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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국내 旅行

2010.11.19. [국내旅行 66] 충북 제천 배론성지

by 사천거사 2010. 11. 19.

제천 배론성지  

◈ 일시: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 장소: 천주교 배론성지 / 충북 제천

◈ 회원: 아내와 친구들



배론성지

 

조선 순조 1년(1801)에 있었던 천주교 박해 때부터 지금까지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 천주교의 성지이다. ‘배론’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지형이 마치 배 밑바닥과 같은 모양이라해서 붙여진 것이다. 유적으로는 조선 후기 천주교도 황사영이 머무르며 ‘백서’를 썼던 토굴과 성 요셉 신학교,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다. 

1801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이 토굴에서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교에게 보낼 글을 썼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성 요셉 신학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신학교로 성직자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조선 천주교사상 두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 신부는 천주교의 교리 번역 등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 배론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의 성립과정에 있어 중요한 성지이다.


순교자 황사영

 

황사영은 처삼촌 정약종이 들려준 천주학에 매료되어 1790년에 이승훈에게서 천주교 서적을 얻어 보았고 천주교 신앙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한 후 알렉시오(Alexius) 라는 세례명으로 영세 입교한다. 주문모 신부가 입국한 직후인 1795년 최인길의 집에서 주 신부를 만나고부터는 벼슬길을 버리고 전교사업에 힘을 기울인다. 1798년 서울로 이주하여 살면서 신자 청소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한문으로 된 교회서적을 번역하는 등 활동적인 교회 지도자로 부상한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박해를 피해 배론으로 피신하여 황심, 김한빈, 송재기로부터 박해의 진행사항을 들었고 교회의 재건방안을 생각하거나 글 쓰는 일로 소일한다. 그 해 8월 23일 황심으로부터 박해의 소식과 주문모 신부의 순교사실을 듣고는 박해의 경과와 교회 재건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비단에 적어 북경주교에게 전달하려고 백서를 쓰기 시작한다. 

황심이 9월15일 체포되고, 황사영은 9월 29일 체포되었으며 백서는 압수된다. 황사영과 관련자들이 순교한 후 백서 사건은 종료되지만 박해로 인해 많은 순교자가 생겨난다. 하지만 한번 전파된 천주교 신앙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어 빠르고 더 넓게 온 나라 구석구석으로 전파되어 갔다.


최양업 신부

 

초기의 두 조선인 신부인 김대건과 그는 ‘피의 증거자(순교)’와 ‘땀의 증거자(순직)’로 지칭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2년에 걸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전교활동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활동과 업적은 그동안 김대건의 순교에 가려 크게 조명되지 못하다가 최근에 이르러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그는 한국천주교회사연구에 중요한 자료가치가 있는 19통의 라틴어 편지를 남기고 있다. 

 

또한, 자기 부모의 순교사적을 비롯하여 순교에 관한 증언과 자료들을 수집하였는데, 다블뤼(Daveluy, M. N. A) 보좌주교는 이 자료들을 자신의 비망록에 수록하였고, 교회사가 달레(Dallet, C. C)는 《한국천주교회사》에 수록하였다. 그리고 그는 1864년 목판본으로 《성교요리문답》을 간행하였고, 〈천주성교공과〉 기도서를 번역, 간행하였으며, 사향가, 사심판가, 공심판가 등의 천주가사(天主歌辭)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의 라틴어 편지에는 당시 조선사회에 대한 그의 입장과 아울러 천주교의 전파가 효율적으로 이룩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선교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이는 정확한 판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양반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 제도는 악의 근원으로 교회에서는 분열을 초래하고 국가로 볼 때는 인재등용을 제한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선에 파견되는 선교사들은 파견되기 전에 조선의 실정과 풍습을 익힐 것을 주장하였고, 조선에서의 자유로운 선교를 위해서는 종교의 자유가 획득되어야 하며 이를 위하여 프랑스 정부가 조선 정부에 대하여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펴도록 촉구하고 있다.


▲ 배론성지 성모동산

 

▲ 최초 신학교 배론 학당

 

▲ 배론성지 신학당터

 

▲ 배론성지에서

 

▲ 배론성지에서

 

▲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 상

 

▲ 최양업 신부 묘소 가는 길

 

▲ 배론성지 배론본당

 

▲ 배론성지 성요셉성당 입구

 

▲ 배론성지 배론본당

 

▲ 배론성지 피정의 집인 순교자들의 집

 

▲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

 

▲ 배론성지 소성당

 

▲ 배론성지 잔디밭에서

 

▲ 배론성지 묵주의 기도 길

 

▲ 배론성지 순례자들의 집

 

▲ 따끈한 차 한 잔씩

 

▲ 따끈한 차 한 잔씩

 

▲ 따끈한 차 한 잔씩

 

▲ 배론성지를 떠나면서

 

▲ 배론성지를 떠나면서

 

▲ 곤드레밥을 먹은 음식점 '또랑길'

 

▲ 곤드레밥집 또랑길 안에서

 

▲ 곤드레밥집 또랑길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