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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행/청주 山길

2012.10.21. [청주 청원 山길 10] 것대산과 봉수지

by 사천거사 2012. 10. 21.

청주 청원 山길 10

◈ 일시: 2012년 10월 21일 일요일

◈ 장소: 것대산 484m /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 코스: 순치명석불 → 이정골 마을 → 상봉재 옛길 → 상봉재 → 봉수지 → 것대산 → 이정골 옛길 →

           신항서원 → 이정골 마을 → 순치명석불

 시간: 2시간 9분



15:07   오늘은 오후에 시간을 내어 한남금북정맥의 한 봉우리인 것대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파트를 출발해서 동부우회도로를 달려 이정골 가는 길로 들어섰다. 이정골 마을 못미쳐 작은 다리를 건너면 청주순치명석불입상이 있는데 그 옆 공터에 차를 세웠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50호인 이 순치명석불입상은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그러면서도 미소짓는 석불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쪽 도로를 따라 이정골 마을로 올라간다. 오른쪽 것대산 쪽에서 행글라이더 하나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것대산 정상부는 행글라이더 활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정골 마을 중앙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이정골 낚시터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지난 번에 이 길을 몰라서 저수지 둑으로 올라간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는 길을 잘 찾았다. 오늘도 낚시터에는 고기를 낚는지 세월을 낚는지 몇 사람이 앉아 물속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주순치명석불입상

 

1985년 12월 28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청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용정동 선돌골 마을입구 논 한가운데 서 있는 불상이다. 네모난 돌기둥을 깎아 얼굴과 상체를 조각한 마치 석장승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표현도 거의 선각에 가깝다. 조성연대는 기록에 보이지 않으나 불상 아래에 '순치9년11월16일입 (順治十一月十六日立)' 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조선 효종 3년(1652)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마에는 큼직한 백호(白毫)를 도드라지게 새겼고, 눈썹은 길고 큼직하게 표현하였으며, 눈은 내려뜬 모양으로 눈두덩이가 도드라져 인상적이다. 코는 작고 짧막하며, 입은 반달모양으로 새겨 눈과 함께 얼굴 전체를 웃는 모습으로 만들고 있다. 입에 이어 턱과 뺨을 나타내어 얼굴이 납작하게 표현되었다. 양쪽의 귀는 조각되지 않았고 목은 짧으며 삼도(三道)가 없다.

 

얼굴에 잇달아 두팔을 수평되게 나타내었는데 두손을 모아 턱밑에 괴고 있어서 미숙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그 아래쪽은 돌기둥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규모는 전체높이 316㎝, 머리높이 70㎝이다. 이 불상으로 인해 이 근처 마을을 장승배기라 불렀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이것은 불상이면서도 마을의 수호신적인 장승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찰의 수호신인 석상(石像)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순치명석불 옆에 주차 [15:31]

 

▲ 청주순치명석불입상 [15:31]

 

▲ 것대산 활공장에서 행글라이더가 날아올랐다 [15:35]

 

▲ 이정골 버스 종점 [15:38]

 

▲ 이정골 낚시터 입구 안내문 [15:40]

 

▲ 용정저수지: 이정골 낚시터라고도 불린다 [15:43]

 

▲ 용정저수지에 해가 지고 있다 [15:44]


15:46   용정저수지 옆에서 유정고개로 가는 길과 산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다. 오른쪽 산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지난 번 상봉재 걷기를 할 때 상봉재에서 내려왔던 길이기에 낯설지가 않다. 가을을 맞아 피어난 노란 산국이 나를 반겨준다. 다시 갈림길이 나왔다. 이번에도 오른쪽 길로 올라간다. 폐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아직 대낮인데도 분위기가 음침하다. 용정저수지가 보이는 묘지를 지나 상봉재로 올라가는 큰 길에 올라섰다.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암각선정비도 보인다.


▲ 유정리로 가는 길과 산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오른쪽으로 간다 [15:46]

 

▲ 산국이 활짝 피었네 [15:49]

 

▲ 번짓수가 있는 것을 보니 집은 집인데 [15:51]

 

▲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15:55]

 

▲ 산길 오른쪽의 폐가 [15:57]

 

▲ 묘지에서 내려다본 용정저수지 [16:06]

 

▲ 상봉재로 올라가는 큰 길과 만나는 곳 [16:12]

 

▲ 암각선정비 3개가 보인다 [16:17]


16:20   상봉재 옹달샘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가 산꼭대기인데 어디서 이렇게 좋은 물이 솟아 흐르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출발, 그런데 이게 뭐야, 상봉재 서낭당 둘레에 솟대를 만들에 세워놓았다. 누군가 솜씨 좋은 사람이 만들었는지 솟대 하나 하나가 작품이다. 상봉재에서 낙가산 쪽으로 올라갔다. 것대산이 더 가까운데 왜 이정표에는 낙가산이라고 적어 놓았는지 모르겠다. 것대산으로 가는 산길은 좋다. 잠시 후 것대산 봉수지에 올랐다. 봉수지에는 5개의 봉수를 재현해 놓았는데 몰상식한 인간들이 아궁이에다 쓰레기를 처넣어놓았다.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이다.


▲ 상봉재에 있는 옹달샘 [16:20]

 

▲ 상봉재 옹달샘 위에 있는 이정표 [16:21]

 

▲ 상봉재 서낭당 둘레에 솟대를 세웠네 [16:21]

 

▲ 한남금북정맥이 지나가는 상봉재 [16:23]

 

▲ 하늘로 곧게 뻗은 나무들 [16:26]

 

▲ 것대산 봉수지로 올라가는 길 [16:29]

 

▲ 것대산 봉수지 [16:31]

 

▲ 것대산 봉수지에서 한 장 [15:33]

 

▲ 것대산 봉수지 안내문 [16:34]

 

▲ 것대산 아래 주차장 [16:34]


16:37   해발 484m의 것대산 정상에 오르니 이정표가 서 있는데 행글라이더를 타는 사람들은 없었다. 이정표에서 선도산 방향은 한남금북정맥 길이다. 낙가산 정상 쪽으로 걷는다. 오른쪽 계곡 너머로 512번 지방도와 봉화공원이 보인다. 것대산에서 낙가산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면서도 고즈녁한 게 걷기에 아주 좋다. 낙가산이 7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를 지나면 곧 낙가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시작되는데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계곡으로 내려가려면 그 길을 내려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일단 접어들었다. 희미하면서도 애매한 경사길이 계속 이어졌다 끊어졌다 한다. 골짜기와 능선을 오가며 아래로 내려가는데 다 낡은 '청주삼백리' 표지기 하나가 보였다. 그렇다면 이 길이 맞는 모양인데 확신은 서지 않는다.


▲ 것대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16:37]

 

▲ 행글라이더 활공장으로 사용되는 것대산 정상 [16:38]

 

▲ 멀리 512번 지방도와 봉화공원이 보인다 [16:38]

 

▲ 걷기 좋은 평탄한 길 [16:46]

 

▲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 [16:48]

 

▲ 모처럼 만난 이정표 [16:50]

 

▲ 낙가산 올라가기 직전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간다 [16:51]

 

▲ 내려가는 도중에 만난 낡은 청주삼백리 표지기 하나 [17:00]


17:04   꽃향유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향유 꽃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마치 계곡 속에 숨어 있는 천상의 화원 같은 곳이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에 이런 비경이 있다니. 다시 계곡을 따라 걷다 오른쪽 산허리로 올라붙었다. 꽤 뚜렷한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참 동안 잘 나 있던 길이 다시 잡풀에 묻히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산을 다 내려왔는지 이리저리 울타리를 쳐놓고 채소농사를 짓는 곳이 나타났다.

 

마을로 이어지는 포장도로에 올라섰다. 그런데 이 길이 어디로 통하는 길인지 아직까지도 통 모르겠다. 멀리 한창 건축중인 한라 비발디 아파트가 보이는 것을 보면 길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모양인데. 마을로 접어 들었는데 오른쪽에 옛날식 건물이 보였다. 뭐지? 올라가보니 이런, 신항서원이 아닌가? 그러면 제대로 내려온 거네. 이럴 때 기분은 나밖에 아무도 모른다. 차를 세워둔 순치명석불 앞에 도착하니 해가 거의 넘어갔다. 아울러 것대산 걷기도 함께 막을 내렸다.


▲ 숲속에서 만난 꽃향유 꽃밭 [17:05]

 

▲ 바위 하나가 외롭고 [17:07]

 

▲ 다시 오른쪽 산허리로 올라붙었다 [17:09]

 

▲ 담쟁이덩굴에도 가을이 담겨 있네 [17:10]

 

▲ 마을이 가까워지자 채소밭이 길을 막는다 [17:23]

 

▲ 큰길에 도착해서 뒤돌아본 것대산 [17:25]

 

▲ 이정골 마을로 내려가는 길 [17:27]


신항서원

 

신항서원은 처음에는 '유정서원'이란 이름으로 부르다 신항서원이란 이름을 받았고 신항서원묘정비는 송시열이 글을 짓고 현감 조형기가 쓰고 김수환이 새겨 세웠다고 한다. 조선 세조-성종 때 하늘이 낳은 효자로 알려진 경연, 조선 중종 때 학자이며 정치가 박훈, 중종 때 학자이며 정치가인 김정, 인종 때 학식이 깊어 명나라에 갔다 와서 대사헌을 지냈으나 무고로 사사된 송인수 네 분을 모셨다. 그러다 인조 20년(1642년)에 서원을 재건하면서 한충을 추향했고, 효종 1년(1650년)에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충신열사의 기개를 굽히지 않아 적장을 감복케 한 송산현과 광해군과 인조 때 학자 이득윤을 추향했고, 또 효종 7년(1656년)에는 청주 목사로 부임하여 '서원향약'을만들어 선정을 폈던 대유학자 이이, 고려 말 대유학자이며 충신이며 청주에 유배되었던 이색을 추향하여 현재 9분의 제향을 지낸다고 한다.


▲ 신항서원 대문 [17:31]

 

▲ 이정골 마을회관 [17:34]

 

▲ 이정골 버스종점: 우리 아파트 가는 버스다 [17:35]

 

▲ 주차된 곳에 다시 돌아왔다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