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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트레킹/충북 음성 용산저수지 둘레길

2021.05.19. [용산저수지 둘레길 1] 충북 음성 용산저수지 둘레길

by 사천거사 2021. 5. 22.

음성 용산저수지 둘레길 탐방기

◈ 일시: 2021년 5월 19일 수요일 / 맑음

◈ 장소: 진천 배티성지 / 음성 용산저수지 둘레길 / 충북 진천-음성

◈ 코스: 청주 사천동 → 진천 배티성지  미가짬뽕 → 음성 용산저수지 둘레길

           청주 사천동

◈ 거리: 2km

◈ 시간: 34분

◈ 회원: 아내와 함께 


▲ 배티성지: 충북 진천군 백곡면 배티로 663-13

 

▲ 용산리 저수지: 충북 음성군 음성읍 용산리




배티성지

 

경기도와 접하고 있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조성된 천주교 성지로, 지리적으로 서쪽은 안성, 용인, 서울, 남쪽으로는 목천, 공주, 전라도 그리고 동쪽으로는 문경새재를 지나 경상도로 이어져 박해 시대에도 내륙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또한 배티는 배나무 고개라는 뜻으로 충북 진천에서 경기도 안성으로 넘어가는 고개 주변 동네 어귀에 돌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梨峙)’라고 불렸고 이는 다시 순우리말로 ‘배티’라고 불리게 됐다.

배티 순교성지는 안성 칠장산에서 시작하여 태안반도 지령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의 서운산(547m)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예로부터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던 오지인 데다가 충청 좌도와 우도, 경기도의 접경에 위치해 있어 박해를 피해야 했던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기록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배티 일대로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기 시작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이며, 계속되는 박해로 이 지역 거주 신자들이 점차 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박해기간 동안 교우촌(한국 천주교의 카타콤(Catacomb))

 

이처럼 각 지역과 쉽게 연결되면서도 깊은 산골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1830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우촌이 형성돼 왔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온 프랑스인 성 모방 나 베드로 신부는 1837년 5월 성 샤스탕 정 야고보 신부와 함께 배티에서 성사를 주었고, 이로써 배티 교우촌은 충청도 최초의 공소로 설정되었다.

이후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를 거처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교우촌 수는 더욱 늘어나 현재까지 확인된 기록에 나타난 교우촌만 은골, 삼박골, 정삼이골, 용진골, 절골, 지구머리, 동골, 발래기, 퉁점, 새울, 지장골, 원동, 굴티, 방축골 등 배티를 포함해 모두 15곳에 이른다.

 

조선대목구 최초의 신학교 마을

 

성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는 신부 시절이었던 1850년 대목구장 페레올 고 요한 주교로부터 ‘조선대목구 소신학교’ 설립 지시에 따라 배티 교우촌 안에 신학교 교사(소성당 및 사제관 겸용)로 사용할 방 2칸짜리 초가집을 마련했다. 다블뤼 교장 신부는 1853년 여름까지 배티에 상주하다가 다시 교우촌 순방에 나섰고, 그 뒤를 이어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배티 신학교를 맡게 되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신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그들의 유학에도 힘을 써, 1854년 3월 신학생 3명(임 빈첸시오, 김 사도 요한, 이 바울리노)이 말레이시아의 페낭 신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이후 배티 신학교는 문을 닫고 제천 배론 성지에 새 신학교가 설립되지만, 초가집으로 된 성당 겸 사제관에는 최양업 신부, 프티니콜라 박 미카엘 신부, 페롱 권 스타니슬라오 신부 등이 오랜동안 거쳐하며 사목활동을 했다.

1999년 최양업 신부가 머물렀던 성당 및 사제관 터를 확인한 후 그 부근에 있던 농가를 매입해 철거하고, 2001년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한 후 최양업 신부 동상도 세웠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사목 중심지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복자 이성례 마리아의 장남으로 한국 천주교의 첫 번째 신학생이면서 2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년 3월 1일~1861년 6월 15일)는 15살이었던 1836년 중국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중국 요동성당에서의 7개월 사목 활동 후 1861년 6월 15일 만 40세의 나이로 선종하기까지 11년 6개월 동안 조선의 복음화에 일생을 바친 백색 순교자 또는 땀의 증거자이다.

 

최양업 신부는 1853년 여름 조선대목구 신학교 지도를 맡은 이후 3년 동안 배티 교우촌을 사목 중심지요 본당으로 삼아 전국을 다니며 사목 활동을 해 왔다. 사목 순방이 끝나는 9~10월에는 배티 사제관에 거쳐하면서 저술에 몰두하여 글을 잘 알지 못하는 교우들을 위해 어려 편의 천주가사를 짓고, 최초의 한글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天主歌辭)와 성교공과(聖敎功課)를 번역한 한글 교리서 ‘성교요리문답’을 지었다.

 

복자 9위를 탄생시킨 순교자들의 본향

 

배티와 인근에는 복자 오반지 바오로의 묘소를 비롯하여 ‘6인 묘’와 ‘14인 묘’ 등 유명ㆍ무명 순교자 묘소가 산재해 있으며, 박해 시기 동안 배티 일대에서 체포된 순교자 수는 34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놋점 출신 오반지 바오로와 배티 출신 장 토마스, 절골 출신 박경진 프란치스코 등 8명과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마리아)는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성지 현황

 

충청북도가 2011년 3월 4일 배티성지의 조선교구 신학교지’와 ‘무명 순교자 14인 묘소’ 그리고 ‘삼박골 모녀 순교자 묘역’ 등 3곳을 충청북도 기념물 제150호로 지정하면서 충청북도와 진천군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성지 개발에 들어갔다. 성지 들머리 주차장의 조립식 강당이 있던 자리에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성당 건립을 위한 기공식을 2011년 4월 15일 가졌고, 2012년 4월 15일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고딕 양식 기념성당을 완공해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2012년 10월 10일에는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와 박해시대의 역사와 신앙 선조들의 삶을 보여줄 최양업 신부 박물관 기공식을 가졌고, 2014년 4월 11일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순례자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최양업 신부 박물관 축복식을 가졌다.

그리고 같은 해 최양업 신부 성당터에 십자가의 길 14처를 새로 조성하고, 복원된 성당 겸 사제관으로 사용된 초가집 마당에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 복녀 이성례 마리아 흉상을 새로 제작해 설치하였다. 또한 배티 일대에 산재한 15개의 박해시대 교우촌을 산길로 잇는 배티 순례길 조성 및 삼박골 피정센터 등도 추진하고 있다.

배티성지에 있는 성모상들은 거의 모두가 역시 충북에 위치하는 감곡 매괴성당의 '칠고의 성모상'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매괴성당에서 주임 신부로 재직했던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가 배티성지로 부임한 기간 동안에 추진된 것이었다.


10:00  오늘은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불자들은 당연히 절로 가겠지만 천주교를 믿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하다 생각난 게 청주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배티성지였다. 진천군 백곡면에 있는 배티성지는 금북정맥 종주를 시작하면서 스쳐 지나온 적이 있지만 아직 직접 방문을 하지는 못했다. 먼저 배티성지 둘러보고 이왕 나간 김에 음성에 있는 용산저수지 둘레길도 걸어볼 요량이다.

 

청주 사천동 출발, 17번과 34번 국도, 325번 지방도를 따라 45분 정도 달려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에 있는 배티성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성지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대성당이 반겨준다. 최양업 신부는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1년 6개월 동안 삼남지방을 돌며 사목활동을 하다 40세 나이에 선종한 땀의 순교자이다. 대성당 안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와 장미꽃에 둘러싸인 성모상이 이채롭다.


▲ 청주 사천동 출발 [10:04]

 

▲ 자, 이제 떠나봅시다 [10:09]

 

▲ 배티성지 주차장에 주차 [10:55]

 

▲ 배티성지 표지판 [10:57]

 

▲ 배티성지 표지석을 뒤에 두고 [10:58]

 

▲ 기념 대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11:01]

 

▲ 기념 대성당 내부 모습 [11:01]

 

▲ 기념 대성당 제대 [11:02]

 

▲ 기념 대성당 제대 옆에 있는 성모상 [11:03]


11:04  기념 대성당을 떠나 순례길 코스를 따라 올라간다. 순교현양비를 지나 조금 올라가자 왼쪽으로 윗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에 있는 기념 대성당과 구별하기 위해 윗성당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윗성당을 지나면서 시작되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올라가자 산상제대와 신자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야외 미사를 거행할 때 사용하는 장소로 보인다.


▲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 대성당 앞에서 [11:04]

 

▲ 배티성지 안내문 [11:06]

 

▲ 배티성지 순례길 및 둘레길 안내도 [11:06]

 

▲ 배티성지 순례길 코스에 진입 [11:07]

 

▲ 순교현양비 옆을 통과 [11:08]

 

▲ 배티성지 윗성당 [11:11]

 

▲ 윗성당 입구에 있는 매괴의 성모님 [11:12]

 

▲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지점 [11:12]

 

▲ 최양업 신부님 상 [11:13]

 

▲ 산상제대 쪽으로 진행 [11:14]


11:15  산상제대 위에 있는 성모상 앞에 도착했다. 인자하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성모님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 보아도 참 좋다. 순례길에 조성된 돌계단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 잠시 고민, 날씨는 덥고 시간적으로도 순례길을 한 바퀴 돈다는 게 무리일 것 같아 오늘은 여기서 그냥 돌아가기로 하고 왼쪽으로 나 있는 흐릿한 산길을 따라 내려왔더니 십자가의 길 제6처가 나타났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티성지 탐방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진천군 사석면에 있는 손맛한식뷔페를 향해 달려가는 길, 휴일을 맞아 나들이 나온 차량들로 도로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신호등이 있는 곳은 정체현상까지 발생. 값이 싸고 음식 맛이 좋기로 이름 난 손맛한식뷔페 식당 앞에 도착해 보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주차장이 혼잡한 것은 물론 식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차를 돌려 근처에 있는 가화짬뽕 식당에서 짬뽕으로 점심을 먹고 두 번째 방문지인 음성 용산리저수지를 향해 달려갔다.


▲ 산상제대로 올라가다 소나무 앞에서 [11:15]

 

▲ 배티성지 산상제대 성모상 [11:20]

 

▲ 배티성지 순례길에 진입 [11:23]

 

▲ 길도 없는 곳을 대충 진행 [11:26]

 

▲ 사면을 따라 내려온 곳은 십자가의 길 제6처 옆 [11:31]

 

▲ 작약꽃 앞에서 [11:33]

 

▲ 배티성지 탐방을 마치고 주차장에 도착 [11:42]

 

▲ 점심을 먹은 가화짬뽕 식당: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다 [12:21]

 

▲ 가화짬뽕 식당 짬뽕 비주얼 [12:26]


13:49  용산저수지 옆에 있는 봉학골 산림욕장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휴일을 맞아 이곳 넓은 주차장에도 꽤 많은 차들이 서 있었다. 용산저수지 둘레길은 원점회귀 코스라서 어느 쪽으로 돌아도 상관이 없다. 우리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수변을 따라 나 있는 데크길에 들어서는 것으로 본격적인 둘레길 걷기에 들어갔는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뀌는 저수지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다.


▲ 봉학골 산림욕장 주차장에 주차 [13:49]

 

▲ 주차장에서 저수지 쪽으로 진행 [13:51]

 

쑥부쟁이 둘레길 어느 쪽으로 진행해도 원점회귀 가능 [13:54]

 

▲ 용산저수지 둘레길에 진입 [13:54]

 

아름다운 용산저수지 풍경 [13:54]

 

▲ 용산저수지 데크 둘레길 [13:54]

 

아름다운 용산저수지 풍경 [13:55]

 

아름다운 용산저수지 풍경 [13:57]

 

▲ 걷기 좋은 저수지 둘레길 [13:58]


13:58  저수지 물 위에 산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2008년 1월 뉴질랜드 여행 때 밀포드 사운드 관광을 마치고 퀸즈타운으로 돌아오며서 들른 거울 호수(Mirror Lakes), 물 위에 비친 멋진 산그림자가 유유히 헤엄치며 지나가는 오리들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용산저수지가 비록 작은 저수지이기는 하지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타나는 새로운 풍광들은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은 크기보다 조화에 있다.


▲ 저수지에 만들어진 물그림자 [13:58]

 

아름다운 용산저수지 풍경 [13:59]

 

아름다운 용산저수지 풍경 [14:00]

 

아름다운 용산저수지 풍경 [14:01]

 

▲ 물멍을 때리고 있는 아내 [14:04]

 

▲ 찔레꽃 앞에서 [14:05]

 

▲ 증재록 시인의 시 나를 비춘다 [14:06]

 

▲ 저수지 뒤로 보이는 가섭산 [14:06]

 

▲ 수상 데크길을 걷고 있는 아내 [14:06]


14:09  야자매트가 깔려 있는 제방길에 들어섰다. 고개를 조금 왼쪽으로 돌리니 저수지 뒤로 솟아 있는 가섭산이 눈에 들어온다. 음성에서 근무할 때 여러 번 올라갔던 곳이지만 이렇게 저수지 앞에서 보니 또 그 모습이 색다르다. 용산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주차장으로 왔다. 둘레길 거리가 2km에 불과해서 걷는 시간도 3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크기는 작지만 둘레길 어디서든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작은 호수, 용산저수지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 야자매트가 깔려 있는 제방길 [14:09]

 

▲ 저수지 뒤로 보이는 가섭산 [14:09]

 

▲ 음성 쑥부쟁이 둘레길 안내판 [14:11]

 

▲ 아름다운 용산저수지 풍경 [14:13]

 

아름다운 용산저수지 풍경 [14:13]

 

▲ 용산저수지 오리배 앞에서 [14:15]

 

▲ 용산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 주차장에 돌아왔다 [14:25]

 

▲ 오늘 일정을 마치고 청주 사천동 귀환 [15:23]