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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트레킹/충북 보은 속리산 세조길

2021.04.04. [속리산 세조길 2] 충북 보은 속리산 세조길

by 사천거사 2021. 4. 9.

속리산 세조길 걷기

◈ 일시: 2021년 4월 4일 일요일 / 흐림, 가는 비 약간

◈ 장소: 속리산 세조길 / 충북 보은 

◈ 코스: 관광안내소 주차장 → 세조길 자연관찰로 → 법주사 입구 → 세조길 → 

           세심정 → 세조길 → 법주사 → 관광안내소 주차장

◈ 거리: 9.7km

◈ 시간: 2시간 27분

◈ 회원: 아내와 함께 


 


13:15  오늘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3일 만에 부활하신 날이다. 어제 부활전야 미사에 참례했기 때문에 오늘은 성당에 가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어제 비가 내려 하지 못한 바깥나들이를 오늘 진행해 볼까? 아침을 지나서도 오락가락하던 비가 10시가 넘어가자 그쳤다. 점심 먹고 출발. 어디로? 속리산 세조길로.

 

청주 사천동 출발, 미원과 보은을 거쳐 속리산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관광안내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보자. 어이구, 길이 좋아 채 한 시간도 안 걸렸네. 상가 오른쪽으로 나 있는 속리산 오리숲길에 들어섰다. 꽥꽥 우는 오리와는 관계가 없고 숲길의 길이가 2km, 즉 오리라서 오리숲길이라고 한다.

 

인공폭포와 오밀조밀한 산책로를 지나고 옛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벽화가 반겨주는 곳을 지나자 연륜이 묻어나는 소나무와 전나무가 양쪽에 가로수로 서 있는 숲길이 이어졌다.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까지 내린 비에 미세먼지가 모두 사라졌는지 공기는 더없이 깨끗하고 풋풋한 나무 냄새가 숲길에 가득하다. 매표소 도착, 입장료가 5,000원이다. 경로우대증이 있는 나는 그냥 패스.

 

매표소를 지나면 길이 갈라진다. 오른쪽은 기존의 오리숲길로 차량이 다니는 길이다. 예전에는 법주사로 가려면 이 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왼쪽에 세조길 자연관찰로를 따로 만들어놓았다. 이렇게 볼 때 갈림길 지점에서 법주사 입구까지는 오리숲길과 세조길이 함께 나란히 가고 있는 공존과 상생의 구간이다. 오전에 날씨가 궂었음에도 법주사를 찾은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 청주 사천동 출발 [13:17]

 

▲ 관광안내소 주차장에 주차 [14:23]

 

▲ 속리산 오리숲길 인공폭포 앞에서 [14:31]

 

▲ 속리산 오리숲길 표지판 앞에서 [14:34]

 

▲ 오리숲길 소나무길 [14:37]

 

▲ 오리숲길 소나무길에서 [14:38]

 

▲ 오리숲길 전나무길 [14:40]

 

▲ 갈림길 지점에서 세조길 자연관찰로에 진입 [14:46]

 

▲ 야자매트가 깔려 있는 산책로: 왼쪽으로 달천이 보인다 [14:47]

 

▲ 법주사 일주문: 호서제일가람 [14:52]


14:53  일주문을 지나 조금 걸어가자 법주사 입구다. 하마비 뒤로 세조길 게이트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세심정까지가 2016년 9월에 개통한 2.7km 길이의 진정한 세조길이다. 세조길에 들어서자 인적이 끊어졌다.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법주사로 들어간 모양이다. 차도 오른쪽을 따라가던 세조길이 차도를 건너면서 차도와 잠시 멀어졌다. 달천 옆에 서 있는 나무의 신록이 한창이다.

 

세조가 그늘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는 눈썹바위를 지나자 물소리가 들려온다. 오른쪽에 있는 상수도 수원지 댐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였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따로 없네.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을 막아 만든 상수도 수원지에도 봄이 가득했다. 도로에서 벗어난 세조길이 걷기에 참 좋다. 봄꽃에 신록에 공기는 쾌적하고 사람도 별로 없으니 어찌 발걸음이 가볍지 않겠는가.


세조와 속리산

 

조선 세조는 속리산 지역을 자주 왕래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행차는 총 3번 있었다. 첫 번째는 당시 복천암에 거주하고 있던 신미대사를 수차례 찾아가 훈민정음 보급에 대하여 논의한 것이고, 두 번째는 과거 고려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서 불경을 읽다 할아버지(작제건)의 유적을 찾기 위해 속리산 능선을 따라 말티재 길을 걸었는데, 훗날 고려 태조를 크게 흠모하던 세조가 진흙으로 된 말티재 길에 얇은 돌을 놓아 정비한 뒤 그 길을 그대로 따라 걸었던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말년에 피부병에 걸린 세조가 요양차 온 것이다. 그 외에도 당시 백성들의 고충을 직접 듣기 위하여 속리산 지역 및 타지방을 자주 왕래하였다고 전한다.


▲ 일주문 지나 다시 세조길에 진입 [14:53]

 

▲ 법주사 입구 세조길 게이트 앞에서 [14:55]

 

▲ 본격적인 세조길 걷기에 돌입 [14:58]

 

▲ 차도 건너 도로 왼쪽 세조길에 진입 [14:59]

 

▲ 야자매트가 깔려 있는 세조길 [15:00]

 

▲ 신록과 달천 [15:01]

 

▲ 세조가 그늘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는 눈썹바위 [15:04]

 

▲ 상수도 수원지 댐 앞에서 [15:05]

 

▲ 봄기운이 가득한 상수도 수원지 [15:07]

 

▲ 데크길을 따라 진행 [15:08]

 

▲ 걷기에 참 좋은 세조길 [15:11]


15:15  이정표를 만났다. 세조길의 중간 정도 되는 지점이다. 세조길이 다시 차도를 건너 달천 오른쪽을 따라 이어졌다. 간밤에 비가 많이 내렸는지 달천을 흘러가는 물이 여름철 못지않다. 야자매트가 깔려 있는 길과 데크길을 걸어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세조가 목욕한 뒤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목욕소를 바라본다.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가 꿈에 나타나 점지해 준 이곳 목욕소에서 세조가 목욕한 뒤 피부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목욕소에서 문장대 가는 길과 천왕봉 가는 길이 갈라지는 세심정까지는 불과 5분 거리였다.


▲ 세심정 1.4km 전 이정표 [15:15]

 

▲ 차도 건너 세조길에 진입 [15:15]

 

▲ 야자매트가 깔려 있는 세조길 [15:19]

 

▲ 달천 오른쪽을 따라 나 있는 데크길 [15:21]

 

▲ 계속 이어지는 데크길 [15:24]

 

▲ 목욕소 전망대에서 [15:29]

 

▲ 세조가 피부병을 고쳤다는 목욕소 [15:30]

 

▲ 세심정으로 가는 길에서 [15:33]

 

▲ 세심정 앞에 서 있는 이정표: 왼쪽은 문장대, 오른쪽은 천왕봉 가는 길 [15:35]

 

▲ 세심정 안내문 [15:36]


15:37  세심정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간다. 아까와는 달리 내려가는 길이라 발걸음이 가볍다. 상수도 수원지 데크길을 지나면서 무심코 왼쪽 수면을 보게 되었는데... 이게 뭐야? 수원지 물 위에 떠 있는 낙엽과 물에 비친 나뭇가지, 여기에 신록이 더하여 기가 막힌 그림이 만들어졌다. 구도도 그렇고 색감도 그렇고, 인간은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걸작이다.


▲ 세심정에서 발길을 돌려 돌아가는 길에 진입 [15:37]

 

▲ 달천으로 흘러드는 계류가 만든 폭포들 [15:39]

 

▲ 데크길을 따라 진행 [15:44]

 

▲ 셀프 카메라 [15:46]

 

▲ 야자매트가 깔려 있는 길 [15:53]

 

▲ 상수도 수원지 옆에 있는 벤치에서 [16:02]

 

▲ 상수도 수원지의 반영 [16:05]

 

▲ 물과 나뭇가지, 낙엽, 신록이 만들어낸 자연의 작품 [16:07]

 

▲ 어느 미술관에 가도 볼 수 없는 그림 [16:07]

 

▲ 어느 화가도 그릴 수 없는 작품 [16:08]

 

▲ 사람의 노력은 물론 돈 한 푼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작품 [16:08]


16:19  속리산 하면 생각나는 절, 법주사에 들렀다. 법주사는 천년고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법주사는 워낙 여러 번 와본 곳이라 전혀 새로운 기분은 나지 않지만 국보 제55호인 팔상전만큼은 나에게 특별하다. 왜? 아내와 생전 처음 함께 사진을 찍은 곳이라서.

 

법주사는 경내에서 벌인 승려들의 도박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말사 주지들까지 참가하여 도박을 벌였다는데... 도박을 해서 딴 돈으로 절집 중창이라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신이 인간을 만들어주었더니 인간은 신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법주사 경내를 대충 둘러보고 차를 세워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릴 듯 말 듯한 비는 결국 내리지 않았고 청주로 돌아오는 길에 들어서자 하늘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봄의 정취를 한껏 느낀 속리산 세조길 걷기가 끝나가고 있다.


법주사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이다.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고, 그 뒤 776년(혜공왕 12)에 진표(眞表)가 중창하였다. 절 이름을 법주사라 한 것은 창건주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다. 법주사 2009년 12월에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었다.

 

이 절의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국보 제5호인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을 비롯하여 국보 제55호인 팔상전, 국보 제64호인 보은 법주사 석련지(法住寺石蓮池), 보물 제15호인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法住寺四天王石燈), 보물 제216호인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상(法住寺磨崖如來倚像), 보물 제848호인 보은 법주사 신법 천문도 병풍(新法天文圖屛風), 보물 제1259호인 법주사 괘불탱, 보물 제1417호인 보은 법주사 석조희견보살입상 등이 있다.


▲ 법주사 경내에서 꽃을 피운 벚나무 [16:19]

 

▲ 법주사 금동미륵대불과 팔상전 [16:21]


법주사 금동미륵대불(法住寺金銅彌勒大佛)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으로, 높이는 33m이다. 최초의 불상은 신라 제36대 혜공왕 때 승려인 진표가 청동으로 주조한 후 1000여 년 간 유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흥선대원군이 당백전(當百錢)의 재료로 쓰기 위하여 훼손하였고, 1939년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인 김복진(金復鎭)이 당시 일제강점기 때 독립에 대한 염원을 살려,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한 그의 《불상습작》을 원형으로 하여 시멘트로 대불을 제작하였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시멘트 미륵대불을 그대로 본떠 청동대불로 조성하는 청동불상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주재로 쓰인 청동만도 116t이나 소요되었다. 당시 청동미륵대불 조성에는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을 주축으로 한 학자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17인 위원회가 5회에 걸쳐 평가회를 가졌고, 하나로 이어지는 청동불상 조성의 예가 세계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비철금속분야 연구진까지 참여하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부 용접 부위에 부식이 진행되면서 얼룩진 외관 때문에 불상으로서의 품위유지가 어려워지자 2000년부터 불상에 금박을 입히는 개금불사(改金佛事) 공사가 시작되었다. 총 12억 원의 자금이 들어간 공사는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미세한 구멍을 메꾸는 과정부터 옻칠, 금분 칠, 금박 입히기 등 8단계를 거쳐 17개월 만인 2002년 6월 5일 끝났다.

순금이 총 80㎏ 소요되었고 연면적 900㎡에 이르는 겉 부분에는 3미크론(0.003㎜) 두께의 금박을 입혔으며 섭씨 80℃∼-30℃에서 견딜 수 있는 건식 전기도금공법을 통해 광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특수도금하였다.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8m의 기단부 안에는 용화전이 있는데,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며 용화전 벽면에는 13개의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法住寺金銅彌勒大佛] (두산백과)


▲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앞에서 [16:21]

 

▲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앞에서 [16:22]


팔상전

 

국보 제55호인 팔상전은 5층 목탑으로서 우리나라 목탑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팔상전은 신라 진흥왕 때 의신이 세웠고, 776년에 병진(秉眞)이 중창하였으며,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선조 38)에 재건하였다. 내부에는 8폭의 팔상탱화(八相幀怜) 앞쪽으로 나한상(羅漢像)을 3열로 배치하고, 중앙에는 본존불을 봉안하였다.


▲ 국보 제55호인 팔상전 앞에서  [16:24]

 

▲ 오리숲길 전나무길 [16:39]

 

▲ 오리숲길 소나무길 [16:43]

 

▲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가 [16:48]

 

▲ 차를 세워둔 관광안내소 주차장에 도착 [16:50]

 

▲ 속리산 세조길 걷기를 마치고 청주 사천동 귀환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