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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행/충북山行記

2008.04.13. [충북山行記 38] 충북 진천 환희산

by 사천거사 2008. 4. 13.

환희산 산행기 

◈ 일시: 2008년 4월 13일 일요일

◈ 장소: 환희산 402m / 충북 진천군 문백면

◈ 코스: 정송강사 주차장 → 정철 무덤 → 정상 → 정송강사 → 주차장

◈ 시간: 1시간 39분



08:18  청주 아파트 출발. 어제 용문산이라는 큰 산을 다녀왔기 때문에 오늘은 진천에 있는 환희산을 간단히 다녀오기로 했다. 높이가 400m 정도고 산행 거리도 짧아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는 곳이다. 환희산은 크기는 작지만 송강 정철의 사당과 묘소가 있어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장소이다. 청주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문백면에 오니 정송강사로 가는 길 이정표가 있다. 문백면에서 좌회전해서 들어간 다음 문백초등학교와 봉죽교를 지나 우회전해서 올라가니 왼쪽으로 정송강사가 보였다. 정송강사로 가는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사석이 나온다. 

 

08:42  정송강사 주차장에 도착. 왼쪽에 한옥이 여러 채 있는 주차장은 매우 넓었다. 계단식으로 된 주차장이 3군데가 있고 정송강사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에 포장이 된 주차장이 또 있다. 정송강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가? 환희산 때문에 만든 주차장은 아닌 것 같고. 넓은 주차장에는 산불감시차량 한 대와 트럭 한 대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길을 따라 올라가니 오른쪽에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다. 사당 입구 신도비 앞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우암 송시열이 터를 잡아 주고 잠시 쉬면서 꽂았다는 지팡이가 살아 거목이 된 것인데, 道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었다. 거참, 어제 보고 온 용문산의 은행나무도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데, 옛날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으면 다 뿌리가 나고 잎이 돋아 거목이 되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송강정철신도비(충북유형문화재 제187호)

 

 정철(1536∼1593)은 호는 송강(松江)이고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가사문학(歌辭文學)의 대가로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 등을 지었으며 좌의정(左議政)을 지냈다. 신도비(神道碑)는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 업적을 기록하며 그의 무덤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이며 가사 문학의 대가로 유명한 정철 선행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이 신도비는 귀부(龜趺)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팔작지붕을 얹은 일반형 석비이다. 비문은 1684년 문정공(文正公) 송시열(宋時烈)선생이 글을 짓고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副總管) 김수증(金壽增)선생이 전서(篆書)하고 글을 썼으며, 비의 높이는 2.5m이다.


▲ 정송강사 주차장 

 

▲ 정송강사 입구에 있는 보호수 [08:44] 

 

▲ 정송강사 입구에 있는 송강정철신도비 [08:45]  


08:46  본격적인 산행에 돌입. 정송강사 왼쪽으로 정철 묘소로 가는 길이 나 있다. 언덕에 핀 노란 개나리가 아름답다. 금년에 개나리 보는 것은 이번이 거의 마지막일 것 같다. 작은 다리를 건너니 길은 임도처럼 넓어졌다. 산벚나무꽃이 우리를 반겨주고 적당히 굽은 소나무들도 인사를 한다. 정철 묘소에 이르기 직전 오름길은 경사가 조금 있었다. 그래도 워낙 길이 좋아 타박타박 오르니 크게 힘이 들지 않는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약간 뿌리다가 다시 그치고 만다. 가파른 오름길을 마감하니 정면으로 정철 묘소가 보였다.


▲ 개나리꽃의 향연 [08:48] 

 

▲ 작은 다리를 건너면 시작되는 넓은 산행로 [08:50] 

 

▲ 정철 묘소로 올라가는 길로 넓으나 조금 경사가 있다 [08:52] 

 

▲ 오름길 막바지 [08:54] 


08:55  정철 묘소에 도착. 보기에도 비범한 사람의 묘소 같다. 그런데 왜 봉분이 2개지? 잘 모르겠다. 봉분 주위에는 할미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할미꽃이다. 무덤 주변에 특별히 할미꽃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이라서 그런가? 산행로는 정철 묘소 뒤로 나 있었다. 조금 가파른, 그러나 바닥은 푹신한 능선길이 이어졌다. 오르는 길의 소나무가 멋지다. 한 등성이를 올라서니 공터에 나무로 만든 벤취가 있어 잠시 자리에 앉았다. 아내는 벤취마니아다. 벤취가 있는 곳을 지나니 본격적인 진달래 능선이 시작되었다. 


송강정철묘소(충청북도기념물 제106호)

 

조선중기의 문신이며 시인인 송강(松江) 정철(鄭澈)선생의 묘소로 송강사 남쪽 1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묘는 원래 고양군(현 고양시) 원당면에 있던 것을 조선 현종 6년(1665)에 송시열 선생이 현 위치로 묘자리(葬地)를 정하고 후손 정양(鄭瀁)이 이장하고 사우도 건립하였다. 묘소는 약1백㎡(30坪)로 봉분(封墳)의 높이1.5m, 둘레 20m, 상석(床石), 문관석(文官石), 망주석(望株石), 묘비 등이 있다. 비문은 [유명조선좌의 정인성부원군 시 문청공 호 송강정철지묘, 정경부인 문화유씨부좌(有明朝鮮左議政寅城府院君 諡 文靑公 松江鄭澈之墓, 貞敬夫人文化柳氏左)]라 쓰여있다.


▲ 정철 묘소 전경 

 

▲ 정철 묘소에 피어 있는 할미꽃 [08:57] 

 

▲ 아름다운 소나무숲 사이로 산행로가 나 있다 [09:06] 

 

▲ 잠시 서서 폼도 잡아 보고 [09:07] 

 

▲ 나무 벤취에 앉아도 보고 [09:09] 

 

▲ 진달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능선길 [09:10] 


09:11  진달래 능선에 들어섰다. 진달래 능선은 실제 지명이 아니고 내가 붙인 이름이다. 경사가 완만한 능선길 양쪽으로 진달래가 오밀조밀하게 피어 있는 것이, 마치 화원의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걷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리 보아도 진달래, 저리 보아도 진달래. 이렇게도 사진을 찍어 보고, 저렇게도 사진을 찍어 보고. 이 산 속에 둘 만 있으니 무슨 짓을 한들 누가 상관하랴!


▲ 진달래꽃에 파묻혀서 진달래나무 가지를 부여잡고 

 

▲ 산행로 터널을 만든 소나무들 [09:18] 

 

▲ 나도 한 번 진달래꽃에 취해 보고 [09:21] 

 

▲ 양쪽으로 진달래가 피어 있는 산행로 [09:22] 

 

▲ 다시 진달래에 파묻혀 보고 [09:23]

 

▲ 뒷동산 산책로와 같은 환희산 오르는 길 [09:25] 

 

▲ 걸어온 길을 배경으로 [09:27] 

 

▲ 산이 낮아 꼭대기까지 진달래가 만개했다 [09:31] 

 

▲ 경사가 별로 없는 부드러운 산길 [09:32] 

 

▲ 정상을 향해 오르는 뒷모습 [09:32] 

 

▲ 정상 직전 능선길에도 진달래가 한창이다 [09:36]  


09:38  환희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는 삼각점과 오석으로 된 정상표지석이 있고, 표지석에는 '환희산 해발 402.3m'라고 적혀 있었다. 연무 때문에 먼 곳은 흐릿하게 보였지만 그런대로 정상에서의 조망도 괜찮았다. 정상에 있는 벤취에 앉아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진달래꽃 사이로 커피향이 퍼져 나간다. 진달래꽃과 커피향, 잘 어울리나 모르겠다. 잔뜩 흐린 하늘에서 비가 아주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자켓을 꺼내 입고 하산을 서둘렀다.


▲ 환희산 정상에 있는 삼각점

 

▲ 환희산 정상에서 

 

▲ 환희산 정상에서 

 

▲ 환희산 정상에서 

 

▲ 우리가 걸어온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진달래꽃 뒤로 보인다 

 

▲ 하산하기 전에 커피 한 잔


09:44  정상에서 왼쪽 능선을 타고 하산 시작. 하산길에서도 어김 없이 진달래와 소나무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게다가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별꽃들이 봄 분위기를 한층 더 돋구어 주고 있었다. 순탄한 하산길을 내려오는 데에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정송강사에 내려오자 그나마 조금씩 내리던 비도 그쳤다.


▲ 하산길에서 만난 보기에 좋은 소나무들 

 

▲ 사람도 웃고 꽃도 웃고 [09:53] 

 

▲ 꽃도 웃고 사람도 웃고 [09:53] 

 

▲ 하산길에는 유난히 아름다운 소나무가 많았다 [09:55] 

 

▲ 하산길에서 만난 별꽃 [10:01] 


10:04  정송강사에 도착. 위에서 내려다보니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 아까 올라올 때는 문이 닫혀 있어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었지만 하산길에서는 들어갈 수 있었다. 송강정철시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오니 신도비 앞이다. 아까 우리가 올라갔던 오른쪽 산행로로 가족인 듯한 서너 명의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다. 찾는 사람이 있기는 있구나.  


정송강사(충청북도 기념물 제9호)

 

 조선 전기 문신이며 시인인 송강 정철(1536∼1593)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선생은 정치인보다 시인으로서 천부적인 재질을 나타냈는데, 관찰사로 재직하면서 『관동별곡』, 『훈민가』, 『성산별곡』 등을 지었고 낙향한 뒤에는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많은 가사와 단가를 남겼다. 이 사당은 경기도 고양에 있던 정철의 묘를, 현종 6년(1665) 송시열 선생이 정한 현 자리로 옮기면서 지은 건물이다. 지금 있는 것은 규모가 너무 작아 1979년 새로 지은 것이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현재 이곳에는 선생의 유품인 은배(銀杯), 옥배(玉杯)를 보관하고 있으며, 사당 남쪽에는 송강의 묘소와 시비 그리고 비각이 있다.


▲ 주변 신록과 잘 어울린 정송강사 

 

▲ 송강 정철선생시비 앞에서 [10:07]  


10:11  주차장에 도착. 오른쪽 주차장은 전과 그대로고 왼쪽 포장된 주차장에는 차가 몇 대 서 있었다. 우리가 일찍 서둘러서 그렇지 지금 시각도 여기에 오기에 늦은 시각은 아니다.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청주로 돌아왔다. 나로서는 산행 거리가 짧아 조금 부족한 듯 한데 아내는 대만족이다. 시간이 나면 언제라도 찾겠다고 힘 주어 몇 번씩 강조를 했다. 좋은 생각.


▲ 정송강사의 넓은 주차장  


10:40  청주에 도착. 산행을 다녀왔는데 11시도 안 되었다. 아내는 이런 산에 오늘 같은 분위기라면 매일이라도 가겠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산의 높낮이가 무슨 큰 문제이겠는가. 누구와 어떻게 다녀왔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온 산을 붉게 물들이던 진달래도 이번 주가 지나면 끝물일 것 같다. 상관 없다. 철쭉의 계절이 다시 찾아오니까. 꽃이 있으면 더 좋지만 산에 가는데 꽃이 없은들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