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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북山行記

2011.12.18. [충북山行記 100] 충북 진천 만뢰산/갈미봉/태령산

by 사천거사 2011. 12. 18.

만뢰산-갈미봉-태령산 산행기

 일시: 2011년 12월 18일 일요일

 장소: 만뢰산 611.7m / 갈미봉 540m / 태령산 451m / 충북 진천군 진천읍

 코스: 보탑사 → 만뢰산 → 갈미봉 → 태령산 → 김유신장군 탄생지

 시간: 3시간 31분 

 회원: 백만사 회원 4명


 

 

 


08:00   오늘은 백만사에서 진천에 있는 만뢰산과 태령산 연계산행을 하는 날이다.  회원들의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회장님 부부와 우리 부부만 산행에 참가하게 되었다. 성모병원 아래에 있는 음식점 '두루정' 앞에서 8시 5분에 만나 두 대의 차로 진천 쪽으로 달렸다. 문백에서 구도로를 따라 21번 국도의 사석삼거리까지 간 다음 좌회전, 보탑사삼거리에서 연곡리 방향으로 꺾어 들어가 화랑무예태권도성지 표지석이 있는 주차장에 회장님 차를 세워놓고 내 차로 보탑사로 올라갔다. 보탑사로 가는 차도는 좁아서 차량이 많이 몰릴 때는 교행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시간이 일러 그런지 지금은 한산하다.


화랑무예태권도성지 표지석

 

표지석은 김경회 전 군수가 세계태권도공원 유치를 염원하며 지난 2002년 김유신장군 탄생지(사적 제414호) 바로 옆에 세웠다. 그러나 세계태권도공원 유치에 실패했고 현 유영훈 군수 취임 후 2006년말께 사적지로 부터 300m가량 떨어진 화장실과 주차장 인근으로 옮겨졌다. 여기에다 예전과 달리 표지석 상/하단부의 균형이 맞지 않고 아무렇게나 짜맞춰 놓은 형국을 보여 지나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또 하단부 한쪽은 아예 깨어져 나간 상태다. 이 곳을 찾은 관광객은 "'다시 천 수백년이 흐른다 해도 사해 염원은 표석처럼 생생하고...'라고 새겨진 표지석 문구가 무색하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 주차장 옆에 있는 김유신장군태실(태령산)로 올라가는 길 이정표 [08:33]


08:48   보탑사 주차장에는 차가 딱 한 대 세워져 있었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느티나무의 자태가 웅장하다. 보탑사 경내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눈이 살짝 깔린 마당에 스님이 비질을 해놓았는데 햇살을 받아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이 예술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보탑사는 1996년에 창건되었기 때문에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니지만 절집들이 적절하게 배치가 잘 되어 있고, 특히 삼층 목조 통일대탑은 거의 예술품에 가깝다. 보물 제404호인 석비 왼쪽으로 내려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에 접어들었다.


보탑사

 

보탑사(寶塔寺)는 충북 진천군 보련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 절터로 전해지는 곳에 비구니스님인 지광·묘순·능현스님이 1996년 창건했다. 보련산은 해발 400m 안팎의 야트막한 산으로 고만고만한 산봉우리가 절을 중심으로 연봉을 이루고 있다. 연꽃 봉우리 꽃술에 해당하는 보탑사는 그래서인지 아늑한 느낌이다.

 
절 살림 또한 서너 명의 비구니승과 몇 명의 자원봉사자가 단출하게 꾸려나간다. 절의 내력은 20년도 채 안되지만 풍기는 느낌은 여는 고찰(古刹)과 비할 데 없다. 그래서인지 야생화로 절을 꾸며낸 섬세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손끝 야문 스님들이 만들어 놓은 야생화 화단, 정원수 등이 아기자기하게 잘도 어울려 있다. 사찰을 도는 자체가 쉼이고 여유임을 5분 산책에서도 느낄 수 있다.


보탑사 통일대탑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3층목탑이다. 보탑사 통일대탑은 신라 김유신 장군이 민족통일을 이뤄냈듯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신영훈 대목장이 건축했다.(화랑의 고장 진천은 김유신 장군이 탄생한 곳이자 혼불이 담겨있다)

 

황룡사 9층목탑을 모델로 만든 이 목탑은 세계 최대(42.7m) 높이로 14층 아파트와 맞먹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그 높이가 225자(약 80m)라 했다. 또한 백제의 아비지가 지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 백제의 건축술이 적용됐음을 알 수 있다. 강원도산 소나무를 자재로 단 한 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전통방식을 고수해 지어졌다 한다. 특이한 것은 그냥 목탑이 아니라 계단을 통해 3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1층은 금당으로 동서남북 모두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백자원탑 안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2층에는 팔만대장경 탁본을 넣어 둔 윤장대가 있으며, 3층에는 미륵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에는 사방불(동방 약사우리광불, 서방 아미타여래불, 남방 석가모니불, 북방 비로자나불)이 배치돼 있다. 법보전에는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책장인 '윤장대(輪藏臺)'를 두고 팔만대장경 번역본을 안치했고, 한글법화경을 총 9t의 돌판에 새겨 놓았다. 미륵전에는 화려한 금동 보개 아래에 미륵삼존불을 모셨다. 2층과 3층 외부에는 탑돌이를 할 수 있도록 난간이 설치돼 있다.


▲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느티나무 [08:49]

 

▲ 만뢰산이 아니라 '보련산 보탑사'라고 적혀 있다 [08:51]

 

▲ 보탑사 경내로 올라가고 있는 회원들 [08:52]

 

▲ 보탑사 통일대탑 앞에서 [08:53]

 

▲ 보탑사 경내에서 [08:55]

 

▲ 비질을 한 마당이 예술작품이다 [08:57]

 

▲ 임도를 따라 걷고 있는 회원들 [08:59]


09:01   이정표를 만났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오른쪽 계곡길로 들어섰고 이어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이 계속 이어졌다. 9시 21분, 이정표가 서 있는 주능선 봉우리에 올랐다. 투구바위까지 6.5km라고 적혀 있다. 간식을 먹으며 한 숨을 돌린 다음 만뢰산 정상을 향해 출발, 9시 33분에 보탑사로 직접 내려가는 길을 만났다. 하얀 눈이 깔린 능선길은 걷기에 좋다. 거의 모든 산이 그렇듯이 산 정상 바로 아래는 경사가 급한데 이 만뢰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왼쪽 길로 간다 [09:01]

 

▲ 나무는 모두 옷을 벗었다 [09:05]

 

▲ 걷다가 땀이 나기 전에 겉옷을 하나씩 벗고 [09:09]

 

▲ 배낭에는 휴지를 가슴에는 추억을 [09:15]

 

▲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곳 [09:22]

 

▲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만뢰산 정상 [09:35]

 

▲ 눈이 살짝 덮여 있는 능선길 [09:35]

 

▲ 보련골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삼거리 [09:41]

 

▲ 초겨울 산길이 아름답다 [09:48]

 

▲ 만뢰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10:01]


10:01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넓은 만뢰산 정상에는 부부 산행객이 한쪽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고, 정상표지석 아래에서는 막걸리를 파는 분이 막 상을 차리고 있었다. 배낭을 벗어놓고 일단 막걸리부터 한 잔씩 마셨다. 밤 냄새가 구수한 막걸리에 멸치와 마늘쫑 안주가 제격이었다. 커다란 산행안내도 옆에 있는 표지석과 함께 사진을 찍고 갈미봉을 향해서 출발.


▲ 넓은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만뢰산 정상 [10:02]

 

▲ 누가 썼는지 명필이네 [10:03]

 

▲ 정상에서 밤 막걸리를 한 잔씩 [10:06]

 

 

▲ 만뢰산 정상에 있는 삼각점 [10:16]

▲ 만뢰산 정상에서 우리 부부 [10:16]

 

▲ 만뢰산 정상에서 회원 모두가 함께 [10:16]

 

▲ 만뢰산 정상에서 회장님 부부 [10:17]


10:20   만뢰산 정상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팔각정이 자리잡고 있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0시 27분, 하수문으로 내려가는 갈림길 삼거리를 지났다. 단체산행객들이 맞은편에서 올라오고 있다. 날은 찬데 바람만 불지 않으면 땀이 날 정도다. 사실 이런 날이 산행을 하기에 좋은 날이다. 갈미봉을 정면에 두고 경사가 별로 없는 능선길을 계속 걸었다.


▲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팔각정자 [10:20]

 

▲ 보련골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0:24]

 

▲ 내려가는 길 경사가 급한 곳 [10:27]

 

▲ 능선길이 평온하다 [10:28]

 

▲ 앞에 갈미봉 봉우리가 보인다 [10:31]

 

▲ 이름 없는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 [10:33]

 

▲ 길은 계속 걷기에 좋다 [10:34]


10:42   해발 568m의 갈미봉에 올랐다. 갈미봉에서는 백곡면 구수리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고 있었다. 10시 56분, 임도에 내려섰다. 이정표가 서 있는데, '태령산(태실) 3km, 동골수녀원 3.9km, 쥐눈이마을 1.2km, 김유신장군탄생지 3.7km'라고 적혀 있다. 임도를 건너 숲으로 들어서자 소나무가 많이 보였다. 고만고만한 능선길이 계속 이어졌다. 바람이 불 때는 조금 차갑지만 날은 산행을 하기에 아주 좋았다. 갈미봉에서 1시간 10분을 걸어 태령산에 도착했다. 


▲ 해발 568m의 갈미봉 정상 [10:42]

 

▲ 갈미봉 정상에서 여성회원들 [10:43]

 

▲ 우리가 걸어온 능선 [10:54]

 

▲ 임도 건너 이정표가 서 있다 [10:56]

 

▲ 운치 있는 소나무 숲길 [11:02]

 

▲ 길이 아주 평탄하다 [11:12]

 

▲ 양쪽으로 날개를 편 듯한 갈미봉 [11:14]

 

▲ 서서 한 장 찍고 [11:14]

 

▲ 벤취에 앉아서도 한 장 찍고 [11:26]

 

▲ 열심히 걷고 있는 회장님 부부 [11:26]

 

▲ 벤취에서 따끈한 숭늉을 마시고 [11:29]


11:52   태령산 표지가 붙어 있는 봉우리에 올랐다. 태령산 정상에는 태실이 있다는데 없네? 앞에 보이는 저 봉우리가 태령산인가? 그런데 왜 여기에 표지가 붙어 있지? 지도가 없으니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올라왔던 길 조금 아래에 갈라지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이 내려가는 길인가? 모르겠다. 그 쪽으로 가보자. 길을 따라 가는데 가면 갈수록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길은 쥐눈이마을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일단 왼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가면 도로에 내려설 것 같아 과감하게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나마 나 있던 길이 어느 순간에 없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경사가 급하고 낙엽이 깔려 있어 몹시 미끄러웠다. 다행인 것은, 가시나무나 찔레와 같은 잡목이 없어 내려가는데 크게 곤란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길이 전혀 없을 것 같았는데 아랫쪽으로 내려오자 널찍한 임도가 나타났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희미한 자취만 남아 있지만 임도임에는 틀림없었다. 태령산에서 37분 정도 걸려 하늘소카페 아래 차도에 내려섰다. 차도에서 왼쪽으로 계속 걸어가니 김유신장군 생가가 나오고 곧 이어 차를 세워둔 주차장에 도착했다. 지형을 보니, 아까 우리가 올랐던 태령산에서 바라본 봉우리에 태실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태령산이 두 개란 말인가?

 

나중에 의문이 풀렸는데, 실제 지도에는 우리가 올랐던 봉우리가 태령산으로 되어 있고 태실은 맞은편 봉우리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지도에서는 태령산1봉, 태령산2봉(태실이 있는 곳)이라고 표기를 한 곳도 있었다. 진천군에서는 좀 더 확실하게 명칭을 정해서 표지석이라도 설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자체에서는 관광지 소개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관광지 개발과 정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미리 예약을 해둔, 주차장 맞은편에 있는 '산골맛집'이란 음식점에서 능이오리백숙을 시켜 점심을 먹었다. 스무 가지가 넘는 맛갈스런 밑반찬이 좋았고 능이를 듬뿍 넣은 오리백숙도 그 맛이 일품이었다. 음식맛에 대가인 회장님도 연신 칭찬을 하신다. 푸짐한 점심을 느긋하게 먹은 다음 저녁 6시에 있는 송년모임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청주로 돌아오는 것으로 일단 산행을 마쳤다. 


김유신 장군 탄생지 및 태실: 사적 제414호(1999. 6.11)

 

이곳은 흥무왕 김유신 장군이 탄생한 곳으로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13세손이다. 김유신 장군은 만노군 태수(萬弩郡 太守,만노: 진천의 옛이름) 김서현(金舒玄) 장군의 아들로 진평왕 17년(595년) 진천읍 상계리 계양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15세 되던 609년(진평왕 31년)에 화랑이 되고 낭비성 싸움에 공을 세워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선덕여왕 때 상장군(上將軍), 무열왕 7년(660년) 상대등(上大等)이 되어 당군(唐軍)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후 나당연합군의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668년)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이 되었으며 한강 이북의 고구려 땅을 다시 찾아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여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다. 지금의 계양(桂陽) 마을 입구에 장군터(태수 관저가 있던 곳)라 불리워지는 곳에 1983년에 유허비(遺墟碑)를 건립하였으며, 이곳에서 북서 방향 2㎞지점에는 태수 관저에서 사용했다는 우물터 연보정(蓮寶井)이 현존하고 있으며 무술 연습을 했다고 전해오는 투구바위와 치마대가 있다.


▲ 태실이 없는 태령산 정상에서 [11:52]

 

▲ 낙엽이 깔린 급경사 하산길 [12:02]

 

▲ 경사가 심해도 잘 내려옵니다 [12:06]

 

▲ 임도를 따라 내려오고 있는 회원들 [12:22]

 

▲ 임도에서 내려선 도로: 하늘소카페가 보인다 [12:29]

 

▲ 임도와 농장으로 가는 길이 만나는 곳: 다 내려왔다, 만세! [12:29]

 

▲ 김유신 장군 생가 뒤 태령산 능선이 보인다 [12:34]

 

▲ 다시 돌아온 주차장 [12:41]

 

▲ 맛집식당 상차림 [13:05]

 

▲ 능이버섯 오리백숙 맛이 일품이다 [13:05]


18:00   정우종 회원을 제외한 백만사 회원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송년모임이 율량동에 있는 동해바다횟집에서 열렸다. 특히 이번 송년모임에는 새로 백만사에 입회를 한 박호준 선생님 부부가 참석하여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주로 지난 한 해 동안 즐거웠던 추억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는데, 여성회원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더욱 더 알찬 자리가 이루어졌다. 이제 임진년 새해를 맞이하여 보다 재미있고 보다 인정이 넘치는 백만사가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