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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서유럽 5개국

2011.08.08. [서유럽 여행 9] 프랑크푸르트→하이델베르그

by 사천거사 2011. 8. 8.

 

서유럽 여행 9

 

 

 ◈ 일시: 2011년 8월 8일 월요일

 ◈ 코스: 프랑크푸르트 → 뢰머 광장 → 하이델베르그 고성 → 프랑크푸르트 

 ◈ 회원: 14명

 

 

 

6시 모닝콜, 7시 아침, 8시 10분에 호텔을 출발했다. 오늘 일정의 하일라이트는 하이델베르그 관광인데 그 전에 프랑크푸르트의 뢰머 광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뢰머 광장에 도착하자 하늘에서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비는 지나가는 소나기로 곧 그쳤고 하늘은 다시 파래졌다. 역사적 의미가 깃들여져 있는 뢰머 광장의 볼거리에 대해 독일에 광부로 와서 이곳에 정착을 했다는 늙수그레한 가이드가 열변을 토하고 있다. 

 

뢰머 광장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광장이다. '뢰머(로마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고대 로마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인데 15~18세기의 건물들이 몰려 있다. 광장 주변에는 구시청사와 오스트차일레가 있다. 구시청사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대관식이 끝난 후에 화려한 축하연을 베풀었던 유서깊은 곳이며, 프랑크푸르트 최초의 박람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1405년부터 시청사로 사용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구시청사 맞은 편에 있는 목조건물들을 통칭 오스트차일레라고 하며, 본래는 15세기에 쾰른의 비단상인들을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 프랑크푸르트 Mercure 호텔 앞에서 [08:01]

 

▲ 호텔 앞 화단에서 [08:02]

 

▲ 뢰머 광장의 오스트차일레: 15세기 쾰른의 비단상인 숙소였다 [08:46]

 

▲ 뢰머 광장의 구시청사 건물 [08:47]

 

▲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카이저 돔)을 배경으로 [08:54]

 

▲ 뢰머 광장의 구시청사 건물을 배경으로 [08:55]

 

▲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니콜라이 교회 [08:55]

 

▲ 전차가 다니는 프랑크푸르트 시내 [08:57]

 

▲ 날이 개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09:08]

 

버스가 하이델베르그 시내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조금 가파른 길을 올라 하이델베르그 고성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우리의 눈에 들어온 하이델베르그 성은 폭격과 벼락으로 많이 파괴되어 성의 모습이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 규모나 웅장함으로 보아 예전에는 아주 멋진 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3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고성 마당으로 들어갔다. 마당은 삼면이 건물로 둘러싸인 형태인데 오른쪽 건물은 벽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날아가버리고 없었다.

 

하이텔베르그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오덴발트 구릉지대에서 운하화된 네카어 강이 빠져나와 라인 평야로 흘러드는 지점에 있다. 1196년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 이 도시는 1720년까지 라인팔츠의 중심지로서 선제후인 팔츠 백작가의 거주지였다. 30년전쟁(1632) 때 폐허가 되었고, 1689, 1693년에는 프랑스인의 침략으로 거의 파괴되어 지금 남아 있는 주요건물들은 대부분 중세의 고딕 양식이 아닌 바로크 건축 양식(18세기 후반까지 유행함)으로 되어 있다. 이 도시는 1802년 바덴에 양도되었고, 20세기에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1693년에 파괴되지 않고 남은 건물은 성령교회(1400~36)·마르슈탈(1590, 옛날의 왕실 마구간)·기사회관(1592)뿐이었다. 그밖에 중요한 건축물로는 알테 다리(1786~88, 재건 1945 이후)와 시청(1701~03), 예수회 교회(1712)가 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흥미롭고 인상 깊은 건물은 하이델베르크 성이다. 이 성은 1689, 1693년에 프랑스인들에게 파괴되었고 1764년에는 벼락을 맞았지만, 강에서 100m 높이에 웅장하게 서 있는 붉은 사암 건물은 아직도 시가지를 압도하고 있다. 또한 이 성은 13세기에 짓기 시작했지만 가장 유명한 부분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졌고, 성의 익면(중심 건물에서 옆으로 날개처럼 뻗은 부분)에는 오토-하인리히 관과 프리드리히 관이 있다. 프리드리히 관의 지하실에는 용량이 18만 5,500ℓ나 되는 거대한 포도주 통인 하이델베르크 술통(1751)이 있다. 시내에서 쾨니히스슈툴 산(단층 지괴) 꼭대기까지 왕복 운행하는 케이블 철도를 이용하면 이 성에 닿을 수 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그 대학교(루프레히트카를대학교)는 루페르트 1세가 세웠고, 1386년에 교황 우르바누스 6세의 인가를 받았다. 이 대학교의 지질-고생물학 연구소에는 턱뼈 화석인 '하이델베르크인의 하악골'이 전시되어 있는데, 학자들은 이 화석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로 분류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대학도시이자 주거도시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공장의 수효가 많이 늘어났다. 기계·정밀기기·가죽·담배·나무 제품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가장 중요한 산업은 관광업이다.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하이델베르크 성을 찾아온다.

 

하이델베르그 고성

 

 

중세의 도시인 이곳의 '하이델베르그 성(Schlob Heidelberg)'은 13세기 경에 처음 세워졌으나 라인 선제후의 거성으로 사용하면서 확장했기 때문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각 시대의 양식이 뒤섞여 지금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냈다. 이 성은 독일 낭만주의의 상징이며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관광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벌어진 30년 전쟁 때 프랑스 군대가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를 점령하고 파괴한 후의 모습 그대로이다.

14~17세기에 'Palatinate'의 제후가 사용했다는 이 성은 여전히 고딕-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된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에서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성은 이름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학구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하이델베르그(Heidelberg)'를 더욱 고풍스럽게 만든다. 만들어진지 700년이나 된 이 성의 자태는 무엇보다도 성채라는 이미지보다는 공원에 가까운 모습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기도 도시의 아름다움에 폭격을 포기했다는 일화를 가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고성'은 다소 파괴는 되어 있어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구시가의 고지인 '네카 강'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아름다운 적색 사암의 '하이델베르그 성(Schlob Heidelberg)'! 그 성 위에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그 시내는 정말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성안의 지하에는 1751년 만든 높이 8m,22만 리터 들이의 세계 최대의 술통인 '대형 와인통(Grosses Fass)'가 있다. 이곳은 '하이델베르그(Heidelberg)'를 방문하였다면 반드시 들려 보아야 하고, 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술통은 기네스 북에 등재되어 이곳의 관광자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17리터 용량의 이 포도주 저장통은 지금도 술에 취해 있는 광대 '페르게오(목각인형)'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원래는 전쟁 중에 성안에 물이 부족할 것을 염려하여 물대신 와인을 저장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성 내부의 지하에는 독일 약사 박물관이 있어서 18∼19세기의 의료기관 물품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이곳의 구석구석에서 도시의 역사를 읽을 수 있으며 '하이델베르크 성(Schlob Heidelberg')의 정원은 항상 개방되어 있다. 여기에서 봉건시대 말기에 건축된 약제사의 탑,시계탑,게스프렝터 탑과 고딕,르네상스 과도기에 건축된 도서관, 여성건물,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된 거울의 방이 있는 건물, 오토하인리히 건물 등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르네상스와 바로크 과도기에 건축된 '프레드리히(Friedrich)'의 건물, 영국건물이 있고 성의 뜰에는 만년에 이곳에서 사랑에 빠진 괴테가 그의 심정을 읊은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인 '여기서 나는 사랑을 하고, 그리하여 사랑을 받으며 행복했노라(Hier war ich gl cklich, liebend und geledt)'라는 글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이러한 '하이델베르그 성(Schlob Heidelberg)'의 내부 관람은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성에서 나오면 바로 그 근처에 '붉은 황소(Gasthof zum Roten Ochsen)'라고 하는 주점이 눈에 뜨일 것이다. 여기가 바로 '황태자의 첫사랑(The Student Prince)'에 나오는 유명한 곳으로 가 볼만한 곳이다. 하지만 '붉은 황소(Gasthof zum Roten Ochsen)'는 너무 유명한 곳이어서 가격도 상당히 비싸고 사람도 아주 많다.

 

▲ 하이델베르그의 성령교회 첨탑이 보인다 [10:28]

 

 ▲ 하이델베르그 성으로 올라가고 있는 회원들 [10:29]

 

▲ 엘리자베스 문: 프리드리히 5세가 왕비를 위해 세운 문 [10:32]

 

▲ 하이델베르그 고성 정원에서 [10:34]

 

▲ 하이델베르그 고성 정원에서 [10:35]

 

▲ 하이델베르그 고성 정원에서 [10:35]

 

▲ 성으로 들어가고 있는 회원들 [10:41]

 

▲ 하이델베르그 성의 프리드리히 관 [10:48]

 

▲ 오토하인리히 관을 배경으로 [10:50]

 

▲ 성 광장에서 민금서 맏언니와 함께 [10:50]

 

▲ 성 마당에 있는 분수대 [10:52]

 

▲ 하이델베르그 성의 프리드리히 관을 배경으로 [10:48]

 

성 내부를 살펴보러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포도주 22만 리터가 들어가는 거대한 술통이었는데 기네스 북에 올라 있단다. 성에서 나오니 하이델베르그 시내가 잘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다. 레카 강이 흐르는 시내에는 적갈색의 지붕을 한 하얀색 건물들이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며 오밀조밀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독일 최초의 대학이라는 하이델베르그 대학, 성령교회, 카를 테오도르 다리 등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 Theodor Brucke)

 

하이델베르크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아름다운 네카 강 위에 놓인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이 다리는 원래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홍수로 유실되자 ‘카를 테오도르’가 1786년부터 1788년에 걸쳐 이 다리를 개축한 후에 이런 이름을 붙여졌으며, 다리 위에는 카를 테오도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 다리를 ‘오래 된 다리’라는 의미의 ‘Alte Brucke’라고도 부른다. 다리 입구에는 적들로부터 이 도시를 방어하기 위하여 만든 하얀색을 한 원통형의 쌍둥이 탑문이 세워져 있고, 다리 위에는 이 다리를 만든 테오도르와 아테나 여신상이 있다.

 

네카 강 건너편에 있는 작은 언덕에는 옛날 이 도시에 살던 철학자들이 즐겨 산책하던 길이 있는데, 이 길을 가리켜 철학자의 길이라 부르고 있다. 옛날 철학자 칸트는 매일 정해진 시각에 이 다리를 산책하였는데, 그가 이 다리를 지나는 시각은 어김없이 정오였다고 한다. 칸트, 헤겔, 야스퍼스 등 석학들이 이 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겼다고 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도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 22만 리터가 들어간다는 와인 통과 댄스 플로어 [10:59]

 

▲ 댄스 플로어에서 [10:59]

 

▲ 성 안에 있는 작은 술통 [11:02]

 

▲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레카 강 주변 풍경 [11:04]

 

▲ 하이델베르그 전망대 창에서 [11:04]

 

▲ 1398년에 착공해 16세기에 완성된 성령교회 [11:05]

 

▲ 레카 강 위에 놓여 있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 [11:06]

 

▲ 하이델베르그 성 전망대에서 [11:08]

 

▲ 하이델베르그 성 전망대에서 [11:08]

 

▲ 하이델베르그 성 전망대에서 [11:08]

 

▲ 하이델베르그 성 전망대에서 [11:08]

 

▲ 성에서 내려다본 구시가지 [11:09]

 

▲ 네카 강 뒤로 전원 마을이 펼쳐져 있다 [11;10]

 

하이델베르그 성에서 내려와 시내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독일식 족발 요리였는데 맥주를 곁들여 먹으니 맛이 기가 막혔다. 족발 크기도 보통이 아니어서 다 먹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번 여행 중에 가장 잘 먹은 점심이었다. 점심 후 마르크트 광장 주변을 살펴보았다. 성령교회, 시청사 건물,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온 '붉은 황소' 주점 등을 돌아본 다음 하이델베르그를 출발했다.

 

성령교회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는 구시가지 한 가운데 '마크트플라츠'를 사이에 두고 '시청사'를 등지고 서있다. 1344년부터 1441년에 걸쳐 후기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첨탑은 1544년에 완성되었다. 선제후 55명의 묘소가 있었으나, 1693년 '루프레히트 2세'의 비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괴되어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루프레히트 2세(1352~1410)'의 비문 뿐이다.

 

 30년 전쟁 이후 이 교회는 수 차례 '카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소유권이 바뀌다가 1706년에는 교회 내에 장벽을 설치하여 신구교가 별도로 예배를 드리기도 하다가, 230년 후인 1936년에야 장벽을 제거하여 현재에 이른다. 지금은 신교의 교회로 되어 있다.

 

▲ 하이델베르그에 있는 식당에서 [11:49]

 

▲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거리의 주택 [12:28]

 

▲ 마르크트 광장 옆에 있는 성령교회 [12:29]

 

▲ 코른 마르크트 광장에 세워져 있는 성모 마리아 상 [12:30]

 

▲ 하이델베르그 구시가지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그 성 [12:32]

 

▲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분수대 앞에서 [12;32]

 

▲ 하이델베르그 대학 학생 감옥 [12:33]

 

▲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온 Gasthop zum Roten Ochsen(붉은 황소) 주점 [12:35]

 

▲ 레카 강 건너 전원 마을 [12:38]

 

이번 여행의 마지막 쇼핑센터에 들렀다. 그런데 이곳이 회원들에게는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이었다. 왜? 그 유명한, 주부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휘슬러 주방용품과 쌍둥이표 칼을 파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들렀던 쇼핑센터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던 지갑들이 여기에 오자 술술 열리기 시작한다. 아내도 휘슬러 밥솥과 쌍둥이표 칼과 가위를 집어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상당한 액수인 것 같은데 국내에 비하면 매우 싼 가격이란다.

 

버스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길다면 긴 여행이 끝나고 이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갈 일만 남았다. 루프트한자 712편, 일기 때문에 보딩이 연착되고 있다고 계속 방송이 나온다. 마침내 탑승이 시작되고 10시간 이상의 긴 비행기 여행이 시작되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은 영 오지 않는다. 자자, 자야 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 휘슬러, 쌍둥이표 칼 등을 파는 면세점 [13:51]

 

▲ 인천공항까지 타고 갈 루프트한자 여객기 [16:22]

 

▲ 대합실에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중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