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 산행기
◈ 일시: 2012년 6월 23일 토요일
◈ 장소: 장산 강원 영월 상동 1408.8m
◈ 코스: 단양촌 → 서봉 → 촛대바위 → 장산 → 헬기장 → 산재당 → 절음박골 → 단양촌
◈ 시간: 5시간
◈ 회원: 평산회원 4명(지학근, 김지홍, 김석언, 이효정)
07:15 오늘은 평산회에서 영월에 있는 장산으로 산행을 떠나는 날이다. 6월 평산회 산행은 늘 영월 쪽으로 가는데, 그것은 평산회 회원이었던 故 김영철 山友가 정선에 있는 백운산에서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달이기 때문이다. 2006년에 그 일이 있었으니 그 후로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오늘 산행지인 장산은 영월군 상동읍에 있는데, 이미 다녀온 예미산, 매봉산, 선바위산과 가까우며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함백산과 태백산의 중간에서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산이다.
신흥고 체육관 앞에서 김지홍 회원과 지학근 회원을 만나 내 차로 출발했다. 제천에 살고 있는 김석언 회원은 제천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쪽으로 갈 때면 늘 들르는 중앙탑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출발, 38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제천휴게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석언 회원을 만났다. 반갑네. 영월을 지나고 석항을 지나 예미에서 좌회전했다. 동강으로 가는 길은 예전과 변한 게 거의 없었다.
▲ 중앙탑휴게소에서 바라본 조정지댐 [08:31]
▲ 중앙탑휴게소에서 바라본 남한강 [08:31]
10:07 동강변에 내려섰다. 동강 위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나 흐르는 동강물이나 그 위에 떠 있는 조각배나 예전과 변함이 없는데, 그날 그 친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 나라에서나마 잘 지내겠지. 간단히 추모제를 지내고 동강변을 떠났다. 그 놈 얼굴이 자꾸 어른거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였다. 참 좋은 친구였는데...... 동강변을 떠나 장산 산행 들머리가 있는 상동읍으로 차를 몰았다. 여러 번 다닌 길이라 눈에 익숙하다. 수라리재에서 예미산을 다녀온 기억, 매봉산과 선바위산을 다녀온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 동강변에 도착 [10:07]
▲ 故 김영철 山友 추모제 [10:11]
▲ 故 김영철 山友 추모제 [10:13]
▲ 故 김영철 山友 추모제 [10:14]
▲ 무심히 흐르는 동강 위에 나룻배는 그 때와 여전하고 [10:14]
11:30 상동읍을 지나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서 단양촌 사택 옆 공터에 차를 세웠다. 예전에 중석광산이 한창 개발될 때 직원들을 위해 지은 사택인 모양인데 지금은 폐허가 된 채 흉물스럽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전에 영화롭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축대벽에서 자라고 있는 산딸기들은 그런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빨간 열매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 산행준비를 하고 망경사 가는 포장도로에 올라섰다.
이 단양촌에서 장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법은 모두 세 가지다. 하나는 서봉을 경유해서 올라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망경사를 경유해서 올라가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절음박골을 경유해서 올라가는 것이다. 단양촌 외에 어평마을이나 백운산장을 산행 기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하산길도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등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내려오면 된다. 우리는 서봉을 경유해서 정상에 오른 후 절음박골을 경유해서 내려오기로 했다.
도로 오른쪽 아래로 줄을 지어 서 있는 사택들의 규모가 엄청난데 모두 폐허가 된 채 방치되어 있고, 도로 가까운 쪽으로 몇 동이 새롭게 보수공사를 한 게 보였다. 아마 재개발되는 중석광산의 직원들이 사용할 사택인 모양이다. 이정표가 보인다. 절음박골을 통해서 장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왼쪽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니 또 이정표가 있다.
▲ 사택 옆 공터에서 산행준비 중 [11:32]
▲ 산딸기가 지천이다 [11:33]
▲ 장산 등산로 안내판 [11:35]
▲ 지금은 폐허가 된 사택들 [11:36]
▲ 망경사로 올라가는 길 [11:37]
▲ 폐허가 된 예전 사택들 [11:38]
▲ 절음박골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이정표 [11:43]
11:44 망경사와 서봉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이정표가 서 있다.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는 서봉 쪽으로 Go! 본격적인 산길에 접어 들었는데 길을 정비해 놓은 흔적이 보인다. 대부분이 돌길인 산행로 오른쪽은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계속되는 오름길이라 처음부터 힘이 든다. 힘이 들면 쉬어야 한다. 쉬는 것도 산행의 일부다.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털중나리가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꽃이란 참 좋은 존재다.
▲ 서봉 가는 길 이정표 [11:44]
▲ 운치 있는 나무 계단 [11:52]
▲ 산행로 오른쪽은 거의 절벽이다 [12:01]
▲ 쉬는 것도 산행의 일부다 [12:03]
▲ 자태 고운 털중나리 [12:06]
▲ 마치 계단처럼 나 있는 돌길 [12:11]
▲ 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길 [12:30]
▲ 잠시 내려가는 길 [12:50]
12:55 전망대에 올랐다. 앞으로 올라야 할 서봉이 잘 보이고, 상동읍 오른쪽에 솟아 있는 순경산도 잘 보이고, 계곡을 따라 이루어져 있는 상동읍소재지도 잘 보였다. 저 좁은 골짜기에 어떻게 3만 명 이상이 살았는지 무척 궁금하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계속 오르막 돌길이다. 오른쪽으로 다시 한 번 상동읍을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지나자 홈통바위라는 거대한 암벽 사이를 지나가야 했다. 홈통바위에서 서봉까지는 채 10분이 안 걸리는 거리였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봉 [12:55]
▲ 상동읍 오른쪽에 솟아 있는 순경산 [12:55]
▲ 골짜기에 형성된 상동읍 [12:55]
▲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 [13:21]
▲ 힘들면 쉬는 게 상책이다 [13:26]
▲ 순경산 아래 상동읍이 보인다 [13:29]
▲ 홈통바위 앞에서 [13:30]
▲ 홈통바위 앞에서 [13:31]
13:40 아무런 표지도 없는 서봉에 올랐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잘 보인다. 시간도 꽤 되었고 해서 일단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암릉 한쪽에 작은 공터가 있어 자리를 펴고 김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김지홍 회원이 가져온 맥주도 한 잔씩 마셨다. 아직도 시원하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출발, 망경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곳에 서 있는 이정표를 만났다.
산행로 오른쪽에서 천둥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하늘이 뿌연 것이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산행로 왼쪽에서도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가운데만 아직까지는 조용하다. 오른쪽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서 있다. 촛대바위였다. 우리나라에는 촛대바위도 참 많다. 어지간히 길쭉하게 서 있으면 다 촛대바위다. 갑자기 길이 좋아지면서 묵은 헬기장이 나타났다. 왼쪽으로 이따 내려갈 절음박골 갈림길이 보인다. 서서히 천둥소리가 우리 머리 위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백운산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을 지나자 천둥소리가 잦아지고 하늘이 번쩍거리기 시작한다.
▲ 아무런 표지가 없는 서봉에서 [13:41]
▲ 서봉에 있는 암릉지대 [13:43]
▲ 암릉 위에서 김지홍 회원 [13:44]
▲ 점심 먹을 준비 [13:48]
▲ 먕경사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4:19]
▲ 촛대바위 옆에서 김지홍 회원 [14;25]
▲ 촛대바위에서 회원들 [14:26]
▲ 절음박골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4:38]
▲ 백운산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4;45]
14:52 해발 1408.8m의 장산 정상에 올랐다. 번개는 계속 때려대고 곧 이어 천둥소리가 뒤를 따른다. 장산 정상은 원래 조망이 좋은 곳인데 오늘은 날씨 때문에 크게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단지 순경산 뒤로 선바위산, 매봉산, 단풍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실루엣을 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충 사진을 찍고 정상을 벗어나는데 참았던 하늘에서 강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매! 배낭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입고 난리 부르스다.
▲ 장산 정상에서 [14:52]
▲ 장산 정상에서 [14:53]
▲ 장산 정상에서 김지홍 회원 [14:53]
▲ 장산 정상에서 지학근 회원 [14:54]
▲ 장산 정상에서 나도 한 장 찍고 [14:54]
▲ 장산 정상에서 김석언 회원 [14:54]
▲ 장산 정상에서 지학근 회원 [14:55]
▲ 장산 정상에서 김지홍 회원 [14:55]
15:13 절음박골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묵은 헬기장에 도착했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 아까보다는 많이 잦아들었다. 절음박골로 내려가는 처음 능선길은 올라올 때와는달리 아주 부드러운 흙길이었다. 7분 정도 걷자 길이 왼쪽으로 90도 정도 휜다. 사면을 가로질러 가자 오른쪽으로 폐허가 된 움막이 하나 눈에 들어오는데 오른쪽에 '산재당'이라는 표지판이 매달려 있었다. 예전에 스님이 공부를 하던 곳인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모양이다.
산재당에서 절음박골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라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침 비가 그치면서 운무가 하얗게 피어오른다. 장관이다. 절음박골을 통과하는 길은 계곡길답게 돌길이었다. 지루하던 돌길이 끝나고 널찍한 수렛길로 들어섰다. 완전히 놀고 먹는 길이다. 길 양쪽에 산딸기가 지천으로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다. 시간을 좀 들인다면 꽤 많이 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지나가면서 맛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 절음박골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묵은 헬기장 [15:13]
▲ 능선에서 왼쪽 계곡으로 [15:20]
▲ 사면을 가로지르고 [15:31]
▲ 예전에 스님이 공부를 했다는 움집 산재당 표지판 [15:38]
▲ 기도터 인듯한 곳 [15:38]
▲ 비가 그치며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다 [15:39]
▲ 산재당에서 절음박골로 내려가는 급경사길 [15:40]
▲ 절음박골 계곡길이 끝나고 수렛길이 시작되었다 [16:04]
▲ 수렛길 양쪽으로 완전 산딸기 밭이다 [16:16]
▲ 수렛길이 임도로 바뀌었다 [16:21]
16:25 서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다시 도착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는데 비는 오지 않는다. 사택 앞 공터에서 산행을 마감하고 차를 몰고 바로 아래에 있는 꼴두바위로 갔다. 전설이 깃들어 있는 꼴두바위는 이름에 걸맞게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원래 상동은 텅스텐(중석)으로 유명하며 세계 제1의 중석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버핏이 800억원을 투자해서 상동의 중석광산을 재개발한다는 사실에 상동읍 전체가 기대에 차 있다고 한다.
4시 55분, 꼴두바위를 떠나 석항으로 가는 길, 하늘에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자동차 운행에는 조금 지장이 있지만 정말 반가운 비다. 까짓거 집에 못 가면 어떠랴. 가뭄이 해결되게 팍팍 내려라. 영월까지 가는 데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국지성 호우가 아닌가? 웬걸, 제천으로 들어서자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이 도로가 말짱하다. 대한민국은 참 넓은 나라다. 쉬지 않고 계속 달려 7시 50분에 청주에 도착했다. 우리들 아지트인 제일수산에 들러 회를 썰어 놓고 소주를 마시는 것으로 故 김영철 산우의 추모 산행은 끝을 맺었다.
꼴두바위의 전설
상동광업소 우측 골짜기에 있는 화강암으로 된 바위를 '꼴두바위'라고 한다. 조선 시대 송강 정철 선생이 강원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꼴두바위를 보고 넙죽 절을 하면서 "이 큰 바위로 인하여 이곳 심산유곡에 만인이 살리라"라고 예언을 하였다. 그 후 송강 정철 선생의 예언대로 1923년 상동중석광이 개광되면서 한 때는 인구 3만여 명이 모여사는 읍지역이 되었다.
옛날 상동읍 구래리에 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주막을 차리고 나이 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주막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 먹고 살 만큼의 돈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부부에게도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바로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것이다. 며느리가 온종일 찾아드는 손님들 시중을 들다가 지쳐서 잠깐 쉴 틈이면, 시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며느리를 구박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는 인근 마을에 살고 있는 노스님을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며느리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노스님은 꼴두바위에 올라가 석달 열흘 동안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며느리에게 일러주었다. 그러나 그 대신 주막집에 손님이 끊겨 앞으로 가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노스님의 말을 들은 며느리는 아들없이 사는 것이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하고, 아들을 얻고자 하는 일념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꼴두바위에 올라가 치성을 드렸다.
한편 시어머니는 손주를 얻을 수 있으나 또 다시 가난한 생황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느리의 그러한 소행을 괘씸하게 여겨 며느리에게 밥도 주지 않는 등 온갖 구박과 학대를 하면서 꼴두바위에 치성을 드리는 것을 중단하라고 하였다. 이러한 시어머니의 학대를 받으면서도 며느리는 매일 같이 꼴두바위에 치성을 드렸다. 그러나 치성을 드리던 며느리는 백일을 채우지 못하고, 아들에 대한 한을 간직한 채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후 하늘은 며느리 대신 꼴두바위로 하여금 중석을 잉태하게 하여 며느리의 한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도 며느리를 불쌍하게 여겨 돌로 며느리 모양의 '꼴두각시'를 깍아 놓고 매년 며느리의 한을 달래주기 위해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는 득남, 취업, 입시, 결혼 등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꼴두바위 성황당에 소원을 빌고 있으며,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성을 드린 후 꼴두바위 정기를 듬쁙 받을 수 있도록 바위 소재지인 상동에서 하룻밤을 묵어야만 한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 서봉 갈림길 이정표 [16:25]
▲ 차를 세워둔 곳에 다시 도착 [16:34]
▲ 전설이 깃들어 있는 꼴두바위 [16:49]
▲ 김석언 회원과 지학근 회원 [16:50]
▲ 꼴두바위 앞에서 김지홍 회원 [16:51]
▲ 꼴두바위를 떠나며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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