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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트레킹/충북 보은 속리산 세조길

2017.09.30. [속리산 세조길 1] 충북 보은 속리산 세조길

by 사천거사 2017. 9. 30.

속리산 세조길 걷기

◈ 일시: 2017년 9월 30일 토요일 / 맑음

◈ 장소: 속리산 세조길 / 충북 보은 

◈ 코스: 법주사 주차장 → 세조길 자연관찰로 → 법주사 입구 → 세조길 → 세심정 → 

           세조길 → 법주사 → 주차장

◈ 회원: 우리 부부, 외손자들 


 

 

 


10:00   오늘은 열흘 간의 긴 연휴 시작되는 첫날, 외손자들과 함께 속리산 세조길을 걷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작년 9월 개통된 세조길은 법주사에서 세심정을 잇는 2.35㎞ 탐방로로, 경사가 완만해 등산보다는 가벼운 나들이를 하기에 좋은 구간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이 탐방로에는 조선 7대 왕인 세조가 몸을 씻었다는 목욕소가 있다. 탐방로 명칭은 속리산과 세조의 인연을 강조해 세조길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딸네집 아파트 앞에서 외손자들을 픽업한 후 속리산을 향해 달려갔다. 미원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보은을 향해 달리다 봉계2 교차로에서 575번 지방도에 진입, 장갑삼거리에서 다시 37번 국도에 들어섰다. 정이품송이 반겨주는 속리산면에 도착, 달천 옆에 있는 주차장에 4,000원을 지불하고 차를 세웠다. 오늘은 장장 10일 동안의 추석 연휴 첫 날, 아직 추석까지 4일이나 남은 탓인지 주차장은 차량들로 가득했다. 오늘 날씨는? 청명한 가을 날씨다.

 

법주사 매표소 앞에서 충북대학교 학생들이 속리산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지리산과 설악산의 케이블카 설치에 대해 찬반 논쟁이 뜨거운데 속리산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하려고 하나? 매표소에 들렀다. 문화재관람료 어른 4,000원, 어린이 1,000원 합계 10,000원 지불. 문화재관람료, 구경하지 않는 사람들도 내야 하는 참 어처구니 없는 돈이다. 세조길 자연관찰로를 지나 법주사 일주문 앞에 도착했다. '호서제일가람'이란다.  


▲ 달천 옆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1:16]

 

▲ 도로 옆길을 따라 진행 [11:22]

 

▲ 속리산 케이블카 설치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11:26]

 

▲ 설문조사에 참여하고 있는 외손자들 [11:27]

 

▲ 설문조사 마치고 출발 [11:29]

 

▲ 세조길 자연관찰로에 진입 [11:30]

 

▲ 세조길 자연관찰로 [11:35]

 

▲ 호서제일가람 법주사 일주문 [11:38]

 

▲ 법주사 일주문 밑에서 외손자들 [11:38]


11:40   세조길이 시작되었다. 2분 후 도착한 곳은 법주사 입구, 법주사 구경은 내려올 때 하기로 하고 오른쪽에 있는 세조길이 들어섰다. 5분 후 세조길은 기존 도로를 건너 왼쪽으로 향했다. 달천을 막아 만든 상수도 수원지에 도착했다. 속리산 천왕봉은 낙동강, 금강, 남한강의 발원지다. 천왕봉 아래에서 발원한 달천은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수원지 물 위에 걸쳐 있는 통나무 위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남생이가 보인다. 세조길이 생기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세조길에 들어섰다 [11:40]

 

▲ 법주사 입구까지는 널찍하다 [11:40]

 

▲ 법주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세조길이 나 있다 [11:42]

 

▲ 세조길에서 종인이 [11:43]

 

▲ 기존 도로를 건너 태평휴게소 쪽으로 [11:47]

 

▲ 달천 위에 놓인 다리에서 달천을 바라보고 [11:49]

 

▲ 데크 길에서 걸음을 멈추고 [11:53]

 

▲ 상수도 수원지에 비친 산그림자 [11:55]

 

▲ 상수도 수원지 데크 길에서 [11:57]

 

▲ 상수도 수원지에 비친 산그림자 [11:58]


12:07   상수도 수원지를 지나 계속 걸어가는 길, 경사가 별로 없는 길이라 걷기에 아주 좋다. 세조길은 다시 기존 도로를 건너 달천 오른쪽을 따라 이어졌다. 유유자적 걸어갈 수 있는 힐링 길이 계속 이어졌다.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있고, 맑은 물이 흘러가는 계곡도 있고, 함께 걸어가는 가족이 있으니 발걸음이 가벼워질 수밖에... 다시 다리를 건너 기존 도로를 따라 세심정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으로 목욕소가 보인다.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목욕을 했다는 곳, 세조길이란 이름이 생겨나게 한 곳이 바로 여기다. 


▲ 상수도 수원지를 지나 계속 진행 [12:07]

 

▲ 기존 도로를 건너 달천 오른쪽으로 [12:09]

 

▲ 맑은 물이 흘러가고 있는 달천 [12:09]

 

▲ 탈골암 화장실 가는 길 이정표 [12:15]

 

▲ 매트가 깔려 있는 길 [12:20]

 

▲ 여기는 데크 길 [12:23]

 

▲ 길 옆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휴식 [12:27]

 

▲ 다리를 건너 다시 기존 도로로 [12:33]

 

▲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몸을 씼었다는 목욕소 [12:34]


12:39   세심정에 도착했다. 속리산 세심정, '속세를 떠나 마음을 씼는 정자'라는 뜻인데 지금은 휴게소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세심정은 속리산 산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장대 가는 길과 천왕봉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심정은 세조길이 끝나는 지점, 발걸음을 돌려 다시 법주사 쪽으로 걸어오다 태평휴게소 옆 공터에 마련되어 있는 식탁에 앉아 김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아이들은 그저 즐겁다. 집과 학교, 학원만 오가다 드넓은 야외로 나왔으니 그 아니 좋겠는가.


▲ 세심정 휴게소 앞에 서 있는 이정표 [12:39]

 

▲ 세심정 안내문 [12:40]

 

▲ 휴게소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는 세심정 건물 [12:41]

 

▲ 달천 왼쪽을 따라 나 있는 데크 길 [12:50]

 

▲ 연휴 첫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다 [12:59]

 

▲ 태평휴게소 옆 식탁에 앉아 김밥을 점심으로 [13:12]

 

▲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들 [13:18]

 

▲ 종인이 손 잡고 [13:38]

 

▲ 외손자들 손 잡고 [13:38]


13:42   상수도 수원지를 지났다. 세조가 바위 아래 그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는 눈썹바위를 지나 법주사 입구에 도착한 후 법주사 경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법주사는 자리를 잡은 터가 워낙 넓어 꽤 많은 가람이 들어 있는데도 공간이 많이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식수대가 있어 들렀다. 커다란 화강암 물항아리에서 물을 떠먹어야 했는데 나뭇잎이 빠져 있는 것도 보이고 위생적으로 그리 좋은 구조는 아니었다. 그냥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먹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 다시 돌아온 상수도 수원지 [13:42]

 

▲ 속리산 세조길 눈썹바위 [13:44]

 

▲ 누리장 나무 [13:45]


법주사

 

사적 제503호.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이다.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창건했으며,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혜공왕 12)에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 영심(永深) 등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그후 법주사는 왕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개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갖춘 대찰이 되었다. 고려 숙종이 1101년 그의 아우 대각국사를 위해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승려의 수가 3만이었다고 하므로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태조와 세조도 이곳에서 법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이 중창한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1624년에 중건된 대웅전, 1605년에 재건된 국내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 1624년에 중창된 능인전(能仁殿)과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있고 이밖에 일주문·금강문·천왕문·조사각·사리각, 선원(禪院)에 부속된 대향각·염화실·응향각이 있다. 또한 법주사의 중심법당이었으며 장육상(丈六像)을 안치했었다는 용화보전(龍華寶殿)은 그 터만 남아 있고, 이곳에 근대조각가인 김복진이 조성 도중 요절했다는 시멘트로 된 미륵불상이 1964년에 세워졌다.

 

1986년 이를 다시 헐고 1989년 초파일에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상이 점안(點眼)되었다. 이밖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석련지(石蓮池:국보 제64호)·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보물 제848호)·괘불탱(보물 제1259호)과 지방지정문화재인 세존사리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석조(石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벽암대사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괘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9호)·철확(鐵鑊: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등이 있다.


▲ 법주사 금강문 통과 [13:57]

 

▲ 보물 제1413호 철확: 3만 명이 먹을 국을 끓였다는 솥 [13:59]

 

▲ 물 한 바가지씩 마시고 [14:01]

 

▲ 팔상전 앞에서 [14:04]

 

▲ 팔상전 앞에서 [14:05]


14:05   동양 최대 규모의 불상으로 알려져 있는 금동미륵대불이 보인다. 동양 최대 규모? 물론 크다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수십 억 원을 들여 세웠다는데 잘못하면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국보 제55호 팔상전,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5층 목탑이다. 국보 제5호 쌍사자석등,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본사인 법주사는 다수의 국보와 보물을 소유하고 있고 넓은 터에 많은 가람이 배치되어 있지만, 꽃이나 나무가 별로 없어 아주 삭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장료 받은 것으로 법주사 경내 주변 환경미화에 좀 쓰면 안 될까?

 

법주사 경내를 벗어나 다시 세조길을 걸어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세조길을 걸으면서 가졌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외손자들에게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며, 황금색으로 변한 들판을 가로질러 청주에 돌아오는 것으로 외손자들과 함께 한 속리산 세조길 걷기는 무사히 끝이 났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속리산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 12년 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 끝에 조성됐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의 당백전 주조를 위해 몰수됐던 미륵대불은 1939년 한국근대조각의 선구자 김복진 선생이 독립의 염원을 담아 시멘트 불상으로 복원됐다. 이후 법주사는 1990년 시멘트 미륵대불을 해체하고 국비 5억원, 충북도비 3억원, 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 2억원, 35억원은 37만명불자의 시주를 받아 청동 160톤, 주석 16톤, 아연 3톤으로 청동미륵대불을 세운 뒤 2002년 불상 전체를 금으로 치장했다. 그러나 표면의 녹과 오염물질, 풍화작용에 따른 탈색 등으로 인해 2014년 9월부터 불자들의 시주금 등 약 7억원을 투입해 골드 펄이라는 인조금으로 덧칠해 다시 선보였다.


▲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는 금동미륵대불 [14:05]


보은 법주사 팔상전

 

국보 제55호. 5층의 옥개는 네모지붕이며 그 위에 상륜부가 완전하게 남아 있다. 1968년 해체 중수할 때 5층 도리에서 상량문이 발견되고 심초석에서 사리장치와 함께 동판에 새긴 글이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에 의하면 팔상전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1605년에 재건하고 1626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건물은 2단의 석조기단 위에 세워졌는데 기단의 각 면 중앙에는 돌계단이 있다. 건물의 평면은 정사각형이며 건물의 외관은 층이 높아지면서 주간의 수가 줄어들어 강한 체감을 보이는데 1·2층은 5칸, 3·4층은 3칸, 5층은 2칸이다. 공포의 짜임은 금산사 미륵전이나 쌍봉사 대웅전에서 볼 수 없었던 특수한 방식으로 1층은 주심포식이지만 2층 이상은 다포식이다. 1층은 기둥머리에 창방을 돌리고 공포의 헛첨차는 기둥머리에 꽂혔으며 공포의 구성은 주심포식 2출목인데, 첨차는 조선 말기의 매우 장식적인 파련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2, 3, 4층의 공포는 모두 기둥 위에만 있으나 다포식 구성에 속하며, 5층은 기둥머리와 창방 위에 평방을 돌린 완전한 다포식이다.

 

내부 가구는 다층구조의 일반적 기법을 따라 5층 건물 전체를 통과하는 심주가 중앙에 있으며 네 모서리 안쪽에 귀고주[隅高柱]를 세웠다. 2층의 우주는 1층 우주와 귀고주를 연결한 퇴보[退樑] 위에 세워졌다. 3층 역시 2층과 같은 형식으로 기둥을 세웠으며 4층은 귀고주가 바로 4층의 우주로 되어 있다. 이 귀고주는 심주와 대들보[大樑]로 연결되며 5층 우주는 이 대들보 위에 세워졌다. 심주는 기단 윗면의 심초 위에서 5층 옥개 밑 중도리까지 이른다. 이 건물에는 심주의 4면에 각 2폭씩 8폭의 팔상도가 있고 그 앞으로 4면에 열반상을 포함한 삼존불상을 각각 배치했으며 이어서 3열로 천불상을 봉안했다.

 

이 건물은 1968년 해체·조사된 바로는 각 층마다 구조가 다르고, 재목의 사용이나 공포구성법·체감률 등 건축법식면에서도 무질서하고 혼란해 부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5층목탑으로서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즉 17세기에 건축된 목탑이지만 부분적으로 고대 목탑을 복원하는데 고찰할 수 있는 자료이며, 건축법에 있어서도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화롭게 통일시킨 건축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 국보 제55호 팔상전 [14:06]


법주사 쌍사자석등

 

국보 제5호. 높이 330cm. 이 석등은 일반형 석등의 간석 부분을 8각기둥 대신 쌍사자로 변화를 준 이형석등이며, 쌍사자석등의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지면에 놓인 넓은 8각 지대석의 옆면에는 상하에 테를 두르고 우주를 새겼으며, 윗면 중앙에는 2단의 괴임을 두어 하대석을 받치고 있다. 하대석과 간석을 대신한 쌍사자와 상대석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하대석 역시 8각이며 옆면에는 단판의 내림연꽃이 8개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 사자 2마리가 뒷발을 하대석에 버티고 마주 서서 앞발로 상대석을 떠 받치고 있는데 머리와 갈기와 다리 근육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었다.

 

상대석에도 단판의 올림연꽃이 상하로 조각되었으며 연판 안에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상대석 위에 얹힌 8각의 화사석에는 4면에 장방형 화창이 있고 화창 주위에 작은 구멍이 남아 있다. 8각의 개석은 처마 밑이 수평이며 추녀 끝에 약간의 반전이 있고 내림연꽃이 조각된 정상부에는 보주만 남아 있다. 8각을 기본으로 하면서 간석에 변화를 준 이 석등은 구성이 간결하고 전체 비례가 적당하여 통일신라시대 석등의 걸작으로 꼽히며 8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국보 제5호 쌍사자석등 [14:07]

 

▲ 보물 제915호 대웅보전 [14:09]

 

▲ 대웅보전 앞에서 외손자들 [14:10]

 

▲ 세조길 입구에서 [14:18]

 

▲ 말을 타고 순찰 중인 속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 [14:31]

 

▲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 [14:32]

 

▲ 차를 세워둔 주차장에 귀환 [1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