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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국내 行事

2025.03.02. [국내行事 187]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by 사천거사 2025. 3. 2.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 일시: 2025년 3월 2일 일요일

◈ 장소: 서운동성당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서운동 90-1
◈ 회원: 아내와 함께 



오늘은 연중 제8주일이다. 교회 안에서 울려 퍼지는 말씀은 지혜의 샘이며 삶의 규범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알아들을 귀를 열어 주시어, 교만으로 형제들을 그릇되게 판단하지 않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평화의 일꾼이 되게 해 주시기를 청하자.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 6,39-45]


간음한 여인이 광장으로 끌려 나왔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에게 다그친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예수님은 딜레마에 빠졌다. 돌을 던지라고 하면 평소에 늘 말씀하셨던 사랑과 용서를 어기게 되고, 돌을 던지지 말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게 되니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땅에 잠시 무슨 글을 쓰시다가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어느 누가 감히 돌을 던지겠는가. 이 말씀 하나로 딜레마가 완벽하게 해결되었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져 처형하라는 모세의 율법을 지키면서, 동시에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랑과 용서를 보여주셨다. 솔로몬의 지혜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리신 것이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을 죽이는 일은 살인이라는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이라고 보셨다. 그래서 군중들로 하여금 돌을 던지지 못하게 하여 군중들이 살인이라는 죄를 짓지 않게 막아주셨다. 아울러 죄인도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으로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보여주셨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 남의 작은 잘못은 꼬치꼬치 따지면서 자신의 큰 잘못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주 복음에서 예수님은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죄인을 단죄해서는 안 되며 용서하고 안아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 자신이 잘못으로 가득 찬 죄인이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죄를 물을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남의 잘못을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내가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질 만한 자격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상대방의 티는 보면서 내 자신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에게 그러했듯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단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자살 소식을 종종 듣는다. 자살은 자신의 죄를 자신이 단죄하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자신을 단죄하지 마라. 하느님도 단죄하지 않으시는데 왜 우리가 스스로를 단죄해야 하나? 회개하고 하느님에게 용서를 구해라. 자신을 용서하고 안아주어라.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다.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이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사람은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을 말로써 표현한다. 즉, 상대방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말을 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말 한마디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삶의 모습이 바뀌고, 상전이 벽해가 된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루카복음 23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골고타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에 예수님 양쪽에 다른 죄수 두 명이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이때 죄수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죄수 1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죄수 2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첫 번째 말을 한 죄수에게는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셨으나, 두 번째로 말을 한 죄수에게는 이렇게 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예수님 옆에 있던 죄수들은 말 한마디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 것이다.



▲ 청주 서운동성당 [09:59]
 

서운동성당 성모동굴 [09:59]
 

서운동성당 제대 [10:05]
 

▲ 미사가 끝났어요 [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