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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러시아·북유럽·에

2015.07.19. [북유럽 旅行記 9] 왼쇠핑→스톡홀름

by 사천거사 2015. 7. 19.

 

러시아 / 북유럽 4개국 / 에스토니아 여행기 9

 

일시: 2015년 7월 19일 일요일 잔뜩 흐린 날씨

코스: 왼쇠핑 → 스톡홀름

회원: 백만사 회원 8명

 

 

 

05:30   아침에 일어나 짐을 챙겨 놓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큰 구경거리는 없다.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7시 48분 출발, 오늘은 왼쇠핑에서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까지 간 후 시내 관광을 하고 여객선에 탑승하여 에스토니아의 탈린으로 가는 일정이 잡혀 있다. 스톡홀름은 14개의 섬이 57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북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 곳이다. 왼쇠핑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의 스웨덴 지역이 그렇하듯이, 평원과 목초지, 그리고 밀밭이다. 산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것들로는 볼보, 스캐니아, 사브와 같은 자동차, 이케아 가구, 아바, 말괄량이 삐삐 등이 있다. 

 

▲ 호텔 앞에 있는 조형물 앞에서 [06:28]

 

▲ 호텔 로비에서 [06:33]

 

▲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 [06:43]

 

▲ 2시간 정도 달리면 어김없이 휴게소에 들른다 [09:27]

 

▲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 도착 [11:35]

 

▲ 점심을 먹으러 가는 중 [11:38]

 

▲ 한식으로 점심 식사 [11:42]

 

▲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식당 옆 잔디밭에 앉아 [12:16]

 

12:34   스웨덴의 왕궁이 있는 감라스탄 구시가지에 왔다. 먼저 성 니콜라스 대성당과 높에 22m의 오벨리스크를 둘러본 후 골목을 따라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으로 이동을 했다. 광장 중앙에 있는 우물이 있는데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가 스웨덴 귀족 82명을 처형한 곳이라서 이 광장을 '피의 광장'이라고도 한다.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구시가지 좁은 골목들이 얽혀 있는데 가장 좁은 골목은 폭이 90cm에 불과하다. 구시가지 골목에는 크기가 13cm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동상도 있다. '아이언 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동상 옆에 동전을 놓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감라스탄 구시가지

 

스톡홀름을 다녀온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인상 깊은 곳으로 꼽는 곳이 감라스탄 지구다. 스웨덴의 옛 모습과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감라스탄은 하나의 거대한 옥외 박물관과 같다. 작은 섬이지만 고딕, 바로크, 로코코 등 다양한 양식으로 건축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옛 건물을 개조한 레스토랑과 카페들도 이색적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은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중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를 걷다 보면 16세기 유럽의 어느 마을 속에 와 있는 듯하다. 실제로 감라스탄은 13세기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 온 곳으로, 건물 외벽에서 묻어나는 세월의 흔적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역사다. 지금은 스톡홀름의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고급 주택가로 거듭났지만 그리 부담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저렴하게 스웨덴 전통 요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많아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들이 선호한다.

감라스탄 구시가의 중심은 중세 분위기가 남아 있는 대광장이다. 노벨 박물관, 노벨 도서관, 증권 거래소 등 주요 명소들이 작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도 늘어서 있다. 여름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거리로 나온 예술가들로 활기가 넘치고 겨울에는 광장 주변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선다. 지금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광장이지만 1520년 ‘스웨덴 대학살 사건’이 발생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감라스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는 감라스탄 북쪽에 위치한 대성당과 왕궁이다. 13세기에 세워진 대성당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왕실의 주요 행사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다.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융합된 웅장한 건축물이며 내부에는 조각가 비겔란의 작품인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섬세한 천장 벽화가 볼만하다.

대성당과 이웃하고 있는 왕궁 역시 13세기에 처음 지어졌다. 원래는 요새였으나 왕궁으로 발전했다. 1697년 대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후 오랜 공사를 거쳐 1740~1754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는 스웨덴 왕족의 공식 집무실이자 스톡홀름을 방문하는 국빈들의 연회 장소로 사용된다. 3층 높이의 건물 안에는 유명한 장인과 예술가들의 손길로 아름답게 장식된 방 1430개가 있는데 일부만 관람객들에게 공개한다. 그중 압권은 ‘보물의 방’이다. 에릭 14세의 왕관을 비롯한 역대 왕실의 보물들을 볼 수 있다.

   

▲ 높에 22m의 오벨리스크: 구스타프 3세 왕이 세운 것, 뒤에 보이는 것은 왕의 대관식과 결혼식이 열리는 성 니콜라스 대성당 [12:34]

 

▲ 감라스탄 구시가지 골목 [12:51]

 

▲ '피의 광장'이라고도 불리는 스토르토리에트 광장 [12:51]

 

▲ 스토르토리에트 광장 주변의 건물들 [12:55]

 

▲ 감라스탄 구시가지 골목 [13:09]

 

▲ 감라스탄 구시가지 골목 [13:27]

 

▲ 스톡홀름 왕궁 근위병 교대식 [13:43]

 

▲ 감라스탄 구시가지 골목 [13:55]

 

▲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동상: 높이가 13cm이며 머리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13:58]

 

14:11   1923년에 건축된 스톡홀름 시청사를 찾았다. 스톡홀름 시청사가 주목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 매년 12월, 노벨상 시상식 후 축하 연회가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에 참가해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1층에 있는 블루 룸에서는 노벨상 시상식과 만찬이 진행되고, 2층에 있는 황금의 방(Golden Hall)에서는 만찬 후 무도회가 열리는데, 무려 1900만 개의 금박 모자이크로 장식된 방이다. 높이 106m의 탑 꼭대기에 올라 스톡홀름 시가지 모습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스톡홀름 시청사

 

스톡홀름 시청사는 리다르프예르덴의 제방 위에 아름답게 서 있다. 외스트베르그의 우아한 작품은 그 입지를 완벽하게 보강하고도 남는다. 두 개의 안뜰은 사무실과 의전용 공공 공간을 연결해주며, 그 위로는 우아하고, 위로 갈수록 완만하게 좁아지는 106미터 높이의 탑이 서 있다. 외관에는 어두운 붉은색의 수제 벽돌을 사용하였다. 그림 같은 민족 낭만주의 양식의 남쪽 파사드는 그 섬세한 창문, 개방형 주랑, 그리고 작은 양파 모양 돔 탑 위의 황금 초승달 등, 마치 반짝이는 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내부는 스웨덴의 예술과 수공예에 바치는 건축적 찬가이다. 열다섯 쌍의 어두운 대리석 기둥이 열주를 이루는 '왕자의 갤러리'는 스웨덴의 오이겐 왕자가 직접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푸른 홀'은 예전에 벽돌 미장 위에 푸른색 석고가 발려 있었던 지붕이 있는 안뜰로, 보통 연회장으로 쓰인다. '골든 홀'은 위엄 있는 공간이다. 16세기 프랑스 튀르올 태피스트리가 시민들의 결혼식장으로도 쓰이는 타원형 홀을 장식하고 있다.

스톡홀름 시의회 의사당은 바이킹의 배를 연상시키는 열린 천장을 자랑한다. 외스트베르그는 또 스웨덴 최고의 수공예 장인들을 고용하여 장식과 가구를 맡겼다. 시청사가 완공되기까지는 12년의 세월이 걸렸다. 낮고 육중한 박스형 벽돌 구조에 모퉁이에는 높은 탑을 세운 외스트베르그의 설계는 스웨덴 밖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 관광객들로 붐비는 스톡홀름 시청사 입구 [14:14]

 

▲ 스톡홀름 시청사 광장에서 [14:17]

 

▲ 매년 12월에 노벨상 시상식과 만찬장으로 사용되는 블루 홀 [14:37]

 

▲ 무보수 명예직인 시의회 회의실 [14:40]

 

▲ 16세기 프랑스의 대형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는 귀빈실: 시민들의 결혼식장으로도 임대 가능 [14:47]

 

▲ 스톡홀름 시청사 황금 홀에서 [14:53]

 

▲ 1900만 개의 금박 모자이크로 장식된 황금 홀에서 [15:03]

 

▲ 스톡홀름 시청사 옆 바닷가 광장에서 [15:16]

 

▲ 스톡홀름 시청사 옆 바닷가 광장에서 [15:16]

 

▲ 스톡홀름 시청사 옆 바닷가 광장에서 [15:20]

 

▲ 스톡홀름은 운하의 도시다 [15:20]

 

15:40   바사박물관 관람이 시작되었다. 출항한지 수분 만에 침몰했다는 전함 바사호를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해 복원한 후 전시를 하고 있는데 그 당시로 치면 규모나 구조가 대단한 전함이었다. 바사박물관 관람을 끝으로 스톡홀름 시내 관광을 마치고 이제 에스토니아의 탈린으로 가는 여객선 TALLINK에 승선을 할 차례다. 부두에 도착해 6일 동안 정들었던 버스와 이별을 하고 탈링크에 승선했다. 탈링크는 앞에서 우리가 이용했던 실자 라인이나 DFDS SEAWAYS와 같은 대형 여객선이다. 

 

배정 받은 선실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7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뷔페로 차려진 음식들 중에서 주로 해산물을 많이 먹었는데 대부분의 북유럽 생선 요리가 그렇듯이 짠맛이 아주 강했다. 긴 겨울 동안 먹기 위해 염장을 했던 전통이 그대로 내려오는 모양이다. 이제 북유럽 여행도 막바지다. 내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 모레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관광을 마치면 귀국을 하게 된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기대감이 얼마나 충족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것을 본다는 설레임은 항상 남아 있다. 

 

바사박물관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으로, 바사왕가의 구스타브 2세(Gustav II)가 재위하였던 1625년에 건조되어 1628년 8월 10일 처녀항해 때 침몰한 전함 바사호()가 전시된 곳으로, 스톡홀름의 스칸센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1990년 7월 15일에 개관하였으며, 스웨덴 국립 해양 박물관 재단(Swedish National Maritime Museums)에 소속되어 있다.

당시 스웨덴은 북유럽 발트해 주변 제국 건설에 분주해 막강한 해군력을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전함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바사호는 그 당시 건설된 전함 중의 하나인데, 바사는 길이 69m, 높이 48.8m, 탑승 가능 인원 450명, 탑재 가능 대포 수량 64개에 이르는 거대한 배로 제작되었으며, 동시에 300kg 이상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외 귀빈 등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수식을 하자마자 열린 포문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수분 만에 침몰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배에 승선하고 있던 150여 명 중 30여 명이 익사했다.

침몰한 바사호는 1956년 해양고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에 의해 발견되어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되었는데, 인양된 배에서 25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바사호는 1962년부터 임시 박물관에 있다가 1988년에 새로운 박물관으로 이전하여 1990년 바사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이곳은 스칸디나비아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박물관으로, 바사호에 관련된 자료와 수장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배의 선박 바닥을 받치는 재목인 용골(keel)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총 6 곳의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바사를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은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에서는 바사의 준공, 취항, 침몰, 인양의 각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바사박물관으로 가는 중 [15:40]

 

▲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바사호: 1625년에 건조되었다 [15:45]

 

▲ 완벽하게 복원된 바사호의 위용 [15:47]

 

▲ TALLINK에 탑승하기 위해 버스에서 하차: 6일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준 버스와 이별이다 [16:34]

 

▲ 우리 팀 임민정 인솔자: 유럽 여행 특급 인솔자로 손색이 없다 [16:35]

 

▲ TALLINK 여객선 대합실에 있는 키다리 아저씨 [16:38]

 

▲ 스톡홀름과 탈린을 오가는 TALLINK 여객선 [16:58]

 

▲ TALLINK 여객선 7층 뷔페 식당 모습 [18:05]

 

▲ TALLINK 여객선 7층에 있는 뷔페 식당에서 저녁 식사 [1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