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여행/서유럽 5개국

2011.08.07. [서유럽 여행 8] 로마→프랑크푸르트

by 사천거사 2011. 8. 7.

 

서유럽 여행 8

 

 

 ◈ 일시: 2011년 8월 7일 일요일

 ◈ 코스: 로마 → 팔라티노 → 콜로세움 → 성 베드로 성당 트레비 분수 → 프랑크푸르트 

 ◈ 회원: 14명

 

 

 

 

 

5시 40분에 모닝콜이 울렸다. 어젯밤에 짐을 다 싸놓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 아침 산책에 나섰다. 이 호텔은 정원이 넓고 아주 잘 꾸며져 있어 볼거리가 꽤 있었다. 특히 가이드가 강조한 올리브 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6시 50분에 아침을 먹었는데 식당에 사람이 많다. 7시 41분, 버스가 호텔을 출발했다. 본격적인 로마 시내 관광에 나선 것이다.

 

▲ 로마의 Antonella 호텔 정원에 있는 올리브 나무 앞에서 [06:32]

 

▲ 호텔 정원의 장미 [06:33]

 

▲ 호텔 정원에서 [06:35]

 

▲ 호텔 정원의 수국 [06:37]

 

▲ 호텔 정원의 올리브 나무 앞에서 [06:38]

 

▲ 호텔 정원의 올리브 나무 앞에서 [06:38]

 

▲ 호텔 정원에서 [06:40]

 

아치 모양의 문이 있는 성벽이 보인다. 옛날에 전차가 나녔을 성문을 지금은 자동차가 다닌다. 팔라티노 언덕 아래 도로변에 차가 섰다. 오늘의 원래 일정에는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하게 되어 있었는데 일요일은 휴관을 하는 관계로 팔라티노 언덕과 콜로세움 내부를 관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팔라티노 언덕 입장 시간이 9시라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주변을 둘러보라고 가이드가 일러준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콜로세움 외관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저게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콜로세움이구나.

 

▲ 로마의 성벽 [08:07]

 

▲ 자동차가 오가는 성문 [08:10]

 

▲ 로마 시내의 가로수로 소나무가 많다 [08:16]

 

▲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콜로세움 [08:21]

 

▲ 콜로세움 외관 [08:31]

 

▲ 콜로세움 앞에서 [08:33]

 

▲ 콜로세움 앞의 담배 피우는 검투사 [08:35]

 

▲ 콜로세움 외관 [08:40]

 

▲ 콜로세움 앞 광장에서 [08:43]

 

▲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앞에서 [08:45]

 

9시가 되어 로마의 있는 7개의 언덕 중 하나인 팔라티노 언덕으로 올라갔다. 입장료는 12유로인데 콜로세움 내부 입장료까지 포함이 되어 있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의 발상지로서 예전에 누렸던 영화로운 모습들은 간데 없고 무너지고 부서진 잔해만 남아 있어 다소 황폐하고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긴 지나간 세월이 얼만가. 저런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로마의 일곱 언덕

 

 

로마의 일곱 언덕 (Sette colli di Roma) 이란 지리학적으로 티베르 강 동쪽, 세르비아누스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대 로마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일곱 언덕을 말한다. 이 언덕들은 다음과 같다.

  • 아벤티노 언덕(AventinusAventino)
  • 셀리오 언덕(Caelius, Celio)
  • 카피톨리노 언덕(Capitolinus, Capitolino/Campidoglio)
  • 에스퀼리노 언덕(Esquilinus, Esquilino)
  • 팔라티노 언덕(Palatinus, Palatino)
  • 퀴리날레 언덕(Quirinalis, Quirinale)
  • 비미날레 언덕(Viminalis, Viminale)

전통적으로 로물루스가 초기의 로마 도시를 건설했던 자리가 팔라티노 언덕이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때문에 이 일곱 언덕은 전설에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언덕들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했고, 포룸이나 시장이 건설되었다. 또한 공원, 기념물, 건물 등도 많이 세워지고, 이후 세르비아누스 성벽이 건설되어 로마 시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도 일부 언덕의 이름들은 여전히 로마 시내의 지명이나 건물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예:카피톨리노 언덕 → 카피톨리노 박물관) 흔히 바티간이나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유명한 바티칸 언덕(라틴어: Collis Vaticanus)도 로마의 일곱 언덕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티베르 강 북부에 위치해 있어 로마의 일곱 언덕이 아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핀차노 언덕은 북쪽에, 자니콜로 언덕은 서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일곱 언덕에 포함되지 않는다.

 

팔라티노 언덕

 

테베레 강()의 동쪽 연안, 고대 로마 유적의 중심을 이루는 포로 로마노의 유적이 있는 계곡을 끼고 동쪽 콜로세움과 마주보는 위치에 있다. 로마를 건설한 로물루스가 이 언덕을 로마의 경계로 하였는데 언덕 위에서는 경기장터, 경사면에서는 많은 건물 유적이 발굴되었다.

 

고대명은 몬스 팔라티누스(mons Palatinus), 팔라티움(Palatium). ‘로마의 일곱 언덕’ 중 하나로 포로 로마노를 사이에 두고 카피톨리노 언덕과 마주보고 있다. 로마 발상지이며 현재명, 고대명 모두 원래는 형용사인데 명사적으로도 사용된다. 16세기에는 파르네제 가(家)의 빌라가 있었고 19세기에 겨우 발굴됐다. 현재에는 도무스 아우구스티아나, ‘리위아의 집’, 도무스 프라위아, 도미티아누스의 스타디움 등 제정로마 시대의 유구가 즐비하게 서 있다 ‘리위아의 집’은 아우구스투스의 거주지였다는 설이 유력하며 세 방에 벽화가 있다. 이 언덕 위에는 작은 미술관이 있는데 여기서 발굴된 것들을 진열하고 있다. 

 

▲ 로마 문명의 발상지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 [09:07]

 

▲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 [09:10]

 

▲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 [09:11]

 

▲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 [09:13]

 

▲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 [09:15]

 

▲ 팔라티노 언덕의 유적 [09:16]

 

포로 로마노가 잘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팔라티노 언덕 아래로 허물어진 유적의 잔해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다. 물론 지금은 다소 흉물스러운 모습이지만 예전에 번성했을 때의 원래 모습을 상상해보니 대단한 규모의 시설들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흥망성쇠는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권불십년이요,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 팔라티노 언덕 전망대에서 [09:20]

 

▲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본 포로 로마노 [09:20]

 

▲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본 포로 로마노 [09:20]

 

▲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본 포로 로마노 [09:21]

 

▲ 포로 로마노에서 바라본 로마 시청 뒷모습 [09:25]

 

전망대를 내려오니 포로 로마노다. 무너져 흩어져 있는 기둥이나 벽돌 하나에도 수 천년의 역사기 깃들어 있다. 그 당시 무소부지의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줄리어스 시저의 무덤은 또 왜 이렇게 초라한가. 이름 모를 꽃들이 세월의 잔해 속에 피어나 쓸쓸함을 녹여주고 있다. 저 꽃이야 그 때나 지금이야 변함 없이 피고 있겠지.

 

포로 로마노

 

베니치아광장(Piazza Venezia)과 콜로세움(Colosseo)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로"라는 뜻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상업,정치, 종교등 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였다. 로마의 중심지로서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고 말하는 로마 2500년의 역사의 무대가 되었는데,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바실리카 에밀리아(Bcilica Aminlia)와 시저 신전(Templum Caesar), 원로원(Curia),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새턴 신전, 바실리카 율리아, 베스타 신전, 베스타 신녀의 집의 흔적,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로물루스의 신전,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 등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 있다.

 

▲ 2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돌로 포장이 된 길 [09:31]

 

▲ 포로 로마노 입구에 있는 티투스의 개선문: 파리 개선문의 모태 [09:33]

 

▲ 티투스의 개선문 앞에서 [09:33]

 

▲ 기원전 484년에 세워진 카스토레 에 폴루체 신전 기둥 [09:40]

 

▲ 포로 로마노에서 [09:41]

 

▲ 줄리어스 시저의 무덤이 있던 곳: 현재 수리중 [09:42]

 

▲ 기원전 497년에 세워진 사투르노 신전의 8개 남은 원기둥 [09:42]

 

콜로세움 내부 입장이 시작되었다. 입장을 하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다행히도, 단체관광객들은 별도 입구가 있어 크게 기다리지 않고 입장을 할 수 있었다. 2층을 한 바퀴 빙 돌면서 내부를 살펴보았는데 훼손이 된 곳도 많았지만 그나마 전체적인 모습은 대부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이곳은 절대 권력자의 비인간적인 단면을 적나라하게 나타내었던 곳이다. 그 때 억울하게 죽어간 수 많은 사람들의 원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콜로세움

 

 

콜로세움(Colosseum)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현재는 로마를 대표하는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거상(巨像:colossus)에서 유래한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스)의 정원에 있던 인공 호수를 메운 자리에 세워졌다. 공사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73년에 착공되어 8년 동안의 기적적인 역사를 거쳐 티투스 황제 때인 80년에 준공된 콜로세움은 높이 48m, 둘레 500m 등 경기장 내부의 길이 87m와 폭 55m라는, 당시에 건립된 건축물 가운데 최대의 건축물이었다. 티투스는 등극하기 전인 70년에 유대독립전쟁을 진압하고 10만 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환하였다. 그 중 4만 명을 동원하여 콜로세움을 건축했다는 전설이 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끼리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콜로세움은 608년까지는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지만 중세기에는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다가 그 이후에는 성당이나 궁전 등의 건축에 사용될 자제의 제공 터가 되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4층으로 되어 있었다. 1층은 높이 10.5m의 도리아식 반원주, 2층은 높이 11.85m의 이오니아식 기둥, 3층은 11.6m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되어 있고, 4층은 관중들이 작열하는 햇빛을 피할 수 있게 벨라리움이라는 천막을 고정시키기 위한 장대장치를 지탱하는 벽으로 되어 있다. 이외에도 계단과 독립 공간, 즉 갈레리아가 있었다. 이 갈레리아는 이집트산 콩, 음료수 등을 파는 상인들의 휴식공간으로 많은 시민들이 여기서 조우했다. 경기장 바닥은 모래로 덮이고, 곳곳에는 사냥장의 분위기를 살려 나무와 구릉을 설치하였다. 바닥 밑에는 노예들과 맹수들을 수용하던 각종 우리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바다에서의 싸움 장면도 연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닥 전체에 물을 가두는 일이 용이하지 않아 별도의 공간을 따로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의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도미티아누스의 건축가 라비리우스라고 하기도 하고, 가운덴키우스라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단지 추측일 뿐이다.

 

▲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외관 [10:02]

 

▲ 콜로세움 광장 주변을 다니는 마차 앞에서 [10:10]

 

▲ 모두 4층으로 되어 있는 콜로세움 내부 [10:19]

 

▲ 콜로세움 내부에서 [10:19]

 

▲ 콜로세움 내부에서 [10:19]

 

▲ 콜로세움 내부에서 [10:19]

 

▲ 콜로세움 내부에서 [10:19]

 

▲ 콜로세움 내부에서 [10:19]

 

▲ 콜로세움 내부에서 [10:19]

 

▲ 콜로세움 내부에서 [10:20]

 

▲ 콜로세움 내부에서 [10:20]

 

▲ 콜로세움 내부 [10:22]

 

▲ 콜로세움 내부 [10:25]

 

▲ 콜로세움 2층에서 바라본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10:38]

 

▲ 콜로세움 2층에서 바라본 포로 로마노 [10:39]

 

▲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내부 [10:40]

 

▲교황 베네틱토 14세가 세운 십자가 [10:43]

 

이탈리아 전통 마르게리따 피자를 점심으로 먹었다. 그런데 이 피자는 사실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피자는 미국 피자와는 달라서 토핑과 기름기가 거의 없고 화덕에서 구워내기 때문에 담백하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길들여진 입맛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이탈리아의 전통 피자라니 맛있게 먹어줄 수 밖에. 

 

▲ 점심 먹을 준비 [11:23]

 

▲ 로마 시내 거리 [11:59]

 

▲ 로마 시내 거리에서 [11:59]

 

오후의 일차 관람지는 성 베드로 성당이었다. 바티칸 시국에 있는 이 성당은 바티칸 박물관과 이웃해 있는데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라 박물관은 휴관이었다. 워낙 이름이 나 있는 곳이라 이곳도 입장을 하기가 보통 어렵지 않았다. 입장을 할 때는 복장도 유의해야 하는데 짧은 치마나 짧은 바지, 민소매 복장을 하면 입장을 할 수 없다.

 

성당 안은 무척 화려하고 웅장했으며 예술품의 집합체처럼 보였다. 성당 안에서는 한창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교회의 규모도 크지만 당대의 최고 예술가들이 오랜 세월에 거쳐 합작한 작품인 만큼 최고의 예술미가 깃들여 있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새삼 인간의 능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성 베드로 광장을 떠났다. 

 

성 베드로 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Sancti Petri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은 바티칸 시국 남동쪽에 있는 대성전을 말한다. 바티칸 대성전(Basilica Vaticana)이라고도 부른다. 성지 가운데 하나이자 가톨릭 세계의 모든 교회 가운데 가장 거대한 교회로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서기 90년에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나중에 로마의 초대 주교, 즉 교황이 되는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전이 로마의 수많은 교회 가운데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으뜸 교회는 아니다.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의 명예를 지닌 교회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전이다.

 

성 베드로의 시신이 대성전의 제대 아래에 묻혀 있는 까닭에 옛날부터 교황이 선종하면 그 시신을 제대 아래에 안치해오고 있다. 대성전은 4세기 이래 이 장소에 있었다. 대성전의 건설은 1506년 4월 18일에 시작되어 1626년에 완료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전은 그 종교성과 역사성, 예술성 때문에 세계적인 순례 장소로 유명하다. 르네상스부터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계의 거장들이 주임 건축가 직책을 계승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지은 건축 작품으로서 당대의 가장 거대한 건물로 여겨진다. 로마의 모든 초창기 성당들처럼 성 베드로 대성전 역시 입구가 동쪽에 있으며 후진(後陣)은 서쪽 끝에 있다.

 

성 베드로 대성전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산 파울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과 더불어 로마의 주요 4대 성전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은 바티칸 시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다. 대성전의 돔은 로마식 지평선의 특징을 갖고 있다. 가장 거대한 기독교 성당에 속하며, 바티칸 영토를 포함하여 2.3 헥타르(5.7 에이커)의 넓이를 가졌다. 그리고 최대 6만 명 이상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전 내부에는 500개에 달하는 기둥과 400개가 넘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따로 분리된 44개의 제대와 10개의 돔이 있으며, 1300개에 달하는 모자이크 그림들이 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기독교 세계의 성지 가운데 하나인 이곳은 성 베드로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나중에 로마의 첫 번째 주교, 즉 최초의 교황이 되었다고 한다. 비록 신약성경에는 베드로의 로마 체류나 순교 장소에 관한 이야기가 없긴 하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그의 무덤이 발다키노와 제대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연유로, 베드로를 시발점으로 많은 교황이 이곳에 같이 매장되었다. 낡은 콘스탄티노 대성전을 헐고 새로 지은 지금의 대성전은 1506년 4월 18일에 건축을 시작하여 1626년에 끝마쳤다.

 

비록 성 베드로 대성전이 교황의 공식 주교좌이거나 대성전 가운데 제일의 지위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위치가 바티칸 시국 벽 안에 있고 교황의 주거지와 인접해 있을뿐더러, 교황이 집전하는 대부분 의식이 열리는 장소가 이곳이기 때문에 교황의 가장 중요한 성당으로 여겨진다.

 

▲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성 베드로 성당 [12:26]

 

▲ 해시계를 겸하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성 베드로 광장 [12:28]

 

▲ 높이가 4m나 되는 조각상들 [12:32]

 

▲ 41m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성 베드로 광장 [12:40]

 

▲ 성 베드로 성당: 교황님이 나와서 말씀하시는 곳 [12:41]

 

▲ 브라만테가 세운 거대한 교각 [12:46]

 

▲ 자코모 델라 포르타와 폰타나가 완공한 돔 [12:54]

 

▲ 성 베드로 성당에서 [12:59]

 

▲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 상 [13:07]

 

다시 로마 시내 관광이 시작되었는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벤츠 차량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옵션 상품으로 추가 비용은 50유로였다. 벤츠를 타고 맨 처음 간 곳은 나보나 광장이었다. 예전에 전차경기장이었다는 이곳에는 세 개의 분수가 있는데 그 중에서 중앙에 있는 피우미 분수가 가장 아름다웠다. 그 다음에 찾아간 곳은 판테온 신전. 기원 전에 만들어진 원형의 신전이 파손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보나 광장

 

 

나보나 광장은 로마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장소로 로마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세 개의 유명한 분수에 둘러싸인 보행자 거리는 항상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커피 한 잔 마시며 거리의 예술가들을 보는 것 또한 로마 여행의 낭만이라고 할 수 있다.

광장에는 거대한 도미찌아노(Domitian) 황제 경기장이 있고 경기장은 수 세기 동안 손상되지 않아 창시합과 물축제가 열렸던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나보나 광장은 가로 240m에 세로 65m의 도미찌아노 경기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광장이다. 나보나 광장에는 환상적인 세 개의 분수가 있는데, 네뚜노 분수(Fontana di Nettuno), 피우미 분수(Fontana dei Fiumi), 모로 분수(Fontana del Moro)로 양쪽 끝의 두 분수는 베르니니의 설계에 의해 17세기 조반니 안토니오 마리가 완성하였다.

이 중에서 중앙에 위치한 피우미 분수(1651년)는 베르니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명작으로 이집트에서 약탈해 온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 있다. 피우미(Fiumi)는 이태리어로 강이란 뜻으로 나일 강, 갠지스 강, 라쁠라따 강, 다뉴브 강 이렇게 4대륙을 형상화하여 만든 작품이다. 광장 앞으로는 까를로 라이날디와 지롤라모 라이날디에 의해 세워진 산타그네세 교회(Sant' Agnese in Agone, 1652)가 서 있다. 이 교회는 304년 젊은 성 아그네스가 배교를 강요당하여 발가벗겨져서 순교한 그 자리에 세워진 교회이다.

 

판테온 신전

 

 

로마 시대에 있는 고대 로마의 원형 신전. 판테온이라는 말뜻을 ‘가장 신성한 여러 신의 신전’으로 해석하는 설과 ‘모든 여러 신의 신전’이라 해석하는 설이 있다. B.C. 27년에 아그리파(Marcus Vipsanius Agrippa, B.C. 62년경~B.C. 12)가 마르스나 비너스를 모시기 위해 창건한, 전면(全面) 10주(柱)의 에트루스크 식 신전(43.7x19.8m)이 기원. 80년에 낙뢰로 연소하여 120~125년경에 하드리아누스 제가 콘크리트 조의 원당(圓堂)으로 재건하고, 안토니누스 피우스 제(재위 138~161)시대에 완성되었다. 16개의 단석(單石) 코린트식 대원주로 이루어진 전면 8주의 현관랑은 아그리파의 신전 부재(部材)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며 그 프리즈에는 아그리파의 명(銘)이 남겨져 있다.

 

원형 본당은 지름 43.3m의 구체(球體)를 싸는 형식의 단일광대(單一廣大)한 공간구성을 취했고, 따라서 마루에서 대원개(⇒돔)까지의 높이와 마루의 지름이 서로 같다. 당의 주위벽에는 7개의 벽감(壁龕)과 8개의 아에디쿨라가 엇비슷하게 교차하며, 원개 중앙에는 지름 7.5m의 채광용 둥근창이 뚫려 있다. 7세기에 그리스도교 성당(통칭 산타 ∙ 마리아 ∙ 로톤다)으로 되었기 때문에 보존이 잘 되어 고대로마 최대의 원개건축인 동시에 그 완전한 기하학적 내부공간, 구조, 재료, 비례의 점에서 그리스 신전의 완전한 안티테제의 입장에 서며, 로마 건축의 정수를 보이는 걸작이다. 내부에 라파엘 등의 묘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원당형식 건물의 대표작으로서 중시되었다.

 

▲ 사람들이 넘쳐 나는 나보나 광장 [13:43]

 

▲ 피우미 분수 앞에서 여성회원들 [13:45]

 

▲ 피우미 분수 앞에서 남성회원들 [13:46]

 

▲ 나보나 광장의 오벨리스크 [13:47]

 

▲ 나보나 광장의 모로 분수 [13:48]

 

▲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탔다고 하는 승용차 [13:51]

 

▲ 라파엘로가 묻혀 있는 판테온 신전에서 [14:08]

 

▲  판테온 신전 앞에 있는 오벨리스크 [14:10]

 

'로마의 휴일'에 나왔다는 트레비 분수를 찾았다. 여기도 사람이 무척 많다. 로마의 분수는 그냥 단순한 분수가 아니라 조각 작품의 진열장이었다. 트레비 분수에 오면 그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어야 한다고 해서 우리 회원들도 그대로 따라서 했다. 그런데 날씨 참 덥네. 한국의 여름 날씨도 만만치가 않은데 여기는 더 한 것 같다.

 

트레비 분수를 떠나 '로마의 휴일'이란 영화로 유명해진 스페인 광장으로 갔다. 이 광장에도 분수가 있고 오벨리스크가 있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스페인 계단에서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드리 헵번 만은 못하겠지만.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한 개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다는데 나도 한 번 던져볼까? 말어.

 

트레비 분수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분수 설계 공모전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당선된 니콜라 살비의 작품이다. 1732년에 착공하여 1762년에 완성되었으며, 분수의 아름다운 배경은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져있다. 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분수 중앙에 자리한 해마가 끌어올린 커다란 조개 위의 냅튠신과 트리톤신의 대리석 조각들은 브라치의 작품이다. 이 분수의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샘을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는 전설을 갖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로 돌아오길 소원하며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스페인 광장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으며, 등뒤로 동전을 던져 한 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전설이 있는 분수로 이곳의 동전은 정기적으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쓰인다.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은 17세기 스페인 영사관이 있던 지역으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팩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로 한국에 널리 알려져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이다. 이 광장은 137개의 스페인 계단과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Trinita Dei Monti: 삼위일체교회)의 종탑 및 오벨리스크가 이채롭다.광장에는 보트 모양의 17C 대리석 분수가 있는데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바르카시아 분수(조각배 분수)라 불리운다. 여행자들에게 쉴 자리를 제공하며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광장 근처의 86번지에는 바이런, 셸리, 키이츠, 괴테, 보들레르, 리스트 같은 유명 인사들에게 인기있던 그레코 카페가 유명하고, 스페인 계단 우측에는 키츠&셸리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이 광장 앞거리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명품점 쇼핑가인 콘도티 거리, 코르소 거리로 통해 있다.

 

▲ 로마의 명물 트레비 분수 [14:38]

 

▲ 트레비 분수 옆 아이스크림 상점에서 [14:50]

 

▲ 조각상이 아름다운 트레비 분수 [14:58]

 

▲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트레비 분수 [15:00]

 

▲ 바르카시아 분수가 있는 스페인 광장 [15:17]

 

▲ 스페인 광장의 오벨리스크 [15:18]

 

▲ 137개의 스페인 계단에서 [15:22]

 

▲ 137개의 스페인 계단에서 [15:23]

 

▲ 바르카시아 분수 앞에서 [15:25]

 

▲ 스페인 광장에서 [15:30]

 

베네치아 광장 앞에 택시가 섰다. 로마에는 참 광장도 많다. 하얀색의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과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베네치아 궁전이 각각 광장 남쪽과 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영화 벤허의 무대가 된 전차경기장 터와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에 있는 '진실의 입'이었는데, '진실의 입'은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밖에서만 보고 돌아서야 했다. 이렇게 해서 로마 관광은 끝이 났고, 4시 20분에 다빈치 공항을 향해 버스가 출발했다.

 

베네치아 광장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라 불리는, 1871년에 이뤄진 이탈리아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광장이다. 베네치아 광장을 가운데 두고 남쪽으로는 ‘하얀 웨딩 케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Monumento Vittorio Emanuele II)과 서쪽으로는 베네치아 궁전이 자리하고 있다.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은 187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그의 동상 아래에는 무명 전사의 묘가 있다. 베네치아 궁전은 현재 르네상스 예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1940년만 해도 무솔리니의 관저였으며 이곳 2층 발코니에서 2차 세계 대전 참전을 선언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진실의 입

 

보카 델라 베리타 광장에 한켠에 자리잡고 서있는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의 입구 한쪽 벽면에 진실을 심판하는 입을 가진 얼굴 모양의 원형석판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진실의 입이다. 이 원형 석판은 해신 트리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원형 석판은 기원전 4세기경쯤 로마시대에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라고 한다. 어원적으로 풀어보면 '보카 델라 베리타'란 말에서 보카(Bocca)는 입, 베리타(Verita)는 진실을 의미한다.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그레고리팩과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코믹 로맨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와서 더욱 유명해졌다.

 

▲ 베네치아 광장을 지나고 있는 시티 튜어 버스 [15:40]

 

▲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을 배경으로 [15:47]

 

▲ 비토리오 엠마누엘 2세 기념관을 배경으로 [15:47]

 

▲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베네치아 궁전 [15:51]

 

▲ 영화 '벤허'의 무대가 된 전차경기장 터 [16:02]

 

▲ 전차경기장 터 앞에서 여성회원들 [16:03]

 

▲ 전차경기장 터 앞에서 회원 모두 [16:03]

 

▲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진실의 입 [16:10]

 

▲ 진실의 입을 보기 위해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16:27]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갈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타기 로마 공항으로 갔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저녁은 김밥으로 대합실에서 먹었다. 체크 아웃을 마치고 면세점에서 시바스 리갈 한 병과 안주를 사는 동안 탑승 게이트가 변경이 되었는데 그 동안에 아내가 잠시 실종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물론 아내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 일이었지만. 7시 20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9시 10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했고 10시 20분에 호텔에 도착, 마지막 하루 남은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로마 공항에서 [17:03]

 

▲ 로마 공항에서 [17:36]

 

▲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다 [20:56]

 

▲ 프랑크푸르트의 Mercure 호텔 [2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