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산 산행기
◈ 일시: 2009년 4월 5일 일요일
◈ 장소: 장미산 336.9m / 충북 충주 가금
◈ 코스: 중원고구려비 → 장미산성 → 정상 → 599 지방도로 → 중원고구려비
◈ 시간: 3시간 4분
◈ 회원: 아내와 함께
09:20 오늘은 한식이자 청명이며 식목일이다. 오전에 고향에 있는 어머니 묘소에 들른 다음 충주 가금에 있는 장미산 산행을 하기로 정하고 청주를 출발했다. 청주에서 내수로 가는 36번 국도에는 한식을 맞아 성묘를 가는 차량들이 아주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들 만큼 조상을 생각하는 국민들이 또 있을까? 날씨가 나빠도, 길이 막혀도, 돈이 없어도 죽은 조상을 찾아 간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다시 한 번 되뇌여볼 만한 詩句다. 내수에서 511 지방도를 타고 초정까지 간 다음 다시 540번 지방도로 따라 달리다, 남차리에서 문방으로 건너가 592번 지방도에 접속해서 질마재를 넘었다. 운곡2리 고향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이 나와 계신다.
가지고 간 제물을 챙겨 집에서 건너다 보이는 앞산 밑자락에 있는 어머니 묘소로 올라갔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2년에 돌아가셨으니 어머니의 모습을 못 본지가 벌써 37년이 되었다. 정말 끔찍이도 나를 위해주시던 분이었는데..... 아내와 함께 잔을 올린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나의 養母시고 지금 내가 온 집은 生家다. 큰집에 자식이 없어 장남인 나를 작은집에서 양자로 보낸 것이다. 양자를 왔다는 사실을 내가 안 것은 중학교 때였다.
점심 때까지는 시간이 있어 쑥을 캐러 나갔다. 양지에는 벌써 애쑥이 많이 돋아 있었다. 적잖이 쑥을 뜯은 다음 논둑에 나 있는 달래를 캤다. 논둑 한쪽이 달래밭이었다. 달래는 큰 것보다 어른 손 한 뼘을 조금 넘는 것이 맛있다. 달래는 정력에 좋기로 소문 난 채소다. 파, 마늘, 부추도 마찬가지다. 많이 먹어야 한다. 집으로 돌아와 갓 캔 달래를 무치고 고등어를 튀겨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함께 하는 부모님과의 점심상이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로 자주 찾지 못하는 데에 대해 마음 만으로 죄송스럴 뿐이다.
점심을 먹고 산행지를 향해 출발했다. 장미산 산행들머리는 몇 곳이 되는데 우리는 중원고구려비에서 출발해서 조정지댐과 중원고구려비 중간에 있는 날머리로 나오기로 코스를 정했다. 주덕에서 599번 지방도를 따라 가다 82번 지방도를 만나는 곳에서 좌회전해 올라가면 바로 중원고구려비가 나온다. 도로에는 여전히 차들이 많이 다닌다. 하긴 오늘 같은 날 집에 그냥 박혀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들이다.
▲ 운곡리 고향에서 뜯은 쑥을 다듬고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11:46]
▲ 주목 사이로 [11:46]
▲ 그림같은 시골 풍경 [11:47]
14:24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부락에 있는 중원고구려비 주차장에 도착. 차가 두어 대 세워져 있고 고구려비 옆에 산불감시원인 듯한 두 명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입산통제지역인가? 산에 올라가도 되는냐고 물어볼까? 만약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그냥 살짝 올라가자.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발경 당시 비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제위(諸位)’·‘사자(使者)’ 등 고구려 관직 이름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古牟婁城)’등의 글자가 보이고, ‘모인삼백(募人三百)’·‘신라토내(新羅土內)’ 등 고구려가 신라를 불렀던 말들이 쓰여 있어 고구려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라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 국보 제205호인 중원고구려비 [14:25]
▲ 중원고구려비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 [14:29]
14:30 일단 산행준비를 한 다음 주차장 오른쪽으로 난 산길로 올라붙었다. 조금 경사가 있는 길을 들키지 않으려고 급히 올랐더니 숨이 차오른다. 아래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 잠시 숨을 돌렸다. 도둑이 제발 저린 건가? 낙엽이 쌓인 산행로는 아직 나무들에 새잎이 돋지 않아 가을 분위기를 풍긴다. 그나마 가끔 보이는 진달래꽃이 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통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 조금 진행하니 이정표가 하나 서 있다.
▲ 작년 낙엽이 그래도 쌓여 있는 평탄한 길 [14:33]
▲ 동네 뒷산의 산책로 같네 [14:35]
▲ 통나무 계단이 있는 작은 안부 [14:40]
▲ 장미산 이정표 [14:44]
▲ 내리막도 있고 [14:44]
14:47 길 옆에 앉아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오후의 나른함이 밀려온다. 길이 갈라지고 있다. 오른쪽은 수레길이고 왼쪽은 농장으로 가는 길인 모양이다. 지형적으로 보아 능선을 따라야 할 것 같기에 왼쪽으로 들어섰다. 7분 정도 걸었더니 다시 오른쪽 수레길과 만나는데 이정표가 서 있다. 알고 보니 원 산행로는 수레길이었다. 오른쪽에 두충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진달래가 핀 조금 가파른 능선을 올라 오른쪽으로 돌았다. 무덤 위에 할미꽃이 예쁘다. 얼마 만에 보는 할미꽃인가?
▲ 길 옆에 앉아 커피 한 잔 [14:47]
▲ 수레길 옆에 있는 장미산 이정표 [14:56]
▲ 두충나무숲 [14:56]
▲ 활짝 핀 진달래꽃 아래서 [14:59]
▲ 걷기에 좋은 평탄하고 넓은 길 [15:02]
▲ 오랜만에 본 할미꽃 [15:06]
15:07 오른쪽으로 남한강이 보인다. 여기가 전망대인가? 일단 통과! 나무에는 보랏빛 진달래가 한창이고 땅에는 노란 양지꽃이 널려 있다. 산행로 옆에 벤취 2개가 나란히 있는 것이 보인다. 산행로는 밤나무 과수원 왼쪽으로 이어졌다. 과수원 끝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가니 허물어진 석축이 보인다. 장미산성인 모양이다.
▲ 남한강이 보인다 [15:07]
▲ 진달래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15:09]
▲ 부케처럼 아름답게 핀 양지꽃 [15:18]
▲ 쉬어갈 공간에 벤취도 있고 [15:19]
▲ 밤나무 과수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5:19]
▲ 올라오던 길을 멈추고 잠시 뒤돌아서서 [15:24]
15:30 무너진 장미산성의 석축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과 그 속에 서려 있을 옛 사람들의 애환을 느꼈다. 석축 옆에 이정표가 서 있다. 그런데 고구려비로 내려가는 길이 우리가 올라온 길과 방향이 조금 다르다. 어디서 갈라진 건가? 석축과 수로를 따라 산행로가 계속 이어져 있다. 정상이 가까워졌는지 길이 조금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진달래가 많다. 가파른 길이 끝나고 철제 의자가 하나 보이는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평지에는 묘가 하나 자리잡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데 문이 잠겨 있다. 조금 더 운행하니 다시 또 다른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장미산성에 얽힌 전설
장미산성과 보련산성 삼국시대 때 이곳 보련산 서쪽 가마골 마을에 장미라는 사람과 보련이라는 누이가 살았는데 명산의 정기를 받은 이들은 둘 다 장수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옛부터 한 집안에 두 장수가 태어나면 그 중 하나는 희생되어야 하기에 두 사람은 성쌓기 겨루기를 하기로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가슴을 저미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어머니가 보기에 보련이의 성 쌓는 솜씨가 아들인 장미보다 뛰어나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결심을 한 어머니는 손수 떡을 해서 보련이에게 떡을 보이고 다시 성을 쌓게 했는데 보련이가 마지막 돌을 하나 올리려는 순간 장미쪽에서 성을 다 쌓았음을 알리자 보련이는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려 했음을 알고 집을 떠났다고 한다. 보련이가 떠난 다음 날 보련이의 집에 큰 별이 하나 떨어졌다고 하며 그후 그 지역 산과 산성을 보련산-보련산성, 장미산-장미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무너져 내리고 있는 장미산성 [15:30]
▲ 무너진 석축에 나무가 자라고 있고 [15:30]
▲ 삼거리 이정표 [15:31]
▲ 산성 석축 오른쪽으로 나 있는 산행로 [15:31]
▲ 산 놈인든 죽은 놈이든 나무면 OK [15:38]
▲ 수로 오른쪽으로 산행로가 이어지고 [15:41]
▲ 진달래꽃이 줄지어 있는 산행로 [15:42]
▲ 장미산 정상 직전의 무덤 [15:44]
15:47 장미산 정상에 올랐다. 산은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삼각점이 있고, 정상표지석도 있고, 산불감시초소도 있고, 산불감시원도 있고, 장미산성 안내문도 있다. 완전 화개장터네. 초소 안에 있는 감시원 아저씨에게 인사를 건넨 다음 표지석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곧바로 하산, 지도를 살펴보지도 않고 생각도 없이 길이 잘 나 있는 왼쪽으로 접어들었다. 아름다운 소나무숲과 커다란 돌탑을 지나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가 보이는데, 어라 바위가 아니네, 환기창이 바위 중간에 있네.
▲ 해발 336.9m의 장미산 정상에서 [15:47]
▲ 장미산 정상에 있는 삼각점 [15:48]
▲ 장미산 정상에서 [15:48]
▲ 장미산 정상에서 [15:50]
▲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장미산 정상 [15:51]
▲ 하산길의 아름다운 소나무 숲 [15:52]
▲ 첨성대를 닮은 돌탑 옆에서 [15:53]
15:54 커다란 바위 모양으로 지은 건물은 봉학사의 산신각이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스님 한 분이 가부좌를 틀고 정진 수행을 하고 계셨다. 바위 모양의 건물 아래에는 요사채도 있고 대웅전도 있어 절집의 모습을 그런대로 갖추고 있었다. 봉학사 아래 왼쪽으로 뻗은 시멘트 포장도로는, 나중에 알고 보니, 장미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봉학사 아래에는 한창 장미산성 복원을 위한 석축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현대 공법으로 잘 쌓은 들 옛것만 하겠는가?
석축 오른쪽으로 난 사면길을 오르니 오른쪽으로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왼쪽 능선길을 따라 가니 헬리콥터 착륙장이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계속되는 내리막이었다. 물론 여기 쯤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디가 나오나 끝까지 가 볼 요량이다. 길 옆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진달래가 길 잃은 산행객의 마음을 달래준다. 25분 정도 걸어 수레길에 이르렀고 곧 마을과 도로가 보였다. 장미산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인 것 같다.
장미산성
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산 48번지 해발 342m인 장미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성터이다. 산성은 둘레가 2,940m로 처음에는 백제가 축성하여 백제시기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나 대규모의 석축포곡식(石築包谷式)으로 이런 산성의 원류는 고구려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중원고구려비와 관련하여 고구려 세력의 남하에 의해 이곳이 남방중진(南方重鎭)이 되었을 때 축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당시의 국원성이 이곳으로 보는 견해도 지배적이다.
장미산성은 대부분 기단을 두지 않고 지면 혹은 석반을 그냥 다듬은 위에 성벽을 쌓았고 아래쪽에서 위로 오르는 하부에 약간씩 들여 쌓거나 현저히 들여 쌓은 좁은 단부(段部)를 둔 예가 있으며 산 정상부나 등성이 부분 보다는 외향 비탈면의 상부를 지나도록 축성되었으며 성벽 통과 지점사이의 높이 차가 심한 것은 중부이남지역의 고대 유적으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이 성의 남으로는 "중원 고구려비"가 있고 서쪽으로는 봉황리 마애불상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외에 옛 절터도 여러 개 있다. 이런 모든 점으로 미루어 이성의 부근은 삼국시대에 내륙지방의 남과 북을 잇는 중요한 곳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이 성에는 서북쪽으로 마주하고 있는 보련산의 보련산성과 관련하여 장미와 보련이라는 남매가 성 쌓기 내기를 하여 산과 성의 이름이 생겨났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 봉학사 산신각 [15:54]
▲ 봉학사 대웅전 [15:56]
▲ 새로 복원 중인 산성을 배경으로 [15:58]
▲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16:02]
▲ 진달래 꽃길에서 [16:09]
▲ 진달래가 피어 있는 하산길에서 [16:14]
▲ 진달래꽃이 한창인 장미산 [16:15]
▲ 오늘 처음 만난 바위 [16:15]
▲ 마을로 나오는 수레길 [16:26]
▲ 주덕에서 가흥으로 이어지는 599번 지방도 [16:29]
16:30 도로에 내려섰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중앙탑 휴게소 쪽으로 걷기로 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의 갓길을 걷기가 쉽지 않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따라 차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거의 쉬지 않고 차들이 달려온다. 15분 정도 걸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시간표가 정류장 안에 게시되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 정류장에 버스가 언제 오는 지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초등학생이 미적분 문제 푸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정류장을 나와 휴게소 쪽 도로를 살펴보니 어, 바로 앞에 휴게소가 보인다.
일단 휴게소에 아내를 남겨 두고 혼자서 차를 가져오기로 했다. 이정표를 보니 여기서 중원고구려비까지는 2.5km의 거리다. 30분이면 가겠지. 청주에서 서울까지 걸어간 적도 있는데 뭐. 도로 옆 벚나무는 아직 꽃을 터뜨리지 않았지만 개나리는 한창이다. 남한강의 물은 교교히 흐르고 있다. 굽은 도로를 몇 번 돌아가니 오른쪽으로 장미산 산행 안내판이 보인다. 저곳이 바로 우리가 내려올 길이었는데....
▲ 주덕-가흥 599번 지방도로 [16:40]
▲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중 [16:45]
▲ 남한강변의 신록 [16:52]
▲ 충주호 조정지댐 [16:59]
▲ 예정했던 장미산 산행 날머리 [17:10]
17:28 중원고구려비 옆 주차장에 도착하니 내 차만 썰렁하게 남아 있고 아무도 없다. 차를 돌려 아내가 기다리는 중앙탑 휴게소로 왔다. 걸어서 35분 걸린 거리를 차로 5분에 왔다. 아내는 휴게소 옆 둑방에서 머위를 뜯는라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단다. 시간 활용 제대로 잘 했네. 청주로 돌아오는 길, 성묘를 갔던 차들과 나들이행 차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라 도로가 무척 복잡하다. 오늘 하루, 어머니 묘소도 찾아 보고 가벼운 진달래꽃 산행도 하고, 봄나물도 뜯고 해서 나름대로 의미 있게 보낸 하루였다.
▲ 중원고구려비 옆에 있는 장미산 산행 들머리 [17:28]
▲ 599번 지방도에 있는 중앙탑 휴게소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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