다 [09:42]


▲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순례자들 [09:52]


▲ 열심히 걷고 있는 처제 [10:02]


▲ 까미노 오른쪽에 있는 십자가 [10:07]


▲ 국경까지는 1.6km, 론세스바예스까지는 9.9km [10:07]


▲ 무슨 표지석 같은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 [10:09]


▲ 까미노 오른쪽 바위가 있는 언덕 [10:15]


▲ 안개 속에서 나무도 춤을 추고 [10:20]


▲ 조금만 더 가면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이 이르게 된다 [10:26]


10:29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콜라도 데 벤타르테아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까미노는 스페인 나바라 땅으로 접어든다. 나바라는 스페인의 자치지방 명칭이다. 까미노가 지나가는 스페인 자치지방 구역은 나바라, 라 리오하, 카스티야 이 레온(부르고스, 팔렌시아, 레온), 갈리시아다. 그런데 카스티야 이 레온 지역이 너무 광대해서 부르고스, 팔렌시아, 레온 세 개의 주(州)로 세분하여 기록할 예정이다. 국경을 통과해 100m 정도 걸어가자 역사적으로 유명한 롤랑의 샘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 최초의 무훈시이며 서사시인 '롤랑의 노래' 주인공인 롤랑이 스페인으로 진격할 때 마셨다는 롤랑의 샘, 이 물을 나폴레옹도 마셨다고 한다. 지금은 수도꼭지를 통해 물이 나오는데 받아서 마셔보니 무척 시원하다. 너도밤나무 숲길에 들어섰다. 고도가 높은 탓에 아직 나뭇잎은 돋아나지 않았고 바닥에 깔려 있는 낙엽만이 발을 옮길 때마다 아우성을 칠 뿐이다. 길 왼쪽 언덕에 운명을 달리한 순례자를 추모하는 표석이 자리잡고 있는 게 보였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이와 같이 생을 마감한 순례자의 추모비나 추모 표석을 가끔 볼 수 있다.


나바라


역사상의 나바라 왕국과 경계가 대략 일치하며 현재의 나바라 주를 둘러싸고 있다. 1982년의 자치법령에 의해 지방이 되었다. 현재의 지역은 동쪽으로는 우에스카 주와 경계를 이루고, 남동쪽으로는 사라고사 주, 서쪽으로는 라리오하 주와 알라바 주, 기푸스코아 주에 접해 있다. 프랑스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피레네 산맥이 주의 북쪽 절반 지역을 내려다보고 있다. 피레네 산맥에는 강우량이 많으나 남쪽으로 가면서 뚝 떨어진다. 나바라 남부는 지중해성 기후가 지배적이다. 인구가 매우 적은 편이고 거의 에브로 강변과 팜플로나에 모여 산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들은 대부분 남쪽에 몰려 있다. 농산품 가운데 우유, 양모, 목재 등은 주로 피레네 산맥에서 생산하고, 채소류는 남부의 관개지역에서 재배한다. 밀, 옥수수, 포도 등도 널리 재배한다.


▲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콜라도 데 벤타르테아 [10:29]


▲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는 765km [10:31]


▲ '롤랑의 노래' 주인공인 롤랑이 마셨다는 롤랑의 샘 [10:32]


▲ 롤랑의 샘 옆에 서 있는 이정표: 론세스바예스까지 남은 거리 8.2km [10:33]


▲ 스페인 나바라 지역에 들어섰다는 표지석 [10:37]


▲ 론세스바예스 8km 전 이정표 [10:40]


▲ 옅은 안개가 퍼져 있는 길 [10:45]


▲ 낙엽이 깔려 있는 너도밤나무 숲길 [10:47]


▲ 운명을 달리한 순례자의 추모비 [10:55]


11:06   길 왼쪽으로 비상 대피소 건물이 보인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서 마련해 놓은 모양이다. 경사가 아주 완만한 넓은 길을 따라 27분 정도 걸어가자 우리가 걸을 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해발 1450m 콜 데 레포에데르(Col de Lepoeder)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경사가 조금 급하다. 왼쪽으로 커다란 나무에 말굽버섯 같은 게 여러 개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언제 없어졌을 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먹지 않는지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졌다.


▲ 길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비상 대피소 [11:06]


▲ 널찍한 길을 따라 조금씩 올라간다 [11:12]


▲ 옅은 안개가 깔려 있는 길 [11:24]


▲ 까미노에서 가장 높은 지점: 해발 1450m 콜 데 레포에데르(Col de Lepoeder) [11:33]


▲ 레포에데르에 서 있는 이정표 [11:34]


▲ 처음에는 내리막 경사가 꽤 심하다 [11:35]


▲ 나무 사이로 나 있는 길 [11:39]


▲ 경사가 많이 완만해졌다 [11:47]


▲ 조금씩 고도를 낮추어 가는 길 [11:52]


11:59   해발 고도가 낮아지면서 신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나 이곳이나 똑같이 신록은 보기에 좋다. 동물의 새끼나 어린 것들이 귀엽고 보기에 좋듯, 식물도 연하고 여린 새싹과 새잎이 보기에 좋다. 신록에 취한 채 널찍한 길을 따라 30분 가까이 내려가자 론세스바예스에 있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도랑을 건너가자 지금까지 잘 참았던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쏟아지는 비가 아니라 보슬거리는 비다. 길을 물어 알베르게 접수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 밖 의자에 순레자들이 죽 앉아 있기에 나도 한 자리 끼어 앉아 있는데 옆에 있던 순례자가 먼저 사무실 안에 들어가 방을 배정받으라고 한다. 그러면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뭐여? 그들은 접수를 마치고 알베르게 입실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알베르게, 특히 공립 알베르게는 입실 시간과 퇴실 시간이 정해져 있다. 알베르게마다 다르지만, 대개 오후 1시에 문을 열고 접수를 받는다. 이곳 알베르게는 입실 시간이 오후 2시였다. 크레덴샬과 여권을 보여주고 접수를 한 후 방을 배정받았다. 비용 12유로. 그리하여 우리도 당당히 사무실 밖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론세스바예스


프랑스 국경에서 가까운 팜플로나 북동쪽, 피레네 산맥 해발 981m 지점에 있다. 마을 위쪽에 있는 론세스바예스 고개, 즉 푸에르토데이바녜타(1,177m)와 관련하여 알려져 있는데 이곳은 샤를마뉴 대제의 후위 호위대가 바스크족에게 대학살당했던 론세스바예스 전투(778. 8. 15)가 벌어졌던 전설적인 자리이다. 영웅 롤랑의 전설에서 배경이 되고 있는 이 전투는 서사시 '롤랑의 노래 La Chanson do Roland'와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로 더욱 유명하다. 스페인에 있던 이슬람교도와 싸움을 벌이던 샤를마뉴 대제는 산맥을 가로질러 아키텐으로 돌아가기 전에 피레네 산맥 남쪽의 여러 도시를 약탈하고 팜플로나를 파괴했다. 이에 산맥에서 바스크족이 숨어 있다가 에지아르 집사, 앙셀 팔라틴 백작, 브르타뉴 관할장관 롤랑이 이끌던 프랑크 군대의 후위 호위대를 덮쳐 전멸시켰다.


'롤랑의 노래'에서는 습격한 이들이 무어인이고 샤를마뉴 대제의 조카인 롤랑이 후위 호위대를 지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동료 올리브와 튀르팽 대주교가 그와 동행하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뿔을 불어 주력부대를 부르라는 올리브의 재촉에도 롤랑은 자신만만하여 버티다가 결국 뿔 소리를 냈을 때는 너무 늦어 버려, 돌아온 부대는 이들의 죽음에 복수하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별칭이 경건왕 또는 온순왕(溫順王)이던 아키텐 왕 루트비히 1세는 지역주민의 아내들과 아이들을 군대와 함께 고개를 통과하게 해서 그와 비슷한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고개 정상에 초기의 것인 산살바도르 예배당(샤를마뉴의 예배당이라고 함) 유적과 샤를마뉴 기념비(1934)가 있다. 마을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회 대수도원은 1130년경 팜플로나의 주교인 산초 데 라로사와 나바라의 왕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자가 이용하도록 함께 세운 것이다. 1230년경 나바라의 강인왕(强靭王) 산초 7세가 세운 마을 교회에는 그와 그의 아내 클레멘시아의 무덤이 있다. 13세기의 것인 '슬픔의 성모 마리아상'은 나무상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제단 뒤 장식 한가운데 서 있다. 연례행사로 성신강림대축일이 되기 바로 전 수요일에 참회하는 순례자들이 검은 두건을 쓰고 무거운 십자가를 나르며 행진한다.


▲ 고도가 낮아지면서 신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11:59]


▲ 널찍하고 걷기 좋은 까미노 [12:10]


▲ 앞서 가는 순례자의 모습이 아름답다 [12:13]


▲ 론세스바예스 500m 전 이정표: 까미노에서 처음 만난 가리비 표지석 [12:23]


▲ 고요하고 평화로운 까미노 [12:26]


▲ 론세스바예스에 있는 건물이 보인다 [12:28]


▲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건물 [12:34]


▲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입구 [12:38]


14:00   알베르게에 입실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원래 전통 순례자 병원이었는데 183명이 이용 가능한 현대식 알베르게로 개조해 2011년 3월 문을 열었다. 이층 침대에 칸막이가 되어 있고 사물함도 있어 생 장에 있는 알베르게와 모든 면에서 대조가 되었다. 배정 받은 침대에 짐을 정리하고 우선 생 장에서 가져온 점심거리를 먹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오는 까미노에는 음식을 먹을 곳이 없어 준비한 것이지만 일정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이곳까지 가져온 것이다.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곧바로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샤워와 빨레, 도착 즉시 샤워를 해야 속옷과 양말을 빨아 말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첫 단추가 잘 꿰어졌으니 나머지 단추도 잘 꿰어지리라. 론세스바예스에는 필요한 것을 살만한 상점이 없다. 그래서 아까 접수를 할 때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을 함께 예약했다. 저녁 10유로, 내일 아침 3.5유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밖에는 잔뜩 흐린 하늘에서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포사다(Posada) 식당에서 7시에 순례자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음식은 순례자 메뉴, 수프와 생선(송어) 요리를 주문했다. 순례자 메뉴에는 바게트 빵과 적포도주가 항상 덤으로 나온다. 사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게트 빵은 어떤 음식을 주문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나왔다. 워낙 밀 생산량이 많은 나라라서 빵 값이 저렴한 모양이다. 오늘 점심은 조금 시원찮았지만 저녁은 좋은 음식으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이층 침대 [14:09]


▲ 생 장에서 가져온 점심 [14:11]


▲ 저녁을 먹으러 가는 중 [18:58]


▲ 저녁을 먹은 라 포사다(La Posada) 식당 [19:02]


▲ 순례자 메뉴로 저녁 [19:21]


▲ 나는 생선(송어)요리를 주문 [19:37]


성령의 소성당 (Capilla del Sancti Spiritus)


샤를마뉴의 헛간(Silo de Carlomagno) 으로도 불리는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 남쪽, 산티아고 소성당 옆에 있는 이 건물은 론세스바예스에서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샤를마뉴의 조카인 롤랑이 두란다르떼(Durandarte)로 내려친 바위 위에 지었다고 한다. 17세기 초반에 반원 아치의 현관문이 추가되었고 론세스바예스의 전투를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소실되었다.


▲ 론세스바예스 성령의 소성당 [19:56]


▲ 잔디밭에 서 있는 나무의 신록 [19:58]


20:00   론세스바예스에 있는 산타 마리아 왕립성당에서는 매일 저녁 8시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있다. 미사 끝에는 신부님이 여러 나라 언어로 순례의 길을 축성해 준다. 나도 동서 부부와 함께 미사에 참석해 한국어로 축성을 받았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와 알베르게 입구 왼쪽에 있는 바에 들어가 동서와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하루의 피로가 확 풀리는 기분이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침대에 엎드려 오늘 하루 일정을 정리해서 메모한 후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까미노에서 가장 힘들다는 첫 날을 무사히 넘기고 나니 돌발상황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사히 순례길을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풀어 올랐다. 부엔 까미노!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 (Real Colegiata de Santa María)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초기의 건물이다. 이곳에는 아름다운 고딕식 성모 마리아 조각이 보관돼 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성직자 회의실엔 강건왕 산초 7세의 고딕 양식 무덤이 있고,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Las Navas de Tolosa)의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 일부도 있다. 회랑은 17세기 양식이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원래의 건물 자리에 13세기에 재건축된 것이다. 원래의 건물은 아라곤과 나바라의 왕인 전투왕 알폰소 1세의 소망에 따라 빰쁠로나의 대주교 돈 산초 데 라로사의 재임기에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었다.



아름다운 작품들은 산초 엘 푸에르떼의 건축가들이 가져왔고 산초 왕의 후계자들이 마무리했다. 아름다운 고딕 회랑과 회의실, 다른 부속 건물 등이 있으나 세월의 무게 때문에 부분적으로 무너졌다. 1445년에 화재가 일어나 성당 건물이 훼손되었으며 1600년에는 지붕에 내려앉은 눈의 무게 때문에 남쪽 회랑과 성전의 지하층이 무너졌다. 따라서 1615년 건축가 돈 후안 데 아라네기에 의해 재건되었다.


▲ 론세스바예스 산타 마리아 왕립 성당 내부 [20:00]


▲ 미사 끝에 신부님이 여러 나라 말로 순례자들을 축성 [20:11]


▲ 알베르게 옆에 있는 바(bar) [20:14]


▲ 동서와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20:17]


▲ 커피잔에 씌여 있는 buen cafe!(즐겁게 커피 한 잔 하세요!)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