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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미국 Chico University

1989.08.14. [미국어학연수 11] Washington

by 사천거사 2000. 1. 1.

1989.08.14.

 

Washington  


워싱턴(Washington, D.C.)

 

 

정식명칭은 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 미국의 수도. 1790년 국회의 동의를 얻어 지정되었고, 새로운 국가의 영구 행정부 소재지로 선정된 컬럼비아 특별구와 동일한 지역을 차지한다. 메릴랜드 주(북동쪽)와 버지니아 주(남서쪽)를 경계 짓는 포토맥 강의 항해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워싱턴만큼 명백하게 국가 행정부의 소재지로서, 그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대외적 활동의 중심지로서 설립된 수도는 드물다. 자유의 이념을 시민들에게 고취시키려는 취지와, 자유의 이상을 표현한다는 기본방침으로 원대하게 설계되었다. 컬럼비아 특별구로서의 워싱턴은 연방정부기관들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이지만, 동시에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하나의 시이기도 하다. 이처럼 시 자체와 행정적인 의미가 강한 컬럼비아 특별구로서의 2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어 불안정한 이중성을 보인다. 실제로 시는 갖가지 아름다움과 여러 가지의 추한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워싱턴 시와 워싱턴 대도시권 사이에도 불균형이 존재한다. 대도시권에 사는 26세 이상의 인구 가운데 대학졸업자는 전체인구의 1/4 이상으로 전국의 10대 대도시권 가운데 비율이 가장 높다. 연간 1인당 소득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시 안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정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저소득층·장애자·노인 등이 매우 많다. 이러한 불균형한 요소들 때문에, 수도나 대도시권과 구분되는 워싱턴 시 자체는 대도시가 갖추어야 될 사회적 안정성과 지속성이 결여되어 있다.

 

더구나 행정중심지라는 특성 때문에, 시의 사회적 문제와 환경보다는 이 지역과 무관한 국회의 관심사 쪽에 더 큰 비중이 주어짐으로써 자연히 시의 사회적·환경적 조건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웅장한 경관과 기념물, 정부기관들 이면에는 심각한 물리적·정신적 황폐함이 펼쳐져 있어 놀라운 대조를 이룬다. 결국 시는 원래의 설립 목적과는 달리 불안정하고 병든 모습으로 남아 있다. 면적:시 179㎢, 대도시권 7,275㎢, 인구 : 시 572,059(2000), 대도시권 4,923,153(2000).


▲ Washington 시내 건물

 

▲ Washington 시내 건물

 

▲ Washington 시내 건물

 

▲ Washington 시내 관광 마차

 

▲ Washington 시내에서 난 교통사고


백악관(White House, 白堊館)

 

워싱턴 D. C.의 펜실베이니아가(街) 1600번지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의 관저. 백악관을 포함한 주위 부지는 모두 7만 2,000㎡에 달한다. 백악관은 존 애덤스 대통령 이후의 모든 미국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수도에서 가장 오래된 연방 건물이다. 1791년 새로이 수도로 지정된 워싱턴에 가장 적합한 대통령 관저를 설계하기 위한 공개 경쟁이 있었다. 토머스 제퍼슨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초안을 제출했지만 아일랜드 출신의 미국인 건축가 제임스 호번이 필라델피아 스타일의 조지 양식의 건물 초안으로 500달러의 상금을 받고 설계권을 얻어냈다.

 

호번은 엷은 회색 사암(砂岩)으로 100개 이상의 방들을 갖춘 3층의 구조물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1792년 10월 13일 건물의 초석이 세워지고, 존 애덤스 대통령과 그의 부인 애비게일이 1800년 새로 건설된 건물의 최초의 입주자가 되었다. 1809년 이전부터 대통령 관저를 '백악관'이라 불렀는데 이는 회백색 사암 건물이 주위의 빨간 벽돌 건물과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었다.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White House'(백악관)를 건물의 공식명으로 정했다.

 

백악관은 1814년 영국군의 침입 당시 불태워졌다가 호번의 지휘 아래 확장·보수되어 1817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재입주했다. 호번은 1820년대에 백악관 복원공사를 하면서 중심 건물의 측면에 동·서로 테라스를 증축했으며 남쪽으로는 반원의 포티코(기둥으로 받쳐진 기둥이 있는 현관)를, 북쪽으로는 콜로네이드 포티코를 건축했다. 내부장식과 현대적 편의시설들을 설치한 것을 제외하면 19세기에는 미비한 개조만이 이루어졌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집권기에는 건물 2층에 있던 대통령 집무실이 그의 가족들의 숙소로 전환되었고 대통령과 늘어나는 수행원들에게 더 넓은 사무실을 제공하기 위해 서측 건물이 증축되었다. 또한 1942년 동측 건물이 완성되어 더 많은 사무실이 제공되었다. 동측 건물과 서측 건물은 동·서로 난 테라스에 의해 중심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1948년 해리 트루먼의 집권기에 중심 건물의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시작되어 4년간 건물 외벽을 제외한 내부장식 전체가 다시 이루어졌다. 백악관의 마지막 개조는 1960년대에 재클린 케네디가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고가품들로 여러 방들을 장식하면서 이루어졌다.

 

백악관에는 모두 130개 이상의 방들이 있다. 중심 건물에는 대통령 가족의 숙소와 18~19세기 양식으로 장식된 여러 접대실들이 있는데, 중심 건물의 일부는 여행객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북쪽 포티코는 중심 건물로 향하는 공식적인 입구이고 남쪽 포티코는 대통령의 가족들만이 사용하는 입구이다. 서쪽 테라스에는 수영장과 체육관이 있으며, 동쪽 테라스에는 극장이 들어서 있다. 서측 건물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각료실, 그리고 기자실이 있으며 동측 건물에는 그외의 여러 사무실들이 있다. 오랫동안 백악관은 미국의 주요한 명승지가 되어왔으며, 대중에게 공개된 지역에는 매년 15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백악관 건물은 내셔널 캐피털 공원의 일부이며 1988년 박물관으로 승인되었다.


▲ Washington: 백악관 담장

 

▲ Washington 시내 건물

 

▲ Washington 백악관 앞에서 수년 째 반전 일인 시위를 하는 모습


국회의사당

 

워싱턴 D. C.에 있는 미국 의회의 회의장이며,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명소 가운데 하나. 북서쪽에 있는 콘스티튜션가와 남동쪽에 있는 인디펜던스가가 펜실베이니아가와 교차하는 지점인 캐피털힐에 있다. 이 건물의 서쪽에 몰이 있고 건물의 동쪽에 대법원 청사와 국회도서관이 있다. 의회(상원·하원) 부속의 많은 사무실 건물이 국회의사당의 남쪽과 북쪽에 인접해 있다. 또 1935년 대법원 청사를 따로 마련해 완성하기 전까지는 대법원의 회의장으로도 사용되었다. 1792년 국회의사당 설계도 공모전에서 서인도제도 출신 의사인 윌리엄 손턴의 작품이 당선되었다.

 

그는 한때 필라델피아 시에 살았으며, 건축과 관련된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1793년 9월 18일 조지 워싱턴이 초석(礎石)을 놓았다. 손턴이 건축공학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공모전에서 차점자였던 스티븐 헬럿이 공사를 감독했다. 그러나 헬럿이 손턴의 설계를 지나치게 많이 수정하려 했기 때문에 백악관을 설계했던 건축가인 제임스 호번이 새로운 감독관이 되었다. 북쪽 날개 부분이 가장 먼저 완공되었고, 1800년 11월 국회가 이곳에서 소집되었다.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벤저민 러트로브를 공공건물 감독관으로 임명했다. 국회의사당을 완공하는 것도 러트로브의 임무가 되었다. 그는 손턴의 생각에 따라 외부공사를 진행했지만, 내부공사는 그 자신의 설계대로 했다. 러트로브가 도입한 건축상의 특징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담배잎 무늬와 옥수수속대 무늬의 주두(柱頭)일 것이다. 남쪽 날개 부분은 1807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1814년에 영국인들에 의해 이 국회의사당은 불타버렸다. 전쟁이 끝난 뒤 러트로브는 의사당 건물을 재건하려 했으나 1817년 그의 직책에서 물러났다. 그의 후임자는 보스턴 출신의 뛰어난 건축가인 찰스 불핀치였다. 그는 다시 손턴의 처음 설계에 따라 1827년 두 날개 부분들을 연결하고 첫번째 둥근 지붕을 완성했다.

 

1850년 국회가 공모한 날개 부분 확장설계의 당선자는 필라델피아 출신 건축가인 토머스 우스틱 월터로 결정되었다. 하원 건물 증축공사는 1857년 완결되었고, 상원 건물 증축공사는 2년 뒤인 1859년 완성되었다. 월터는 주철로 된 87m의 둥근 지붕도 설계했다. 그는 미켈란젤로가 만든 로마의 산피에트로 대성당에 있는 둥근 지붕을 기초로 해서 설계했다. 링컨 대통령은 국가적 일체성의 상징으로서 남북전쟁중에도 지붕 공사를 계속하도록 주장했다.

 

1863년 12월 2일 토머스 크로퍼드가 만든 6m 높이의 동상인 〈자유 Freedom〉를 둥근 지붕 꼭대기에 설치했다. 둥근 지붕의 천장에는 미국 최초의 프레스코인 〈워싱턴 찬양 Apotheosis of Washington〉이 있다. 1865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콘스탄티노 브루미디가 만든 우의적(寓意的) 작품으로,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의 영웅들이 신과 여신들 사이에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중앙난방 시설, 전기, 엘리베이터 등 현대적인 장치들 외에는 특별히 건축학적인 개조나 증축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59~60년에 국회의사당의 건축자인 J. 조지 스튜어트의 감독에 따라 동쪽 건물의 앞부분이 10m 확장되었다. 국회의사당 건물에는 540개의 방이 있으며, 건물은 53㏊ 넓이의 공원 가운데 서 있다.


▲ Washington 국회의사당 건물

 

▲ Washington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서

 

▲ Washington 국회의사당 건물 내부

 

▲ Washington 국회의사당 건물 천정

 

▲ Washington 국회의사당 건물 안에서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1864년에 영국인 제임스 스미손(James Smithson)에 의해 건립된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16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동물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다.총 전시품목이 1억4천 만 개나 되고 6,000명의 직원을 가지고 있다. 박물관의 중심은 스미소니언 캐슬(Smithsonian Castle)이라 불리우는 박물관 관리소이다. 이곳에서 박물관 소개 팜플랫을 얻을 수 있고 각종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이곳은 또 제임스 스미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8곳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미술관 또는 국립 동물원에 오면 세계 최대의 종합 박물관 단지를 방문하는 것이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에는 미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1억 3천 6백 5십만 점의 유물과 표본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연구 센터로서 공교육과 국가 행정에 이바지하고, 미술, 과학, 및 역사 분야의 장학 사업에도 기여하고 있다. 스미소니언은 1846년 영국 과학자 제임스 스미손이 “지식의 추구 및 확산”을 위해 미국에 기증한 기금으로 설립되었다. 10곳의 스미소니언 박물관과 미술관은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과 미 국회 의사당 사이에 있는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 위치하고 있다. 기타 6군데 박물관과 동물원은 워싱턴 수도권 지역의 여러 곳에 있으며, 쿠퍼 휴잇 국립 디자인 박물관(Cooper Hewitt, National Design Museum)과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의 George Gustav Heye Center는 뉴욕시에 있다.


▲ 스미소니언 항공 박물관

 

▲ 스미소니언 항공 박물관

 

▲ 스미소니언 항공 박물관

 

▲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 스미소니언 항공 박물관

 

▲ 스미소니언 항공 박물관

 

▲ 스미소니언 항공 박물관

 

▲ 스미소니언 항공 박물관

 

▲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