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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행/청주 山길

2012.09.23. [청주 청원 山길 3] 부모산과 청주 가로수길

by 사천거사 2012. 9. 23.

 

청주 청원 山길 3

 

  일시: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 장소: 부모산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232m

 ◈ 코스: 충렬사 입구 → 쓰레기 매립장 왼쪽 길 → 부모산성 → 연화사 → 주봉마을 → 진약고개 → 

              청주 가로수길  충렬사 입구

  시간: 3시간 4분

 

 

11:20   오늘은 충렬사에서 부모산을 올랐다 내려와서 가로수길을 따라 충렬사까지 다시 돌아오는 코스를 걸어보기로 하고 충렬사 입구 안거사라는 절 근처에 차를 세웠다. 충렬사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데 '강상촌'이라는 커다란 마을 표지석 뒤로 정려각이 자리 잡고 있는 문화공간이 있다. 정려각 모두가 충렬사의 주인공인 송상현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

 

▲ 안거사 옆 도로변에 주차 [11:22]

 

▲ 한국불교 태고종 안거사 [11:23]

 

▲ 충렬사 입구에 있는 효부 영일 정씨 정려각 [11:24]

 

▲ 정려각 사이에 있는 비석 [11:24]

 

▲ 충렬공 송상현의 충신 정려각 [11:25]

 

▲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식수 [11:25]

 

▲ 강상촌 표지석 [11:27]

 

▲ 밀양 박씨 효열 정려각 [11:28]

 

11:33   충렬사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동래부사 시절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동래성에서 전사한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충렬사 주변은 정비가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대충 둘러보고 충렬묘 오른쪽으로 돌아 충렬사 뒤 언덕으로 올라갔다. 산으로 올라붙는 길이 어딘지 알 수가 없어 대충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왼쪽 사면으로 올라갔다.

 

사면을 따라 꼭대기에 이르자 어렴풋이 길이 보인다. 왼쪽 길로 접어 들어 작은 봉우리에 올랐다. 길이 제법 뚜렷하다. 어디 한 번 가볼까? 그런데 어째 자꾸 갈수록 목적지와는 반대로 가는 느낌이다. 왼쪽에서 차량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을 보면 점점 조치원 쪽으로 가는 것 같다. 잡목 때문에 시야가 막혀 있고 표지기는 있을 리 만무하니 답답할 뿐이다. 

 

동래부사 송상현 충렬사(東萊府使 宋象賢 忠烈祠)

 

충청북도 기념물 제16호로.충북 청주시 흥덕구 수의동 산105 번지에 있다.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선조 28년(1595)에 묘소를 동래에서 이곳으로 이장하고 광해군 2년(1610)에 사당을 창건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송상현의 호는 천곡(泉谷), 시호는 충렬인데, 선조 9년(1576) 문과급제후 선조 24년(1591) 동래부사가 되었다. 임진란이 일어나 왜군이 동래성에 육박하자 군사를 이끌고 항전하다 왜병에게 살해되었다.

 

충렬사 뒷산에는 송상현의 묘소와 현종 원년(1659)에 세운 신도비가 있고, 사당 입구에 선조 28년(1595)에 건립한 충신문이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2간의 겹처마 목조기와집인데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3개의 분합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마당 앞에 삼문을 세우고 주위에는 석축담장을 쌓아 보호하고 있다. 청주시에서는 천곡선생의 애국충절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2001년에 인근 부지를 확장 정비하여 전시관과 사당을 신축하였으며, 주변을 공원화하여 시민들이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송상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덕구(德求), 호는 천곡(泉谷). 아버지는 현감 복흥(復興)이다. 어려서부터 경사(經史)에 능하여 1570년(선조 3) 15세의 나이로 승보시(陞補試)에 장원했다. 20세에 진사가 되었으며, 그 이듬해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보임되고, 저작·박사가 되었다. 이어서 주서·경성판관·지평을 거쳐 예·호·공 3조의 정랑이 되었으며, 1584년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배천군수로 나갔다가 경력·집의·사간 및 사재감(司宰監)과 군자감의 정(正)을 지냈다.

 

1591년 동래부사가 되었는데, 당시 왜적의 침입이 예상되던 때였으므로 방비에 힘썼다. 이듬해 4월 13일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은 15일 동래성을 에워싸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송상현은 결사의 의지로 군사를 이끌고 항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당하고 말았다. 그는 군관 김희수(金希壽) 등과 함께 끝까지 당당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는데, 이때 왜장마저 그의 용맹에 감동하여 죽음을 아깝게 여겼다고 한다. 뒤에 이조판서·좌찬성으로 추증되었으며, 부산 충렬사(忠烈祠), 개성 숭절사(崇節祠),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 고부 정충사(旌忠祠), 청원 충렬묘(忠烈廟)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 충렬사로 올라가는 계단 [11:33]

 

▲ 송상현 사당 충렬사 건물 [11:33]

 

▲ 충렬사 내부 모습: 송상현의 영정이 걸려 있다 [11:34]

 

▲ 충렬사 오른쪽에 있는 충렬묘 [11:35]

 

▲ 언덕에서 내려다본 충렬사 [11:39]

 

▲ 계곡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간다 [11:43]

 

▲ 희미하게 나 있는 능선길 [11:49]

 

11:57   오른쪽에 철탑이 있어 가보니 시야가 트이는데 아무래도 이 길이 아닌 것 같다. 이럴 때는 미련없이 돌아서야 한다. 180도 방향을 바꾸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간다. 어, 이게 뭐여. '부모산 둘레길'이라고 적힌 표지기가 보인다. 웬 둘레길?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갔더니 3차 우회도로 공사현장이 나왔다. 절개지를 내려와서 차도에 도착했다. 아까 서청주에서 올 때 내 차로 지나간 도로였다.

 

도로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왼쪽에 '부모산 정상 2.6km'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부모산 가려면 저기로 들어가면 되는 모양이다. 조금 들어가다 왼쪽 능선으로 올라붙었다. 길이 제법 뚜렷하다. 철탑을 지났다. 밤나무가 많은 곳으로 길이 내려가는데 앞에 철망이 가로막혔다. 오른쪽을 따라 올라가는데 여기도 제 길이 아닌 것 같다.

 

그 철망은 청주시 광역 쓰레기 매립장 울타리였는데 오른쪽을 따라가면 결국 청주에서 조치원으로 이어지는 국도에 닿게 된다. 울타리는 왼쪽으로 돌아야하니까 여기서도 180도 방향을 바꾸어 걷기 시작했다. 발에 채이는 밤송이에서 밤알이 터져 나온다. 그냥 밤이나 줍고 말어? 안 되지. 가야 해. 울타리를 따라 계속 걷는데 없는 길을 만들어 가려니 힘이 많이 든다.

 

▲ 이 철탑이 있는 곳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11:57]

 

▲ 부모산 둘레길 표지기 [12:00]

 

▲ 3차 우회도로 공사 현장 [12:03]

 

▲ 아까 차로 지나갔던 도로 [12:06]

 

▲ 도로 왼쪽에 서 있는 이정표 [12:08]

 

▲ 능선에 올라섰다 [12:11]

 

▲ 철탑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고 [12:12]

 

▲ 밤송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12:21]

 

▲ 쓰레기 매립장 울타리가 보인다 [12:29]

 

12:33   다시 능선으로 올라왔다. 길이 잘 나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매립장 울타리를 벗어나려나? 어래, 그런데 이게 뭐여? 아까 지나온 철탑을 다시 만났네. 길을 따라 내려가니 도로가 나오는데 아까 들어섰던 부모산성 이정표가 서 있던 곳보다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가만히 판단을 해보니 광역매립장 울타리를 벗어나려면 도로를 따라 청주역 쪽으로 더 가야 했다. 그렇다면 아까 그 이정표는 뭐란 말인가?

 

일단 매립장 철망을 오른쪽에 두고 도로를 따라 걸었다. 청주시 매립가스 발전소 건물을 지나자 철조망은 산으로 꺾어졌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얕은 고개를 넘자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저리로 한 번 들어가 볼까? 대충 길이 나올 것 같은데. 일단 그 길로 들어섰다. 벌초가 잘 된 묘지를 몇 개 지나면서 제대로 된 길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길아 나와라, 내가 간다.

 

▲ 다시 능선으로 올라왔는데 [12:33]

 

▲ 아까 지나갔던 철탑으로 다시 왔네 [12:36]

 

▲ 산에서 다시 도로로 나온 곳 [12:38]

 

▲ 철망을 오른쪽에 두고 도로를 따라 걷는다 [12:40]

 

▲ 청주시 매립가스 발전소 건물 [12:43]

 

▲ 도로에서 다시 산으로 들어선 입구 [12:44]

 

12:54   제법 길 같은 길이 나 있어 이제는 본 궤도에 들어선 기분이다. 왼쪽으로 철탑이 보이는데 길 오른쪽에 꺾어진 나무가 벤취 구실을 하고 있어 자리를 잡고 앉아 간식을 먹었다. 삶은 달걀 2개와 사과 반쪽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길은 뚜렷하다. 가끔 왼쪽으로 시야가 트이는데 오송과 옥산, 오창 방향이 보인다.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났다. 

 

▲ 제법 번듯한 길이 나 있다 [12:54]

 

▲ 길 왼쪽으로 철탑이 보인다 [12:57]

 

▲ 벤취 모양의 꺾어진 나무: 간식을 먹은 곳 [13:00]

 

▲ 무덤 뒤로 옥산 방면이 보인다 [13:10]

 

▲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 [13:12]

 

▲ 묘지 뒤로 바라본 옥산 방향 [13:15]

 

13:17   쓰레기 매립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를 만났으니 이제부터는 탄탄대로다. 길을 잘못 들 염려도 없다. 슬슬 피어나는 억새를 보며 길을 걷는데 청주둘레길 표지기와 청주삼백리길 표지기가 보인다. 길을 찾기 어려운 곳에는 안 매달아 놓고 이렇게 빤한 길에는 뭐하러 매달아 놓았는지 모르겠다. 표지기의 쓰임이 뭔지 모르지는 않을 건데.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를 지났다.

 

▲ 쓰레기 매립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 이정표 [13:17]

 

▲ 바야흐로 억새가 피기 시작했다 [13:18]

 

▲ 청주 둘레길 표지기 [13:20]

 

▲ 청주 삼백리 표지기 [13:24]

 

▲ 지동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 이정표 [13:26]

 

▲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 [13:27]

 

13:30   연화사로 가는 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주변은 부모산성 복원과 관련하여 문화재 발굴이 진행되는 등 조금 어수선했다. 어쨌든 부모산성을 복원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그것은 경제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왼쪽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운동기구가 있는 쉼터 왼쪽을 따라 계속 걸어 내려가니 복원된 성벽이 보이고 다시 계속 내려가니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부모산성

 

산성 내에서 원삼국기부터 삼국시대 후기까지의 유물이 출토되고, 성벽의 기저부가 원상태로 남아 있으며, 중부이남 지역으로는 계단식 보축성벽 등이 처음으로 조사되어 역사적으로 고찰할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한 부모산을 바라보며 서청주의 미래를 다짐한다 [13:30]

 

▲ 삼거리 갈림길 이정표 [13:30]

 

▲ 무너져 흩어져 있는 부모산성 성돌 [13:31]

 

▲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 [13:32]

 

▲ 복원이 된 부모산성 [13:34]

 

▲ 지동동에서 올라오는 길 이정표 [13:35]

 

▲ 큰못골에서 올라오는 길 이정표 [13:37]

 

13:38   청주시내가 잘 보이는 부모산 전망대에 왔는데 사람이 별로 없다. 전망대에서는 서청주 지역의 아파트 단지가 잘 보였다. 잠깐 벤취에 앉았다가 출발, 연화사에서 왼쪽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잠시 후, 오른쪽으로 나 있는 산길로 접어들었고 주봉마을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다시 오른쪽 샛길로 내려갔다. 청주 병사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 '민충사'가 왼쪽으로 보인다.

 

▲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부모산 전망대 [13:38]

 

▲ 부모산성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주 시내 [13:39]

 

연화사(蓮華寺)

 

연화사는 충청북도 청주시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의 부모산 정상 부근에 있다. 청주의 주산인 우암산이 멀리 보인다. 산도 그리 높지 않고 사찰은 아담한 규모이다. 연화사의 연원은 고려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오래된 절인 연월사에서 찾을 수 있다. 연월사는 임진왜란 중에 폐쇄되어 폐허가 되었다. 부모산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의 목숨을 구했다는 모유정이라는 우물의 흔적이 있는 등 임진왜란에 관련된 전설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김청암이 재창건한 뒤 연화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청암은 후에 금강산 유점사 주지를 지냈다. 절의 이름이 연화사가 된 것은 김청암이 불사를 앞두고 절터에 연꽃이 만발한 꿈을 꾸었기 때문이라는 일화가 있다. 본래 김청암이 세운 연화사는 현재의 절터보다 약간 아랫쪽에 위치해 있다가 1964년에 김청암의 아들이자 연화사 주지인 보안이 중창하여 지금의 위치로 이동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2004년에 다시 세운 건물이다. 2004년에 지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석조미륵불, 불화 등 연화사 경내의 불교 미술품은 모두 1980년대 이후 조성된 것이다.

 

▲ 부모산 연화사 [13:42]

 

▲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13:45]

 

▲ 고마리 속에 물봉선이 숨어 있다 [13:45]

 

▲ 주봉마을 가는 길 이정표 [13:49]

 

민충사(愍忠祠)

 

민충사는 충청북도 청주시 비하동 주봉마을에 위치한 사당이다. 2001년 12월 6일 충청북도 유도회(儒道會)가 주축이 되어 건립한 사우로서 임진왜란 때 청주성 탈환에 공이 큰 박춘무, 박춘번(박춘무의 동생), 박동명, 박홍원, 이시발, 한혁, 정순년, 민여함, 칠백의용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민충사'의 민은 박춘무의 시호 민양공(愍襄公)의 첫 자에서, 충자는 선봉장이었던 아들 박동명의 시호 충경공(忠景公)과 종사관이었던 이시발의 시호 충익공(忠翼公)의 첫 자에서 딴 것이다.

 

청주시내에서 송상현 충렬사로 가기 전 비하동 부모산 남쪽 주봉마을 뒤에는 임진왜란 당시 7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청주성을 탈환한 박춘무를 비롯한 청주의 병사들의 신위를 모신 민충사가 있다. 당시 청주성 탈환은 관군보다 충북 옥천의 조헌, 공주의 영규대사 그리고 청주의 박춘무가 모집한 의승병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임진왜란 전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전투였다. 이 사당은 2001년 순천 박씨 문중에서 주관이 되어 건립한 것으로, 이곳에는 민양공 박춘무를 비롯하여 박춘번, 박동명, 이시발, 한혁 등 당시 청주출신 의병들과 이름없는 칠백의용사의 신위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청주성 탈환일인 9월 5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박춘무(朴春茂) : 시호는 민양(愍襄) 호는 화천당(花遷堂) 본관은 순천. 임진왜란 당시 의병

                       우의대장으로 청주성을 탈환했으며 진천을 수복했고 의주에서 왕을 모셨다.

박춘번(朴春蕃) : 화천당의 동생으로 호는 경원(慶元). 임진왜란 때 형과 함께 선봉으로 청주성을

                       탈환했고 후에 호조판서에 추증됐다.

박동명(朴東命) : 화천당의 아들로 시호는 충경(忠景), 호는 매은당(梅隱堂). 임진왜란 때 부친과 함께

                       활동했으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큰 공을 세웠으나 순국했다.

이시발(李時發) : 시호는 충익(忠翼), 호는 벽오(碧梧), 본관은 경주. 임진왜란 때 박춘무의 종사관으로

                       의병 모집과 훈련을 담당했으며, 벼슬이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한혁(韓赫)       : 본관은 청주. 임진왜란 때 박춘무의 종사관으로 의병모집과 훈련을 담당했다.

정순년(鄭舜年) : 본관은 동래. 임진왜란 때 박춘무의 종사관으로 의병모집과 사재를 털어 군자금을

                        마련했다.

민여함(閔汝函) : 본관은 여흥. 임진왜란 때 박춘무의 종사관으로 의병모집과 군자금을 담당했다.

칠백의 용사     : 이름없이 빛나는 칠백의 의병

박홍원(朴弘遠) : 박춘무의 손자로 이괄의 난 때 의병을 모집 활동했다.

 

▲ 주봉마을에 있는 민충사 [13:51]

 

13:53   주봉마을을 내려오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무래도 기념으로 한 장 쯤은 남겨야 할 것 같아서이다. 주봉마을 연꽃방죽에는 연잎만 가득할 뿐 연꽃은 철이 지나 볼 수 없었다. 커다란 주봉마을 표지석을 뒤로 하고 가로수길 보도에 올라섰다. 진약고개를 넘어 푸르미 환경공원까지 보도가 잘 설치되어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그런지 보기가 좀 그랬다. 구경거리 하나. 맞은편 도로에서 4충 추돌사고가 났다.

 

▲ 주봉마을로 내려오다 한 장 [13:53]

 

▲ 주봉마을 연꽃방죽 [13:57]

 

▲ 여기서도 부모산성에 올라갈 수 있네 [13:59]

 

▲ 주봉마을 입구 표지석 [14:00]

 

▲ 가로수길과 보도가 나란히 [14:01]

 

▲ 진약고개: 휴게소는 폐업 중 [14:06]

 

▲ 이쪽으로도 내려온 적이 있는데 [14:09]

 

▲ 건너편 도로에서 4중 추돌사고가 났다 [14:10]

 

14:11   푸르미 환경공원 입구를 지난다. 곱게 핀 코스모스 뒤로 푸르미 스포츠 타운 건물이 보인다. 쓰레기 매립장의 이미지를 미화하기 위해 만든 주민 편의시설인데 없는 거보다는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환경공원을 지나면서 도로폭이 3차로에서 2차로로 줄어들고 아울러 보도도 없어졌다. 2차로 오른쪽으로는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쓰레기 매립장 입구를 지나 차를 세워둔 곳에 도착하는 것으로 걷기가 모두 끝났는데 오늘도 길을 두어 번 잃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래도 걷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 푸르미 환경공원 이정표 [14:11]

 

▲ 코스모스 꽃밭 뒤로 보이는 푸르미 스포츠 타운 [14:12]

 

▲ 가로수길 확장공사 현장 [14:17]

 

▲ 가로수길 조치원 방향 [14:19]

 

▲ 청주시 광역 쓰레기 매립장 입구 이정표 [14:23]

 

▲ 차를 세워 둔 곳에 다시 돌아왔다 [1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