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여행기
◈ 일시: 1980년 8월 3일 일요일
◈ 장소: 서해안 일원
◈ 회원: 칠성중학교 직원들
수덕사
문헌에 나타난 백제 사찰로는 흥륜사(興輪寺), 왕흥사(王興寺), 칠악사(漆岳寺), 수덕사(修德寺), 사자사(師子寺), 미륵사(彌勒寺), 제석정사(帝釋精寺) 등 12개 사찰이 전하지만 수덕사만이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백제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할 수 있는 자료이다. 문헌에 수덕사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와 '속고승전(續高僧傳)'으로 백제의 고승 혜현(惠現)이 수덕사에서 주석하며 법화경(法華經)을 지송하고 삼론(三論)을 강(講)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수덕사의 사격(寺格)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554~597년(백제 위덕왕) - 지명법사가 수도 사비성 북부에 수덕사를 창건.
601년(백제 무왕 2) - 혜현법사가 수덕사에 처음 주석하며 <법화경>을 독송하고 <삼론>을 강론함.
627년(백제 무왕 28) - 혜현이 58세로 입적함.
▲ 수덕사에서 김승렬 선생님과
▲ 수덕사에서 조옥현, 이상룡, 김승렬 선생님과
삽교호
삽교호관광지는 삽교천 유역 농업종합 개발사업으로 당진군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 인주면 문방리 사이의 바다 3,360m를 막은 방조제가 준공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게 되었고, 1983. 10. 10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1979. 10. 26 삽교호방조제 준공식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행사가 되었으며, 매년 이곳에서는 10. 26에 고 박정희 대통령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잘 가꾸어진 해안가 공원의 아름다운 쉼터에서는 서해대교의 장관과 바다 내음에 흠뻑 젖어들게 되며, 청결한 공중화장실, 음수대, 1,404면의 넓은 주차장 등 관광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특히, 삽교호관광지에는 동양최초의 군함테마공원인 함상 공원과 놀이동산, 유람선이 있으며 싱싱한 생선회와 조개구이를 맛볼 수 있고, 삽교호관광지 내에서는 손쉽게 다양한 각종 건어물 및 생선을 구입할 수 있어,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관광지이다.
▲ 삽교호에서 칠성중학교 선생님들
▲ 삽교호 방조제에서
▲ 서해안 바닷가에서 회식 중
충의사
충절의 고장 수암산, 덕숭간, 가야산 기슭에 에워 싸여 자리하고 있는 매헌 윤봉길의사의 고장 충의사를 찾아 주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곳 충의사는 1968년 사당이 처음 창간되고 고박정희대통령을 모시고 준공식겸 의거 기념행사를 거행한 바 있으며 1972년에 사적 제229호 및 보물 568호로 지정 받아 수차의 정화 사업을 거쳐 현 사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메헌 윤봉길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이곳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부친 윤항공과 모친 김원상 여사 사이에 5남 2년중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11세 때에는 덕산 보통 학교에 입학하셨다가 그이듬해 인 12세때 일제의 식민지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자퇴하셨습니다. 19세 되시는 해에는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하셨습니다. 이러한 농촌부흥운동을 애국운동이라하여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져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게 되자 윤의사께서는 1930년 23세 되시던 해에 중국으로 망명하셨습니다. 윤의사 나이 25때인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개최한 일제의 천장절 겸 전승기념 축하식장을 폭파하시는 거사에 성공하시고 윤의사는 즉시 체포되시어 그해 5월 25일 상해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동년 11월 18일 일본 대판 위술형무소에 이감되 셨다가 한달 뒤인 12월 19일 그택형무소 교외 삼소우 공병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25세 일기로 순국하셨습니다.
그후 13년이 지난 1945년 해방되고 광복회 회장이셨던 이강훈 선생이 1946년 일본으로 건너가 윤의사의 유해를 모셔다가 서울 효창공원에 국민장으로 안장하였습니다. 이곳 충의사는 윤의사의 영정을 모신 본전지역, 윤의사께서 태어나시어 4세때까지 사셨던 생가(광현당)지역, 그리고 4세때 이사하시어 중국으로 망명하시기 전인 23세때까지 사셨던 성장가(저한당)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는 유물 56점이 전시되어 있고, 25세의 짧은 생애를 매직비젼 등 복합 영상모형으로 연출되어 충의정신의 학습장이 되고 있습니다.
▲ 충의사에서
천안 태조산 각원사 청동 좌불상
고려의 태조 왕건이 이곳에서 군사들을 은밀히 양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태조산이란 산 이름이 붙었다 하며 하늘아래 가장 편안한 고을이라고 해서 천안(天安)이란 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충청남도 천안시 안서동에 자리한 각원사는 주지스님이신 경해법인(境海法印) 큰스님의 원력으로 1975년 창건되어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에 해당하는 직할교구에 등록된 사찰이다.경해법인 큰스님께서는 오랫동안 교학과 수행정진과정에서 각연 김영조(覺然 金永祚 부인 정정자)거사의 시주로 1977년5월9일 남북통일 기원을 위해 청동대불(아미타불)을 태조산 중봉에 봉안하고, 아래의 대작불사를 통해 각원사는 태조산의 풍광과 승가의 조화속에 기도도량으로서그 연륜을 더해가며 부처님의 가르침인 만고불변의 진리를 탐구하고 수행정진과 불교대학 운영을 통해 신도의 체계적 교육과 사회봉사활동을 통한 포교등 불교문화창달에 앞장서는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을 큰 가람으로 발전하고 있다.
청동으로된 좌불상은 높이가 15m나 되며 청동의 무게만도 60톤이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다 귀의 길이만 해도 웬만한 성인들의 키보다 훨씬 커 보이것 같으니 중생들이 그 앞에 섰을땐 그저 코끼리 발바닥에 붙은 삐룩이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좌불상 왼쪽 아래쪽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대웅보전이 얼마전에 새로 지어졌는데 세계 최대의 좌불상과 균형을 짜 맞추어 지어진듯한 느낌이 든다.
▲ 천안 태조산 각원사 좌불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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