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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국내 行事

2013.06.11. [국내行事 19] 숙부 장례식

by 사천거사 2013. 6. 11.

 

숙부 장례식

 

 

일시: 2013년 6월 11일(화)~13일(목)

장소: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 괴산군 청안면 운곡2리 선영

 

 

 

2013.06.11. 화요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젯밤 11시에 86년간의 생을 마감하고 하늘 나라로 올라가셨다. 어제 저녁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초정 노인병원으로 달려갔더니 모진 목숨이 다시 이어졌고 결국 서울에 사는 동생들이 모두 내려온 후 1시간 정도 있다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셨다. 5년 동안 치매를 앓으면서 요양원에 계시다가 두 달 전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청주의료원과 초정 노인병원을 오가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셨다.

 

어젯 늦은 밤에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겼고 오늘부터 조문을 받기로 했다. 돌아가신 분은 나의 생부였다.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월남을 한 생부는 4형제 중 셋째였는데 자식이 없는 맏형에게 장남인 나를 선뜻 양자로 보냈다. 나는 양자로 갔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양모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았다. 생모는 친자식인 내가 '작은 어머니'라고 부를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친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호적상으로는 작은 아버지이니 직장 동료들에게 알릴 수도 없고 휴가도 얻을 수 없어 장례일 하루만 연가를 냈다. 친 남동생 3명과 여동생 한 명이 있으니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또 요즘은 상조회사라는 것이 있어서 돈만 주면 모든 절차를 다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부담도 없다.

 

▲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19:17]

  

▲ 조화가 50개 정도 진열되었다 [20:06]

 

▲ 고인의 빈소 [20:12]

 

▲ 고인의 빈소 [20:13]

  

▲ 제수씨와 여동생, 큰 조카 [20:18]

 

▲ 저녁을 먹고 있는 아들 내외와 조카들 [20:18]

 

▲ 장례식장에 진열된 조화 [20:43]

 

▲ 남동생과 매제 [20:55]

 

2013.06.12. 수요일

 

오늘은 조금 일찍 조퇴를 하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조금 흩뿌리던 비가 지금은 완전히 그쳐 있었다. 장례일인 내일은 날씨가 좋다니 다행이다. 친동생 3형제가 모두 서울에 살고 있고 여동생이 강릉에 살고 있어 조문객이 모두 원거리에서 온 사람들이다. 먼 거리를 왕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래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주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요즘은 장례식장 풍습도 많이 변해서 고스톱을 치는 사람도 없고 11시가 넘으면 모두 자리를 뜬다. 참 좋은 쪽으로 변한 것 같다. 

 

▲ 잔뜩 흐린 청주의료원 장례식장 하늘 [17:24]

 

▲ 아내, 막내 제수씨와 조카들 [21:17]

 

2013.06.13. 목요일

 

오늘은 장례일이다. 먼저 유족들이 모두 모여 발인제를 지내고 시신을 리무진에 실은 다음 장지를 향해 떠났다. 아버지는 평생 농사만 지으셨다. 두 분이 억척같이 농사만 지어 4남매를 모두 대학(한양대, 충북대, 숙명여대, 고려대)에 보냈으며 4남매는 모두 결혼을 해서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큰집에 양자로 간 나에게는 아직도 97세의 양부가 살아계신다. 형님보다 동생 분이 먼저 하늘 나라로 가신 것이다.

 

▲ 꽃에 둘러싸인 영정 [07:13]

  

▲ 발인제 [07:44]

 

▲ 발인제 [07:45]

 

▲ 발인제 [07:50]

 

▲ 발인제 [07:51]

  

▲ 발인제를 마치고 [08:09]

 

▲ 시신 운구 준비 [08:11]

 

▲ 시신을 리무진에 싣고 [08:11]

 

▲ 시신을 운구할 리무진 [08:11]

장례식장을 떠난 지 한 시간 정도 걸려 괴산군 청안면 운곡2리 집 앞에 도착했다. 집 앞에서 간단히 노제를 지내고 영정이 평생을 사셨던 집 안을 한 바퀴 돌아나온 후 시신을 리무진에서 카니발에 옮겨 싣고 장지로 올라갔다. 장지는 집에서 빤히 보이는 곳이라 걸어가도 얼마 걸리지 않는 곳이다. 장지에는 아버지 4형제 부부를 모실 합장묘 4기가 만들어져 있는데 돌아가신 양모와 작은 아버지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계신다.

 

▲ 집 앞에서 건너다 본 장지 [09:13]

  

▲ 집 앞에서 노제를 지내는 중 [09:18]

 

▲ 집 앞에서 지내는 노제 [09:20]

 

▲ 영정을 들고 집안을 한 바퀴 돌고 [09:29]

 

▲ 시신을 리무진에서 카니발에 옮겨 싣는 중 [09:34]

 

▲ 장지로 올라가는 길 [09:38]

 

4명의 묘역꾼들은 아침 일찍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시신을 맞을 무덤 준비를 다 해놓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간이식당에서는 동네분들이 음식을 들고 있었다. 장지에서 몇 분 조문을 받고 곧바로 시신을 무덤 안으로 모셨다. 지금은 관은 버리고 시신만 무덤에 안치한다. 유족들이 시토를 하고 나머지 작업을 하는 동안 간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 장지에서 바라본 동네 [09:43]

  

▲ 장지에서 조문을 받을 준비 [10:00]

 

▲ 시신을 무덤으로 운구 [10:)4]

 

▲ 시신을 무덤에 모시는 중 [10:09]

 

▲ 무덤 안 작업 중 [10:11]

  

▲ 시토 중인 큰동생 [10:26]

 

▲ 시토 중인 큰조카 [10:28]

 

▲ 국화로 만든 하트 [10:33]

 

장지 한쪽에 마련된 간이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동네분들이 무덤의 흙을 다지는 달구질을 하고, 묘역꾼들이 봉분을 만든 후 봉분제를 지냈다. 달구질을 하고 봉분 상량식을 할 때에는 유족들이 얼마씩 추렴을 해야했다. 5만원 짜리가 나오는 바람에 요즘은 기본이 5만 원이다. 봉분이 완성되고 봉분제를 지내는 것으로 장례식이 모두 끝이 났다. 이북에서 넘어온 이후로 평생을 사시던 집이 바라보이는 곳에 편안하게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두고 속으로 울음을 참으며 길을 내려갔다.

 

▲ 장지 한쪽에 마련된 식당 [10:55]

  

▲ 동네분들이 달구질을 하고 [11:12]

 

▲ 무덤을 다지는 달구질 [11:15]

 

▲ 봉분을 만드는 중 [11:46]

  

▲ 잔디가 남아 옆에 있는 다른 형제분들 봉분도 보수를 하고 [11:59]

 

▲ 봉분제를 지내는 중 [12:07]

 

▲ 오열하는 생모 [12:14]

 

▲ 봉분제 상차림 [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