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트레킹/중국 태항대협곡

2011.08.13. [태항태협곡 트레킹 1] 청주→휘현

by 사천거사 2011. 8. 13.

중국 태항대협곡 트레킹 1

◈ 일시: 2011년 8월 13일 토요일

◈ 코스: 청주 → 인천국제공항 → 정주  휘현

◈ 회원: 평산회원 11명


 

 

 

 


04:30   오늘은 평산회에서 회원 11명이 3박 4일의 일정으로 태항대협곡 트레킹을 떠나는 날이다.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4시 30분 발 첫 버스에 몸을 실었다. 요즘은 장마철이 아닌 데에도 계속 비가 내리는데, 오늘은 좀 뜸할까 했더니 웬걸 인천공항이 가까워지자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 날씨다.

 

서유럽을 다녀오면서 지난 9일에 들렀던 인천공항을 나흘 만에 다시 찾았다. 방학에 연휴가 겹쳐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산과 자연' 여행사 직원을 만나 출국수속을 밟은 다음 대합실로 들어갔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비행기기 이륙했다. 태항대협곡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개 북경을 거쳐 가거나 아니면 정주로 직접 간다. 우리는 정주행이다. 그나마 정주는 인천에서 가까워서 2시간 30분 정도면 간다. 중국은 면적이 아주 넓은 곳이지만 전 지역이 우리나라와 한 시간의 시차가 있다.


▲ 인천공항 대합실에서 홍세영, 박운용 회원 [07:33]

 

▲ 비가 내리고 있는 인천공항 [07:35]

 

▲ 대합실에서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회원들 [08:06]


09:50   정주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입국수속을 마친 다음 3박 4일 동안 우리를 안내해 줄 가이드를 만났다. 30대 초반의 조선족 가이드 이성룡 씨는 아주 쾌활한 사람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사는 멋진 남자였다. 이번 태항대협곡 트레킹에 참가한 사람은 우리 회원 11명을 포함해서 모두 24명이었다. 3박 4일 동안 이용할 버스를 타고 공항을 출발, 정주 시내로 들어갔다.

 

정주가 성도인 하남성은 인구가 1억이 넘으며 정주 시도 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시내로 들어서자 최근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눈데 띈다. 또 아파트 공사를 하는 곳도 많았다. 무한한 잠재력으로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현장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문제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그와 같은 경제적 발전에 정신적 또는 의식적 발전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교통의 무질서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주(정저우)

 

1954년 이래 허난 성의 성도이며, 지구급(地區級) 시이다. 대평원으로 진입하면서 넓어지는 황허 강[黃河] 남쪽 유역, 슝얼 산맥[熊耳山脈] 동쪽 끝에 있다. 이 도시는 남북으로 타이항 산맥[太行山脈]과 허난 성 서부 산맥의 가장자리를 따라 난 길과, 동서로 황허 강 서안을 따라 놓인 길이 교차하는 곳에 있다. 1950년대 이후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들은 이 지역이 신석기인들의 주거지였으며, BC 1,500년경부터 번성하기 시작한 은(殷)나라의 청동기문화가 성곽도시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1903년 베이징[北京]과 한커우[漢口] 철도가 이곳을 지나게 되었고, 1909년에는 룽하이[隴海]철도의 첫번째 역이 놓여져 동쪽으로는 카이펑, 서쪽으로는 뤄양과 연결되었다. 이 철도는 나중에 동으로는 해안지대인 장쑤 성[江蘇省] 롄윈강[連運港], 서로는 산시 성[山西省] 서부와 산시 성[陝西省] 시안[西安]까지 연장되었다. 이에 따라 정저우는 주요 철로 교차지가 되었으며, 부근에서 생산되는 면화·곡물·땅콩과 기타 농산물의 집산지가 되었다. 

1949년 공산당이 중국의 패권을 차지했을 때 정저우는 상업과 행정의 중심지였으나 산업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였다. 이 도시는 인구가 조밀한 목화 재배지역의 중심지였으므로 곧 산업도시로 발전했다. 주로 북동풍이 부는 지역이기 때문에 매연이 바람과 함께 날아가도록 하기 위해 공장은 서쪽에 집중적으로 세워졌다. 현재 정저우에는 면방직·방적·직물기계·제분 공장과 담배 및 궐련 공장들, 그밖에 여러 종류의 식품가공공장이 있으며 석탄도 부근에서 채굴된다. 기관차와 철도차량을 수리하는 공장과 트랙터 조립공장, 화력발전소도 있다. 공업 발전으로 인구도 크게 증가했는데, 유입인구의 대부분은 북방에서 이주해온 노동자들이었다. 예전에는 짙은 돌개바람이 자주 불어와 모래를 날리게 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60㎢가 넘는 시 전역에 나무들을 심어놓았다. 1972년 배수로 시설과 양수장이 세워져 주변 농촌의 관개를 돕고 있다. 농과대학도 있다.

 


▲ 중국 정주 공항에 도착 [09:57]

 

▲ 입국수속을 하러 나가는 중 [09:58]

 

▲ 입국수속을 마치고 가이드와 미팅 중 [10:33]

 

▲ 3박 4일 동안 이용할 버스 [10:42]

 

▲ 3박 4일 동안 우리를 안내해준 이성룡 가이드 [10:46]

 

▲ 정주 시내 거리 모습 [11:18]

 

▲ 하남성의 성도 정주 시의 고층아파트 [11:33]

 

▲ 정주 시내 거리 모습 [11:40]

 

▲ 수리 보수 중인 14층 쌍탑 [11:44]


12:08   점심을 먹으러 정주 시내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원형 테이블에 둘러 앉아 차려나오는 음식을 먹는데 모두 우리 입맛에 잘 맞았다. 예전에는 중국 음식이 향이 강하고 또 기름기가 많아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여행을 오면 곤욕을 치루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면 음식 맛이 많이 변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다음 박물관 구경에 나섰다.


▲ 점심을 먹은 식당 [12:08]

 

▲ 점심을 먹기 위해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회원들 [12:12]

 

▲ 점심 먹은 곳 앞 도로의 포도판매상 [12:50]

 

▲ 정주 시내 거리 풍경 [12:53]


13:05   중국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하남성 박물관을 보러 갔다. 그런데 박물관에 입장하려면 여권이 필요하단다. 아마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관람료를 할인해주는가 보다. 이성룡 가이드의 유창한 설명을 들으며 유물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설명 내용으로 보아 가이드로서의 실력이 우수하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3시에 출발,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3시 40분에 황하 강을 지났고, 그 이후로는 좌우로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모든 것을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직접 한다니 정말 대단한 나라다.


하남성 박물관

 

하남성 박물관은 농업로(農業路)에 위치하고 있는 현대적 역사 예술 박물관이다. 1998년 5월1일 정식 개관하였으며 10만 평방미터의 대지에 건축면적만 7.8만 평방미터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외관은 피라미드 형태로 주전람실이 박물관 중앙에, 문물창고가 박물관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건축물은 견고하면서도 단순하고 소박한 조형물로 건물 자체만으로도 독특한 예술풍격을 자랑한다. 박물관 내에는 기본 진열관과 전문테마 진열관, 임시전람관 등으로 나눠져 있다. 현재 10만여 개의 문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1급, 2급 문물이 5,000여 개를 차지하고 있다. 기원전에서 부터 상(商)나라, 주(周)나라 때의 청동기, 역대 도자기, 옥기 등이 주요 전시물을 차지하고 있으며, 하남성에서 발굴된 공룡알 화석도 볼 수 있다.


당삼채(唐三彩)

 

중국 당나라 전기(7세기말~8세기초)에 만들어진, 백색 바탕에 초록, 갈색, 남색 등의 유약으로 여러 무늬를 묘사한 도기. 주로 장안(長安), 낙양(洛陽) 귀족들의 장례용으로 만들어 부장(副葬)하였다. 도질(陶質)의 소지(素地)에 화장을 하고 녹·갈·황·백의 연유(鉛釉)로 화려하게 칠하였으며, 코발트의 남유(藍釉)를 칠한 것도 있다. 기형으로는 용머리 항아리(龍頭臺), 접시(盤), 바리 등과 여러 가지 모습의 남녀 인물 상, 신상, 진묘수(鎭墓獸), 말, 낙타 등 각종의 명기(名器)가 있다. 당대 귀족의 취미, 생활 양상을 잘 보여 주며, 당시 유행했던 서아시아 양식의 의장과 복식 등을 엿볼 수 있다. 측천무후(則天武后, 690~705 재위) 땐 후장(厚葬) 풍습으로 삼채가 유행했고 그 영향으로 발해삼채(渤海三彩), 요삼채(遼三彩), 송삼채(宋三彩), 나라삼채(奈良三彩) 등이 생겼으며, 페르시아의 삼채에도 그 영향이 미쳤다.


청명상하도

 

청명상하도는 중국 국보 1호급(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처럼 국보에 호수를 매기지 않는다)으로 약 천년 전 북송시대의 그림이다. 실물의 크기는 폭 25.5cm, 가로 5m 25cm로 현재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 전체에는 700여 명의 사람들과 100여 채의 집, 34개의 점포, 48개의 마차, 배, 가마, 84마리의 가축, 190그루의 나무, 100여 자의 낙관 글자와 6개의 도장 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림에는 사, 농, 상, 의, 승, 도인이나 관리, 여성, 뱃사공 등의 인물 외에도 나귀, 말, 소, 낙타 등의 가축이 있다. 또 시작을 보거나, 술을 마시며 놀고, 모여서 이야기하는가 하면, 배를 밀고, 마차를 끌며, 가마와 말을 타는 등의 장면이 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거리에 상점이 있고, 강과 부두와 연못이 있으며, 곳곳에 배가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관아와 민가가 있는데 마치 서민 문학작품처럼 내용이 풍부하다. 이 그림은 그 시대 사회상을 예술적으로 포괄, 집약한 회화작품이다.


▲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하남성 박물관 [13:05]

 

▲ 박물관 바깥을 잘 꾸며놓았다 [13:09]

 

▲ 중원 고대 문명관 표지석 [13:14]

 

▲ 박물관 진열품 [13:57]

 

▲ 당삼채 항아리 [14:17]

 

▲ 장택단의 '청명상하도'를 모형으로 제작 [14:23]

 

▲ 중앙 로비에 있는 코끼리와 사람의 조형물 [14:40]

 

▲ 황하에 놓여 있는 다리를 지나는 중 [15:45]


17:00   오늘 묵을 호텔은 하남성 휘현시에 있는 中州商務酒店(Central City Hotel)이었다. 체크 인을 하고 룸에 들어가보니 시설은 괜찮은 편이었다. 유럽 호텔에는 없는 치약, 칫솔, 비누, 빗, 커피 포트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호텔이 본초강목을 지은 이시진의 조각상이 서 있는 로터리 옆에 있어서 룸에서 로터리가 잘 내려다보였는데, 얼마 동안 지켜본 결과 역시 교통질서는 엉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사고가 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유연하게 흘러가는 교통의 흐름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로 로비로 나왔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안개 때문에 하늘은 잿빛이다. 이곳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날씨란다.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멋진 풍광을 봐야 하는데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저녁식사도 점심 때와 비슷한 음식들이 나왔다. 입맛에 크게 어긋나는 메뉴는 없어 잘 먹을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호텔 옆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러 내일 회원들이 먹을 사과와 오이를 구입했다.


본초강목

 

명대(明代) 이시진(李時珍:1518~93)이 지었으며 모두 52권이다. 〈신농본초경 神農本草經〉 등의 중국 역대 약학서에서 내용을 취하여 편집했으며, 만력(萬曆) 6년(1578)에 완성했다. 모든 약에 대해 "정명(正名)으로 강(綱)을 나타내고 석명으로 목(目)을 붙였다"고 하여 '본초강목'이라 이름지었다. 모두 16부(部) 60종류로, 약 190만 자이며 약물(藥物)은 1,892종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374종은 이시진이 증보한 것이다. 각종 약물은 석명(釋名)에서 명칭을 확정하고, 집해(集解)에서 산지·형태·재배·채집방법 등을 기술했으며 변의(辨疑)·정오(正誤)에서 약물 품종의 진위를 가리고 문헌기재상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수치(修治)에서 약의 정제나 뜸 뜨는 방법을 설명했고, 기미(氣味)·주치(主治)·발명(發明)에서는 약물의 특성·맛·기능을 분석했으며, 부방(附方)에서는 고대의 의사나 민간에서 전해오는 치료법 1만여 종을 수집해놓았다. 또한 약물도(藥物圖) 1,100여 폭을 첨부했다. 16세기 이전 중국 약물학의 성과를 집대성했고, 광물학·화학·동식물학 방면에도 영향을 주었다. 만력 18년(1590)에 간행된 후 30여 차례나 중국에서 번각(飜刻)되었고, 1606년 일본에 전해졌다. 그후 라틴어·프랑스어·독일어·영어·러시아어 등으로 번역되어 전세계 약학자·식물학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 오늘 묵을 호텔 中州商務酒店 [17:00]

 

▲ 호텔 밖 로터리에 있는 이시진 像 [17:32]

 

▲ 호텔 룸에서 내려다본 시내 거리 [17:32]

 

▲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 옆 거리에 홍등이 매달려 있다 [18:18]

 

▲ 기암괴석이 있는 작은 연못 [18:19]

 

▲ 저녁을 먹은 식당 [18:20]


20:40   저녁식사 후 호텔에 들렀다가 김지홍 회원과 함께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 밖 로터리 주변 도로에는 소위 유럽풍의 노천 카페가 형성되어 가벼운 음식과 주류를 팔고 있었다. 서너 명이 둘러앉게 되어 있는 테이블에는 중국 사람들이 삼삼 오오 모여 앉아 가벼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맥주와 안주를 시켰다. 안주로는 방울토마토와 땅콩이 나왔고 얼음에 채웠던 시원한 맥주가 배달되었다.

 

런데 맥주 값이 너무 쌌다. 한 병에 3위안이니 500원 정도다. 유럽에서는 500cc 맥주 한 잔에 5유로(7,500원 정도)였는데 말이다. 김지홍 회원이 실컷 한 번 먹어보자고 하면서 병이 빌 때마다 주문을 한다. 그렇게 권커니 자커니 마시다 보니 주문한 맥주가 10병이 되었다. 술은 취하지 않는데 배가 불러서 못 먹겠네. 내일 트레킹도 있고 해서 그 정도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맥주 10병에 안주를 먹었는데도 만 원도 안 된다. 그래서 김지홍 회장이 팁을 10위안 주었더니 무척 고마워한다.


▲ 오늘 하룻밤을 묵은 호텔의 야경 [20:45]

 

▲ 우리 호텔 맞은편에 있는 호텔 야경 [20:46]

 

▲ 맥주를 들이키고 있는 김지홍 회원 [21:01]

 

▲ 나도 한 잔 마시고 [21:02]

 

▲ 늘어만 가는 맥주병들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