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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강원山行記

2011.06.11. [강원山行記 21] 강원 인제 설악산(1)

by 사천거사 2011. 6. 11.

 

설악산 산행기(1)

   

일시: 2011년 6월 11일 토요일

장소: 설악산 강원 인제  1708m

◈ 코스: 백담사 → 영시암 → 수렴동계곡 → 수렴동대피소 → 구곡담계곡 → 봉정암

◈ 거리: 11.1km

◈ 시간: 3시간 37분 

◈ 회원: 박해순, 이재호, 전광식, 이효정(용화사불교대학산악회 안내 산행)

 

 

 

 

06:00   오늘은 청주 용화사 불교대학산악회에서 주관하는 설악산 1박2일 산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산행코스가 백담사에서 시작해서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대청봉에 올랐다가 천불동계곡을 거쳐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것인데, 특히 봉정암에서 잔다는 것이 마음에 들어 선뜻 신청을 한 것이다. 버스 출발지인 용화사 앞 무심천 제방도로에 가니 버스 두 대가 서 있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지인들이 눈에 보인다. 박해순, 이재호 선생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기 때문에 설명을 할 필요가 없고 전광식 선생님은 퇴임을 한 분인데 오늘 우연히 만났다. 말씀을 들어보니, 현재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버스에 올라 좌석에 앉아 있자 주최측에서 먹을 것을 나누어주기 시작하는데 끝이 없다. 잠시 열거해보면, 김밥 한 줄, 가래떡 세 조각, 사과 한 개, 오이 두 개, 과자 종류별로 한 봉다리, 베지밀 하나, 물 한 통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둘러 아침을 먹을 필요가 없었는데, 괜히 집사람만 고생시켰네.

 

6시 15분에 89명을 실은 두 대의 버스가 시동을 걸었다. 서청주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한 버스가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간단한 불교의식이 진행되었다. 나는 천주교를 믿지만 전혀 거부감이 없는 의식이었다. 종교마다 다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고 모양이 있다. 그와 같은 색깔과 무늬는 서로 존중해주어야 한다. 자신만이 최고요 유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단이요 아집이다. 종교에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 청주 용화사 종각 [05:56]

 

▲ 우리가 타고 갈 버스 [05:58]

 

07:55   영동고속도로 문막휴게소로 버스가 들어갔다. 그리 늦은 아침이 아닌데도 차들이 많다. 지금은 놀러다니는데 시도 때도 없다. 여건만 되면 그냥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휴게소도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로 넘쳐 난다. 아침에 나누어준 김밥을 휴게소 탁자에 앉아 먹었다. 오늘 내일 힘든 산행을 해야하니 자주 먹어두는 것이 좋다.

 

휴게소를 출발한 버스가 만종갈림목에서 중앙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주말이면 늘 밀리던 영동고속도로가 시간이 일러 그런지 차량통행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중앙고속도로는 훨씬 차가 적다. 홍천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난 버스가 44번 국도를 따라 인제 쪽으로 달린다. 예전에는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였는데 지금은 왕복 4차로의 자동차전용도로가 개설되어 차들이 씽씽 잘도 달린다.

 

▲ 영동고속도로 문막휴게소 [07:56]

 

09:05   44번 국도변에 있는 청정조각공원휴게소로 차가 들어갔다. 입구에 장승들이 많이 서 있기에 그저 그런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보니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다. 그 이유는 첫째, 작품의 수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는 것, 둘째 조각품 대부분이 남녀의 중요 부위를 두드러지게 형상화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어쨌든 특이한 전시관이었다.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휴게소를 출발한 버스가 다시 인제 쪽으로 달린다. 예전에는 말도 못할 오지여서 인제 근처에 있는 군부대에 배치가 되는 군인에게는 '인제 가면 언제 오나'라는 유행어를 해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한계교차로에서 버스는 좌회전을 해서 미시령 쪽으로 들어섰다. 북천을 따라 달리던 버스가 십이선녀탕계곡 입구를 지나고 곧이어 백담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갔다.

 

▲ 청정조각공원휴게소의 장승들 [09:07]

 

▲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품들 [09:08]

 

▲ 性을 주제로 한 특이한 조각품들이 많다 [09:09]

 

▲ 44번 국도변에 있는 청정조각공원 [09:11]

 

10:10   용대리 주차장으로 버스가 들어갔다. 일반차량은 모두 여기에 주차를 해야 한다. 그리고 백담사에 가려면 백담사와 용대리를 오가는 마을버스를 이용하거나 7km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주차장 한쪽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버스를 타기 위해 용꼬리처럼 늘어져 있는 줄에 합류했다. 제주도는 장마라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날이 좋은 거야.

 

10시 55분에 편도요금이 2천 원인 버스에 올라탔다. 용대리주차장에서 백담사까지의 7km가 백담계곡이다. 실제로는 직접 걸어가면서 백담계곡의 진목면을 보아야 하지만 시간도 그렇게 해서 대부분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가 도로를 질주하는데 길이 좁고 굴곡이 심해서 운전하기기 쉽지 않다. 마치 울릉도의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도로를 따라 백담사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띈다. 대단한 사람들이네. 

 

백담계곡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외가평에서 백담사에 이르는 계곡으로 길이는 약 6.5㎞에 이른다. 설악산에서 가장 깊고 그 규모가 방대한 계곡으로, 내설악 등반 코스의 시발점이 된다. 백담사에서 대승령-대승폭포-장수대와 영시암-수령동 대피소-봉정암-대청봉에 이르는 등산로가 잘 알려져 있다. 골짜기의 곳곳에는 폭포와 작은 연못이 많으며, 아직까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계곡에 흐르는 물이 맑아서 옥에 비유될 정도이며, 열목어와 버들치 등 하류에서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냉수성 희귀어족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백담사는 본래 한계리에 있었으나, 불이 자주 일어나 이곳으로 옮겨졌는데, 지금의 건물은 1957년에 중건한 것이다. 한용운이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을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 용대리추차장에서 산행 전 준비운동 [10:23]

 

▲ 백담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중 [10:32]

 

▲ 백담사와 용대리를 오가는 마을버스 [10:34]

 

11:10   용대리를 떠난 버스는 20분 후 백담사주차장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 백담사로 들어갔다. 넓은 대지에 많은 절집들이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백담사는 독실한 불교신자나 설악산을 전문으로 다니는 사람들이나 알던 절이고 일반인은 잘 모르던 곳이었다. 백담사를 온 세상에 널리 알린 공은 물론 전두환 대통령에게 있다. 백담사에서 귀양살이를 한 덕택이다. 

 

백담사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 1) 자장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한계령 부근의 한계리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라고 하였다. 690년(신문왕 10년)에 불타버려 719년(성덕왕 18)에 재건하였는데, 《백담사사적기》에 이때의 중건과 관련된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790년에 한계사터 아래 30리 지점으로 옮겨서 중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984년(성종 3)에 다시 불타버려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로 개명하였다.

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다가 1432년 4번째 화재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그뒤 2년 만에 심원사지 아래 30리쯤 되는 곳에 법당과 요사채를 세우고 선구사라 하였으나 1443년에 불타버렸고, 1447년 옛 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워 영축사라 하였다. 그러나 1455년 6번째 화재로 불에 타고 이듬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으로 옮겨 중건하여 백담사라 하였다.

1772년(영조 51) 다시 불타버리자 1775년 최붕, 태현, 태수 등이 초암을 짓고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 등의 건물을 중건하고 심원사라 하였다가 1783년(정조 7년)에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바꾸었다. 근대에 이르러 한용운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을 집필하였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봉정암, 오세암, 원명암 등이 있다.

 

▲ 백담사로 들어가는 다리 [11:10]

 

▲ 백담사 사천왕문 [11:12]

 

▲ 백담사 극락보전 [11:13]

 

▲ 백담사 스님들의 행렬 [11:14]

 

▲ 전두환 대통령이 귀양살이를 하던 곳 [11:16]

 

▲ 균형이 잘 잡혀있는 절집들 [11:18]

 

▲ 백담계곡의 수 많은 돌탑들 [11:24]

 

▲ 계곡 건너에서 바라본 백담사 [11:25]

 

11:27   다시 다리를 건너 봉정암까지 11.1km 거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백담탐방안내소 건물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계곡길 산행에 접어들었다. 계곡 왼쪽으로 나 있는 산행로는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로 오른쪽 계곡을 찬찬히 보면서 유유자적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아 그런데 날은 참 덥다. 제주도는 장마라는데...... 

 

▲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11:27]

 

▲ 설악산국립공원 백담탐방안내소 [11:34]

 

▲ 처음은 길이 넓고 평탄하다 [11:36]

 

▲ 수렴동계곡의 맑은 물 [11:39]

 

▲ 내설악의 수렴동계곡 [11:43]

 

▲ 대부분의 길이 데크로 되어 있다 [11:51]

 

▲ 대청봉까지 11.1km가 남았다고 알려주는 이정표 [12:03]

 

▲ 계곡 왼쪽으로 길이 나 있다 [12:21]

 

▲ 설악산 수렴동계곡 [12:23]

 

12:27   영시암에 도착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도 절집 마루 한쪽에 걸터 앉아 쑥떡을 점심으로 먹었다. 점심을 끝낼 즈음 박해순 선생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박해순 선생은 친구분과 함께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으로 온다고 하기에 나는 먼저 봉정암을 향해서 영시암을 떠났다.

 

15분 정도 걸어 오세암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탐방안내소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정표를 보니 봉정암까지는 아직도 7km가 더 남았다. 봉정암으로 가는 사람들이 보니 대부분이 여성들이고 그들 대부분이 불교신자들이었다. 봉정암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교신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봉정암까지 올라가기가 쉽지 않는데 참 대단한 불심이다. 하긴 오체투지를 하며 수백 킬로미터 고행을 하는 티벳 사람들도 있지만.

 

▲ 영시암 절집 모습 [12:28]

 

▲ 오세암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 [12:43]

 

▲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추어서 [12:51]

 

▲ 수렴동계곡의 맑은 물 [12:52]

 

▲ 계곡에 놓여 있는 아취형 다리 [12:57]

 

12:59   수렴동계곡이 끝나고 구곡담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수렴동대피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계곡 왼쪽을 따라 길이 계속 이어졌다. 길이 안 좋은 곳은 모두 데크을 설치하고 계단을 만들어놓아 걷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골이 깊어짐에 따라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규모가 큰 폭포가 자주 나타났다. 고여 있는 물빛은 모두 옥색이다. 금강산에서 본 물빛도 저런 색이었는데.

 

▲ 수렴동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수렴동대피소 [12:59]

 

▲ 구곡담계곡의 맑은 물 [13:00]

 

▲ 계곡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계단식 데크 [13:02]

 

▲ 구곡담계곡 왼쪽을 따라 나 있는 길 [13:14]

 

▲ 구곡담계곡의 작은 폭포와 潭 [13:17]

 

▲ 구곡담계곡의 沼 [13:32]

 

▲ 잠시 계곡길을 벋어났네 [13:39]

 

▲ 구곡담계곡의 폭포 [13:50]

 

▲ 구곡담계곡의 폭포 [13:52]

 

13:57   이정표가 서 있는데 봉정암까지 2km가 조금 더 남았다. 아직까지도 길은 그런대로 좋다. 언제 올라채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왼쪽으로 날카로운 용아장성릉의 암릉이 파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곱게 피어난 함박꽃 사이로 바윗골을 타고 내리는 가는 물줄기가 비취색 웅덩이로 떨어지고 있다. 암릉이 있고 계곡이 있고 꽃이 있고 물줄기가 있다. 무릉도원이요 지상낙원이요 파라다이스다.

 

▲ 백담사에서 8.4km를 걸어왔네 [13:57]

 

▲ 계곡에서 바라본 용아장성릉 [14:00]

 

▲ 활짝 피어난 함박꽃 [14:03]

 

▲ 구곡담계곡의 폭포 [14:04]

 

▲ 계곡에서 바라본 용아장성릉 암봉 [14:09]

 

▲ 구곡담계곡의 폭포 [14:13]

 

▲ 계곡길을 끝내고 숲길로 [14:35]

 

14:41   해발 1050m의 봉정골입구에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300m 정도 급경사 바윗길을 올라가야 한다. 소위 깔딱고개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큰 경사 없는 길을 꽤 편하게 걸어왔는데 막바지에 강적을 만났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힘들면 쉬고 다시 힘이 생기면 걷고 해서 한 발 한 발 올라가면 된다.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자바위' 이정표에서 봉정암은 200m 거리였다.

 

▲ 해발 1050m 봉정골입구 이정표: 깔딱고개가 시작되는 곳 [14:41]

 

▲ 깔딱고개 초입 모습 [14:42]

 

▲ 경사가 심하고 올라가는데 힘이 들어 자주 쉬어야 한다 [14:47]

 

▲ 바위는 이쁜데 힘은 왜 이렇게 드는 거야 [14:48]

 

▲ 깔딱고개를 오르다가 뒤돌아본 풍경 [14:54]

 

▲ 해발 1180m의 사자바위 이정표 [14:56]

 

15:05   마침내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봉정암에 도착했다. 깊고 높은 산속 요소요소에 건물들이 여럿 자리잡고 있었다. 오대적멸보궁 중 하나인 이곳은 불교신도들의 순례지로 유명해서 연중 찾는 사람들이 많다. 종무실 앞에 숙소배정표가 붙어 있었다. 와, 그런데 오늘밤 여기서 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슬쩍 알아보았더니 1,300명이란다.

 

봉정암의 숙박은 불교신도들만 가능하고 일반산행객은 받지 않는다. 그래도 늘 예약이 넘친다고 한다. 문수전 1층에 있는 속소로 내려갔다. 긴 일자형 방에 양쪽으로 금을 그어 자리를 나누어놓았다. 배낭을 시렁에 얹고 네모난 칸에 앉아보았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공간이 폭 40cm, 길이 120cm라는데 어떻게 여기서 자라는 건지 모르겠다. 발을 뻗을 수도 없고 옆사람과는 어깨가 겹친다.

 

그러나 나중에 밤을 지내보니 모두가 다 발을 뻗고 자고 있었다. 희안한 일이었다. 물론 기도를 하러 나간 사람도 있고 해서 여유공간이 생긴 탓도 있겠지만 교묘하게 어우러져 모두 제자리를 차지하고 자고 있었다. 빈 방에 혼자 있기도 뭐하고 해서 밖으로 나와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아직 회원들이 올 시간은 멀었고 특히 할 일은 없고 무료하다.

 

봉정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성지인 오대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대청봉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데, 해발고도 1,244m 지점에 있어 백담사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기 위한 산행은 매우 힘겹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현존하는 전당은 법당과 요사뿐이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층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다른 사찰의 여느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이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 17) 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6·25전쟁 때 화재로 자칫하면 명맥이 끊어질 뻔하였다.

 

▲ 봉정암 종무실 건물 [15:06]

 

▲ 종무실 건물 벽에 붙어 있는 오늘 숙박할 사람들의 방 배정표 [15:08]

 

▲ 문수전 일층 우리 팀 남자들이 묵을 방 [15:25]

 

16:51   시간도 보낼 겸해서 석가사리탑이 있는 곳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계단으로 되어 있는 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석가사리탑이 있고 그 앞에서는 신도들이 기도를 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사리탑이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에 전망이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니. 안 올라왔으면 정말 크게 후회할 뻔 했네.

 

사리탑 왼쪽으로 소청대피소 건물이 보이고 그 위로 소청봉이 보인다. 소청봉 오른쪽에는 중청봉이 있는데 현재 정상부는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써 진입이 허가되지 않는다. 사리탑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장쾌한 용아장성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답다. 그 뒤로 아스라이 서북주능선의 귀때기청봉이 우뚝하고. 용아장성릉 아래로는 가양동계곡이 골을 이루고 그 오른쪽으로 공룡능선의 암봉들이 불뚝불뚝 솟아 있다. 이런, 공룡능선 뒤로 울산바위 윗부분이 보이고 그 너머로 속초 시내와 동해도 보이네.

 

봉정암 석가사리탑

 

 

1971년 12월 17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설악산 대청봉 아래 봉정암에 있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이다. 해발고도 1224m 고지에 있는 봉정암은 백담사에 딸린 암자로,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건너가 도선()율사로부터 수계한 후 가사와 발우 및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받아가지고 돌아와 동왕 12년(643) 이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봉정암이 한국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 불리는 연유이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을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하는 곳이다.

  

석탑은 봉정암 오른쪽 암벽 뒤에 세워져 있다. 거대한 암벽을 지대() 겸 기단으로 삼아 복련()받침 위에 초층탑신을 세운 5층 석탑으로, 옥개석과 탑신석을 각각 1매석으로 쌓아올린 일반형이다. 2층 이상의 탑신의 높이는 비슷하면서 탑신과 옥개의 폭이 4/5 정도의 비율로 줄어들어 균형을 이룬다. 옥개받침은 3단이고 낙수면과 옥개받침의 두께가 비슷하며 옥개석은 두터운 편이다. 자장이 세웠다고 하지만 이러한 각부의 작풍()으로 보아 고려 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탑의 모양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정교한 균형비가 돋보인다.

 

▲ 봉정암 석가사리탑으로 올라가는 길 [16:51]

 

▲ 석가사리탑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 신도들 [16:54]

 

▲ 사리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소청과 중청 [16:54]

 

▲ 사리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아장성릉 [16:56]

 

▲ 사리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아장성릉 [16:57]

 

▲ 사리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16:57]

 

▲ 공룡능선 뒤에 보이는 것이 울산바위 [16:58]

 

▲ 가야동계곡 뒤로 내설악 능선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다 [17:00]

 

▲ 공룡능선을 배경으로 [17:03]

 

▲ 사리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아장성릉 [17:05]

 

17:20   저녁을 먹기 위해 회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게 뭐여. 저녁을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끝이 안 보일 정도다. 오매, 어디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든거랴? 슬쩍 물어보니 오늘 봉정암에서 숙식을 하는 사람들이 1,300명 이란다. 허걱! 정갈어린 절밥을 먹어볼 거라는 순진한 꿈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20여 분 줄을 서서 저녁을 배급받았다. 메뉴는? 밥에 미역국을 부어주고 무친 오이 세 조각을 얹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지긋이 앉아서 먹을 곳도 없다. 아무데나 공간이 있으면 앉고 서고 해서 먹어야 한다. 먹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먹고나서 설거지를 하는 것도 먹은 사람의 몫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 작은 암자에서 1,300명에게 저녁을 먹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잠을 잘 곳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할 일이 없다. 지인들과 간단한 먹거리를 싸들고 다시 석가사리탑 전망대로 올라갔다. 용아장성릉 뒤로 서서히 해가 넘어가는데 장관이다. 아니 장엄하다. 이 대자연 속에서 우리 인간은 한갖 미물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어떻게든 잠을 청해보려고 애를 썼다. 내일 새벽에 산에 올라가려면 자야 한다. 비몽사몽 간에 설악산의 밤은 깊어갔다. 

 

▲ 저녁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17:32]

 

▲ 자리가 따로 없다 아무데서나 먹는다 [17:40]

 

▲ 설겆이도 먹은 사람이 직접 한다 [17:52]

 

▲ 용아장성릉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19:21]

 

▲ 사리탑에는 여전히 기도하는 신도들로 붐비고 [19:23]

 

▲ 용아장성릉 저 멀리 해가 넘어가고 있다 [19:25]

 

▲ 사리탑에서 내려다본 봉정암 [19:27]

 

▲ 어둠이 깔리고 있는 용아장성릉 [19:31]

 

▲ 노을이 깃들고 있는 용아장성릉 [19:35]

 

▲ 하룻밤을 묵은 봉정암 문수전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