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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북山行記

2012.07.14. [충북山行記 108] 충북 진천 무제봉→옥녀봉

by 사천거사 2012. 7. 14.

무제봉-장군봉-옥녀봉 산행기

◈ 일시: 2012년 7월 14일 토요일

◈ 장소: 무제봉 573.7m / 충북 진천군 이월면

◈ 코스: 고개쉼터 → 무제봉 송림정 장군봉 옥녀봉 장수굴 사지마을

◈ 시간: 5시간 58분

◈ 회원: 백만사회원 8명



09:00   오늘은 백만사에서 진천 이월에 있는 무제봉에 올라 장군봉을 거쳐 옥녀봉까지 산행을 하는 날이다. 무제봉은 이미 두 번이나 올랐지만 장군봉과 옥녀봉을 거치는 종주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마가 잠시 남부지방으로 내려간 탓에 하늘이 잔뜩 흐려 있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집결지인 신흥고 체육관 주차장에 8명의 회원이 모여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탄 다음 진천 이월을 향해 출발했다.

 

지난 번에 아내와 함께 무제봉에 오를 때에는 어댕이교에서부터 걸었는데 오늘은 차로 고개쉼터까지 올라갔다. 경사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고개쉼터에 회원들을 내려놓고 회장님과 함께 차 한 대를 산행 종착지인 사지마을회관 앞에 갖다 놓고 오는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에 배낭 커버를 씌웠다.


▲ 신흥고 체육관 앞에서 출발 준비 중 [09:00]

 

▲ 무제봉 아래 고개쉼터에 도착 [09:57]

 

▲ 산행 종착지인 사지마을회관 앞 [10:25]

 

▲ 고개쉼터에서 산행 준비 중 [10:58]

 

▲ 고개쉼터에 있는 이정표 [10:59]


11:00   고개쉼터 왼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비가 그치면서 운무가 피어오른다. 쉬다 걷다 하며 무제봉을 향하여 오르는 길, 주황색의 하늘말나리와 하얀 까치수영이 우리를 반겨준다. 15분 만에 주능선에 올랐는데 왼쪽 바로 위에 있는 정상을 놔두고 오른쪽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어째 오늘 처음부터 조짐이 별로 좋지 않다.


▲ 고개쉼터 왼쪽에 있는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산행 시작 [11:00]

 

▲ 계단 중간에서 바라본 고개쉼터 [11:01] 

 

▲ 가파른 계단을 오른 후 한숨 돌리는 중 [11:02]

 

▲ 줄을 맞추어 앞으로 앞으로 [11:03]

 

▲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11:09]

 

▲ 다시 운무 속으로 [11:10] 

 

▲ 하늘말나리 [11:14] 

 

▲ 까치수영 [11:14] 

 

▲ 이정표가 있는 주능선에 올라 [11:15] 


11:23   해발 573.7m의 무제봉 정상에 올랐다. 남성회원과 여성회원으로 나누어 사진을 찍고 났는데 뜨거운 기운이 확 풍기며 날씨가 갑자기 후텁지근해졌다. 정상에서 간식을 먹으려던 계획을 바꾸어 장군봉 쪽으로 조금 가다 무덤 위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빵과 커피를 간식으로 먹었다. 장군봉 쪽을 바라보니 운무가 바람에 춤을 춘다. 그런데 커피맛은 왜 이렇게 좋은 거야?


▲ 표지석이 3개나 있는 무제봉 정상 [11:23] 

 

▲ 정상에서 남성회원들 [11:24] 

 

▲ 정상에서 여성회원들 [11:25] 

 

▲ 무제봉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회원들 [11:26] 

 

▲ 무제봉 정상 출발 [11:28] 

 

▲ 무덤 위 그늘에서 빵을 먹으며 여유롭게 휴식 [11:33] 


11:49   널널하게 휴식을 취한 후 운무가 퍼지고 있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참나무시들음병 때문에 참나무를 모두 솎아내 소나무만 남아 있는 능선에 운무가 퍼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앞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산행로 왼쪽에 있는 전망대에 잠깐 들른 후, 계단을 따라 임도 옆에 있는 송림정이라는 팔각정자로 내려갔다.


▲ 장군봉을 향하여 운무 속으로 [11:49] 

 

▲ 소나무 비탈에 서다 [11:57] 

 

▲ 앞에 꿈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듯 [11:59] 

 

▲ 산행로 왼쪽으로 임도가 따라 가고 [12:01] 

 

▲ 전망대에서 한 장 [12:06] 

 

▲ 전망대에서 각자 조망 중 [12:07] 

 

▲ 전망대 아래에 있는 이정표 [12:08] 

 

▲ 임도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송림정 [12:10] 


12:11   시간도 그렇고 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해서 팔각정자인 송림정에 점심상을 차렸다. 일단 소주를 한 잔씩 마신 다음 김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산 속에 있는 정자에 앉아 먹는 김밥맛이 썩 괜찮다. 우연의 일치인가? 점심을 다 먹고 나자 비가 멈추었다.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는 모양이다.

 

송림정 옆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날머리인 사지마을까지는 5.8km의 거리가 남아 있었다. 5분 정도 걸어 안산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을 지났다. 지금부터는 처음 걷는 길이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 계속 이어졌다. 해는 없고, 비는 안 오고, 운무는 엷게 깔려 있고, 가끔 바람은 불고, 산행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이다.


▲ 임도 옆에 있는 팔각정자 송림정 [12:11] 

 

▲ 소주 한 잔: 백만사를 위하여! [12:15] 

 

▲ 김밥을 점심으로 먹고 있는 중 [12:17] 

 

▲ 임도로 내려오는 계단과 산행 안내도 [12:37] 

 

▲ 송림정 옆에 서 있는 이정표 [12:38] 

 

▲ 송림정에서 장군봉으로 가는 길 [12:49]

 

▲ 안산저수지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2:54]

 

▲ 구름도 없고 비도 안 오고 걷기에 최고 [13:06] 

 

▲ 가끔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13:09] 


13:16   고압선 철탑 아래를 지났다. 여기서 6분 정도 걸어 해발 480m의 장군봉 정상에 올랐다. 빙 둘러 벤취가 마련되어 있는 정상에서 충분히 땀을 식힌 후 정상을 떠나 옥녀봉 쪽으로 향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길이 양쪽으로 갈라지는데 오른쪽은 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이고 왼쪽은 사면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지형으로 보아 서로 만날 것 같아 사면길을 택했다. 예상대로 길은 서로 만났다. 그런데......


▲ 고압선 철탑 아래를 지나는 중 [13:16] 

 

▲ 해발 480m 장군봉에 있는 이정표 [13:22] 

 

▲ 장군봉 표지석 [13:22] 

 

▲ 장군봉에 있는 벤취에 앉아 [13:22] 

 

▲ 장군봉에 있는 벤취에 앉아 [13:22] 

 

▲ 장군봉에 있는 벤취에 앉아 [13:23] 

 

▲ 장군봉 정상에서 쉬고 있는 회원들 [13:25] 

 

▲ 자, 이제 옥녀봉을 향하여 [13:34] 


13:47   철탑 근처에서 길이 끊어졌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니 철탑 위 왼쪽으로 길이 보였다. 그 길에 들어서서 걷는데 자꾸 아래로 내려가더니 결국은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길을 잘못 든 것을 인정하고 다시 철탑 있는 곳으로 올라가야 했는데, 늘 하던 버릇 대로,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경사가 급한 사면을 계속 내려갔다.

 

계곡 가까이 내려오자 길이 나타났다. 예상컨대, 왼쪽은 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계곡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회원들이 모두 내려왔을 때 다시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비가 조금씩 잦아든다. 그러나 잠시 후 길이 또 없어졌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그런 모양이다. 계곡 오른쪽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걷다 오른쪽 사면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낙엽이며 바닥에 널린 나뭇가지가 무척 미끄럽다. 산사면의 경사도 보통이 아니다. 길을 잘못 든 탓에 고생하는 회원들 보기가 미안하다. 무릇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그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고생을 하게 된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천신만고 끝에 능선에 올랐는데 철탑이 보인다. 어, 이게 뭐여? 아까 길이 끊어져서 길을 찾던 곳이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다. 철탑을 떠난지 정확히 1시간 6분 만에 다시 그 철탑으로 돌아왔다. 철탑을 꼭지점에 두고 삼각형으로 그리며 내려갔다가 계곡을 따라 걸은 후 다시 올라온 것이다. 지도도 없고 나침반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말 모를 일이다. 어쨌든 옥녀봉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아무래도 아까의 갈림길이 마음에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갈림길의 봉우리에서 옥녀봉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참, 어이 없는 일이네.


▲ 길이 없어진 철탑 부근 [13:47] 

 

▲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는 회원들 [13:48] 

 

▲ 계곡에 내려온 회원들 [14:13] 

 

 ▲ 비탈에 서서 후미를 기다리는 중 [14:44] 

 

▲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나? [14:44] 

 

▲ 아까 길이 없어 헤매던 철탑 아래 다시 올라왔다 [14:53] 

 

▲ 왼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는 곳 [15:02] 


15:05   갈림길에서 얼마 걷지 않아 이정표를 만났다. 옥녀봉까지 1.3km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이곳 이정표는 거리가 제멋대로였다. 이정표마다 거리가 다 틀린다. 옥녀봉으로 가는 길에 소나무 숲이 펼쳐지는데 나름대로 구부러진 소나무들이 운무에 휩싸이다 보니 마치 하늘거리며 춤을 추는 것 같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풍경 만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는 이 세상에 없다.


▲ 갈림길을 조금 지나면서 만난 이정표 [15:05] 

 

▲ 이렇게 좋은 길을 놔두고 [15:08] 

 

▲ 나무에 페인트로 옥녀봉 가는 길 표시 [15:09] 

 

▲ 길이 부드럽고 평탄하다 [15:13] 

 

▲ 운무와 소나무가 만들어낸 풍경 [15:14] 

 

▲ 옥녀봉 정상에 이르기 전에 한 장 [15:24]


15:25   해발 457m의 옥녀봉 정상에 올랐다. 정말 어렵게 옥녀를 만났다. 옥녀봉에서는 부부 끼리 사진을 찍었다. 부부 마다 포즈도 다양하다. 이제 장수굴을 거쳐 사지마을로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운무가 한참 짙어지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뚜렷하게 보이는 소나무들이 또 아름답다. 소나무는 운무에 싸여도 보기 좋고 그냥도 보기에 좋다.


▲ 옥녀봉 정상에서 이완호 회원 부부 [15:42]  

 

▲ 옥녀봉 정상에서 이방주 회장님 부부 [15:42]

 

▲ 옥녀봉 정상에서 박호준 회원 부부 [15:42] 

 

▲ 옥녀봉 정상에서 우리 부부 [15:43] 

 

▲ 운무와 소나무가 그려내는 풍경 [15:50] 

 

▲ 좋은 글귀 하나 [15:54]

 

▲ 오늘 산행로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많다 [15:59] 

 

▲ 잠시 휴식을 취하고 [16:01] 

 

▲ 운무가 걷히자 소나무가 뚜렷해졌다 [16:12] 


16:17   은행정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이정표가 서 있다. 길을 잘못 내려갈까봐 잠시 기다렸다가 회원들이 다 모이자 다시 출발을 했다. 10분 정도 걷자 작은 이정표가 하나 있는데 장수굴 가는 길을 왼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산허리를 따라 나 있는 길을 5분 정도 걸었더니 꽤 큰 석굴이 보이고 그 왼쪽 바위벽에 커다란 마애불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수굴과 마애여래입상이었다.

 

마애불을 감상하고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 내려오는데 왼쪽에 커다란 바위가 갈라져 있다. 안내문을 살펴 보니 신라시대의 김유신이 칼로 잘랐다는 단석이었다. 4분 후 시멘트 포장도로에 내려섰다. 오른쪽에 있는 김덕숭 효자문을 감상하고 사지마을 쪽으로 걸었다. 회장님은 마애불에 들러지 않고 그냥 내려가셨단다. 왜 그랬을까? 


▲ 은행정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6:17] 

 

▲ 후미를 기다리면서 한 장 [16:18]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인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특징을 가진 마애불(커다란 암벽에 새긴 불상)이다. 바위의 한 면을 다듬어 전신 광배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새겼다. 단아한 스님 형태의 얼굴 표정과 어깨까지 늘어진 큰 귀가 특징적이다. 당당한 어깨에 걸친 통견(양어깨에 걸친 옷)의 법의는 U자형으로 흘러내리고, 왼팔 등에도 촘촘하게 옷 주름선이 형성되어 있다. 오른손은 올리고 왼손은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으로 두려움을 없애주고 모든 소망을 들어주는 시무외여원인의 변형으로 보여진다.

 

둥근 얼굴에 부드러운 세부 표현과 엷은 미소의 묘사로 부처의 자비스러운 얼굴을 완성하였으며,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높은 부조로 입체감이 있어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불상 옆에 있는 굴은 장수굴이라고 하는데 김유신 장군의 전설이 깃든 곳이며 나무로 만든 건물이 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다.


▲ 장수굴과 마애불 안내판 [16:28]

 

▲ 마애불 오른쪽에 있는 장수굴(중앙석굴) [16:33] 

 

▲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16:34] 


진천 사곡리 단석

 

화랑도는 신라(BC 57~935)의 발전에 뒷바침이 될 새로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청소년 단체로 진흥황 때 조직이 체계화되어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진천 출신의 흥무대왕 김유신이다. 신라의 청소년들은 신라가 팽창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화랑조직을 통하여 명산 대천을 찾아 다니며 단체생활과 공동의 의식을 수행하였다.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에 입문하여 최고의 자리인 국선에 올랐으며,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화랑에 입문하여 수련하던 중 難勝이라는 도인을 만나 삼국통일의 비책을 받았다고 한다. 이 단석은 커다란 바위를 칼로 쳐서 잘라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김유신이 화랑에 입문한 이후 수련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將帥堀과 인접하여 있어 수련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 진천 사곡리 단석 [16:45] 

 

▲ 포장도로 옆에 서 있는 이정표 [16:49]


김덕숭 효자문(金德崇 孝子門)

 

충청북도 기념물 제134호인 이 효자문은 조선 세종대의 효자 김덕숭을 기리기 위한 정려문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 건물이다. 김덕숭(1373~1448)은 강릉 김씨로 자는 子修, 호는 募庵으로 사헌부장령, 한산군수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귀향하여 부모 효행에 극진하였다.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에 거동하셨을 때 그의 효행을 듣고 충청감사를 통해 백미 10가마를 특사하였다. 공은 즉시 父 天益과 함께 국왕께 사은숙배하니 세종은 부자간을 분별할 수 없다고 하시며 의복 한 벌씩 하사하셨다. 이때 천익은 90세, 덕숭은 75세였다. 이듬해인 세종 30년(1448)에 공이 별세하니 국왕께서 이조참의를 증직하고 御製詩 3수를 내리어 亭閣을 건립하게 하였으며 삼강행실도에 그의 효행을 기록하게 하였다. 그 후 인조 11년(1631)에 효자문을 세우게 되었다.


▲ 김덕숭 효자문 [16:50]


16:58   산행 종착지인 사지마을회관 앞에 도착하니 먼저 내려온 회장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무제봉 아래 고개쉼터에 세워 둔 내 차를 가지러 다녀오는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웬 수박? 고맙게도, 정자에서 고스톱 치던 할머니들이 먹으라고 주셨단다. 여기는 아직 시골 인심이 살아 있는 모양이다.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지마을을 떠나 진천을 거쳐 청주로 가는데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앞이 안 보일 정도다. 국지성 호우라 얼마 안 있어 비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무리 회식을 하기 위해 원당한우촌으로 차를 몰았다. 비가 오는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음식점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기를 구워 놓고 소주와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토요일 밤은 깊어 가고 그렇게 백만사 7월 산행도 막을 내렸다.


▲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는 회장님 [16:58]

 

▲ 다시 사지마을회관 앞에 도착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