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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트레킹/중국 삼청산·황산

2010.09.26. [중국 삼청산/황산 트레킹 4] 황산→인천국제공항

by 사천거사 2010. 9. 26.

중국 삼청산-黃山 트레킹(4)

◈ 일시: 2010년 9월 26일 일요일 

◈ 코스: 황산 → 항주 서호 → 상해 포동공항 → 인천국제공항 → 청주  

◈ 회원: 청주 산사랑산악회 안내 트레킹


 

 

 

 


05:00   오늘은 항주에서 서호를 구경하고 상해공항을 통해 우리나라로 돌아가는 날인데 가이드가 6시에는 버스를 타고 떠나야 한다고 서두른다. 비행기 탑승 시간에 늦을까봐 그러는 모양인데 글쎄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짐을 꾸려 밖으로 나와보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트레킹이 끝났으니 이젠 비가 오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다. 휴게소를 한 곳 들른 다음 버스는 계속 고속도로를 달린다. 오늘이 일요일인데 역시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언젠가는 이 도로에 차들이 가득 찰 날이 오겠지.


▲ 3일 동안 숙박을 한 일보국제호텔 [05:36]

 

▲ 휴게소에서는 국영회사인 '중국석화'만 운영한다 [07:34]

 

▲ 비가 내리는 휴게소의 모습 [07:35]


09:40   항주의 서호에 도착했다. 차를 세울 곳이 없어 그냥 도로변에서 내렸다. 서호가 있는 항주는 마르코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극찬한 곳이다. 중국인들은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有天堂下有蘇杭)'라는 말로 항주를 묘사한다. 서호는 항주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유람선을 타러 가는 길에 사람들이 꽉 들어차 이동이 어려울 정도다. 많은 관광지를 다녀 보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은 처음 본다. 어제 황산에서처럼 휴일을 맞아 그룹별로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있는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서호가 유명하기는 유명한 모양이다. 이렇게 내국인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항주

 

항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절강성의 성도(城都)로, 7대 고도의 하나로서 중국이 자랑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로 자원이 풍부하고 경치가 수려하다. 13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항주에 들렸다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전해진다. 항주는 아열대 기후에 속하여 사계절이 분명하다. 6개의 구와 2개의 현으로 나뉘며, 총면적은 683㎢이고, 인구는 170만 명에 이른다.

2,100년 전의 항주는 중국의 여섯 개의 역사적인 수도 중 한 곳이었다. 항주와 북경간에 대운하가 건설되었을 때, 도시는 점차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했으며, 9세기부터 237여년 동안 14명의 황제가 항주를 수도로 선택했다. 항주는 연평균 기온이 16℃ 정도로 온난 습윤하며,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계절마다 특색이 있어 어느 계절에 여행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멋이 있다.

항주의 첫 느낌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거리가 깨끗하다는 것이다. 항주에서 하루밖에 시간이 없는 사람은 유람선을 타고 서호와 그 둘레에 있는 명소들을 둘러본 후 육화탑과 영은사를 둘러보면 된다. 또 해질무렵에 서호 주변에 찻방에 앉아 용정차를 마시면서 다과를 즐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 차도에서 본 서호 [09:40]

 

▲ 도로에 꽉 찬 관광객들 [09:44]

 

▲ 세상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은 처음 보네 [09:46]

 

▲ 화장실 앞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고 [09:50]

 

▲ 유람선을 타러 선착장으로 [09:59]

 

▲ 유람선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10:02]

 

▲ 유람선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10:14]


10:20   2층으로 된 유람선에 승선했다. 유람선의 종류도 가지각색이라서 서너 사람이 타는 것에서부터 2층으로 된 것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항주가 잘 사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특히 서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부자들이 많아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단다. 중국은 사실 토지가 국가 소유라는 것을 빼고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나라다. 주식 시장이 개방되어 있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25분 정도의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버스에 탑승 항주시로 돌아왔다.


서호

 

서호(西湖)는 중국 저장성 항주시 시가구역 서쪽에 면한 호수로 중국국가단위풍경구명승구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담수호이다. 서호는 3개의 제방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각각 소제(苏堤), 백제(白堤), 양공제(杨公堤)로 나뉘어져 있다. 중국에 서호(西湖)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가 800개가 될 정도로 아주 많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항저우의 서호이다. 2,000년 전에는 첸탕강(钱塘江)의 일부였다가, 진흙모래가 쌓여서 남과 북쪽에 있는 오산(吴山)과 보석산(寶石山)을 막아서 형성된 호수이다.

 

당나라 중반 덕종 정원(唐貞元,785-804) 연간에 백거이(白居易)가 항주로 임명되어 무너진 제방이 농사를 망치는 것을 보고 제방공사를 다시 하였다. 백거이는 더 길고, 튼튼한 둑을 쌓게 했는데, 이로 인해 수원이 풍부해지면서 가뭄을 해갈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백제(白堤)다. 그는 둑 옆에 수양버들을 심고는 매일 산책하고, 공사를 감독하였다.

 2백년 후 송나라 초기 철종 원우(1086-1094) 때 유명한 소식(蘇軾, 소동파)이 항주에 임명되어 왔다. 이 때 다시 농민들은 가뭄으로 고생을 하게 되었는데, 웃자란 수초들 때문에 물대기가 힘들게 되었던 것이다. 소동파는 호수 바닥에 침전된 진흙을 모두 파내게 했는데, 이것이 기존의 백제보다 세 배는 더 길고, 넓었다. 이게 나중에 소동파의 성을 따서 소제(蘇堤)가 되었다.


뇌봉탑

 

뇌봉탑은 오월의 국왕 전숙(吴越国王钱俶)이 皇妃인 黃씨가 왕자를 낳은 것을 경축하기 위하여  서기 977년에 건축한 皇妃塔이다. 黃妃塔 또는 서관전탑(西关砖塔)으로도 불리며, 나중에 탑이 산 정상에 있다고 하여 "雷峰塔"으로 불리워 졌는데, 석양이 질 때 탑의 그림자가 금빛 찬란하다고 하여 "雷峰夕照"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현재의 탑은 1924년 무너진 탑을 2002년 그 자리에 재건한 것으로 1~2층 중앙에 옛날 탑의 유적들을 그대로 두어 관람객들이 볼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관광객들은 동전이나 지폐를 던져 넣고 있다. 탑의 높이는 71.96m이며 입구쪽에는 "雷峰塔"현판이, 호수쪽에는 "皇妃塔"현판이 걸려 있다. 뇌봉탑에서 산쪽인  봉황산 기슭에는 황금색을 띈 사찰(淨慈寺)이 호수를 내려다 보고 있으며, 호수 쪽으로는 유람선 선착장, 기와집들과 섬들이 눈 안에 들어온다.


▲ 유람선이 떠 있는 서호 [10:21]

 

▲ 서호를 운행하는 유람선 [10:22]

 

▲ 유람선의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10:25]

 

▲ 완전 신선놀음이다 [10:28]

 

▲ 서호에 있는 섬 [10:31]

 

▲ 전망대로 이용되는 뇌봉탑 [10:38]

 

▲ 누구의 조각상인지 중국인들이 많이 사진을 찍고 있다 [10:51]

 

▲ 많이 한가해진 거리 [10:55]


11:13   항주에 있는 한국음식점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그런대로 먹을 만 한데 김치 맛은 어제 황산에서 먹은 것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점심 후 출발, 버스는 간간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휴게소에 한 번 들른 후 상해 포동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3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이상이나 일찍 도착을 했다. 4일 동안 신경을 써준 이국성 가이드와 작별을 하고 출국수속을 밟은 다음 게이트 대합실로 들어갔다.

 

보딩 시간이 많이 남아 그냥 비가 내리는 포동공항 활주로만 내려다보다 5시 30분에 보딩을 하고 6시 50분에 비행기가 이륙을 했다. 올 때처럼 비행기는 만석이다. 우리나라 시간에 맞게 시계를 돌려 놓으니 올 때와는 달린 2시간 40분 정도 걸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을 했다. 입국수속을 한 다음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탄 시간이 10시, 부리나케 달려 청주에 도착하니 12시다. 그 시간은 바로 삼청산/황산 트레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상해

 

상해는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1842년 남경조약으로 개항된 이후 국내 외의 새로운 문물을 흡수해 온 국제적인 상업도시이다.

영국에 의해 중국 최초로 개방될 당시 서양에 개방된 첫 항구도시로 오랜기간의 외국 조계지로 화려한 모습 속에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해는 1945년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로 재탄생한 이후부터 등소평에 의한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되기 전까지는 중국의 여느 도시와 같이 별다른 발전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개방이후 90년대 중앙정부가 이곳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면서 동양의 또다른 홍콩을 꿈꾸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세계적인 경제중심 도시가 되었다.

중국에 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는 도시이다. 상해의 고층빌딩들은 다양한 디자인의 건축물을 장려하는 시정책에 의해 기발한 디자인으로 상해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으며 과거 조계지로서의 흔적이 남아있는 외탄과 황푸강 바로 건너편 들쑥날쑥 솟은 현대적 고층빌딩은 상해의 과거와 현재를 강 하나사이로 이어주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6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상해의 총면적은 6,184㎢이며, 12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 640만 명은 도시의 외곽 지역에서 살고 있다. 역사 속에서 중국의 어떤 도시보다 서양의 문물을 빨리, 쉽게 받아 들인 곳이기에 중국의 다른 도시와는 색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로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 점심을 먹은 항주의 한국음식점 한라원 [11:13]

  

▲ 전설이 깃들어 있는 육화탑 [11:42]

  

▲ 고속도로 휴게소 [14:13]

  

▲ 상해 포동공항 [15:31]

 

▲ 비가 내리고 있는 상해 포동공항 [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